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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원하는 대로 다 했어. 그런데도 헤어진다고?”

- 이슈뜨(수유너머R)

위클리 수유너머(이하 위클리)의 창간 멤버들은 딱 100호까지만 하고 그만둔다는 꽤 멋진 이별을 준비해 두었다고 한다. 그런 그들이 99호 때, 100회가 지나도 계속하겠다 했을 때, 나는 편집자의 말 아래 쑥스런 고백 댓글을 달았었다. 위클리 필진, 편집진들의 글빨에 기가 눌려 댓글 한번 다는 것도 힘든 시절이었는데 처음으로 위클리에 마음을 표시를 했다. 좀 더 오래 붙들어 두어야겠다 싶어서였다.

 

위클리 수유너머를 만드는 것이 편집진 몇몇만의 고군분투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수유너머 모든 회원들과 위클리 수유너머를 읽는 독자들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말 그대로 웹상의 꼬뮨으로 실현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 135호 <위클리의 창간 멤버들이 물러난 후, 편집자의 말: “우리 지금 만나” 중>

 

위클리를 읽다 수유너머 강좌와 세미나에 들락거리게 되었고 회원이 되었다. <글쓰기의 최전선>강좌를 들을 때 코너에 1회 분의 글을 채웠다. 151회부터는 커버 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혼자서, 아무도 모르는 몇 번의 변태를 했다. 므흣! 그런데 위클리 수유너머가 다음 호를 끝으로 정간을 선언한단다. 네가 원하는 데로 다 해 줬잖아. 그런데 이러기니? 그리하여 오늘 위클리에서 될 수 있는 마지막, ‘필진’으로 거듭나 <위클리를 만든 사람들- 편집진 인터뷰> 글을 쓰기에 이르렀다. 135호를 끝으로 창간 멤버들은 자기 몫의 이별을 챙겨 떠났다. 시작을 가진 이들은 끝도 가질 수 있었다. 새롭게 구성된 편집진들은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까지 정도로 수유너머 활동을 시작한 지 몇 해 되지 않는, 새내기들이었다. 이들에게는 ‘멋진 선배들이 잘 해 놓은 것을 계속해서 이어 간다’는 것이 중요했다. 세대론의 대결 구도로 이야기를 끌고 가고 싶진 않다. 시작도 끝도 갖기 힘든 시간에 위치했던, 자꾸 위클리를 말아먹었다고 우스개를 던지며 조용히 사라지려는 이들을 뒷덜미를 잡아챘다. 내부보다 먼, 외부보다 가까운 자리에서 있던 나는 직장 동료도, 그렇다고 친구도 아니었던 이들 위클리 편집진들의 이름을 불러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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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편집진- 광호 • 숨 • 재규어 •지안과의 인터뷰>

 

깜냥 없음을 마주하는 두 자세

 

“헤어지고 싶진 않은데, 떠난 그의 마음을 더 이상 붙잡을 능력이 없어서 이제 놓아 주는 거지”

위클리를 그만두는 연유를 물으니 숨은 무슨 무능한 애인의 넋두리처럼 말한다. 결정적인 계기는 다시 발행이 미뤄지기 시작한 때 같단다. 위클리를 몸에 맞는 옷처럼 만들기 위해 매체를 발행한다는 것은 체력 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지구력이 필요한 일. 한 사람의 개인적인 능력보다 팀의 능력인데, 지구력이 부족했단다. 그러나 지구력이라 것이 하루아침에 불끈 솟을 수 있나?

 

숨, 광호, 재규어는 위클리를 하면서 자신들의 부족한 깜냥이 어느 선까지인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을 큰 수확으로 여기지만, 지안은 다르다. 깜냥이 부족하기 때문에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나의 경우, 인터뷰에 서툰데 헛소리 같은 질문과 글을 계속 쓰면서 처음보다 나아진다는 게 자꾸 느껴졌다. 이런 식으로 깜냥이라는 것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이 두 가지 입장 모두 옳다. 그리고 이들에게 실질적인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숨: 물리적으로 분리된 두 연구실(수유너머N은 연희동, 수유너머R은 해방촌에 있다)에서 각자 모인 편집진들이 서로의 공통 언어를 찾기가 참 힘들었다는 생각은 해. 어쩌면 완전 다름을 발견하는 것이 힘들지만 더 의미 있었을 텐데, 애매한 태도를 취했단 생각도 들어. 서로 날을 세우고 각을 만들면서 입장 차를 확실히 확인할 생각도 별로 안 했으니까. 위클리에, 수유너머란 이름이 붙었으니까 좀 더 교류도 해 보고, 그저 뭘 같이 해 보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안일했어.

