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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여자라면, 어머 이건 꼭 봐야 해 _ ① <왕자가 된 소녀들>(2012)

- 권은혜(수유너머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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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 개봉한 <왕자가 된 소녀들>의 포스터는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포스터 속 선명한 흑백 사진 안에는 마치 난리 통에 부모를 비롯한 모든 것을 잃고 자신의 몸뚱어리만 간신히 연명한 채 위태로이 스러지려 하는 아리따운 여인과 그 여인의 어깨와 허리를 두 손으로 꼭 감싸 안고 평생을 지켜주겠다는 굳은 맹세를 하는 듯 날선 콧날과 앙다문 입술을 하고 있는 남자가 있다. 그들은 같은 왼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남자의 시선은 살짝 위로 향해 있어 그의 의지를 느끼게 했고, 여자의 시선은 아래로 향하고 있어 그 비애가 느껴진다. 사진 한 장 만으로도 그 사진 속 인물들이 연기할 이야기가 마구 연상되는, 생생하고 강렬한 사진이었다. 영화를 보기도 전에 포스터가 이미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그리고 시작된 다큐멘터리는, 이야기로만 전해 들었다면 쉽사리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을, 그러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그런 역사가 있었다면” 하고 바랐던 잊혀진 여성들만의 역사였다.

 

