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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필진 인터뷰] 옛날과 지금, 여전히 존재하며 앞으로도 존재할 꼬뮨의 이야기

- 숨(수유너머R)

일본에서 공부하며 데모와 마을, 여러 현장의 소식과 일본 내 사상 동향을 칼럼으로 전해줬던 신지영 씨를 만났다. 위클리를 마무리하기 위해 논의하고 있을 즈음, 지영 씨도 미국에서 1년 간 공부하게 될 예정이라 일본에서의 이야기를 마무리해야할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미국행 준비를 위해 입국한다는 말에 만날 약속을 잡았다.

조근조근한 말소리. 부드러운 눈.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은 서로를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어루만지는 것 같은 대화. 그 동안 읽어왔던 글이 그녀와 참 닮았다고 생각했다.

 

지영 씨는 식민지 초기 이후 토론회, 연설회, 좌담회, 대회, 이동연극과 같이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들이 문학테스트와 어떤 관련성을 맺는지 공부했다. 근대 초기 최초 집회 만민공동회를 시작으로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고 연설하는 장을 녹취록과 같은 기록물을 통해 읽었다. 기록 속에 나타난 당시 사람들은 서로의 사상을 두고 논쟁할 때도 있었고, 좌담회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누군가의 전향이 되기도 했다.

1920년대 ‘권혜’라는 여성이 연설을 했는데, 연설도중 노래를 한 곡 불렀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이런 풍습이 일반적이었다. 도산 안창호 선생도 연설 중에 창가 한 곡을 부르면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선생이 다시 발언을 이어가고 그랬다. 권혜가 연설 도중 부른 노래는 일본 유학 중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혔을 때 감옥 안에서 사귄 기생에게 배운 노래였다. 권혜는 사람들에게 박수 대신 ‘니가 기생이냐 학생이냐’라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그 이후부터 권혜가 연설을 하러 나오면 일단 사람들이 니가 기생이냐 여학생이냐라는 논란이 일어났다.

“그 여자가 사건을 일으킨 게 아니라 그 여자는 그냥 했을 뿐인데, 주변에서 사건으로 만드는 거죠. 베일을 쓰고 나오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베일을 씌워주는 거 같고. 재밌는 건 권혜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을 보면요, 그 당시 그 여자한테 베일을 씌웠던 여러 상황들이 오히려 드러난달까요, 그 여자가 뭔지는 드러나지 않고. 그런 거 봤어요.”
지금은 이와 비슷한 사건이 동아시아전반에 걸쳐 어떻게 일어났는가에 관심을 갖고 보고 있다. 일본의 1950년대 탄광에 공동생활을 하며 있었던 서클마을이라는 단체를 공부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 요즘은 특히 타이완에 관심을 갖고 있다. 지영씨에게는 한국 문학, 일본 사상사, 데모 이 모두가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전부 동일한 주제로 묶여 있다. 사람들이 모이는 건 뭐고, 모여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뭔가를 보기 위해서다.

그래서 일본에 6년 동안 있으면서도 계속 데모 현장을 찾고 글을 써왔던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점차 우경화하는 일본 내 움직임과 주류 언론의 폐쇄성이 답답했다. 데모 연락의 대부분은 메일을 통해서 들어왔고 거리를 한 번 보면 호흡하는 것 같았다. 더욱이 홈리스 사람들을 만나면 답답했던 가슴이 트였다. 다른 데모들이 공부나 사상적으로 연관이 깊었다면 홈리스 활동은 삶과 밀접했다. 그곳에 가면 신분, 주민등록이 필요 없어졌다. 모여서 산다는 것, 공간이 중요한 문제가 되는 곳이었다.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있지만 소속을 묻지 않았다. 지영 씨가 3년 동안 모임에 나가는 동안 한 번도 학교가 어디냐, 어떻게 밥벌어 먹고 사느냐는 질문을 한 사람이 없었다. 그곳에 가면 보도되지 않는 일본 사회가 보이기도 했고, 스스로 몰랐던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한번은 소리 지르는 모임 같은 걸 했는데. 여자들만 모여서 소리를 지르기로 했어요. 일단 남자들은 못 오도록 했어요. 와도 되지만 일단은 여자들만. 우리가 소리를 지르면서 너무 놀랐던 건. 우리 목소리가 되게 남자 같다는 거에요. 이른바 영화에서 나오는 높은 꺅 하는 소리가 아니라, 굵고 괴물같은 소리가….그건 옛날 일에요, 2년 됐나. 그런 순간들이 있어서 저는 되게 감사하죠, 거길 알고 갈 수 있었던 게. 외국인 이런 거 상관없이.”