 

예전 편집진들은 한 공간을 사용하니 꼭 일주일에 한 번의 회의로 만나지 않더라도, 좋은 기획이 떠오르면 아닌 말로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도 뛰쳐나와 함께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들은 즐거운 회의를 만들기 위해 카페를 찾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곤 했단다. 빠듯한 형편은 마찬가지일 텐데 그들에겐 어떤 잉여력이 있었다. 반면 이 넷은 어디 내놓아도 ‘저런 잉여들 같으니라구’ 하고 한 소리 들을 만한데, 정작 잉여를 <잉여력>으로 바꾸어 내는 일이 좀처럼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실상 이 인터뷰도 서로의 세미나 시간, 알바 시간을 정리해서 딱 한 시간을 잡았는데 그마저도 알바가 늦게 끝나거나 하는 바람에 재규어는 인터뷰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했고, 지안은 따로 약속을 잡아 볼 수밖에 없었다.

 

숨: 위클리가 의무로 남았기 때문이라든가 애초에 우리의 욕망으로 시작하지 않았다는 이유가 아니라 ‘습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돈을 받지 않는 활동을 제 시간 안에 해내는 것은 힘들잖아. 자기 훈련이 안 되어 있다는 생각, 셋팅 된 리듬은 일주일 발행이고, 우리의 현재 습에서는 따라가기 힘든 느낌이 들었어.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잖아.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했지.

 

 

위클리와의 첫 만남_

빽빽한 코뮨을 비집고 들어가는 틈이자 코뮨의 밖으로 나가는 장소

 

광호: N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안 님~’ ‘광호 님~’ 하던 사이였어요. 지안 님께서 “광호 님 위클리 같이하시지 않을래요~?” 해서 “네 ~같이하죠~” 그랬죠. 지안이랑 친해지고 싶었어요.

 

편집진이 되기로 한 날, 위클리와 함께 꾼 꿈이 있냐는 질문에 광호 씨는 덤덤하게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위클리가 뭔지도 모르고 시작했다는데, 무슨 다단계도 아니고. 지안이 말하길 ‘하는 거 별로 없어, 딸깍 딸깍 눌러서 업데이트하면 끝이야-‘ 그래서 재밌겠다 싶었단다. (광호 씨의 ‘딸깍딸깍적’인 일에 대한 애호는 우리에게 많은 화두를 던져주었다)

 

숨: 위클리 섭외 방식이 그런 거 같아요. 하고 있던 청소년 공부방 일을 정리하고 ‘저 이제 놀아요’ 하니 박정수 쌤이 ‘편집진 해보지 않을래요-‘ 그러는 거야. 아니 웹진, 편집 아무것도 모르는데, 싶었죠. 근데 수유너머 일원으로 같이 활동하고 싶다는 그 욕구가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연구실에 오는 사람들은 그 욕구가 큰 거 같긴 해요. 안 그럼 혼자 공부하면 될 텐데. 어쨌든 연구실에 기어코 나오는 건 타인과 공동으로 어떤 것을 형성함을 맛보고 싶어서인 거 아님?

 

지안: 저는 제가 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고딩이어서, 감히 위클리에 들어가도 될까? 했는데 졸업하자마자 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연구실에서 공부한 지 1년 정도 넘어가는 시기였어요. 허한 마음이 들었어요. 세미나를 해도 그렇게 깊은 고민을 하지 않았어요… 강도 높게 글을 쓰면서 고민해 보고 싶다. 맑스 다음 푸코 이렇게 무슨 단계처럼 하고 있는데, 그걸 다 하고 나면 난 뭐가 되지? 하는 고민이 생겼어요. 그때 다른 사람들은 넌 아직 공부를 좀 더 해야 할 시기다, 조언을 해 줬거든요. 그러면 글을 써도 되는 시기, 뭔가를 생산해도 되는 시기는 따로 있나? 그래서 그냥 하고 싶다 했어요. 부족해도 내가 한 공부를 외부든 어디로 내보내 보고 싶었고요. 연구실 내에 공부하고 글을 꾸준히 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걸 밖으로 내보내는 것도 의미가 있었어요. 외부에 나가서 글을 받아오는 것도 그렇고요, 위클리를 통해서 그런 전달자의 역할을 하는 거죠. 터미널 같은 역할, 근데 굉장히 어려웠어요.

