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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만들기 파트 4-7] 전세계적 우경화 속 특수성을 듣고-쓰는 법

- 신지영

– <일본 대학에서 재일조선인 여성 강사가 강의하는 법1,2>에 대하여 –

 

* 조선학교의 ‘조선어’와 y의 오픈티켓

나: y야, 항공사에서 전화 왔어. 한국국적이면 1년 오픈 티켓이 어렵다는데?

y: 특별영주권이 있으니까 괜찮아. 그냥 확인전화 한 거야.

나: 아, 국적만 생각했지 특별영주자격은 생각 못했어. 다행이다 근데 왜 1년에 한 번 씩 한국오는 티켓을 사 둬? 그것도 한국에서 사니까 늘 한국으로 돌아오는 게 예정되어 있는 셈이잖아?

y: 사실 일본에 있는 거랑 똑같아. 물론 친구들이 반갑지. 그렇지만 이번에도 그냥 연구실에서 번역하고 그랬어. 집에서도 할 수 있는 건데. ^^

나: 그래도 익숙한 곳에서 떠나면 좀 편한 마음도 생기지 않아?

y: 음… 2월에 발표하러 왔을 때에는 다른 공기를 마시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 ‘그 일’에서 조금 떠나서 박사논문도 생각하고 싶었고.

나: 그때 너랑 만나고 한 일 년 쯤 다른 나라에 가도 좋겠다고 생각했어. 좀 쉴 수 있게.

y: 응 그러고 싶어. 그렇지만 한국도 일본도 아닌 곳으로 갈 거야. ^^ 한국은 친구도 많고 하지만 늘 일본과 많은 문제로 연결되어 있어서…..

나: 나도 그 마음 잘 알아. 이곳에서는 그런 일들에서 조금도 떨어질 수 없지… ^^

 

그리고 나는 지금 뉴욕의 작은 시립 도서관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 동아시아 연구소에서 1년간 체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도 일본도 아닌 곳으로 왔지만 친구 y에게 생긴 (그것이 나였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그(런) 일’이, 뉴욕과는 전혀 다른 시공간에 나를 딱 붙여 놓고 있다. 따라서 나는 뉴욕에 있지만, 아직/이미 뉴욕에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한국이나 일본에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친구 y와 그리고 무수히 많은 y들과 함께 있다고 느낀다. 나의 이런 감각과 선명한 미국 국기가 휘날리는 이곳의 어긋남이 며칠 새 몸에 돋았다 없어졌다를 반복하는 두드러기의 원인일 것도 같다.

내가 y들의 세계를 엿보게 된 것은 줄곧 타이프를 치고 있었던 한 심포지엄이었다. 한국의 소수자 운동과 일본의 재일 조선인 운동이 사이좋게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어긋나던 순간이었다. 이후 일본에 가게 된 나는 그 어긋남을 비밀리에 품고 재일 조선인 관련 집회나 심포지엄을 찾아가곤 했다. 나는 아직도 그 어긋남을 그 누구에게도 고통이 되지 않는 식으로 표현할 말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렇지만 내 친구 y는 내가 지닌 별 것 아닌 비밀 속에서 몇 번이나 나를 끌어내 주곤 했다.

6년 전 일본에 처음 도착해 한 달쯤 되었을 때 일본어에 대한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결국 y에게 투정을 부리게 되었다. 그러자 y는 내게 “그곳에 갈 때가 되었나보다….” 하더니 사촌동생이 다니는 조선학교 오픈 스쿨에 가자고 했다. 처음 가보는 조선학교에는 생경한 한글이 여기저기 씌어 있었다. 특히 ‘우리’라는 말과 ‘투쟁’과 같은 말이 많았다. 수업에 들어가니 서툴고 강한 억양의 조선어가 들려 왔다. 신기하게도 그 조선어를 들으면서 내 속에 짓눌려 있던 일본어에 대한 부담감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내가 일본어의 권력성에서 조금 자유로워졌던 것은 바로 조선학교의 조선어를 통해서였다.