여성국극. 연극은 물론 창극과 판소리와 같은 국내 연극사에 문외한인 내가 여성국극을 알고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여성국극은 국내 연극에 대한 관심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이라 하더라도 낯설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해 있다. 1948년 국악원에서 여성들만이 떨어져 나와 여성국악동호회를 조직한 것이 여성국극의 시초가 되었다. 여성단원들로만 구성되어 있기에 여성들이 남장을 하고 공연을 하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고, 국악동호회가 그 시작이었던 만큼 창이 주요 표현방식이다. 주로 야사, 신화, 전설을 모티프로 삼아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는 멜로드라마 형태로 제작되어 당시 대중들, 특히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얻은 대중문화였다. 여성국극은 당시 남녀 혼합단체들이 만든 전통 창극의 인기를 웃돌며 인기몰이를 했지만 영화나 TV같은 다른 매체들과의 경합과 당시 남성·가부장중심의 연극계·지식인 사회의 비난 속에서 60년대부터 그 기세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김혜리(73)의 증언에서 알 수 있듯, 여성국극은 1960년대 대거로 이루어진 문화재 지정과 같은 국가적 차원에서의 지원과 보호에서 의도적으로 제외되면서 후진양성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본격적인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러나 판소리 무형문화재이자 영화의 주요 소재인 옥당국악국극보존회의 이사인 이옥천(67)의 경우처럼, 여성국극을 하는 이들의 다수는 판소리나 춤 등으로 국가적 차원의 인정과 지원을 받고 있음에도 여성국극에 대한 애정과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한 여성국극 단원들과 팬들의 증언, 그녀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놀라움 그 자체다. 주로 70대의 고령인 그녀들은 나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열정적으로 공연에 임하는 것은 물론 그녀들 사이의 오래고 깊은 우정의 공동체에 가족이나 남성이 들어올 필요나 틈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국극보존회 총무를 맡고 있는 김복강(75)의 회상에 따르면 젊은 시절 여성국극 단원들은 “남의 집 딸인지도, 시집, 대학 다 잊어버리고 밤낮으로 돌아다닌”, 여성으로서 또한 자식으로서 부과되는 책임과 의무의 굴레를 잊고 여성들끼리 동고동락하는 극단 생활에 푹 젖어 자유롭게 산, ‘집을 나온 소녀들’이었다. 그렇게 산 이들은 배우, 단원들만이 아니었다. 여성국극의 팬들이었던 소녀들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주로 왕이나 왕자 역할을 도맡아 한 故조금앵(83)의 경우, 팬의 부탁으로 신랑역을 맡아 촬영한 가상의 결혼식 사진이 있을 정도로 열혈 팬들을 불러 모았고, 여성국극의 팬인 신부귀(72)는 여성들이 남장을 해서 멋진 연기를 보여주는 모습에 반해, 자식까지 등한시 하면서 여성국극 판에 뛰어들었다 2억을 날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후회하지 않는다”며 그 때의 열정 그대로를 간직한 증언을 들려준다. 뿐만 아니다. 수십 명 모두 여성들인 여성국극단체에서는 커플들도 많이 탄생했다. 이들의 다수는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 하와이에 정착해 연인 겸 친구로 함께 살고 있다. 꼭 연애관계가 아니더라도 “여자친구랑 정이 들면 어떤 남자도 따라오지 못한다”는 김혜리(67)의 말처럼 이미 50여 년 전인 그 시절, 누구보다 자유로운 삶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온 그녀들이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사실들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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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과거에 연기되었던 여성국극의 영상과 스틸컷이 제시되는 것은 물론 현재에 상연되는 국극의 장면들과 연습하는 모습들이 등장한다. 특히, 이옥천(67)의 연기 모습은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이 여성국극의 매력에 빠져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그녀가 남주로 연기하는 <햇님달님>(2008)의 한 장면에서 보여지는 그녀의 그윽한 눈빛과 남성적인 강함이 느껴지면서도 섬세한 춤사위는 영화나 드라마, 연극의 그 어떤 남성 주인공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묘한 매력을 풍기며 그(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영화 촬영 중 그들이 부산에서 공연한 <사도세자의 비가>의 연습장면에서 역시 이옥천의 바이섹슈얼한 매력은 카메라의 줌인 됨과 함께 나의 마음을 설레게 했으며, 그녀의 국극 연기를 실물로 보고싶다는 팬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녀의 남장 연기는,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67세의 여성이 주는 매력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이렇게 캐미가 돋는 연기를, 남성주인공에게서는 결코 느껴본 일이 없었다. 이는 단지 이옥천만의 것이 아니었다. 화려한 의상과 짙은 화장이 주는 스펙터클과 남장여자의 매력은 모든 여성국극이 공유하고 있는 특징이다. 다른 한편 과거 극단의 모습을 보여주는 스틸컷에서도, 현재의 장면들에서도 그녀들이 모이는 때이면 그것이 어디든 잔치집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연습 때는 팬 들이 챙겨온 지짐이며 나물 등의 음식이 있었고, 국극보존회 사무실 장면이 나올 때도 그녀들이 직접 장만한 음식이 늘 함께했다. 어떤 공동체나 단체든 음식을 함께 나누고 먹는다는 것은 그들이 일종의 식구(食口)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단순히 일이나 다른 목적으로 함께하는 것 이상의 친밀한 유대가 형성되어 있음을 말한다. 그녀들의 이러한 모습은 남성들만으로 이루어진 단체나 남녀가 함께 있는 모임에서 음식이 함께 할 때와는 전혀 다른 감응을 불러일으켰다. 어릴 적 할머니를 따라 놀러 다녔던 할머니들만 있는 경로당에서 큰 솥에 찐빵을 쪄서 나눠먹고 계신 할머니들의 모습이 겹쳐서 떠올랐다. 이 모습들 속에는 남성이나 가족이 끼어들 틈이 없었으며 그들만으로 충분하고 넘치는 활기가 함께했다. 놀랍게도 그 시대를 통과해온 여성으로서, 전통창극의 위세에 눌린 여성국극의 단원들로서 분명히 느꼈을 결핍과 피해의식이 느껴지지 않는, 함께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충만한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국립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한 여성국극이 현재 처하고 있는 열악함을 보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시작과 마지막에 등장하는, 故 조금앵(83)이 손수 분장을 하고 있는 장면은 그녀의 지지않는 노익장을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했지만, 분장사가 함께하지 않는 노년의 여배우라는 점에서 초라하게 보이기도 했다. 이는 오래 된 건물 2층 혹은 3층에 위치한 것 같은 옥당국악국극보존회의 사무실에서도, 한 주민자치회관에서 경로위안잔치로 초청받은 곳에서 계단을 힘겹게 오르는 그들의 모습에서도 느껴졌다. 국가와 극단계의 배제와 탄압이 없었다면 일선에서 연기하는 모습 외에 후진을 양성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었다. 물론 그랬다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여성성과 남성성을 넘나드는 연기를 보여주며, 우정을 나누고 사랑을 했던 여성들의 공동체와 문화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에 이처럼 놀라워했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왕자가 된 소녀들>은 문화기획집단 ‘영희야 놀자’에서 기획·제작되었다. ‘영희야 놀자’는 독립적인 여성주의 공동체를 지향하며 여성주의 커뮤니티 ‘언니네’(www.unninet.co.kr)를 만든 초창기 멤버들이 새롭고 지속가능한 여성주의 문화기획집단을 만들기 위해 다시 모인 집단이다. 여성국극을 재조명하고자 한 시도는 이들을 다시 뭉치게 해 준 계기가 되었고, 그 결과물로 나온 것이 <왕자가 된 소녀들>이었다. 이들이 처음 여성국극에 관심을 가지고 접근을 시도한 것이 2007년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영화가 완성되기 까지가 결코 순탄치 않았다는 점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런 시간을 견뎌내며 영화를 제작해준 ‘영희야 놀자’에 2014년, 젊은 시절(?)을 보내고 있는 여성으로서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돌아가신 할머니와 같은 시절을 보낸, 나보다 훨씬 앞선 여성들의 역사에 이토록 해방적이고, 자유로운 이들이 존재했고, 아직도 같은 하늘아래 숨 쉬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더 늦기 전에 여성국극 공연을 꼭 보러가고 싶다.

 

응답 1개

  1. 김승윤말하길

    안녕하십니까 ? 저는 이곳 로스엔제레스 에 살고

    있읍니다 저는 전남 보성군 벌교읍 호산리 (호

    동리2구 )태생이며 순천 여고 를 65년에 졸업했

    읍니다 1947년생이구요 근데 저의 소원이 옛날

    김진진 김경수 님의 여성 국극을 (순천에 오실

    때마다 빠짐없이 보았읍니다)이곳에서 만들어

    보고 싶은데 돈이 그렇게 많이 드나요 ? 저는 남

    장을 하고 이곳에서 판소리를 하고 있읍니다 놀

    부 심술 타령이나 화초장 타령 하지만 매일 유

    튜브 로 입체창을 할수 있게 여러가지 판소리를

    하고 있으며 작년에 김수연 선생님 오셨을때 수

    궁가중에서 눈대목으로 두대목을 배웠고 조통

    달 선생님 앞에서도 화초장을 불렀읍니다 선생

    님꼐서 북을 워낙 잘쳐 주셔서 못하는 소리가 살

    아나는 영광을 주셨읍니다 . 햇님 달님 이라는

    창극을 되살려 보고 싶은것이 저의 소원 입니다

    어찌하면 희곡과 의상을 구할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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