 

 

 코뮨, 코뮨하는데 코뮨이 무엇인고?

 

일단 활동을 시작하자 이미 있던 위클리의 짜임새(정체성)에 대한 물음이 생겨났다. 위클리가 웹상의 코뮨이라는데, 분명 무엇인가 있는 것 같은데, 이렇다 할 실체가 없으니 ‘코뮨-’ 공동-‘ ‘함께-‘와 ‘위클리 다운-‘이 무엇인지 정의가 내려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회사처럼 직위나 반드시 처리해야 할 과업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못 한다고 쪼는 상사(편집장)도 없었다. 그저 시간을 내고 마음을 내어 온몸으로 공동의 경험을 계속해서 쌓아 가다 보면 코뮨이 뭔지는 몰라도 암묵지 같은 것이 생겨날 수는 있단다. 이것도 안드로메다를 떠다니는 이론적인 이야기고, 실상은 훨씬 더 사소하고 기술적 차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숨: 공부방에서 파트너랑 4년을 일했는데 초기에는 체계도 없고 틀도 없고 실험 단계였거든. 근데 그 상태에서 나랑 그 파트너랑 이것저것 실험을 많이 했지. 서로 아이디어 내면 그걸 어떻게 잘 해낼 수 있을까만 고민했어. 그 실험이 실패도 하고 성공도 하면서 공부방의 구체적인 흐름도 만들어지고 공통의 언어도 생기고 그런 거 같음. 그러니 끝물 보담 뭐든 시작하는 자가 좋은 거 같아. 거칠고 뭐가 정답인지 몰라도 그렇게 부딪히고 말 섞으면서 공통 언어가 생겨, 그거 자체가 코뮨이라고 생각해. 

위클리 할 때는 엠티 같은 거 다녀오면 만들어지는 것인지 알았지. 이제 와 생각해 보면 “함께 하는 활동”보다 더욱 중요했던 것은, 글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필진들을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였어. 위클리 중단을 결정하면서도 다른 편집진들과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야 하고, 나온 이야기를 어떻게 수용해야 하고, 의사 결정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

 

광호: 필요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시작하든, 타의에 의해 이미 만들어지든 코뮨이냐 아니냐가 중요하진 않은 것 같아요. 그것에 이름을 붙일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그저 양상들로 조금씩 드러날 뿐이고요. 위클리도 하네 마네 매번 회의하고, 지지부진함, 갈등 이런 것들이 공동체에 분명히 있는 측면 같고요.

 

지안: 혼자 위클리를 운영하는 것도 엄청 힘든 일이겠지만, 굉장히 사소한 결정도 넷이서 함께해야 할 때 반박하고 의견을 다 내고 하는 게 힘들었어요. 하고 싶다는 정도가 초기의 위클리 멤버들처럼 일정 부분 비슷하다면 좋은 공동 작업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는 각자가 위클리에 대한, 연구실에 대한, 동료에 대한 온도가 모두 달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힘든 공동 작업이었어요. 자기 책임이 강한 사람, 책임 없는 사람, 강제를 싫어하는 사람 다같이 함께하다 보면 언제가 맞춰지지 않을까라고 생각은 합니다. 만약 그게 안 된다면, 나는 편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쪽을 택하고 싶어요. 함께하는 것에 관해서는 오래 생각해도 멋있는 말을 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우리를 위태롭게 하는 것

 

광호: 정말 아쉬운 것은 위클리 내부에서 그리는 상이 모두 달랐는데, 그게 아무리 얘기를 많이 해도 아직까지도 조금도 좁혀지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지안은 자기가 글 쓰고 공부하는 장-활동의 장으로 보았고, 저는 매체-전달 수단으로 보았어요. 거기서 충돌이 있었어요. 지안은 저에게 너의 문제의식을 담아봐- 했지만, 전 나만의 문제의식이 딱히 없었어요. 밀양에 대해서도, 정보 전달을 충실히 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어요. 그게 끝까지 좁혀지지 않았어요.

