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대 과학

이기와 이타를 넘어서(5)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 박성관

 1. 『이기적 유전자』의 새로움은 어디에 있는가?

도킨스는 약 40년 전에 『이기적 유전자』(1976)를 출간하면서 1장 마지막 단락에 이렇게 써놓았다.

나는 선택의 기본 단위, 즉 이기성의 기본 단위가 종도 집단도 개체도 아닌, 유전의 단위인 유전자라는 것을 주장할 것이다. 이 말이 일부 생물학자들에게는 극단적인 것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어떤 의미로 그와 같은 논의를 하려는지 알게 된다면, 그들은 비록 그것이 낯선 방법으로 표현되어 있을지라도, 본질적으로 그것이 정통 이론이라는 것에 동의해주리라 희망한다(p. 52).

도킨스 말대로 그의 『이기적 유전자』론은 정통 이론을 다른 방식으로 기술한 것이다. 즉, 개체(및 개체들이 집단) 수준에 있던 정통 이론을 유전자 수준에서 재기술한 것이다. 개체 수준을 유전자 수준으로 낮추는 이 한 걸음, 바로 그것이 수많은 사람들의 반발과 열광을 초래했다. 그리고 다윈의 진화론을 우주의 보편적 생명 원리로 나아가게 했다.1)

 

2. 이전의 생물학

우리도 익숙한 기존 생물학은 두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생물의 여러 형질들(신체 구조, 생리 메커니즘, 습성 등)은 그 생물이 살아가는 환경에 고도로 적합하게 되어 있다. 그 한 생물의 형질은 그 생물이 살아가는 데 유리하게 작용한다.

둘째, 그런데 개체에게 불리한 형질도 현실에 있을 수 있고 또 그런 형질이 대대로 유전될 수도 있다. 그런 특징을 가진 개체가 있을 때 그 개체가 속한 집단이 유리하다면 말이다. 대표적으로 불임 곤충들이 그렇다. 이들은 불리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기가 불임이 되게 한 모종의 유전자들을 다음 세대에 전할 방법 자체가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연계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며 멸종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특히 생물계에서 최대 다수를 자랑하는 곤충류에서는 그렇다. 이게 흔히 집단 선택으로 불리는 현상이다.

 

3. 도킨스 최대의 업적

도킨스는 유전자의 이기성으로 인해 개체에게는 해로울 수 있는 현상에 자연계에 나타날 수 있고 또 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기적인 유전자가 자기 이익을 위해 개체를 구성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보호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자기가 속해 있는 개체를 해롭게 하면서 유전자 자신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다윈을 포함한 주류 진화론에서도 이와 비슷한 얘기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런 경우는 주로 같은 종류의 집단에게 도움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도킨스는 그런 식의 집단 선택론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소위 이타성의 예로 기생-숙주 관계를 포착한다. 이게 과연 무슨 얘긴지는 조금 있다 보기로 하고, 잠시 인간 세상 얘기를 좀 해보자.

 

4. 내 몸과 마음은 나의 것인가?

혹시 당신의 가치관, 당신의 꿈, 당신의 신체 구조와 인생 역정 등등이 당신 자신을 위한 게 아니라,다른 존재를 위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 있는가? 그것도 우연적이거나 일시적인 게 아니라, 또한 어떤 예기치 못한 부수적 효과가 아니라, 체계적이고 전반적인 현실일 수 있다고 생각해보신 적 있는가? 게다가 당신 자신은 그런 생각을 해볼 여지조차 봉쇄되어 있다고 한다면 뭐라 하시겠는가? 아마도 십중팔구는 대체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의아해하실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초판 서문 첫 대목을 보시라.

이 책은 마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공상 과학 소설처럼 읽어야 한다. 그러나 이 책은 공상 과학 소설이 아니라 과학서다. 진부한 표현인지 몰라도, ‘소설보다 더 기이하다’는 표현이 내가 이 책에 대해 느끼는 바를 정확하게 드러내 주는 것이다. 우리는 생존 기계다. 즉, 우리는 유전자로 알려진 이기적인 분자들을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로봇 운반자들이다. 이 사실은 아직도 나를 놀라게 한다(p. 28).

