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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의 양심(3) – 일본인들 심뽀

- 김융희

심뽀, 언어 사용이 좀 심했을까 싶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를 보면서 나는 그의 마음보가 심뽀로 밖에, 달리 생각이 되질 않는다. 왜소한 도민(島民)들 근성이려니 생각해 보았지만, 도대체 하는 짖거리가 꼭 골목길 꼬마 심술꾸러기의 심통이며 심술부림 같기만 하다.

어쩌다 우물안 개구리가 울 밖의 서구 문명을 알아채 염치 불구하고 어울리며 따라붙은 것이 용케도 통했다. 무기 제조법을 익혀 그것이 만용(蠻勇)이라, 되지 못하게 이웃을 깔보며 무모한 전쟁까지 저지르다가는 결국 인류사상 최초유일의 핵무기 세례를 받았던 그들이다.

그래도 안스러워 눈감아 주고 키워 줬더니 주제 꼴도 모른 채 또 기고만장 꼴이 가관스럽다. 결국엔 ‘내 봇다리 내놔라’는 심통 부림을 지켜보려니 참으로 안스럽고 딱하다. 소련에 빼앗긴 북방의 영토는 말도 못하고, 남쪽 섬은 중국에 먹혀 버린 그들이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는 유규한 역사와 확증을 알면서도 모른 채, 우리의 국권을 박탈 통치하면서 조작했던 멀쩡한 우리의 국토 독도를 거짖 증거로 우겨대는 짖거리의 심뽀 부림이 참으로 가소롭고 안타깝다. 딱하여라, 왜나라 도민들이여, 제발 자중할 지어다.

 

그들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의 주범이었던 독일 대통령의 참회 연설문을 전(前) 2회에 걸쳐 썻기에, 오늘은 일본의 행태를 살펴보려 한다. 철없는 심술꾸러기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정말 되집어 뇌이기도 싫지만, 그들이 내세우는 가장 젊잖은 최고의 지식인이자 대표적인 신사라며 평화주의자로 추겨세운, 그래서 그들이 고액권(5000앵) 화폐에 초상화까지 넣어 현재 사용하고 있는 그들에게 추앙받는 인물 “니또베 이나조(新渡戶稻造)”의 주장을 들어 보기로 한다. 도쿄대학의 예비교격인 제1고등학교 교장인 그가 1910년 9월 13일, 신입생 입학식에서 있었던 학생들과 학부형들 앞에서 했던 연설문의 일부이다.

 

“…. 다음으로 잊을 수 없는 것은 조선을 병합한 일이다. 이것은 실로 문자 그대로 천재일우의 일이다. 우리나라는 일약 독일, 프랑스, 스페인 보다도 더 광대한 면적을 가지게 되었다. 또 제군이 연설이나 글이나 그런 것으로 제군들의 사상을 전할 수 있는 범위가 갑자기 1 Volume Pills천만 명이나 넓어진 것이다. 지금 노또반도의 북단 곶이에 중심을 두고 180리 정도의 반지름으로 원을 그린다면, 흑가이도(北海島)와 규슈(九州)와 조선이 들어가며, 바로 압록강이 경계가 된다. 다시 북위 40도, 동경 135도 근처에 중심을 옮겨 320리 정도의 반지름으로 원을 그릴 경우에는 요동반도, 남만주가 들어가며, 사할린도 마침 북위 50도의 지점까지 들어간다. 다시 조금 더 중심을 옮겨 380리 정도의 반지름으로 하면, 하르빈은 물론 북만주, 치치하루까지도 동그라미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우리는 이로써 무슨 외국 땅을 침략코자 하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넓어지고 있는 사실은 사실로써 임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첫째 원은 실현되었다. …. 제군들은 갑자기 커진 것이다. 한 달 전의 일본과 지금의 일본은 이미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대국이 된 이상에는 ….”

이것이 젊잖은 일본 최고의 지식인이요 평화주의자인 그, 이또베 니나죠의 언행이다.

