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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득하게, 길게 봐야죠

- 숨(수유너머R)

새벽 6시. 비어있는 복도에서는 소리가 잘 울린다. 또깍,또깍,또깍. 여러 개의 구두 소리는 합창을 하듯, 돌림노래를 하듯 에코 효과를 내며 아침 공기를 가른다. 농성장 바닥에서 밤새 굳은 몸을 이리 저리 움직여 본다. 날이 많이 풀렸다고 해도 한 데는 한 데다. 어제의 피곤이 풀리지 않았는데 새로운 하루가 다시 밝았다. 장애인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광화문 농성장의 아침 풍경이다.

“밤에도 불이 안 꺼지더라구요. 그래서 잠을 잘 못자요.”

대구에서 올라온 이민호 씨(32세, 대구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게 농성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려달라니 밤에도 꺼지지 않는 형광등부터 이야기한다. 불빛 때문에 잠이 잘 안 온단다. 지하도이지만 여러 건물과 연결되어있고 넓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농성장 때문일까. 여기 잠 좀 자게 불 좀 꺼줘요, 라고 말하면 그냥 집에 가서 자라고 톡 쏘아붙이려나. 쫓아내지 않는 걸 고맙게 생각해야 하나. 하지만 농성자들도 여기가 좋아서 집 놔두고 천막을 치고 자는 게 아니다. 왜 그들은 차가운 광화문 지하역사 안에서 잠을 자게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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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양의무제, 모두의 문제

장애인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외치며 광화문 지하역사 점거 농성이 시작된 지, 560일째다. 전국의 장애인 활동가들이 돌아가면서 농성장을 지킨다. 대구에 있는 민호씨는 그 동안 세 번 농성장을 찾았다. 그때마다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서명을 받는 일을 했다. 세 번의 상경 농성 경험에서 어떤 변화를 감지했냐는 질문에 그는 크게 변한 것은 없다고 말을 했다. 하지만 덤덤하게 잇는다. 길게 보고 진득하게 가야한다고.

“크게 바뀐 건 없는 것 같은데요, 아직까지(웃음).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으니까. 길게 봐야하지 않나 해요. 부양의무제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부양의무제 같은 경우는 당사자 아닌 경우에 잘 모르니까. 그런 문제를 알리는 것도 의미가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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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보장법이 처음 제정될 때부터 부양의무제는 악법적인 요소로 꼽혀왔다. 국민 개인인이 최저 수준 이상의 생활을 영위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 가난에 대한 일차적 책임을 가족에게 묻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실적으로 2인 이상 가족의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안정된 임금과 일자리가 한국 사회에는 부족하다.

“부양의무제는 당장 제 문제에요. 그리고 우리의 문제구요.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고 중산층이 없어지는데 사회(구성원)의 대부분이 부양의무제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 거죠.”

민호 씨만 해도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데, 어머니가 일해서 돈을 번다고 해도 2인 가족이 생활을 영위하려면 월 2,300만원은 벌어야 한다. 중년여성노동자가 일을 해서 벌 수 있는 돈은 한 달에 많이 잡아도 100만원에서 150만원이다. 얼마 전 세 모녀 자살 사건은 월 100만원짜리 여성 가장에게 다른 가족의 부양의무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보여주는 일이었다. 또한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하는 장애인들 중 많은 수가 몇십 년 동안 연락 한 번 하지 않고 지내던 가족이 집 한 채 가졌다고 수급에서 탈락하는 부조리를 겪는다. 한국에서 부양의무제란 정규직 가부장 중심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빚어낸 허구에 기댄 악법이다.

 

2. 장애등급제, 비장애인중심 행정편의주의

“장애인을 어떻게 최소한의 6등급으로 나눌 수가 있나요?”“장애인을 어떻게 최소한의 6등급으로 나눌 수가 있나요?”

장애정도를 정확하게 측정해서 등급을 나누고 그 등급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한다, 얼핏 들으면 매우 합리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민호씨는 그 합리성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현재 등급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각종 지원들이 장애인의 필요를 합리적으로, 효율적으로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동휠체어를 주로 타는 사람이 있고, 1 Online Casino급 장애인이지만 자동차 운전을 더 자주 하는 사람이 있을 때 각자에게 필요한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천편일률적인 지원이 장애인 개개인의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키지도 못하는데 무엇이 효율적이냐고 말이다.

