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8호] 봄맞이 봄나물 맞이

- 김융희

봄맞이 봄나물 맞이

늦가을인데 벌써 냉이가 무리져 쑥쑥 잘 자랐습니다.
두어 달이나 빠른 하늘의 봄, 천기를 받고 자란 냉이입니다.
성급한 놈은 벌써 꽃대를 세우고, 햇빛이 든 곳에선 붉은 색
음지에선 진초록으로 잘 자랐습니다.

찌뿌린 회색빛 하늘은 곧 비를 내릴 듯,
오늘 나는 봄의 전령인 냉이를 캐었습니다.
빛, 향, 맛의 천기냉이, 봄냉이 못잖게 모두 괜찮습니다.

감자를 캐고 빈 자리에 늦게 뿌려 자란, 솎음 나물로 맛이 제법인
싹배추가 갑작스레 한파로 꽁꽁 시들어버렸습니다.
시든 배추가 아쉬워 비닐로 덮어 두었는데… 냉이를 캐면서 보았더니,
싹배추가 새파랗게 무리져, 시들었던 속잎이 아주 싱싱하게 돋았습니다.

몇 집을 나눠 먹을만큼 넉넉히 심었던 금년 배추가
너무 늦게 심은 탓에 우리 김장도 못하게 실패했습니다.
그 왜소해 못난이로 자란 것이 쌈배추로 맛은 제법입니다.

짜잔한 싹배추는 나물로, 못난이 배추는 쌈배추.
겨울에 천기냉이는 된장국으로. 삼박자가 척척 잘 맞는것 같습니다.

냉이만 보낼려니 너무 쪼금, 치사스러워.
못난이 짜잔이를 함께 했습니다.
무농약으로 자랐기에 가끔 벌레가…. 잘 살펴 드세요.
겨울을 맞으며 섯 달에, 연천 우백장포 주인.

지난 해 섯 달이 시작되는 즈음에 있었던 일입니다.
도회의 몇 지인들께 소포장 택배를 했더랬습니다.
위 편지는 그 때 포장에 함께하여 내용을 알리는 글입니다.

수확이 끝나버린 쓸쓸한 장포를 들러 보았습니다.
텅빈 터에 다가서니 엇비슷한 새싹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냉이도 무리속에 함께 무리져 있었습니다.

바구니와 호미, 나물 캐는 도구들을 챙겨 냉이를 캤습니다.
질세라 자란 왕성한 잡초를 젖히고, 켄 냉이가 금방 가득입니다.
아직도 장포에 그대로인 못난이 배추와 짜잔이 싹배추를 더해

유난스런 혹한에 폭설의 지난 겨울은 참으로 지겨웠습니다.
다시 우수를 지내며 풀린 날씨, 그 풀린 날씨가 글쎄,
영하 15도에 영상 15도를 치솟고 곤두박질치고 요동질입니다.

봄이 오고 있습니다. 봄이면 봄나물, 장포에 나가 보았습니다.
겨우내내 눈 속에 덮여지내던 땅이 치솟는 기온에 풀렸습니다.
화창한 기온에 쌓인 눈은 사라졌으나, 겨우내내 너무 혹독했던 한파로
아직도 주잕은 나물들이 안쓰려워 보기가 애처럽고 민망합니다.
봄나물 향은 봄내음입니다. 짙은 향 봄나물이 그립습니다.

“나물 채소 사전”을 보았습니다.
지금에야 알았습니다. 이른 봄 솟는 싹은 모두가 나물입니다.
지겹게 나를 괴롭혔던 잡초들의 새싹은, 잡초가 아닌
모두가 소중한 봄나물들인 것입니다.

생명력이 가장 강한 새싹은 전혀 무독, 생명의 에센스로 기의 충만.
그래서 봄나물은 겨울의 잃었던 기를 채워주고, 입맛을 되돌려 준답니다.

꽃마리, 꽃바지, 꽃다지, 망초, 개망초, 익모초.
갈퀴덩쿨, 쑥부쟁이, 뽀리쟁이, 지침개, 벼룩이자리.
씀바귀, 고들뻬기, 광대나물, 큰개불알풀, 쑥…..

셀 수 없이 많은 새싹들 먹거리,
어서 어서 빨리 쑤욱 쑥 자라기를 바라는 봄나물인데
어린 새싹들에게 지난 겨울은 너무 잔인했었습니다.
그 척박한 불모지에서 아스팔트길도 거침없이 뚫고 자라는
힘찬 새싹들이, 맥을 못추고 주잕은 모습 너무 애처럽습니다.

생명의 기를 방해할 건 그 무엇도 없습니다.
봄의 새싹들, 충만의 생명력은 절대입니다.
자연의 순리를 가로 막는것 어림도 없습니다.
다만 새 싹은 너그럽게 지켜보며 기다림뿐입니다.

며칠을 포근한 날씨에 봄인가 했더니, 간밤 내린 비는
지금 진눈깨비로 변해 세찬 북풍과 함께 몰아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장포의 새싹들은 의젓하게 자신을 정돈하며,
조용히 새 생명의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봄맞이로 설레인 계절, 잡초들 모두가 봄나물임을
아는만큼 풍성해질 봄맞이 식탁이 기대됩니다.

– 김융희

응답 3개

  1. 안티고네말하길

    오늘 오후도 눈이 온다는데… 이 글을 읽고 있자니, 그래도 봄내음이 물씬 납니다. 따뜻한 햇살을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 고추장말하길

    ‘못난이’ ‘짜잔이’ 말들이 너무 정겹고 재밌어요. 김융희 선생님… 벌써 코에 봄나물 냄새가 … 오늘부터 또 반짝 꽃샘추위라던데 위클리 수유너머 기온은 급상승입니다^^

  3. lizom말하길

    누군가 ‘봄밭에서 냉이를 캐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할 수 없다’고까지 했습니다. 시골 살 때 따스한 봄밭에서 무릅팍으로 기어다니며 약간의 저항감이 느껴지는 냉이를 뽑을 때, 드문 드문 나 있는 냉이를 마치 보물찾기 하듯 찾아다닌 기억이 납니다. 봄날의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글 맛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