 

지안: 서로의 언어를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이제는 언어라기 보다는 존재를 이해하긴 해요. 광호, 재규어랑 이야기 디게 많이 했어요. ‘왜 위클리를 하고 싶은가?’를 주제로 글도 써 와서 같이 읽는 그런 오글거리는 일도 했었죠. 광호는 꿈이 진짜 없는 아이인데, 편집자를 하고 싶어하더라고요. 난 그런 걸(딸깍딸깍 류) 왜 하고 싶어하는지 몰랐어요. 저는 남의 글 읽는 것이 재미없었거든요. 이제는 너는 이게 관심이 있구나, 너는 그렇구나 해요. 위클리 회의 하면서 갈수록 말이 사라지긴 했어요. 어려워서 말 못 해서가 아니라 뭘 하자고 하면 부담을 느낄까 봐서 말을 못하겠더라구요.

 

“배려란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라 하는 광고를 본 적이 있는데, 그건 배려가 아니라 부딪힘 – 만남을 결코 일어나지 않게 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갈등이 만들어 내는 틈이 아니다. 배려로 가장된 단단한 침묵이 만드는 공백이 아닐까 싶었다. 틈은 무엇인가가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두고 있지만 공백은 그저 비어 있는 것이다. 혹시 존재를 이해한다는 것이 공백을 만드는 일은 아니었냐 싶어 물어보니, 또래 친구라서 집 앞에 놀러 가서 술도 먹고 노래방도 가고 수다도 떨고, 연구실에서 공부도 함께하고 있단다. 이들은 서로 존재의 간격 사이에 술이든 뭐든 채워 나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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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라는 코뮨을 굴리는 힘 _

미안함의 선순환과 동료

  

지안은 위클리의 새로운 편집진 제의를 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굉장히 미안해 하는 모습이 이상했다. 일은 많은데 돈을 못 주니까 그런가 했다. 편집진이 되고 나서도 필진들의 원고가 늦어지는 원인 중 하나를 무보수로 생각했다. 그런데 위클리 마무리 좌담회에서 박정수 쌤이 돈으로 맺어지지 않은 구조였기 때문에 위클리가 잘 굴러갔다는 말을 들으니 이거다 싶었단다. 편집진들은 필진에게 돈 못 주니까 미안해서 관계에 더 신경 쓰게 되고, 필진들은 그 관계에 얽히고, 더구나 거절하고 싶어도 돈 안 줘서 안 한다 할까 싶어 글을 열심히(!) 쓰게 만드는 미안함의 선순환 구조 말이다.

 

다른 미안함에 관한 이야기인데 나는 커버가 하루라도 늦어지면 카톡 창에 연신 ‘죄송’이라는 단어와 ‘ㅜㅜ’ 표시를 날려댔다. 그런데 정작 미안함을 표시하고 나면 그 미안함 마음은 싹 덜어지고, ‘아니 지들도 메인 카피를 늦게 줬는데 나만 왜 미안해 해야 해’ 하며 속으로는 책임 소재를 따지고 있더란 말이다. 나한테는 지안의 말이 이거다 싶다. 이런 대인배 같으니라구.

 

지안: 나는 발행이 안 되었을 때 그때, 동료로서의 리듬 같은 것을 잘 느낄 수 있었어요. 일이 자동적으로 분배 되더라구요. 발행이 안 되면 외부에서(편집진이 아닌 이들) ‘왜 그래?’ ‘위클리 또 침몰이냐’ 막 그래요. 하지만 저는 발행 잘 되고 안 되고는 문제가 아니었어요. 몇 번의 발행에 차질을 빚으면서 우리 리듬이 이제 좀 맞춰져 가고 있구나 했는데. 끝나버리게 되어서 여운이 남아요.

 

숨도 위클리를 움직였던 힘은 동료라고 본다. 이게 뭐 끈끈한 정에 기반한 관계라기보다 서로의 의견을 끝까지 밀고 가면서 점검해 주고 긴장시키고, 북돋울 수 있는 긴장 타는 밀당 관계가 동료란다. 철학자 김영민의 “서늘한 동무”를 그 예로 들었다. 왜 그런 동료 관계를 못 만들었냐고 쿡 찌르니 숨도 ‘나도 이제야 그걸 알았는데요’ 하며 받아친다. 그리고 그런 동료를 만나려면 자신이 그런 동료가 될 준비가 필요하다 덧붙인다.