다시 물어보겠다. 만일 우리가 『이기적 유전자』의 주장대로 유전자의 보존을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로봇이라면, 나아가 『확장된 표현형』이 주장하는 대로 그 유전자가 내 몸 밖에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되는 건가? 아니, 뭐라구? 내 자신이 내 안에 있지도 않은 다른 유전자의 보존과 유지를 위해 맹목적으로 분투한다구? 우째 그런 일이….?!

그렇게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 책이 바로 『이기적 유전자』의 후속작 『확장된 표현형』이다.도킨스 스스로 “일생 동안 학자로서 성취했던 그 어떤 것보다 자랑거리이자 기쁨거리”라 불렀던 책. 도킨스는 이 책의 내용을 『이기적 유전자』의 1989년 개정판 마지막 장(13장)에 요약해놓았다. 그 주요 내용 중의 하나가 바로 ‘기생-숙주’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고 비버의 댐으로 유명한 내용도 함께 담겨 있는데, 사실 양자 간에는 본질적 차이가 없다. 13장의 제목이 「유전자의 긴 팔」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어떤 생물이 가진 유전자는 개체 안에만 팔을 뻗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아주 먼 곳까지 뻗을 수 있다. 유전자는 자신의 표현형을 다른 생물의 신체 속에도, 뇌세포 속에도, 어떤 자연 환경 속에도(예컨대 비버의 댐) 가질 수가 있다. 소설보다 기이하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도킨스의 말이 옳다면, 그리고 사람도 동물이요 생물인 게 확실하다면, 나의 신체 구조나 생리, 습성 및 행동이 꼭 나의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누군가 다른 사람, 다른 생물에 들어있는 유전자에 의해 조종되는 것일 수가 있으니 말이다. 나의 모든 것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 나의 것 아니면 누군가 다른 존재의 것?

나의 신체 구조, 생리, 습성 및 행동 모든 것은 유전학적으로 보면 유전자의 표현형이다. 이걸 이기적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한 유전자가 표현형에 미치는 영향은 그 유전자가 스스로를 다음 세대 속으로 밀어넣기 위한 도구”이다(도킨스는 이 점을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리고 곧장 한 가지 얘기를 추가한다. “이 도구는 생물 개체의 몸 바깥까지 미칠 수 있다.” 즉, 유전자가 개체의 몸 안에 갇혀 있을 필연적인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명한 비버 댐, 새집, 그리고 날도래 애벌레의 집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이 얘기를 할 시간이 없으니 궁금하신 분은 책을 직접 보시기 바란다. 우리는 이야기의 핵심인 기생-숙주 관계로 곧장 들어가자.

 

5. 기생과 숙주

기생자와 숙주가 있다. 당연히 기생자의 유전자와 숙주의 유전자도 있다. 이 두 유전자의 이해관계는 상당 부분 일치할 수가 있다. “이기적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달팽이에게 기생하는] 흡충의 유전자와 달팽이의 유전자 모두 달팽이 몸의 ‘기생자’라 생각할 수 있다. 양자 모두 보호 껍데기에 싸여 있어서 이익을 본다.”(p. 395) 사실 우리 인간의 몸을 이루는 세포도 “태고의 기생자들이 합체한 것의 유물일지도 모른다.”2)(지당한 얘기겠지만 두 유전자의 이해관계는 대개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런 관점은 우리의 통념에 어떤 변혁을 초래할까?

 

6. 진화론의 새로운 패러다임3)

윌리엄 해밀턴도 말했지만 『이기적 유전자』는 “진화의 새로운 국면이 매우 교묘하게 기술되어 있”(p. 535)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이기적 유전자』가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의 대중판이나 염가판이라는 인상은 피해야 한다. 첫째, 이 책에는 다수의 독창적인 생각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p. 538). 그 뭔가가 뭐냐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지만, 적어도 다수의 독창적인 생각이 포함되어 있다는 데에는 나도 강하게 동의한다. 특히 내가 주목한 것은 기존 생물학의 틀이 파괴되었다는 점이다. 기존 생물학의 틀이란 이렇다. 자연 환경과 생물이 있다. 생물은 개체 수준도 있고, 종 수준도 있고, 그보다 더 높은 속이나 과, 나아가 동식물 같은 계, 더 나아가 크고 작은 규모의 생태계가 있다. 이게 기존 생물학의 틀이다.