이후 y와 함께 조선학교 음악회 파티에 가거나 집회에 참여하거나 우토로 통역에 따라가거나 하면서 나는 역사성을 지닌 소수자의 세계를 어렴풋이 느끼거나 슬쩍 엿볼 수 있었다. y를 통해 나는 만나도 만날 수 없었던 그 역사적 소수자들과 끝없이 매듭을 지으면서 연결되어가는 상상을 하곤 했다. 접촉이 곧 변형이 되고 또 역사성이 되는 비밀이 어쩌면 이러한 관계들의 매듭에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 서로에게 ‘만신(큰 무당)’이 되는 것.

y에게 ‘그 일’이 생긴 지금, 답답하다. 그 일은 꼭 내게도 생길 수 있는 일이었던 듯하다. 혹은 앞으로 수많은 그런 일들이 생길 것만 같다. 마치 나를 풀어주듯이 y의 비밀로부터 y를 조금 풀어내 주고 싶다. 우리들이 함께 지닌 비밀을 비밀스럽게 남기기 위해서라도.

작년 12월 13일, 리츠메이칸의 촉탁 강사인 y는 <동아시아와 조선반도>라는 수업을 진행했다. 그 중 재일조선인에 대한 강의 시간에 ‘조선문화연구회’ 소속 학생들이 어필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요청했고, y는 그들에게 기회를 준다. 네 명의 재일 조선인 학생들은 ‘고교 무상화’에서 조선학교가 누락된 것을 개선해 줄 것을 어필한 뒤 “문부과학성 앞으로 보내는 메시지 카드”를 나눠주고 각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찬동해 줄 것을 부탁한다. y는 이 메시지 카드는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제출하는 것이며 성적과는 무관함을 밝힌다. 그런데 올해 1월 10일부터 당시 나눠준 메시지 카드의 서명여부에 따라 성적을 주기로 했다는 유언비어가 한 트위터에 의해 퍼져나가고 y는 2채널이나 인터넷 우익에 의해 극심한 공격을 받는다. 일본의 우익 시민 단체들은 인터넷 상의 비방 외에도 리츠메이칸 대학과 문부과학성에 전화와 메일을 보내면서 압박했고 국회의원 가타야마 사츠키는 블로그에 근거없는 비방을 게재한다.

압박이 심해지자 리츠메이칸 대학은 ‘견해서’를 발표한다. 그 내용을 보면 교원이 잘못한 것은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수강생에게 강사가 탄원서에 대한 서명을 요구하는 듯한 오해를 주었습니다. 이는 대학에서 부적절했다고 생각하여, 강사를 지도했습니다”라고 씌어 있다. 거짓 트윗을 한 학생과 헤이트 스피치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 삼지 않고 오히려 강사를 ‘지도’했다는 이 견해서는 수많은 학자, 동료, 친구들의 비판을 받았다. 현재 관련된 성명서, 서명, 대학에 대한 질문장 제출, 강연회 개최, 신문 등 매체들의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서명:<재일조선인 여성 강사가 일본대학에서 강의하는 법1> 참고.)

그런데 ‘그 일’은 복합적이다. 성격이 다른 여러 시공간의 문제가 섞여 있다. 전세계적 우경화 속 일본 내 헤이트 스피치를 비롯한 우파집단의 득세, 대학 내 인종주의의 심화, 대학 혹은 교실 속 권력관계 등. 또한 현실과 인터넷 상의 가상이 섞여 있다. 현실에서 일어난 일인 동시에 인터넷 공간에서 확산되어 간다. 과거가 현재에서 반복되는 인상도 준다. 헤이트 스피치는 최근의 문제지만 식민지기부터 시작된 문제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각 시공간이 분리된 경계를 유지한 채로 통합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경계는 굳건해져만 간다. 올해 2월 일본에는 폭설이 두 번 내렸다. 한번은 40년만이라고 했고 한번은 70년만이라고 했으며 시계추를 전후로 돌린 것 같다고도 했고, 1930년대 식민지기로 되돌린 것 같다고 했다. 비단 자연현상 뿐 아니라 파시즘의 시대가, 1930년대 식민주의가, 전후 직후의 냉전질서가, 되돌아온 것 같다는 이야기(과연 되돌아온 것일까 심화된 것일까?)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 구획된 통합이 파시즘적 총체성을 향해 있을까봐 두렵다.

y가 한국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던 ‘영화 <만신>을 보는 일’의 의미는 뭘까? 만신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을 느끼고 표현하고 사는 존재다. 이세상과 저세상의 경계를 선명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선의 구체성을 확 벌려 놓는 존재, 그것은 만신의 총체적 특수성이다. 나는 화자인 그녀와 기록자인 내가 겹쳐지는 듯했던 순간들을 통해, 그 모든 선명한 경계선 위에 또 하나의 시공간이 펼쳐지기를 바라게 된다. 이번 글은 멀리 떠나온 줄 알았으나 결국 우리가 함께 되돌아온 사이 공간에 대한 나와 y와 y들의 듣고-쓰기이다.