처음에는 쓸쓸했지만 소속되지 않고도 만날 수 있는 게 편하기도 했다. 이사류 키친에 가서 밥을 먹고, 가끔 늦어서 집회 중간에 들어가도 위화감을 느끼지 않았다. 명절에는 갈 곳 없는 외국인들이 에노아루라는 그림있는 홈리스 텐트에 많이 모인다. 매년 그 시기에 와서 카레를 해주는 사람도 있고, 다 같이 운수 뽑기를 하기도 한다. 지영 씨는 어머니가 보내주신 스팸이나 라면이 항상 남기 때문에 싸들고 가서 전해 주면 홈리스 친구들이 맛있게 먹는다. 이번에 급하게 귀국하느라 이삿짐 정리 후 남은 부탄가스, 휴지 같은 물건을 전해 주지 못하고 온 게 마음에 너무 남아 친구에게 부탁을 했다. 그 얘기를 전해들은 이치무라씨가 고맙다는 메일을 보냈다. ‘미국에 잘 다녀오고, 텐트에서 다시 보자. 2020년 올림픽 때문에 야숙자(홈리스)들에 대한 탄압이 강해지고 있다. 언제든 같이 하자.’는 메일이었다.

 

꼬뮨의 문제를 말하기

 

“모인다는 건 뭔가. 거기서 생기는 내밀한 문제들, 이런 거를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그게 중요했던 것 같아요.”

지영 씨는 처음 수유너머에 왔을 때 30분 앉아 있기도 힘들만큼 낯을 가렸다. 그래서 잡일을 하면서 친해졌고, 자기도 모르게 꼬뮨이나 단체에 늘 깊이 들어가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일본에 가서는 아무리 들어가려고 해도, 이방인이라 들어갈 수 없는 지점이 생겼다. 오히려 어떤 단체를 약간 물러나서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일본에 갈 때 지영 씨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이었다. 내부에 깊숙이 들어가 있으면 사람들의 행동이 이해는 되지만 답답했고, 외부의 시선은 단정적인 비판을 너무 쉽게 한다는 게 문제였다. 꼬뮨의 문제를 말하면서도 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가 고민이었다.

잡일은 많아지고, 꼬뮨은 안정된 동시에 굳어간다. 서로의 일이 구분된다. 늘 일어나는 어려운 문제다. 일본에서 만난 단체나 꼬뮨들에 그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안에서 볼 때와 밖에서 볼 때는 어떻게 다를까가 궁금했다.

“정말 좋은 꼬뮨이 되려면 한 명 한 명이 독립적이고 느슨한 긴장이 있어야하는 거 같아요. 내가 그걸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안주하려는 제 욕망이기도 했어요, 기대려고 하고. 글을 쓸 때도 내가 만들어서 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 하는데 끼워줄까 말까를 고민하게 되는 거. 혼자가 되면서 경험할 수 있었어요. 해외에 나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떻게 가능할까.”

지영씨는 자신이 부딪힌 문제, 한국에 있는 작은 꼬뮨들이 겪는 문제가 1950년대 서클마을에도 있었다고 한다. 서클마을을 공부하는 이유다. 서클마을에서 여자들이 모여 회의를 하려고 하는데 이루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여자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여자들은 무엇을 욕망하는 건가를 주제로 집담회를 한다. ‘우리가 모일 시간이 너무 없다, 애들도 있고.’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모인다. 편지를 돌려서 이야기를 하고, 회의록에는 편지글부터가 실린다. 이렇게 회의는 아주 개인적인 동시에 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사람들이 이 회의를 하고난 후 확 좋아진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우리의 문제로 삼아서 이야기합시다’를 이야기하고,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말하고 서로의 껍질을 깨주고, 발가벗어서 얘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영씨는 자신이 부딪힌 문제, 한국에 있는 작은 꼬뮨들이 겪는 문제가 1950년대 서클마을에도 있었다고 한다. 서클마을을 공부하는 이유다. 서클마을에서 여자들이 모여 회의를 하려고 하는데 이루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여자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여자들은 무엇을 욕망하는 건가를 주제로 집담회를 한다. ‘우리가 모일 시간이 너무 없다, 애들도 있고.’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모인다. 편지를 돌려서 이야기를 하고, 회의록에는 편지글부터가 실린다. 이렇게 회의는 아주 개인적인 동시에 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사람들이 이 회의를 하고난 후 확 좋아진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우리의 문제로 삼아서 이야기합시다’를 이야기하고,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말하고 서로의 껍질을 깨주고, 발가벗어서 얘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읽으면 옛날 기억, 요즘 어려운 것들 다 가슴에 꽂히거든요. 그런 것들 잘 전달해서, 쪼끄만 꼬뮨들이 문제에 닥쳤을 때 아 옛날에도 이런 문제가 있었고, 이런 방법도 있었다고 약간 상대화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생각해요.”