이게 무슨 생물학의 틀이냐고? 이건 너무 당연한 것 아니냐고? 이와 달리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느냐고? 아마 그렇게 생각될 것이다. 방금 말한 게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처럼 여겨질 것이다.바로 그렇기 때문에 도킨스가 일으킨 반향이 그렇게 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생물학이란 대체로 말해 다양한 종류의 생물들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느냐를 연구한다. 그 환경에서 유리한 형질을 많이 가진 종류는 계속 번성 진화할 것이고, 불리한 형질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가진 종류나 개체들은 반대로 점점 감퇴되어 절멸될 것이다. 여기서 길게 말할 수는 없지만, 이것은 지배 계급의 전형적인 사고 패턴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는 사실 자체가 지배 계급의 생각이 사회를 얼마나 지배하고 장악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 생각이 지배 계급에게 주입받은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한,아니 생각 이전에 자연스러운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 그러한가? 방금 말한 논리에는, 각종 생물의 구조와 행동과 생리가 그 생물의 주변 환경과 상당히 적합하다고, 잘 부합된다고 하는 전제가 깔려 있다. 역으로 이런 저런 생물의 각이한 환경은 각이한 생물에게 서로 상당히 적합하다고 하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 점을 날카롭게 통찰한 사람은 찰스 다윈이었다.

 

7. 찰스 다윈의 놀라운 발상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각종 생물들이 지리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양상에 대해 말하며 놀라운 얘기를 한다. 어떤 자연 환경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의 특징을 그 환경의 온도나 습도 등 자연 조건에 의해 설명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물론 그런 조건이 전혀 안 중요하다는 건 아니다.그러나 그것으로 규정되지 않는 현상이 현실에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예컨대 아주 유사한 환경에서도 극히 상이한 생물들이 살고 있고, 또 매우 상이한 환경에서도 아주 유사한 생물들이 번성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모순되는 현실을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아마도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우리가 유사한 환경이라고, 혹은 상이한 환경이라고 판단한 것에 대해 의심할 것이다. 유사한 생물종이라고, 혹은 상이한 생물종이라고 판단한 것을 더 객관적이고 세밀하게 검토하려고 할 것이다. 사실 이런 방법 말고 과학적 방법이 달리 있겠는가? 그럼 언제까지 그렇게 해야 할까? 다양한 생물의 특징들이 그가 처한 다양한 자연 환경 조건과 상응될 때까지. 이게 소위 자연과학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놀랍게도 생물들의 특징과 자연 환경의 여러 조건들이 이미 예정 조화 관계에 있다. 성직자들이 뛰어난 자연과학자였던 것은 우연적인 사태가 아니라 다분히 필연적인 것이었다. 이 튼실한 과학-신학 복합체에서 홀로 벗어난 사람, 그가 바로 다윈이었다.

그렇다면 다윈의 말을 들어보자. 몇 번을 곱씹어 읽어도 경이로운 다윈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나는 오랫동안 이 문제를 커다란 난제처럼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것은 주로 그 지역의 물리적 조건이 생물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뿌리깊은 오해에 기인하는 것이다.4)

 

생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그것은 오래도록 신의 뜻에 의해 설명되어 왔다. 그리고 그에 반대한 과학자들은 신의 뜻을 물리적 조건으로 대체하였다. 이것이 우리가 배운 바고 대체로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우리의 그런 통념을 전혀 지지하지 않는다. 신의 뜻이라고 본 사람들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각종 생물들과 그 생물들의 환경이 잘 부합한다고 설명했기 때문이다.“생물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지역의 물리적 조건”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요컨대 신학자든 자연과학자든 이 점에서는 전혀 이견이 없었다. 현실에서는 자연과학과 신학이 대립되기는커녕, 성직자들이 대표적인 자연과학자들이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다윈은 신학과 과학이 공동 토대 위에, 즉 신학적 토대 위에 서 있음을 폭로하였다. 이 얘기를 자세히 할 수는 없으니 지금 맥락에서 요점만 말하자. 생물들의 다양한 구조, 생리, 습성들이 그 생물이 해당 자연 환경에서 살아가는 데 최적으로 부합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의 수많은 특징들이 그 개체나 그 생물종에게 좋은 것이 아닐 수가 있는 것이다. 도킨스의 논리를 흉내내자면 우리 인간의 이런저런 특징들은 쌀 안에 있는 어떤 유전자, 애완견 몸 속에 있는 어떤 유전자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소용되는 것일 수가 있다. 내 몸 안에 있다고 내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내 몸 안에 있기 때문에, 다른 생물의 명령을 받아 나를 더 근원적으로 조종할 수도 있다. 그러니 다시 한번 말하지만 생물들의 각종 특징들을 연구할 때, 그 특징들이 그 생물에게 어떤 이득이 될 거라 지레 짐작해서는 결코 안된다.