 

* 교란되는 당사자성 – 알 수 없는 ‘뭔가’가 ‘나’를 만들어내고 퍼져나간다.

마이너리티 활동에서는 ‘누가 마이너리티인가?’ 즉 누가 ‘당사자인가?’가 늘 중요했다. ‘그 일’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마이너리티인 당사자여서, 이외의 사람들은 모두 ‘당사자가 될 수 있는가? 당사자처럼 느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런데 y는 자신의 당사자성을 다른 사람들의 메일과 전화를 통해 전달받는다. “실은 나는 몰랐어. 전화가 왔는데 ‘뭔가 큰 일이 생긴 게 아니냐’고 했어. 또 ‘힘내, 응원할게’라는 메일을 받았어.”

두 번째 장면, 한 연구회에 갔던 y는 자신의 이야기를 타인의 이야기처럼 듣는다. “ ‘리츠메이칸에서 이런 일이 있었지요. 그 일이 있은 뒤 어떻게 되었을까요?… 참 그 분 여자였지요?’ 그러셔서 ‘네 접니다’라고 하니까…”

세 번째 장면. y는 몇 번이고 자신도 모르고 컨트롤 할 수 없는 ‘뭔가’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어느 순간까지는 y kaji electronic cigarette의 문제였던 것이 헤이트 스피치 문제로 번져 버렸다. 따라서 y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이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면 나는 싸울 수 있어. 그렇지만 내 문제만으로는 싸울 수 없을 것 같아.”

이 말은 당사자성이 교란된 현재 상황을 보여준다. 따라서 대응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회의도 나가고 의견도 말하고 있고 반면 내 이름은 나타나지 않지. 그렇게 하는 것이 내게는 좋은 것 같아. 내가 나서면 역효과가 날 수가 있고…” 당사자가 될 수 없는 당사자 y는 침묵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 ‘침묵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는 상황만큼 ‘그 일’이 지닌 특이한 고통을 잘 표현해주는 말도 없을 것이다.

왜 y는 y들이 되어야 싸울 수 있는가? 헤이트 스피치 속에서 y는 단 한명의 당사자가 될 수 없지만, 단 한명의 공격 대상이 될 수는 있다. 그렇게 공격대상이 된 y는 이미 원래의 y와는 상관없이 가상 공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져 버린다. y에게 퍼부어진 말을 보라. 그건 y의 어떤 개인적인 특성도 고려하지 않은 식상한 그러나 폭력적인 말의 반복이다. “내가 북에서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간첩이라든가… 근데 생각해 봐. 어떤 간첩이 이런 티나는 행동을 하겠어?-중략-이런 말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직접 들었어. 근데 생각해 보면 그 말들이 나를 향해 직접 던져진 것일지도 잘 모르겠어. 인터넷 어딘가에 올라간 것이고 더구나 스파이라든가 반일X라든가 하는 말들은 내 일상생활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마치 내 일이 아닌 듯했어…” 당사자가 될 수 없는 상황이, ‘당사자가 되길 피한다’고 오해되어 버릴 때, y의 침묵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침묵이 깊어진다.

 

* 익명의 말을 통한 폭력 vs 이름을 내건 무명집단

헤이트 스피치, 즉 ‘인터넷 공간의 말을 통한 폭력’은 어떤 걸까?

“그것들이 나를 지배해. 마치 그쪽의 전략 같아. 밖에 나오면 정말 누군가가 나를 총으로 쏠 수도 있겠다, 내가 정말 당할 수도 있겠다, 싶은거야. 폭탄을 보내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런 일은 없었고,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사람도 없는 것 같아. 단지 여러가지를 상상하게 되는 거지.”

