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7호] 열차 길 상경기

- 김융희

열차 길 상경기.

기차는 내 생활의 방편이요 안식처.

나는 기차를 타고 전철을 타며 서울을 다닌다.
칠십 킬로가 채 안된 거리인데도 두어 시간이 더 걸린다.

이처럼 먼 길을 오가는 나의 서울 나들이에 대한
남들의 동정어린 말도 듣고 측은지심의 눈총을 맛보기도 한다.
아무렇치도 않는데 말이다. 나에게는 결코 아니올시다.

“기차는 나의 생활이요 가장 편안한 안식처이다.”
이 말은 남들에게 내가 자주 뇌까리는 말이다.

기차를 타며…
먼 산 확트인 들판을 바라보면 눈길 좋은 여행이요,
눈을 감고 등을 기대면 거실의 쇼파처럼 편한 안식처이다.
마주한 사람과 정담이라도 나누면 분위기있는 까페요,
책을 펼쳐 독서를 하면 우리집 서재같은 도서실이다.

거의 다섯 시간을 오르 내리는 나의 서울 길에
이처럼 열차는 다용도로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는데
오히려 남들에게 동정거리 라니, 천부당 한사코 그건 아니다.

더구나 한적한 통일호 기차승객은 거의가 알듯 싶은
지면의 촌로들로, 농사철이면 각종 농사정보에 이웃집
형편들도 나누면서, 삶은 풍성해지며 솔솔 재미도 있어 유익하다.


전철에서 만나는 사람들.

우리나라 3대 철도로 서울역에서 출발했던 경원선이 전철에
밀려 청량리로, 다시 의정부에 이어, 지금은 동두천에서 시작된다.
옛날엔 금강산을 지나 원산까지 가는 아름다운 기차길이 지금은
분단의 비극으로 겨우 연천의 신탄리가 끝자락 마지막역이다.

동두천에서 다시 바꿔탄 전철은 서울까지 한 시간이 더 걸린다.
전철은 나의 독서를 위해 매우 소중한 좋은 장소이다.
그런데 그건 나의 바람일 뿐, 다양한 일들로 기회를 놓치곤 한다.

오늘도 책을 펼쳐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앞자리의 목소리 큰 여자의 수선스러운 전화질이다.
유난히도 호들갑스런 목소리는 나의 귀와 눈을 제압한다.
이럴 땐 책을 덮고 휴식, 조용해 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통화가 길기도 하다. 10여분은 벌써 놓친 것 같다.

또다시 달변의 카랑 카랑한 목소리가 차내의 시선을 휘잡는다.
시중엔 3만원도 어림 없는 4만 원짜리 허리밴드가 단돈 5천원.
그의 말인즉, 승객 모두가 허리병 환자요,
오천원 짜리 허리밴드 하나면 허리병 걱정없이 완쾌란다.
달변의 말솜씨로 구매 유혹이 십상인데, 그것도 부족해 서슴없이
오천원도 없는냥 약 올리고 비꼬기도, 때론 협박도 불사한다.

차내의 상행위가 지나쳐 허리 밴드가 끝나기로 이번엔 또다른
떼우고 붙이는 가정의 필수품 본드가 천 원이라며 열변이다.
이유도 없이 내몰리며 내 시간을 다 놓치지만 어쩔 수 없다.
휴식도 충분, 제발 아니길 바라며, 또 끝내기만을 기대려야 한다.

차내에 승객들이 점점 늘어난걸 보니 시내가 가까워지고 있다.
바로 앞을 절구통 같은 젊은이가 가로 막고 우람하게 선다.
그의 손에 들린 커피잔이 출렁일 때마다 나를 덮칠것 같아 불안하다.
가끔씩 홀작거리는 커피잔이 줄지 않고 계속 나를 불안하게 한다.

그가 이번엔 갑자기 재치기를 몇 차례나 질러 덴다. 나의 바로 앞에서.
신종 인프도 걱정스럽지만 매우 불쾌하기도 하다.

종각역을 도착하기까지, 난장판 같은 소란으로 읽는 둥 마는 둥,
그동안 읽었던 책의 내용은 도무지 기억이 없다.
그러나 불평은 말자.
이것도 함께 스치고 마주치며 살아야하는 인연이요 관계라면,
어차피 감당해야하는 우리들의 세상살이가 아니겠는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남들의 전화기에선 불이 나는데 하루종일 잠만 자는 내 전화기에
은근히 화가 치밀기도 했었고,
갈라진 장판을 떼워야 하는데 찿는 본드가 집안에 없어서
불편했던 경험도 있지 않았던가.

허리 밴드도 하나쯤 구입해 두면 언젠가 유용하지 않으란 법도 없으려니
오늘 전철에서의 경험했던 불편들도 생각하기 나름이겠지….

열차와 함께 시작된 나의 서울 나들이 길에는
남산 자락에 “수유너머”가 있어 늘 행복하고,
그도중엔 항상 많은 얼설킨 인연들로 더욱 풍성하여 즐겁다.
요즘 나의 일상의 한토막이었다.
이같은 일상 생활도 있음직해 즐겁지 않겠는가!

– 김융희

응답 3개

  1. 비포선셋말하길

    어릴 때 엄마랑 같이 보던 TV문학관이 생각나네요..^^잔잔한 글 고맙습니다

  2. 쿠카라차말하길

    하하, 지하철 장사꾼들의 떠드는 소리 말씀하시다가 “남들의 전화기에선 불이 나는데 하루종일 잠만 자는 내 전화기에 은근히 화가 치밀기도 했었고, 갈라진 장판을 떼워야 하는데 찿는 본드가 집안에 없어서 불편했던 경험도 있지 않았던가.”라는 부분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선생님, 유머 짱이셔.

  3. 박혜숙말하길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시죠? 앞으로도 멋진 글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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