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이데이

[7호] 내 사랑, 젖꼭지

- 기픈옹달(수유너머 R)

어느 정신분석학자의 육아일기: 매이데이

내 사랑, 젖꼭지

매이 삐짐

“매이꺼야” “아냐, 엄마꺼야” “아냐, 젖꼭지 매이꺼야”, “이게 어째서 매이꺼야?”

오늘도 목욕 중인 매이와 아내 사이에 젖꼭지 분쟁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음심 가득한 눈으로 엄마의 젖가슴을 찝쩍거리면서 시작됐다. 아내가 무시하자, 콧소리를 섞어서 “엄마 한 번만” 한다. 아내가 피곤한가 보다. “안 돼! 아까도 많이 먹었잖아” 호락호락 젖을 주지 않자 매이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이내 눈을 흘기며 식식거린다. 아내도 좀처럼 굽히지 않을 태세다. “하루 종일 젖 먹는 게 어딨어?” 그러자 매이가 화를 내며 아내 얼굴을 때린다. “아야~” 아내가 비명을 지르며 매이의 손을 제지하자 더 분기탱천한 매이는 아내의 젖가슴을 할퀴며 파고든다. 아내가 그러지 말라며 소리를 지르자 매이는 “엄마, 매이 좋아했잖아. 엄마 매이 좋아했잖아요” 하며 서러운 울음을 터뜨린다. 안쓰러워진 아내가 “매이, 엄마 젖이 그렇게 먹고 싶어?” 하자 “응” 하고 대답한다. 둘 다 한풀 꺾인 목소리다. “그래도 젖꼭지는 엄마꺼야. 그렇게 할퀴면 안 돼요” 하자, 매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엄마, 미안해요. 엄마 미안해요.” 흐느낀다. 극적인 화해가 이뤄지고, 매이는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은 눈으로 엄마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흡족히 젖을 빤다.



젖꼭지는 내꼬얌!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목하, 후기 구강기의 매이는 젖꼭지와의 이별 예감 때문인지 한층 더 젖가슴에 집착한다. 하긴 만 3년 가까이 이어져 온 젖가슴과의 쾌락을 갑자기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선선히 받아들이긴 힘들 것이다. 뜨겁게 사랑하던 애인이 더 이상 섹스는 없다고, 이제부터는 쿨~하게 지내자고 하는 것과 같다. 도대체 왜? 왜 안 된다는 거지? 고추장의 딸, 유나는 세 번째 생일 날, ‘이제 유나는 세 살이니까 엄마 젖은 그만 먹자’ 라는 제안을 선선히 받아들이더만 – 하긴…그러고도 유나는 오래 동안 젖가슴에 대한 미련을 떨칠 수 없어 연구실 처자들의 애꿎은 젖가슴을 희롱했다. 연구실 카페에서 엄마 젖을 빠는 매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침을 꿀꺽삼키며 ‘나도 엄마 젖 먹었는데’라고 안타깝게 중얼거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 매이는 ‘연령제한’의 논리를 가볍게 무시했다. 33개월의 매이는 아직 엄마 젖꼭지와 이별할 준비가 안 돼 있다.

엄마 젖을 빠는 매이에게 다가가 “젖 나와?” 하고 물어 봤다. 그러자 물고 있던 젖꼭지를 쭈욱 잡아당기더니 “뽁” 소리를 내며, “아니” 한다. “안 나와? 그런데 엄마 젖은 왜 빨아?” 다시 젖꼭지를 물고 한 손으로는 반대편 젖꼭지를 매만지며 “조금 나와” 한다. 자기한테 불리한 진술을 했다는 걸 깨달았나 보다. 매이가 엄마 젖에서 얻는 것은 ‘젖’이 아니라 ‘쾌감’이었다. 성인 어른이 여성의 젖가슴을 빨고 만지며 얻는 리비도적 쾌감 말이다. 다만, 그 성행위가 은밀하지 않고, 대중매체의 환상에 의존하지 않고, 젖가슴의 쾌감 자체로 그칠 뿐이다. 엄마의 젖을 유혹하기 위한 매이의 ‘음탕한’(?) 눈빛과 에두르는 말투와 애무하는 표정을 보면 정말 프로이트 말대로 아이에게 엄마 젖은 영양섭취의 도구가 아니라 쾌락의 도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섹스에 몰입한 어른이 서로의 몸을 가지고 놀며 어린아이처럼 구는 이유를 알 듯하다.