나는 내 친구 y의 이러한 솔직 담백한 균형 감각이 서로의 존엄성을 담보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사라질 때 관동대지진의 대량 학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이 직접 부딪치는 폭력과 달리 말을 통한 폭력은 다른 인종들 사이의 간격을 통하여 긴장감과 상상력을 증폭시킨다. 관동 대지진의 경험이 보여주듯이, 작은 계기가 직접적인 폭력이나 대량 학살로 번질 수 있다. 말로 인한 폭력은 여러 시공간의 상처들과 과거의 고통스런 기억들을 ‘상기’시키고 증폭시킨다. y가 예전 화장실에 씌어 있던 낙서들을 문득 떠올리듯이. 이름을 감춘 자들의 ‘말을 통한 폭력’ 앞에서 서명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서명하는 것은 일종의 ‘반일 명단’이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안겨주는 것과 같잖아? 또한 서명 사이트에는 국적 등을 쓰게 되는데 이것을 불편하게 느끼는 재일 조선인 친구들도 있었어. 그렇지만 이름을 밝히지 않고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아이디) 걸고 모인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건 의미가 있지 않을까?”

현재 그렇게 모인 서명은 이천 명을 넘어섰다. 서명, 성명서, 질문장 등을 만들 때의 경험을 y는 흐믓한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성명서나 공개 질문장을 만들 때는 정말 재밌었어. 다들 연구자니까 모두 머리가 좋잖아. 게다가 분야도 다양했어. 철학, 노동문제, 사회학, 마이너리티, 젠더 등 이렇게 다양하게 모여 있으니까 집단 지성처럼 되어서 이런 표현은 이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나누었어. -중략- 좋은 집단이었고 좋은 경험이었어.”

 

* 법과 매뉴얼을 둘러싼 혼란 – ‘강의실을 보호해야 한다?’는 상황 속에서.

최근 공공기관에서 나타난 인종주의적 양상은 y의 경우만이 아니다. 3월 3일『東京新聞』은 「클레임에 대한 두려움 자기규제의 소용돌이, 배외주의로 위축되는 대학(クレーム恐れ自己規制の渦 排外主義に委縮する大学)」이라는 기사에서 공공기관에 확산된 인종주의와 우파집단에 대한 두려움으로 확산되는 자기 검열을 주제로 다룬다. 예를 들어 도쿄도 미술관에 전시된 조형작가 나카가키 가쓰히사(中垣克久)씨의 작품은 정치치적이라는 이유로 철거 요청을 받는다. 도쿄 치요다 구립 도서관은 소다 카즈히로(想田和弘)감독의 <선거> 상영을 취소한다. 리츠메이칸이 그러했듯이 모두들 우파집단의 공격이 무서워 자기 검열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는 대학 내 인종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오테몬 대학의 인도 유학생이 인종주의적 이지메를 못 견뎌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고, 재일 조선인 교사가 습격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식민지 관련 수업에서 학생들이 보이는 반응의 변화는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려온다.

대학 내에서 심화되는 인종주의에 맞서 이타가키 류타(板垣竜太), 우카이 사토시(鵜飼哲) 다카하시 테츠야(高橋徹哉) 등의 교원들이 성명을 준비 중이다. 여러 성명서가 있지만 특히 이 성명서는 대학 내 인종주의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현재 대학에서 재일 외국인이나 유학생을 포함한 학생들 사이에, 혹은 전임 혹은 강사 외국 국적 교직원과 그 동료나 학생들 사이에, 혹은 일본의 식민지배나 침략의 역사 등 ‘인종주의’에 관련된 테마를 다루는 교육활동에서 어떤 상황이 진행되고 있을까? 우리들은 큰 불안을 품게 되는 많은 정보와 접하고 있습니다.”라고 현 상황을 진단하고, 레이시즘에 반대하는 대학인 공동성명 초안 발표, 각 대학에서 캠퍼스 레이시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대책을 찾을 것, 레이시즘을 테마로 한 공개 연설 토론회를 개최할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대학 내 인종주의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교실 내 교원과 학생 사이의 권력관계가 단순치 않다는 점이다. y가 비정규직 재일조선인 젊은 여성이었다는 점이 ‘헤이트 스피치’의 표적이 된 요건이었음은 여러 정황상 드러난다. 따라서 그 일 이후의 수업은 “보호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마어마한 분위기였어. -중략- 내 수업 전에 그 교실에서 예정되었던 수업은 다른 교실에서 했고, 열한명 정도의 직원이 수강자를 한명씩 체크해서 들여보냈고 수업 내내 직원들이 수업을 참관하고 있었어. 그 일에 대해 학생들과 좀더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15회까지 강의 계획이 빡빡하잖아. 더구나 기말고사 시험문제는 이미 제출했지…”