청일전쟁 당시 외상이었던 “무츠 무네미츠(陸與宗光)”는 “스스로가 얼마나 부패하고 있는지조차 인식할 줄 모르는 우매한 조선인을 청의 질곡에서부터 해방시켜주기 위한 의로운 전쟁”이라는 주장을 공언하곤 했다. 모두가 그 놈이 그 놈의 생각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소위 말하는 “식민지화의 은혜론”의 원조들인 것이다. “우리는 무슨 외국 땅을 침략코자 하는 맘은 없지만, 넓어지고 있는 사실…….” “한국을 살려내기, 비록 이것이 우리의 어깨에 걸린 무거운 짐이지만 감수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식의 이런 얼빠진 소리다. 그들의 팽창 침략을 합리화한 영토 확장과 식민지화, 조선 병합에 대한 괴변들. 그의 말처럼, 이것이 그 알량한 왜놈 근성의 속내인 것이다.

니또베 니나죠의 소리를 좀 더 들어보자. 그의 ‘전후의 사업’이라는 글이다.

“조선 처분의 문제는 오인(吾人)의 주의를 끌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 본능이 결여되어 있고, 경제적 상식이 결핌되어 있으며, 지식적 야심이 없는 저 박약한 여성적 국민은 황색 일본인의 무거운 짐이 되었도다. 오인은 죽어있는 이 한 나라를 부활케 하기 위하여 신고(辛苦)로서 경영하는 바 있어야 할 것임이라” 이런! 이것이야 말로 ** 육갑하지 않는가!

그런데 점입가경…. 그의 “일본의 신책무“라는 글에서 하는 소리이다.

“일본이 바야흐로 하고자 하는 식민지 경영은 지금까지의 서구인들이 아시아를 짓밟아온 것과는 다른 신기원을 기록하는 그런 것이어야 하며, 그것이 도덕적인 우위에 선 획기적인 것일진데 힘을 내야 한다. 그 이유는 일본의 모든 식민지 팽창행위는 유럽인들의 그것과는 다르며 인도(人道)의 선양에 목적이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종주권을 가지는 일 역시 한국의 병통을 고쳐주자는 것이며, 설혹 그들이 이 때문에 독립을 잃더라도 그 대가로 그 국민들에게 선량한 대우를 배풀어 주면 되는 것이다.” 아이구! 저 처 죽일……

이런 얼빠진 이가 그 알량한 대가리와 주둥이로 해데는 꼴이란 정말이지 얄밉기 보담 참으로 불쌍하고 너무 가련해 웃고 말아야겠다. 지금의 세상은 그 때와는 또 달라서 변하고 변했는데도, 이 같은 행태가 지금도 그냥 통하려니 생각하면서 아직도 그놈의 후예들은 여전히 계속 반복하고 있으니, 정말 한심이요 참으로 안타깝다.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는 일본의 양심적 기독인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신앙 제자이며 한국의 애국 청년인 “김교신”이 그에게 “한국 합병에 대한 그의 견해”를 물었더니, “영국의 스코틀랜드 같이 되면 되지 않겠는가”라는 그의 대답이었다고 한다. 이것이 당시 그들의 최고 문화인이요, 지식인들, 그들 대다수의 의식이며 양심이었던 것이다. 이들의 교육과 영향을 받아 자란 세대들이 오늘날 일본의 정치인이며, 지도자들이다. 지극히 협소하고 편파적이며, 왜소하기 이를 데 없는 도민 근성의 발로가 바로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지금 저와 같은 행태를 만발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의 어리석음은 무지의 소치려니, 어쩌겠는가!

 

다만 그들이 바로 우리의 이웃이란 사실이 한없이 딱하고 분하다. 독도 문제를 비롯한 저들의 행태를 우리는 한시도 놓치지 않고 계속 주시해야 한다. 이성도 양심도 없이 끊임없이 날뛰고 있는 그들이 우리 곁 이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미친 개는 몽둥이가 통한다.

우리는 오천 년 역사에 단 한 번, 오욕의 식민 역사를 그들에게서 겪었음을 결코 잊지 않아야 한다. 이웃에 둔 미친 개를 어쩔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몽둥이다. 몽둥이, 즉 힘이 없으면 언제나 우리는 미친 개, 그들에게 또 다시 물릴 수도 있음을 명심하자.

지난 치욕의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철없이 날뛰는 행태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복받쳐 떨리는 분에 겨워서, 너무 상스럽게 심했나 싶다. 그러나 부족투성이 산골 초부의 참을 수 없는 분통임을 너그럽게 이해하여 주시길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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