이 모임의 결말은 행복하게 맺어지지 않았다. 이 여성들의 모임에서 무엇을 했다, 잡지를 냈다고 하면 주변 남성들에게 비판을 많이 받았다. 함께 활동하는 다른 꼬뮨의 남자 대장의 동생에게 여성 한 명이 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때가 정부의 탄광합리화에 대항하는 다이쇼투쟁 중이었다. 다른 쪽의 리더가 경찰이 빌미를 잡아 더 탄압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 얘기할 수 없다고 발언한다. 이 사건을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졌다. 그 여성의 오빠가 마치 항의하듯이 그 사람 집 앞에 와서 자살한다. 그렇게 모임은 지속되지 못한다. 모임의 리더였던 사람이 병이 나 몇 년을 앓고, 모임이 끝나버렸다.

“얘기할 장이 사라졌다는 거, 그 사람의 자살보다 더 치명적이었던 것 같아요. 늘 만나서 얘길 해야 해, 이런 게 아니라 어떤 말을 할 수 없게 되는 거. 그 상황인거죠. 장 자체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특정한 어떤 말을 절대 하면 안 되는 상황이 되는 거에요.”

지영 씨는 수유너머가 분리될 때 일본에 있었기 때문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친구들에게 많이 미안했지만, 그녀 또한 다르게 그 사건을 겪었다고 한다. 모임이 멈춘 순간은 무엇인가. 서클마을을 공부하며 힌트를 얻는다고 했다. 그 집단이 유지되는 원동력이 만남들이라는 사실을 멈춘 순간이 보여준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과 만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꼬뮨의 작은 모임에서부터 역사적인 관점으로도 보고 싶다. 그래서 다니가와 간 번역을 어서 하고, 이후에 모리사케 카즈에 또한 번역하고 싶다. 관련된 글을 쓰고 싶은 욕심도 있다.

“장을 만든다고 해서 말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독이 되는 순간도 있어요. 너무 말이 많아도 독이 되고, 말을 막는 게 되죠. 그게 뭔지는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모여서 말을 하는 공간을 만든다는 게 어떻게 만들어야 하고, 그게 과연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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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성들의 세계

 

지영 씨는 요즘 세계가 거꾸로 돌아서 다시 시작하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일본이 한동안 전후로 돌아갔다는 얘기가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전전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왜 이렇게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가.
“똑같지 않은 게 분명히 어딘가에서 나타나고 있을 텐데. 그런걸 봐야 되는 거죠.”

인터뷰 당시 지영 씨는 미국 출국을 앞두고 있었다. 1년 정도 콜럼비아대학 동아시아연구소로 가게 되었다. 밀려 있는 번역을 하고 논문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미국이 아니라도 1년 정도 장소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타이완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타이완에 가면 언어공부 외에 아무것도 못하겠다는 판단이 있었다. 미국에서 미국, 일본, 한국, 타이완 자료를 모두 볼 수 있다는 데서 위안을 얻기로 했다. 고소 이와사부로 씨 같은 분들과 연락해서 에스닉 민족 그룹들을 만나 볼 예정이다. 얼굴색이 다르고, 언어도 다른 사람들은 어떤 지혜를 갖고 서로 얽히고 설켜 사는지를 보고 싶다.
“일본이랑 한국에 있으면 신경이 굉장히 팽팽해요. 동아시아3국에 있으면…문제도 많구요. 미국이나 이런데서 유학하러 온 사람들이 동아시아문제에 관심있다 그러면 이상한 기분이 들어요, 길건너 불구경…. 미국 간다니까 서양권은 살아본 적이 없어서 영어하려면 좀 부끄럽고. 그런데 가서 이 불편함 이런 거 잘 보려구요. 이게 뭔가. 동아시아에서만 살아온 사람이 느끼는 이 약간의 부끄러움과 약간의 저항감과 약간의 콤플렉스가 뒤섞인 감정.”