구강기

멜라니 클라인에 따르면, 이유기의 아이는 엄마의 거절을 젖가슴의 박해로 느끼고 깨물며 공격하기도 하고, 젖가슴의 상실감을 애도의 감정으로 극복함으로써 독립된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고 한다. 요즘 매이는 엄마에게 한없는 애정을 표현하는 한편 불쑥불쑥 엄마를 때리고 깨물면서 애증의 홀로코스트를 타고 있다. 그리고 틈만 나면 “엄마, 매이 좋아했잖아” 하면서 서럽게 울며 젖가슴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매이가 겪어야 할 수많은 좌절과 상실과 이별들을 생각하면 젖가슴과의 이별을 위한 매이의 고군분투가 안쓰럽다. 그러다가는 젖 못 뗀다는 주위 사람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매이 때문인지 자기 자신 때문인지 단호하게 젖을 못 떼고 있다. 젖을 떼고 쿨한 인격적 관계로 남아야 하는 것이 못내 아쉬운 듯하다. 다시 오지 못할 열정적인 애정 관계를 좀 더 지속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딸내미이고 남편이 있는데도 이럴진대, 아들이고 남편이 없거나 없는 게 나은 여자라면 자식에 대한 외디푸스적 애정은 얼마나 강렬할까. 그리고 그것이 아이의 삶에 얼마나 큰 변수로 작용할까 생각해 본다.

“매이는 엄마를 더 좋아하지롱. 약올릅지롱” 하는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속으로 ‘그래, 마지막 사랑을 실컷 즐겨라’고 말해준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제부터는 아빠를 더 사랑하게 되어 있다고 하는데, 글쎄, 꼭 그렇게 될지, 어떻게 그리 되려는지는 두고 봐야 할 거 같다.

– 매이 아빠

응답 5개

  1. 민지말하길

    너무 재밌어요!!!
    이 글을 읽고 나는 어땠을까 궁금해서 엄마에게 물어봤는데
    그냥 별탈없이 자연스럽게 뗐다고 하시더라고요. ㅋ
    갑자기 궁금증이 생겨서 나의 어렸을 적 이야기들을 물어보게 되더라고요.
    매이가 나중에 철들고 나서 이 글들을 읽으면 얼마나 재밌어할까? ㅎㅎㅎ

  2. 부우말하길

    와~ 재밌다!! 전 엄마가 되어보질 못해서 느끼지 못하는 감정인데, 울 엄마가 들려주신 젖 뗀 얘기보다 훨 재밌어요. 아마도 아빠가 쓴 거라 그런가 봐요~

  3. 쿠카라차말하길

    아, 그렇군요. 메이도 스스로 떠나겠죠? 그러면 샘 말씀처럼 매이 엄마의 지독한 짝사랑이 시작되겠군요. 지금의 사랑싸움이 아내에겐 오히려 행복한 순간이겠네요. 벌써부터 걱정됩니다.

    • 매이엄마말하길

      나도 그날이 올까 은근히 두렵다오. 지금 매이로부터 받는 사랑은 일생에 다시 없을 사랑이지요. (그때가 오면 매이아빠가 나의 공허함을 챙겨주려나?)

  4. 박혜숙말하길

    샘 글을 읽으니 우리 아이들 젖 뗄 때가 기억나네요. 우리 애들도 참 지독했어요. 쓴 약을 바르면 펑펑 울면서 녹여 먹고, 반창고를 붙이면 죽어라 떼어냈죠. 그래서 어느 순간 포기해 버렸어요. 스스로 떠날 때까지. 그랬더니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그렇게 떠나더라고요. 어쩌면 그때부터 사태가 역전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때부터 엄마의 짝사랑이 시작되는 거 같기도 해요. 참으로 이상한 사랑의 역학관계네요. 잠시 옛추억에 잠길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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