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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태숙 파랑새공부방 교사 “빈공청소년문제, 투표권 얻어와야죠”

- 기픈옹달(수유너머 R)

가족이란…밥 먹기, 있어주기

 

파랑새나눔터 입구 싱크대에는 칫솔 서른 여개가 어지럽게 담겨있다. 두 개의 방 벽면에는 수백 권 넘는 책들이 담쟁이 넝쿨처럼 덮여 있다. 참고서도 초등부터 고등까지 다양한 과정이 구비됐다. 피아노와 컴퓨터가 각각 두 대씩이다. 창문에는 다양한 표정의 아이들 사진이 방긋방긋 웃는다. 대식구가 사는 공간답게 온기가 넘치는 풍경이다.

물론 여기서 밥도 같이 먹는다. IMF 때 결식아동을 지원해주면서 공부방으로 발전한 파랑새나눔터는 원래 아이들이 밥을 먹기 위한 공간이었다. 성태숙 시설장은 “공부방 교사에게 아이들 끼니 챙기는 일은 참으로 번거롭지만 밥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라며 “식사시간은 아이들을 차분하게 관찰하고,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는 귀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밥을 통해 삶의 기본적인 형태를 잡아준다고 할까요. 밥이 보통 가정처럼 공부방을 집답게 해주는 거죠. 집의 조건은 두 가지에요. 첫째는 같이 밥을 먹는 것, 둘째는 있는 사람이 계속 있어주는 것.”

먹고 싸우고 웃고 떠들고. 파랑새나눔터의 사는 모습도 일명 지지고 볶고의 연속이다. 7년 동안 매일매일 일상의 거친 파고를 넘어 지금까지 흘러왔다. 이 긴 세월 동안, 그에게 힘이 된 것은 사랑보다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다. 파랑새나눔터에 모인 아이들은 남을 믿어서 상처 받아야 했던 특성이 있다. 그도 예외는 아니다.

여기가 파랑새 친구들의 공부터이자 집이다

“개인적으로 이혼이라는 어려운 과정 겪으면서 파랑새 친구들과 서로 옆에 있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배우고 느꼈어요. 때로 누군가 내 곁을 떠나고, 내가 떠나보낸 이도 있고. 그것이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넓게 생각해요. 사람이 어떤 것인가, 산다는 게 어떤 것인가 보편의 문제로 받아들이죠. 감정이 널을 뛰던 불안정한 시기는 지났어요. 제가 일방적으로 아이들에게 더 사랑을 주는 건 없어요. 흔히 하는 말대로, 서로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같이 버텨나가는 거죠.”

그에게도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천적이 서너 쌍 있다. “무매력인 종족들. 노동시장에서 팔려야하는데 상품으로서 매력을 어릴 때부터 담지하지 못한 아이들.” 눈 맞추기에 서툴다거나 재치 있게 반응하지 못하거나, 옷차림 신경 안 쓰고 코를 후비는 등등. 지금은 이 아이들을  무리하게 고치려들지 않는다. 제 아무리 애면글면 속을 끓여도 아이는 결국 자기 삶의 경로를 밟을 것이고 스스로 감당해야할 고통의 몫이 있었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자신에게로 향했다.

“결국은 제 문제에요. 그 아이를 지켜보는 저의 과제가 생기는 거죠.”

아이들의 실패가 나의 실패는 아니다

‘내 자식’이라고 해서 그에게 다르진 않다. 처음부터 두 아이들을 파랑새나눔터에서 같이 키운지라, 사실 내 아이와 남의 아이 구분도 모호하다. 먼저 말해주기 전에는 누가 그의 아이인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미치도록 귀엽고 사랑스러운 둘째(중2)는 개판, 엄마로서 의무방어만 하게 되는 과업충실형인 큰애(중3)는 좀 나은 개판”이다.

“밤에 셋이 누워 있으면 아들이 그래요. 꼭 남자 셋이 누워있는 것 같다고. 하하. 애들이 걱정이긴 해요. 싸가지도 없고 앞으로 쓸모없겠다 싶으니까. 제 과제는 걔네에게서 저를 분리해내는 거예요. 제 중심은 걔네도 있지만 저도 있어요. 저 아이들의 실패가 나의 실패는 아니다. 쟤네가 후진 거지 내가 후진 건 아니다.

애들한테도 항상 말하죠. 우리 셋 중에 제일 착한 것도 나, 제일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나, 제일 괜찮은 애도 나, 우리 셋 중에 첫째로 쳐야 될 사람은 나라고요. 만약 우리가 돈 있다, 그럼 누굴 공부시켜야 할까? 당연히 나! 애들도 수긍해요. 그것만 잘 해줘도 된다고 봐요. 엄마로서 나다운 삶을 사는 것. 그게 애들을 도와주는 거죠.”

그에게 보통 사람이 느끼는 불안이 없는 건 아니다. 우리가 고통이 얼마나 큰 학습의 장인가를 이야기하지만 고통을 아니까, 아이들이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자식의 고통을 대신 막아주려는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아이들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도, 실패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명쾌한 해답은 없고 지루한 풀이만 있는 자식 문제에서 그도 자유롭지 못하다. 다만 숙고의 과정을 통해 자신이 어떤 욕망이 있고 무얼 느끼고 관계에서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를 알아간다.