교육의 자율성을 위해 이런 감시나 보호는 말도 안된다, 라고 비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인종주의가 심화된 대학은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며 교실 안 권력관계는 단순치 않아 선생님이 전적으로 권력적 우위에 있지도 않다. 아직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매뉴얼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런 문제를 논의할 모임이나 공간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최근 대학 캠퍼스 안에서 자율성은 매우 축소되었다. 정치적인 행위는 거의 사라졌을 뿐 아니라 포스터를 붙일 때에도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자율성이나 자유와 같은 말의 의미가 ‘보편성’이라는 이름하에 왜곡되어 간다. 자민당 참의원인 가타야마 사츠키가 자신의 블로그에 교실에서 배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라고 쓰고 있듯이, ‘자유’라는 말 자체가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된다.

그렇다고 해서 과연 대학이나 교실을 보호해야 할까? 서로가 서로를 통제하고 수업 내용을 일일이 보고하고 수업에 경찰이 들어오는 끔찍한 상태가 되지 않을까?

“누군가가 나를 보호해준다는 게 실감나지 않았어. 재일 조선인의 역사를 보면 법은 소수자의 편이 아니었고 나도 이 역사 속에 있으니까.”

그러나 이런 상황을 겪으면 옳고 그름의 판단이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y는 그 일이 일어난 직후에는 어떤 판단도 하지 못한 채 상황에 끌려 들어갔다고 한다. 따라서 학교측의 성명서에 대해서도 대신 화를 내 준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고맙고 감사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무엇에 대해서 감사하고 고마워해야 하는지는 좀 어려웠어…. 아무래도…. 곁에 있어 줘서 고맙다…”

그 친구들은 요즘 ‘y네 집’에 모이고 있다고 한다. 원래 y네 집은 크기가 넉넉해서 친구들이 모여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공부도 하고 실연당한 친구가 잠시 묶어 가기도 하는 풍성한 아지트였다. 그곳에 모였던 친구들이 지금은 y와 함께 싸우고 있다. y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y가 됨으로써.

 

* ‘조선’이라는 말 – 전 세계적인 우경화 속 차이를 보는 눈

전세계적 우경화는 현실이지만, 한편으로 이 말로 표현되지 못하는 경험들을 y와 나는 제각각 겪고 있었다. y는 이 일이 있은 뒤 ‘조선’이라는 말의 민감한 결들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y에게 생긴 일은 ‘재일 조선인’의 역사와 경험과 분리되어 이해될 수 없으나 일본에서 조선=북조선=테러집단으로 이해되어 버려 차분히 논의하기 어렵다. 한편 나는 우리의 인터뷰가 한국에서 실릴 때 자칫 잘못하면 일본에 대한 내셔널리즘적 비판이 되거나 혹은 조선학교 지원이란 측면만이 부각되어 종북으로 몰리거나 하는 양극단으로 이해될까 걱정스러웠다. 최근 재일 조선인에 대한 연구 등이 늘어났지만 과연 한국에서 재일 조선인의 연구나 위치가 의미를 갖는다면 그것은 어떤 측면일까? 아니 우리는 이번 이야기를 통해 어떤 세상을 꿈꾸고 있는 싶은 것일까?

“리츠메이칸은 한국 유학생이 가장 많은 학교야. 그러니까 대학 생활 속 인종주의에 대처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며 좋겠어. -중략- 여기서 침묵하면 앞으로 후회할 것 같아. 그렇지만 지금 뭔가 시도해서 그게 성공할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아. -중략 – 재일 조선인의 역사는 그러한 투쟁의 역사잖아. 그 연장선상에 내가 있고, 그런 싸움들이 얻어낸 혜택과 변화를 많이 누리고 있지. 그것을 생각하면 나도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사실, 용기가 없다.”