 

8. 뻐꾸기와 바위종다리

도킨스의 예를 들어보자. 뻐꾸기가 다른 종류의 새 둥지에 알을 낳는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그 둥지의 어미새가 그 알이 자기 알인줄 알고 금이야 옥이야 양육한다는 사실도.

 

뻐꾸기는 보통 양부모보다 훨씬 체구가 크다. 나는 지금 바위종다리 어미 새 사진을 보고 있는데, 그 괴물과 같은 양자(養子)에 비하여 양부모가 너무 작기 때문에 먹이를 주기 위해서는 양자의 등에 올라타지 않으면 안된다. …. 그 어리석음은 놀랍기까지 하다. 아무리 바보같은 동물일지라도 그러한 새끼를 보면 어딘가 이상한 점을 알아차릴 수 있을텐데 말이다.(p. 403)

 

이런 현상을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바위종다리의 이타적인 본성이 작동한다고 해야 할까? 제 새끼들이 그로 인해 죽어가는 데 그런 걸 이타적인 행동이라 부를 순 없다. 기각! 그럼 알 수 없는 본성이라고 해야 하나? 그건 설명이 아니다. 기각! 그럼 뻐꾸기가 바위종다리를 속였다고 해야 하나?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답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만일 바위종다리가 그렇게까지 심하게 속은 놈이라면, 그런 생물종이 어떻게 절멸되지 않고 여태 살아있을 수 있을까? “피로 물든 이빨과 발톱”이라는 자연계에서 이렇게 철저하게 이용당하는 생물종이 있을 수 있을까?과연 “생존경쟁”을 핵심으로 하는 현대 진화론이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까? 바로 이 대목이야말로 도킨스의 예리한 눈빛이 번득이는 순간이다.

 

오히려 나는 뻐꾸기 새끼가 그 양부모를 그냥 ‘속이’는 것 이상의 그 무엇, 단순히 정체를 숨기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숙주의 신경계에 중독성 마약과 같은 방법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게 과연 뭘까? 내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도킨스의 유려한 설명을 직접 들어보자.

남자는 여성의 육체 사진에 흥분하여 발기하기까지 한다. 그가 결코 인쇄된 잉크의 패턴이 진짜 여성이라고 ‘속고 있을’ 리는 없다. 그는 자기가 보고 있는 것이 종이 위의 잉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그의 신경계는 진짜 여성에게 반응하는 것과 같은 식으로 반응하다. 우리는 비록 그 상대와의 관계가 장기적으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할지라도 특정 상대의 매력에 빠져들고 말 때가 있다.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물에 매력을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다. 바위종다리는 아마도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자신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식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특정한 종류의 자극을 참기 어려운 것은 그 신경계라는 것을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뻐꾸기 새끼가 벌린 빨간 입은 너무도 유혹적이어서 조류학자들은 남의 둥지에 앉아있는 뻐꾸기 새끼의 입에 먹이를 넣어주고 가는 어미새를 쉽게 볼 수 있다. 이 새는 자기 새끼에게 줄 먹이를 물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을 것이다. 갑자기 시야 한구석에 전혀 다른 종류의 새 둥지 속에 있는 뻐꾸기 새끼의 시뻘건 입이 들어온다. 이 새는 방향을 바꿔 다른 새의 둥지로 날아가 자기 새끼에게 주려던 먹이를 뻐꾸기의 입속에다 넣어준다.(p. 403-404)

당신은 이런 사례가 참으로 기이하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물론 나도 감각적으로는 그렇게 느낀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인간 세상에 가장 흔한 현상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9. 인간 세상의 바위종다리