그녀가 느끼는 동아시아는 특수성의 세계이다. 이 특수성들이 부딪히고 싸우고 신경전을 벌이는 세계. 보편성의 세계 미국에서 특수성을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특수성이면서도 보편성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 지영씨는 문제 설정을 바꾸어보자고 말한다. 특수성 안에서도 무한한 다양성이 존재한다. 여성 안에도 다양한 여성들이 있고, 나는 나이기도 하지만 내가 아니기도 하다.
“왜 나는 나의 특수성에만 집착할까라는 문제가 되게 심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나의 슬픔은 남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할까. 나의 특수성은 다른 특수성과 어울리지 못할까. 막 벽처럼 느껴지잖아요. 오히려 보편적인 세계, 세계화 이런 것들은 특수성들에 대해 호의적이고 쑥쑥 뽑아먹죠, 정말 벽없이 받아들여주잖아요. 특수성들의 세계는 서로 몸이 부딪히는 거 같잖아요. 정말 연대라고 하는 게 어렵죠. 특수성을 강조할수록 어렵죠.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법칙들이 있으니까 부딪힐 수밖에 없고 화가 나죠. 그건 저도 질문이에요. 요즘에는 그 벽이 되게 희망적인 거 같아요. 그 벽자체가.”

특수성들에게는 늘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 서로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그 감정은 통한다. 상대가 왜 절대 포기 못하는 지 알기는 하는데, 이해하려면 나의 특수성이 무너져서 짜증이 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를 참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한테는 늘 포기하지 못하는 하나가 있는 거다, 이 말이 특수성과 유일하게 통하는 방법인거 같다고. 미국에 가서도 그걸 잘 보고 싶다고 한다.
“거긴 정말 보편성의 세계잖아요. 그러고 구획된 특수성들이 있는 거 같잖아요, 선을 그어놓은. 분명 그것만은 아닌 거 같아요. 그걸 보고 동아시아에 꽉 박혀 있는 내 머리를 한 번 들었다 놓으면 정말 작았던 문제는 작게 보이고 정말 큰 문제는 크게 보이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어요(웃음)”

 

다분화된 세계 속에 자기만의 방

 

지영씨의 요즘 삶은 1년 단위로 계산된다. 1년씩 비자를 받아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인등록증 갱신하는 게 참 싫었다. 즐겁지 않은 대신 스스로를 계속 날카롭게 만드는 경험이다. 비슷한 날카로움을 한국에서도 느꼈다. 수유너머에 있다가 학교에 가면, 학교에 있다가 수유너머에 오면, 다시 집에 가면 또 느꼈다.
“왜 세계가 양분, 아니 다분되어 있지? 그런 게 힘들지만 사람한테 되게 중요하고. 저한테 그랬던 것 같아요. 집에 가면 또 다른 나 여야하고. 특히 여성들이 그렇죠.”

세계가 분화되는 걸 넘어 스스로가 분열되는 느낌이라 자꾸 숨어든다는 고민을 털어놓자 지영씨는 숨을 때는 숨어야한다고 말한다. 예전에 번역한 <목소리 없는 목소리>에서 애정을 갖고 있는 글 중 하나가 재생산 노동의 장에서 재생산하지 못하는 활동가들의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고 한다. 지영 씨도 사람들이 많은 공간에서 글을 잘 못 쓰는 사람이었다. 고쳐보려고 많이 노력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수유너머에 있었을 때 제일 힘들었던 것이 글이 자꾸 꼬이는 문제였다.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쓰는 것 같았다. 저기선 청소를 하고 있고 이 사람은 다른 고민에 휩싸여 있고, 또 여기선 밥을 하면서 뭐가 없다고 하는 공간에 있으면 그걸 같이 해야지 무슨 글을 써,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영 씨는 계속 까페일을 맡아했다. 글 쓰는 시간은 따로 있어야 했다. 절대적으로 혼자의 시간이 필요했고, 그게 자신을 돌보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뺀질거리는 거랑 그건 다른 거 같거든요. 그런 걸 공동체가 넓게 이해하는 포용력, 서로 간의 믿음, 신뢰가 있어야하는 데 그런 게 어렵죠, 넌 왜 안 나와 일 많은데, 되니까. 공동체에 그렇게 나가는 것이 내가 이런 성향의 사람이라 그런 거 같아요. 성격이 되게 활발해진 거에요. 사람들 오면 맨날 소개해주고, 안내해주고. 거기서 많이 배웠구요. 저 스스로도 올인하는 게 있는데. 그게 큰 문제여서 무너질 때 크게 무너져서. 그렇게 올인하면 안된다고, 저지르고 나서 스스로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나서 알게 됐죠, 내가 분열돼서 사는 것처럼 여러 곳에, 친구도 여러 곳에 둬야하는 구나.”