더욱이 더 큰 문제는 장애등급이 생물학적이고 의학적인 기준에서 결정되지만 생존에 영향을 주는 더 큰 사회적 장애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2010년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법제화와 장애연금제도 시행에 앞서 장애등급심사가 전면 확대되면서 등급 하락의 비율이 매우 높아졌다. 의학적 기준은 보다 정밀한 방식으로 엄격해졌다. 이전에는 의사소견만으로 장애등급 판정이 가능했다면 이제는 MRI 검사, 저주파 신경자극 검사를 한단다. 검사 결과에 따라 장애등급이 달라지고, 장애등급 하락은 곧 활동보조서비스 시간의 감소나 서비스 자체의 박탈로 이어진다. 장애연금 또한 마찬가지다. 장애등급제가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위태롭게 하는 아이러니다.

이즈음 되면 장애등급제 자체에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누구를 위한 장애등급제란 말입니까’ 개그콘서트의 유행어를 외쳐야할 지경이다. 전국민대상 MRI 검사, 저주파 신경자극 검사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1등급부터 10등급까지. 등급이 아무리 세밀해지고, 반박할 수 없는 수치에 의존한다고 해도 당장에 멘붕 오지 않겠는가.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는 장애인들에게 장애등급심사를 하면서 복지를 위해서라고 떠드는 걸까.

“장애등급제가 비장애인중심으로, 복지나 이런 것도 생색내기라는 느낌이에요. 할 수 없는 걸 자꾸 주면서…껍데기 뿐이에요.”

 

3. 투쟁하는 우리는 소수지만 이 결실은 다수가 누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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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업에서 일할 때는 시키는 일만 했어요. 그런데 장애인운동을 하다 보니 자기 내용을 만들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싶을 때는 힘들죠.”

인터뷰에 응해준 민호 씨는  잘 생긴 30대 청년이다. 자분자분 말을 잘 한다. 하지만 수다스럽지는 않다. 2012년부터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다가 같이 일하던 동료의 꼬임(?)으로 장애인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있는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국가보조금을 지원받거나 프로젝트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로 인해 운동성이 없어지지 않나, 관변화 되지 않나, 규제를 많이 받게 될 텐데 하는 고민이 든단다. 센터에서 활동가들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을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도 들지만 지원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으니까 하는 생각도 동시에 가진다.

“인권문제가 제도권으로 들어가는 것도 중요한데 제도권으로 들어가서 완전히 묻혀 버릴까봐 걱정해요. 그러니까 거기서 지원해주는 프로젝트는 완벽히 다하고 그들이(정부가) 실수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기자회견을 하지요.(웃음)”

 

민호씨가 있는 대구 경북지역의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네트워크는 다양한 연대활동을 벌인다. 반빈곤네트워크 활동도 하고, 경산지역의 이주노동자와도 연대를 한다. 경산 지역에 이주노동자 운동이 있다는 얘기에 궁금해서 이것저것 물었다. 민호씨는 대구 장차연 활동이 연대를 중요시하고 열심히 한다고 설명한다.

“(장애인이나 외국인노동자나) 맥락은 비슷해요. 차별당하고 낙인찍히고 그러니까. 그리고 장애인들은 신체적으로 움직여야할 때 도움이 많이 필요한데 그럴 때 연대가 도움이 되는 거죠.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우리가 동력이 되기도 하구요.”

차분히 말을 이어가는 민호씨의 얼굴을 보며 이런 무서운 사람들이 있나하는 생각에 웃음이 피식 났다. 잃을 것이 없는 소수자의 싸움. 급할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가야할 길이 있기 때문이다. 광화문 농성장에는 밤마다 이런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고, 이길 때까진 비키지 않을 것이다. 농성장 활동일지를 뒤적이니 ‘투쟁하는 우리는 소수지만 결실은 다수가 누릴 것이다.’라고 적혀있다.

“진득하게 해야할 거 같아요. 이동권 투쟁도 10년이 넘어서 성과가 조금 있긴 했지만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거든요. 그러니까 좀 진득하게 길게 보고 해야 하는 거죠.”

 

“월간 생활과 농성”팀에서 광화문 농성장을 편안하고 아늑한 구조로 꾸며놓아서 이전 천막만 있을 때 비하면 호텔같단다. 가끔 밤에 잠도 안 오고 심심하면, 치맥을 하기도 한다니 치킨과 맥주 양 손에 들고 광화문 농성장에 밤마실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형광등 불빛 아래 잠들지 않는 광화문 농성장에서 구둣소리가 깨우는 아침을 함께 맞아보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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