 

 

용용 부럽지_

 위클리를 하며 얻은 것

 

광호: 바빠 보여요. 연구실 사람들이 굉장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줘요. 연구실 친구들이 ‘아, 너 편집진이지. 힘들겠다.’ 해요. (아무래도 대외적 핑계가 사라진 광호 씨는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다)  

 

숨: 폐를 많이 끼쳤는데, 건진 것은 많은 것 같앙.(얄미울 정도로 자랑해달랬는데, 정말 얄밉네요) 다들 시간 없는데 엠티 가자고 난리 친 거나, 병권 정수 쌤 쫓아낸 것도 그렇고. 나가란 말은 안 했지만 말이야. 연구실에서 민주주의는 일인 일표가 아니고, 욕망이 있는 사람이 먼저 하고 그걸 독려해 주는 구조잖아. 근데 실상은 먼저 있던 사람들과 관계가 어쩔 수 없이 대등하지 않다. 위계가 생긴다. 기획 회의를 하는데 공통감이라는 게 없다 보니,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한다. 기획이 슬며시 자꾸 짤리니까 뭔 말을 못하겠더라. 그래서 불만을 말해버렸지. 폐를 끼친 건데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걸 덕이라고도 할 수 있지. 그 두 거목이 사라지면서, 한계를 절절히 느낄 기회를 가졌잖아. 특히 기획력 부족을 실감했어. 비밀인데 어디 (동종 업계)잡지라도 볼까 이런 말도 나왔었다. 근데 그렇게 기획력이 키워지는 게 아니니까.

 

알바를 마치고 돌아온 재규어: 글쓰기 능력인데, 정확히는 능력보다는 이렇게 쓰면 안 되구나 하는 눈치를 가졌어요. 편집장이 없는 이런 식의 작업을 경험해 본 것도요. 실질적 리더가 있니 없니 이런 것 떠나서 리더가 없는 조직은 잘 경험하기 힘들잖아요. 자율을 갖는 것이 되게 힘들고, ‘공동체란 뭐지-‘ ‘아무것도 없다’, 이런 질문에 빠져 보기도 했다는 것도요. 한번 해 보니 하고 싶다는 일이 못할 일은 아니구나라는 경험은 얻은 것 같아요.

 

지안: 저는 위클리 하면서 정말 행복했어요. 아니 이건 너무 오글거리고. 충만했어요! 눈에 보이는 결과물인 글도 내고, 위클리를 안 했으면 우리들은 연구실에 안 왔을 것 같아요. 와도 데면데면했을 것 같구요. 그런데 우리(광호, 재규어는 N에서 함께 공부하고 있다)가 계속 같이 있게 되었으니까 좋아요. 집회 가서 피켓 흔들고 그런 것밖에 안 했는데, 위클리 핑계로 가기도 하고 가서 할 일도 있었고.

 

 

상쾌함

 

숨: 응 후련해, 미안 너무 상쾌했지 좌담회 하고 나니까 그 동안 못 보던 게 보였어. 왜 오아시스처럼(오아시스 신기루를 잘못 말한 것 같다) 계속 하면, 누군가 더 들어오면 달라질 거라는,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만나서 소풍이라도 가면 뭔가 좀 더 공동의 뭐가 생길 거 같다라는 게 환상임을 알게 됐으니까.

 

지안: 나는 내가 후련할 거라고 생각을 못했는데 상당히 후련하네요. 머리 속으로는 ‘아쉽다’인데, 일상이 너무 후련해요. 일주일에 한 번 모이고, 카톡도 해야 하고 자잘하게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고 메일 써야 하고 일이 엄청 많지는 않지만 있는 것은 있는 것이었으니까 그게 사라지니 후련해요.

 

 

어디로 가면 당신들을 만날 수 있나?

 

재규어: 수유너머N에서 공부 중, 또 알바 중이기도 하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지금은 수유너머N의 인문사회과학연구원 프로그램에서 영화 관련 공부를 하고 있어요. 거기서 그림 동아리도 참가 중인데 하다 보니 기대보다 재미있고, 그림에 있어서 휘황찬란하고 원대한 꿈이 있어요.

 

광호: 위클리도 그렇고 다른 일도 계획하고 한 게 아니었어요. 앞으로도 순간순간 끌리는 대로 할 것 같아요. 시급한 것은 연애입니다. 항상 시급해요… 썸타는 사람 있냐구요? 이야기하지 않을게요. 그냥 ‘그는 대답이 없었다’로 정리해 주세요.

 

숨: 수유너머R에서 공부 중이고, 봄부터 세미나 <사랑의 잡상>을 진행 중입니다.