연말 같은 때 텔레비전에서 서민들의 다양한 연말 소감을 인터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김이 펄펄나는 힘겨운 삶의 현장에서 고개를 들어올리며 그래도 미소를 지어보이는 사람들. 비록 다사다난했지만 자신과 배우자와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럴 때 나는 종종 불쾌감과 분노를 느낀다. 그들이 자신과 배우자와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하지만, 그 노력의 반 이상은 모두 그들이 모시고 있는 주인님과 그 배우자와 아이들을 위해서 바쳐진 것이다. 죽어라 일해서 돈을 벌지만 반 이상은 자본가 주인님의 수중에 떨어진다. 나머지의 반 이상은 1~2년 뒤 전세금 올려달라는 주인님의 수중에 또 고스란히 들어간다(집주인이라는 말을 쓰면서도 현대인들은 그들이 자기 주인님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걸 뺀 나머지도 모두 인간 바위종다리의 것이 아니다. 각종 세금이나 (더 복잡한 얘기가 필요하지만) 보험 같은 것을 통해 이중삼중으로 착취당한다. 서양 중세에 농노들이 일주일에 며칠은 의무적으로 주인님을 위해 일해야했던 것과 뭐가 다른가? 조선 시대에 힘껏 농사를 지어도 각종 세금으로 양반님들께 수탈당했던 것과 뭐가 다른가?

사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런 상황에서도 서민들은 주인님들을 더 도와드리지 못해 안달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카드 사용하는 걸 말하려는 것이다. 우리도 아다시피 삼성카드나 현대카드의 자본가들은 나나 일반 독자인 당신보다 몇 천배는 더 부자다. 물론 우리에게 물건을 파는 가게의 주인들보다도 그렇다. 요즘 우리는 현금을 내기보다는 카드를 긁음으로써 가게 자영업자들이 주인님(카드 회사의 자본가들)께 일정액을 꼬박꼬박 바치게 강요한다. 물론 동시에 세금도 바치게 된다. 내가 언젠가 친구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그래서 나는 카드를 모두 없앴고 좀 불편하지만 현금을 찾아서 있는 만큼만 쓴다고 했더니 다 듣고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그런 생각을 하자니 너무 피곤하다고, 카드를 안쓰면 주유할 때도 그렇고 너무 불편하다고.

어떤 외계인 생물학자가 인간이라는 종의 이런 현상을 연구한다고 해보자. 그는 나나 당신이 하는 그런 행태들이 나나 당신 자신에게 어떤 이익이 되는지를 탐구해야 할까? 아니면 이런 행태들이 어떤 자들에게, 혹은 어떤 자의 몸속에 은신해있는 유전자들에게 이익이 되는지 연구해야 할까? 도킨스처럼 말이다.

“확장된 표현형의 세계에서는 동물의 행동이 어떻게 해서 그 유전자에게 이익을 주는가 묻지 말고 그 행동이 이익을 주는 것은 누구의 유전자인가를 질문해야 한다.”(p. 408). 침입한 기생자 여왕의 요청에 따라 일개미들은 자기 자신의 어미를 살해한다.(p. 408)

 

10. 오직 유전자와 확장된 표현형뿐이다

흔히 기생-숙주라고 하면 숙주를 크고 뭔가 능력이 더 있는 존재, 기생은 이런저런 이유로 독립생활을 못하는 좀 열악한 존재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런데 확장된 표현형의 사례나 인간 사회의 현상을 볼 때, 기생자는 결코 숙주보다 열악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온 능력을 발휘하여 자기보다 못한 존재들의 피를 빨아먹으며 배를 불리는 자들이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든다. 왜 숙주들은 당하고만 있을까? 동물들은 하등한 존재들이려니 여기며 이 질문을 회피할 수도 있지만 인간 사회에서는 왜 그러고 사는 걸까? 도킨스도 당연히 이 질문을 던진다.

왜 자연선택이 뻐꾸기가 그토록 양부모를 조종할 수 있도록 허용해왔을까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왜 숙주의 신경계는 빨간 입이라는 마약에 대한 저항성을 진화시키지 않았는가?아마 자연선택이 작용하는 데 필요한 만큼의 시간이 아직 지나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뻐꾸기는 겨우 수백 년 전부터 현재의 양부모에게 기생을 시작했고, 향후 2~3백 년 사이에 현재의 양부모를 포기하고 다른 종을 희생양으로 삼을지도 모른다.(p. 404)

또한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들은 자기에게 최대의 이익이 되도록 행동하고 있다. … 이론상 다른 동물에게 조종당하지 않으려고 저항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 대가(비용)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뻐꾸기의 조종에 저항하려면 아마도 보다 큰 눈이나 뇌를 가져야 할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부가적인 비용이 필요할 것이다. 조종당하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유전적 성향을 갖는 경쟁자는 저항에 필요한 경제적 비용 때문에 실제로는 자손에게 유전자를 전하는 데 덜 성공적일 것이다.(p. 405-406).