“그래… 정말 어려운 문제지. 그렇지만 늘 삶의 일부분을 그런 시간으로 남겨두고 그런 시간들로 채우면서 살고 싶어. 오늘 처럼 너와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할 시간들 말이야. 그렇지만 내게도 용기가 부족해… 미국에 도착해서 혹시 다른 데 정신이 팔리거나 해도 내게 계속 알려줘야 해.”

“그래 연락할게.”

전세계적 우경화에 대항하는 전세계적 연결을 만들면서, 그 각각의 연결들이 지닌 매듭을 통해 차이를 보는 눈을 지속적으로 함께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 뉴욕에서 만난, 17년 경력의 택시드라이버.

뉴욕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 택시 운전수는 17년간의 미국 고생담을 들려 주었다. 그에 의하면 미국에서의 삶은 공항에 누가 픽업하러 오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만약 트럭 운전수가 데리러 오면 트럭 운전수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말도 못하는 이민자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픽업하러 온 트럭 운전수에게 묻고 직업도 소개받게 되기 때문이라는 게, ‘돈만 있으면 사람을 죽여도 해결되는 미국’에서 터득한 그의 지혜였다. 그는 내게 엄청난 비밀을 전해주듯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한번 외교관이 마중 나오게 해 봐요. 그럼 외교관으로 살아가게 된다니까요. 정말이라니까!”

이 큰 땅덩어리에서 빈부나 인종차이는 그렇게 존재하는 듯했다. 겉으로는 다채롭고 다양하고 자유로워 보이지만, 구획된 경계를 지키는 한에서만 자율성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생각하는 동아시아 문제란 얼마 전 오마바가 양쪽에 아베와 박근혜를 앉히곤 화해를 종용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올록볼록한 면을 평평하게 만들고 구획을 나눈 뒤 서로의 위치를 할당해 준 뒤 가장 높은 자의 시선으로 조율하는 느낌이다. 나는 나와 그녀의 듣고-쓰기가, 또 택시 드라이버와 나의 듣고-쓰기가 또 내가 모르는 뉴욕의 에스닉 그룹들의 듣고-쓰기가 이 평면적 구획들 속의 울퉁불퉁한 면들을 드러내고 그 울퉁불퉁한 면들이 그 투박한 매듭을 통해 연결되는 것이 되길 바란다. 4년간 일본에서 글을 쓰며 내가 하고 싶었던 일, 그리고 <수유너머 위클리>가 해 왔던 일도 그와 비슷하리라 어렴풋이 느낀다.

이 글은 4년간 연재해 온<수유너머 위클리>의 마지막 글이다. 오랜 일본 생활을 건강하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글을 통해 맺어질 수 있었던 작은 마을들의 그 살뜰함 때문이었다. 고마움을 담아 <수유너머 위클리>의 마지막 글은 내가 가장 이 독특한 매체를 이용하고 싶었던 방식으로 글을 보내고 싶었다. 나의 아름다운 여자 친구들과의 듣고-쓰기를 통해 그 어떤 매체에도 보도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들려 주고 싶었다. 그 핑계로 마지막까지 마감을 지키지 못하고 위클리 친구들을 고생시키고 있다. 그 어디에도 없는 소중한 매듭이 되어준 <수유너머 위클리> 친구들에게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사실 이 글은 그야말로 불안정한 상태로 씌어졌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미국 안에서도 필라델피아, 롱아일랜드, 뉴욕을 전전하면서 쓴 탓에 통일성이 없다. 그러나 이곳 저곳, 이승 저승, 여기 저기를 다니면서도 나를 사로잡고 있던 그 상황들을, 그 상황에 엮어지고 있었던 매듭들을 확 풀어놓고 싶었다. “용기가 없다”고 말하는 순간 퍼져나가는 결단들을, ‘작은 일이잖아’ 할 때 퍼져나가는 강렬한 떨림들을, 전세계적 우경화가…라고 할 때 비명을 지르며 나타나는 제각각 다른 사연들을, 냄새들, 촉감들을. 진실 속에 있는 가상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 같아 보이는 가상 속에 가상처럼 보이는 진실의 순간들을 확 펼쳐놓아 보고 싶었다. 오늘은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고 있는 생때같은 죽음들로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이 뭐라 칭할 수 없는 선명한 느낌이 저곳과 이곳을 이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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