 

지안: 저한테는 알바도 일상인데 연구실에서의 일상은 기쁘고 알바 일에는 적대적인가? 하는 질문이 있어요. 알바에서 다른 관계를 만들고 싶어요. 10년 20년 알바 할 것 같은데 그 순간을 멍 때리면서 화내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단 말이에요. 그리고 언제까지 알바로 살 수 있을까? 알바에 관한 여러 가지 고민들을 가지고 사람들과 함께 불안정노동에 관한 책을 읽고, 2차로 알바노조나 알바연대나 자영업자, 알바생 같은 현장인들을 인터뷰해 보는 작업을 해 보려고 해요. 세미나는 아니구요. 재규어도 같이하기로 했는데, 같이하실래요?

 

 

굳-빠이을 위하여

 

인터뷰를 쓰며 나의 이전 이별 모습들을 오늘의 이별에 대비해 보았다. 기안서를 올리고 하염없이 예산 심의만 기다리다 보니, 다니던 회사는 어느새 <계약 만료>라며 안녕을 고했다. 모든 것이 매끈한 이별. 그래도 당하는 것은 어쩐지 개운하다. 내 탓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니까, 원망의 상대가 있어 다행이었다. 사측은 <송별 회식> 한 방으로 지난 일 년을 훈훈하게 봉합하려 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고 위클리의 이 네 사람의 일 년을 훈훈하게 마무리해 줄 법인카드가 내겐 없다. 예전 위클리 편집진과 밥을 먹다가 모든 지지부진함을 자연스럽게 타파하는 방법은 외부에 탄압을 받는 방법이라며 우스개를 한 적이 있다. 탄압으로 사라지든지, 더 똘똘 뭉쳐 살아남게 되든지 말이다. 위클리에게는 어떤 탄압도 가해지지 않았다.

 

또 하나는 이 년 전에 말아먹은 세미나에서였다. 세미나원은 나까지 두 명 남았다. 어떻게 할까. 이상하게 바쁜 일이 계속 생겨나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바쁜 일을 만들어 냈는지도 모른다. 3개월 후라는 유토피아를 건설했다. 3개월만 쉬고 재충전을 하고 나면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자잘한 희망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내가 먼저 그만하자 말하는 그 순간을 견뎌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어코 이별을 하지 않았다. 약속한 3개월의 땅에 도달했을 때 바쁜 일은 언제나처럼 거기 있었고, 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도 연락하지 않았다. 그때의 그를 요즘 들어 수유너머R이 이사 온 해방촌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는데(그의 집이 해방촌이다), 못 본 척하느라 서로 몹시 분주하다.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지만 이별하지 않았기에 다시 만날 수 없었다.

 

나는 위클리를 만들어 온 이들과 함께 멋진 이별을 구성하고 싶었다. 비록 시작은 못 가졌지만, 끝을 가지면 되지 않냐고. 우리도 선배들만큼 멋진 이별을 가져버리자고. 누군가에 의해서도, 나 때문이라는 자책도 아닌, 일방적인 것이 아닌 이별. 잘 가라 말하며 나는 멈춰 서서 점점 멀리 떠나보내는 이별은 하지 않고 싶었다. 다시 만나기 위해 오늘 이별을 말한다. <안녕>이라는 흔한 인사를 하고 싶다. 헤어짐과 만남이 한곳에 겹쳐 있는 그 인사말을 하기 위해 이리도 길게 끌어왔다.

 

안녕 – 새벽 다섯 시까지 위클리 수유너머 업데이트를 했었던(과거시제) 당신들 –

안녕 – 티는 잘 안 났지만 교열 작업과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이것저것 배치를 홀로 고민했던 광호

안녕 – SNS를 활성화해서 위클리에 현장감을 더하려 했던, 아무도 모르는 원대한 기획을 실행했던 지안

안녕 – 우물 안의 위클리에게 웹상에 있는 여러 신세계의 소식을 날라다 준 재규어

안녕 – 수유너머R에서 혼자 위클리를 하러 가던 당신을 보며 네덜란드 우화 속 손가락으로 댐을 막고 있는 소년을 생각하곤 했었지. 이제 그 손가락 편히 빼길 바래. 숨

안녕 – 내가 보지 못한 시작과 끝 사이에 있었던 편집진들

 

 

“만일 진정한 자유가 친구를 사귀는 능력이라면,

그것은 또한 진정한 약속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 데이비드 그레이버

 

나는 이들과 어떤 약속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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