그러나 이런 관점은 다시 한번 오류다. “우리는 다시 한번 생명체를 그 유전자보다 생물 개체로 보는 관점으로 후퇴해버렸다.”(p. 406) 이기적 유전자의 관점에 충실하다면 그 유전자가 어느 개체의 몸속에 있는지는 부차적이다. 바위종다리의 기이한 행동도 뻐꾸기 몸속의 유전자와 바위종다리 몸속의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된다. 양자는 바위종다리의 몸에 대해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세상의 모든 유전자는 기생하는 유전자다. “내부 기생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제 모든 사실을 유전자와 확장된 표현형이라는 표현을 써서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p. 406)

 

11. 인간과 동물, 아니 인간이라는 동물

자식이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친구에게 맞는 일이 생긴다. 물론 이 문제를 생각할 때는 그와 동시에 우리 아이가 또 다른 친구들을 때린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일단 우리 아이가 맞았다고 하자. 그러면 어른들은 아이에게 그 순간 때리는 친구에게 그러지 말라고 똑똑히 말하라고 한다. 혹은 선생님이나 부모 자신에게 얼른 말하라고 한다. 그리고 그러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 답답해한다. 그런데 어떤가? 어른들은 그렇게 하는가? 직장에서 상사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그러지 말라고 똑똑히 말하는가? 자본가들에게 착취당하면서, 독재자에게 억압과 박해를 당하면서 그걸 바꾸려고 노력하는가?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지,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도로 많은 사유와 대화가 필요할 것이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 세상도 그러한데 왜 생물계를 관찰할 때에는 다양한 생물들의 특징이 특정 환경에 처한 그 생물에게 유리한 것이라는 전제를 까느냐는 것이다. 다시 한번 다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전 세계 어떤 동물도 다른 종의 이익만을 위해서 행동한다고는 믿지 않지만, 그러나 각각의 종은 다른 종의 동물의 약한 신체적 구조를 이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종의 동물적 본능을 이용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몇몇 소수의 예에서와 그러하듯이 절대로 완벽하다고 간주되어서는 안되는 본능들이 있다.5)

 

12. 맺으며

이 글에서는 두 가지를 쓰지 못했다. 내가 왜 이 책을 탁월하게 나쁜 책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이 책이 어떤 면에서 무신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인지.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 두 주제에 대해 말해볼테지만, 지금까지 얘기로 분명해진 것은 생물 개체 및 생물 집단의 이기와 이타라는 틀은 모든 현상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도킨스는 그걸 유전자의 이기성으로 다시 환원했지만 다른 길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긴 하지만 생물들의 신체 구조나 생리 메커니즘, 본능과 습성을 살펴볼 때 그 생물 및 다른 생물에 대한 유불리에 집중하는 태도, 즉 이기와 이타라는 틀은 충분치 못하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는 점에서 『이기적 유전자』는 현대의 고전이 될 만하다.

 

1) “이는 이기적 유전자/확장된 표현형이라는 생명관의 전체에 대한 요약이다. 나는 이것이 우주의 어떤 장소에 있는 생물에게도 적용되는 생명관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생명의 원동력이자 가장 근본적인 단위는 자기 복자제다.”(p. 424-425). “우주의 어떤 장소든 생명이 나타나기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 유일한 실체는 불멸의 자기 복제자뿐이다.”(p. 427).

2) 물론 이 사실을 선구적으로 밝혀낸 것은 린 마굴리스의 ‘세포 내 공생설’이다. 이에 대해 도킨스도 『이기적 유전자』에서 지적한다.

3) 한국어판 『이기적 유전자』의 부제다.

4) 박성관 『종의 기원,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 소멸의 자연학』(그린비, 2010). p. 694-695.

5) Charles Darwin, The Origin of Species, 1st edition(1859). p. 211. 해당 대목은 이러하다. “Although I do not believe that any animal in the world performs an action for the exclusive good of another of a distinct species, yet each species tries to take advantage of the instincts of others, as each takes advantage of the weaker bodily structure of others. So again, in some few cases, certain instincts cannot be considered as absolutely per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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