 

할머니와 아저씨와 아기와 영(靈)이 모두 있는 곳, 꼬뮨

 

지영 씨는 위클리에게 너무 고맙다고 말한다. 일본에 있으면 데모나 현장에 가서도 그냥 좋았다 대충 넘겼으면 깊이 생각할 힘이 없었을 텐데 위클리가 있어서 자유롭게 쓰고 생각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바쁘고 너무 정신없이 힘들 때도 데모나 현장에 꼭 가야지 하는 마음이 두 배정도 강해진 거 같다고도 했다.
자기 글이 너무 길어 편집시간이 무지하게 걸린다는 컴플레인도 많이 받았다며 웃는다. 하지만 정말 재밌었다고 한다. 이번에는 또 뭘 쓰지라는 생각에 즐거웠고, 지영 씨가 못 가면 친구가 이야기를 들려줘서 쓰는 글들이 좋았다. 그리고 친구들의 소소한 글을 받아서 위클리에 보낸 준 것도 참 좋은 기억이라고 했다. 유명한 사람들 외에, 공부하고 있지만 글을 많이 써보지 않은 친구들에게도 3.11이후 일본 상황에 대한 글을 보내달라고 부탁했었다. 화학공장이 있어 미나마타병이 발생했던 큐슈지방에 사는 친구가 보낸 원전에 대한 감상은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달랐다.
“정말 나의 좋은 여자 친구들. 디온 같은 친구들 만나서 쓰는 글들 좋았어요. 이번에 한 친구가 수업에서 어려운 일을 당했어요. 일본의 우파적 경향 속에서 그 친구만의 일은 아니지만, 우파들한테 직접적으로 공격을 받았어요. 그 일을 좀 쓰고 싶어요. 그 친구도 속에 담아놓은 얘기가 많을 테니까. 둘이 같이 쓰는 글처럼 그런 느낌으로 맺고 싶다 생각해요.”

“위클리는 그런 게 좋았어요. 지금의 여러 활동들을 굉장히 깊이, 거기 가서 느낀 사람들의 이야기로 볼 수 있는 거. 소소한 이야기들도 실을 수 있고. 문턱이 없고 인터뷰는 대단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살면서 느끼는 어려움, 애기키우는 이야기 그런 것도 할 수 있고. 그런 활동, 꾸준함이 드문 매체죠. 하면서 많이 어려웠죠?”

지영 씨의 질문에 처음 위클리에 참여했을 때 이전 편집진들의 공통감각을 같이 느낄 수 없어서 단절, 소외를 경험했다고 대답했다. 새로운 편집진들로 교체되었을 때 새로운 공통감각이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아서 어려웠다고 말이다. 지영 씨는 꼬뮨에서 중요한 건 소유가 아니라 점유라고 말한다. 점유는 쉽게 이야기하자면 어떤 책상을 먼저 들어온 사람이 주로 쓰는 것이지만 점유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점유에도 여러 가지 의미가 있어서 점유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미 누군가 점유하고 있는 그 지혜가 꼬뮨 안에서 어떻게 다양하게 연결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고.

“옛날 꼬뮨들 보면 할머니들 있잖아요, 그리고 힘센 아저씨들도 있고. 늘 그들이 꼬뮨의 한 구성요소잖아요. 그런 게 다 있어야하는 거 같아요. 영적인 존재도 있고, 막 활동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소스를 주는 사람도 있고.”

 

지영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꼬뮨의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모르지만 이미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도 존재할 그 무엇들. 연구실에 있으면서 처음에는 몰랐던, 하지만 이제야 어렴풋이 느껴지는 그 많은 존재와 사람들. 꼬뮨의 경계를 넘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경계를 넘어 동시에 존재하는 그 무엇들. 지영 씨의 말대로 할머니와 아저씨와 아기들과 영적인 존재 말이다.

봄바람을 타고 와 옛날과 지금, 여전히 존재하며 앞으로도 존재할 꼬뮨의 이야기를 살짝 들려준 지영 씨. 그 바람을 타고 다시 떠났지만, 미국에서의 생활을 잘 마치고 돌아와 또 다른 이야기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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