이처럼 그에게 가족은 ‘나’를 알고 ‘사람’을 배우게 하는 장이다. 파랑새아이들에게 그랬듯이 자식문제도 “저쪽이 맘대로 안 되니까 내 맘을 바꾸고 만다.” 그러다 보니 딱히 애들 땜에 눈물바람 할 일도 없다. 감당이 안 돼야 울 텐데 그런 적이 거의 없다. 그를 울게 하는 사람은 딱 두 명이다. 아무런 표정 없이 집세를 두 배로 올려달라는 ‘집주인’과 ‘이명박’

빈곤청소년 문제 “투표권 얻어와야죠”

성태숙 시설장은 올해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위원장을 맡았다. 작년에는 서울지구 부회장이었다. 축하해주기 미안한, 축하받기도 서운한 부담백배 승진이다. 이 단체는 우리사회 빈곤아동과 청소년 문제를 얘기하는 일종의 이익집단이다.

“우리는 폭력에 맞서 싸워요. 보이든 보이지 않던 폭력이 행해지고 있어요. 그런데 왜 때려? 내가 왜 맞아야 하는데? 라고 이야기하기가 힘들어요. 그들은 당연히 때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는 길들임에 익숙해져서 벗어나기 힘들고, 이게 아니잖아요, 설득하는 과정은 피로감을 주고. 정치적 힘이 있어야하는데…..어떻게 기르느냐고요? 투표권을 얻어와야죠.

저는 가난에 대해서 싸우지는 않아요. 용기가 없어 더 버리고 더 가난해지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에요. 인간들이 너무 악착같이 살아 대서 지구가 힘들잖아요. 이 시점에서 전망을 말하기조차 겁나는 게 사실이고요. 지속 가능한 발전과 전망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싶으니까요.”

길항의 여정이다. 늘 그랬다. 가난을 원하면서 가난과 싸워야 했다. 파랑새 같은 곳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가도 파랑새는 확산되면 안 되는 곳이었다. 어쨌거나 삶이란 그래도 가야할 길이었고 자신의 인연 속에 사명이 있었으니, 고뇌와 빈곤을 무릅쓰고 예까지 달려온 길이 발아래 아득하다.

“제가 지금껏 일을 해온 바탕은 제 자신의 친구가 되었던 거예요. ‘니가 그런 생각 하는 건 당연해. 그렇지만 이렇게 해보자’ 저를 다독여요. 예전엔 난 안 그래, 나라면 안 그럴 텐데, 난 다르다, 이렇게 생각했다면 지금은 다 똑같은 사람이란 걸 느끼죠. 우리가 그렇구나. 용서와 이해가 쉽게 돼요. 나이 드니까 저 자신과 화해가 되는 거 같아요.

다 똑같다는 걸 받아들이기까지가 시간이 오래 걸리죠. 그게 인간인 거 같아요. 보편이 특이한 것이다. 다 똑같지만 다름을 수용해야 하고, 그게 살아가는 과정이다. 하잘 것 없는 인생, 뭐나 되는 듯 열심히 살고 고민하고 그게 인생이다. 아, 이런 말은 수필집이나 인터뷰에 다 나오는 얘기인데, 저도 하고 있네요.(웃음)

이번 생은 이런 식의 삶 감내하겠다고 선택했으니까 불평불만 안하기로 했어요. 이제 죽어도 별로 여한이 없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숫기 없고 소박한 사람인데 너무 밀도 있는 삶을 살았어요. 저라는 사람이 감내하기에는 마음의 오르내림도 너무 컸고, 충분히 많이 경험했어요. 열심히 재밌게 잘 살았고, 감사한 게 많아요.”

희미한 미소가 번진다. 삶의 하중이 빠져나간 얼굴, 오후 네시의 햇살처럼 따스한 표정이다. 오래지 않아 가리봉동이 허물어진다는 소리가 들린다. 높은 빌딩들 뒤로 아이들이 떠나면 파랑새나눔터도 이사를 가야한다.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찾아 또 다른 누추한 골목길에 둥지를 틀 것이다. 그곳이 어디든, 가난한 아이들과 함께 살며 사랑하며 배우기를 희망하는 우리의 태쌤은 ‘죽비’를 들고 기다리고 있으리라.

– 은유

응답 3개

  1. 느림말하길

    읽으면서 읽는것만으로도 이렇게 마음이 꽈악차고 그러면서도 어느새 시원해지는 글과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느낍니다.

  2. 향산말하길

    위클리 수유너머에서 만난 가장 재미있고 반가운 글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어른들과 함께 공부하고 밥 먹으며 삶을 건강하게 바꾸려하는
    모든 이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좋은 기획과 맛있는 글 감사합니다.

  3. 쿠카라차말하길

    한마디 한마디에 삶의 무게와 그것을 헤쳐나간 힘이 실려 있는 것 같습니다.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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