밀양: 끝나지 않은 싸움

밀양 할머니, 그녀들 이야기1-휴게소 아주 멀었능교?

- 정수희(에너지정의행동 활동가)

‘휴게소 아주 멀었능교?’

 

“아무래도 남자 앞이라 참 그렇더라.”

그녀는 올해 육 학년 팔 반입니다. 할머니라 부르기엔 조금 민망한 나이입니다. 꽃다발을 받아보진 못했지만, 화장을 곱게 하고 길을 나서면 남녀 불문하고 말을 걸어왔다 합니다. 시장에서 사 온 옷도 그녀가 입으면 백화점 옷이 되었다 합니다. 아직 그녀는 ‘할머니’라는 호칭이 많이 낯선지, 이렇게 그녀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합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라고 단서를 붙여서 말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를 ‘할머니’라 부르기엔 아직 많이 이릅니다.

그런 그녀가, 며칠 전, 태어나 처음으로 꽃다발을 받았습니다. 아이쿱에서 밀양 할머니들께 <나눔과 연대상>1)을 수여 하였는데, 그녀가 이 상을 대표하여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공식적으로 ‘밀양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밀양 할머니들이 이 상을 받는 다는 소식은 진작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상을 받으러 가는 줄은 몰랐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인증샷’이 올라오길 기다렸습니다. 상을 받으러 가는 자리인데, 분명 누구보다도 예쁘고 빛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대는 곧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너무 피곤해 보였고, 아파보였습니다. 빛나지 않았습니다.

 

사진_노태민 : 아이쿱 전국대표자회의 시상식

사진_노태민 : 아이쿱 전국대표자회의 시상식

 

사실 그녀가 빛나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밀양 할머니”로서 그녀는 우리가 그간 외면해 왔던 고통들을 다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밀양 송전탑 문제는 단지 765kV 초고압 송전탑 문제가 아니라, 다수의 편익을 위해 소수의 사회적 약자들이 희생 당해온 구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그간 우리가 가해온 폭력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그녀는 한전의 13번째 공사가 시작된 지난 10월 이전부터 127번을 농성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녀의 싸움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8년 전 산업자원부는 밀양 송전탑 공사에 대한 사업승인(2007년 11월 30일)을 내 주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밀양 송전탑 공사가 아직 계획 중 이어서 주민들은 국회와 밀양시청을 오고 가며 765kV 송전탑 공사를 막아내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의 뜻과는 달리 산자부의 사업승인이 났고, 그 뒤부터 주민들은 직접 산위에 올라 송전탑 공사 시도를 막아내야 했습니다. 한전 인부 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하기 위해 새벽밥을 지어 먹고 산 위에 올랐습니다. 전기톱을 발로 막고, 포크레인에 쇠사슬로 몸을 묶었습니다. 온갖 모욕을 당하면서도 한전 인부들을 쫓아다녔고, 뜨는 헬기를 막기 위해 헬기장을 점거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공사를 12번이나 멈추었습니다. 공사가 멈출 때는 언제나 주민들이 크게 다치거나 심하게 모욕을 당하고 난 뒤였습니다. 한전의 아홉 번째 공사시도는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하여 돌아가시고 난 뒤 중단되었습니다.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 되겠다.”는 이치우 어르신의 유언은 밀양 주민이면 모두가 알고 있는 공사 중단의 이유입니다. 누군가가 크게 다치고, 누군가가 아주 치욕적인 모욕을 당해야만 공사가 멈췄습니다.

그러나 지난 10월에 시작한 한전의 13번째 공사 시도는 이전과는 달랐습니다. 하루 평균 2,600명2)에 달하는 경찰력이 동원되어 현장 진입을 막고 있는 주민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하였습니다. 10월 2일부터 12월 말까지 총 68명3)의 주민들이 병원으로 이송되어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사이 두 분의 주민이 자살을 시도하였고, 그중 한 분은 5일 동안을 극심한 고통 가운데 계시다가 끝내 숨을 거두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전의 공사 재개와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밀양주민의 87%가 ‘우울증 고위험군’의 증상을 겪고 있고, 10%는 심각한 자살 충동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4)

주민들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대화를 요구하고 있으나, 한전은 올 6월까지 공사를 완료할 계획입니다.

 

사진_환경운동연합 소식지 : ‘함께 사는 길’ 2013년 11월 호 표지

사진_환경운동연합 소식지 : ‘함께 사는 길’ 2013년 11월 호 표지

 

그녀가 있는 127번 현장을 포함하여 부북면 일대는 아직 공사가 시작 되지 않았습니다. 설을 전후로 하여 부북면 주민들 사이에선 곧 공사가 들어올 것이라는 큰 긴장감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녀가 상을 받으러 간 그 날도, 한전이 쳐 들어올 것을 대비해 마을 대책회의가 열렸습니다.

그 긴장감이 그녀의 사진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습니다. 태어나 처음 받아 보는 꽃다발도, 상을 받는다는 기쁨도 그녀가 불편하고 힘든 마음을 감추게 하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빛나야 할 자리인데도 빛나지 않는 그녀의 사진을 보면서 가슴이 답답해져 옴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웃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대전을 다녀 온 뒤였습니다. 그녀는 대전으로 가는 차 안에서 화장실 문제 때문에 혼이 났다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몇 달 전부터 소변보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이는 그녀뿐만 아니라 농성장의 다른 할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변을 자주 볼 뿐만 아니라, 소변이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휴게소를 들러 화장실을 가자는 말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자꾸 휴게소를 들러야하는 상황이 다른 할머니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대전까지 운전을 해 주신 분이 “남자”분 이였기 때문에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한전의 12번째 공사 시도가 있은 지난해 5월, 한전 인부들 앞에서 속옷 한 장 달랑 입고 공사 현장을 뚫으려 했던 분입니다. 오랜 농성장 생활로 소변조차 인분을 투척하기 위해 공적(?)으로 모으고 있는 상황에서, 그녀의 어떤 인간적인 감정 – 자신을 보호하고 지키고자 하는 어떤 감정들 –은 너무나 가당치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고마운 감정이고, 또 안도감이 드는 감정이었습니다.

 

밀양의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습니다. 밀양 할머니들, 더 이상 그녀들이 가진 마지막 인간다운 어떤 감정들이 더 사라지기 전에 이 공사를 멈춰야 할 것입니다.

 

사진_장영식 : 설 이후 127번 농성장에는 움막을 둘러싼 에는 깊이 2m, 폭 3m의 도랑이 만들어졌다. 이로써 127번 움악은 섬이 되었다.

사진_장영식 : 설 이후 127번 농성장에는 움막을 둘러싼 에는 깊이 2m, 폭 3m의 도랑이 만들어졌다. 이로써 127번 움악은 섬이 되었다.

 

 

 

1) 아이쿱 생협뉴스, 2014.02.08. “소비자활동연합회, 2014년 제1차 전국대표자회의 개최”

2) 오마이뉴스. 2014.01.22. “경찰이 밀양서 100일간 쓴 돈, 무려 42억!”

3) 밀양인권침해감시단, 밀양송전탑 전국대책회의. 2014.01.22. 「밀양 인권침해 보고회, 세 번째 보고서」

4)경향신문. 2014.01.10. “송전탑 반대 밀양주민 87% ‘우울증 고위험군’”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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