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이데이

[8호] 아빠, 달려! 이랴 낄낄

- 편집자

어느 정신분석학자의 육아일기: 매이데이

아빠, 달려! 이랴 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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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안아 줘” “이제 그만 걸어가자. 아빠 힘들어” “아빠~ 안아 줘~”
엄마에게 젖가슴이 있다면 아빠에겐 팔다리가 있다. 매이에게 나는 아직 기중기이고, 바퀴이고, 놀이기구다.

정신분석이 흥미로운 건 신체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준다는 점이다. 정신분석은 사지와 오장육부가 기능적으로 통합된 유기체와는 전혀 다른 신체를 제시한다. 프로이트는 입, 항문, 성기, 눈, 귀, 피부점막 등 신체의 부분 기관들이 (성적)감각과 (성적)용법에 따라 타인의 신체 기관이나 사물들과 결합되고 분해되는 기계적 신체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6개월 이전까지 유아는 자신의 신체를 통합된 유기체로 여기지 않고 분해 가능한 기관들의 느슨한 복합체로 느낀다. 타인의 신체도 자기 신체의 부분기관들이 관계 맺는 방식에 따라 그 이미지와 강도가 각기 다른 기관들의 복합체로 느낀다. 초기 유아에게 ‘엄마’의 신체적 형상은 수많은 사물과 기쁨의 액체로 가득 차 있는 젖가슴이다. 입술을 오물거리며 잠자는 매이는 꿈속에서 뭘 보고 있을까? 넘실거리는 젖의 바다, 천상에서 내려오는 커다란 반구,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젖꼭지가 아닐까?


뭐야??

그 꿈속에서 아빠인 나는 어떤 기관으로 표상되고 있을까? 자기 몸을 공중에 뜨게 하고 이리 저리 옮기는 기중기 같은 게 아닐까? 거기에 자신의 몸과 맞닿은 이불과 요람의 난간, 멀리서 들려오는 몽이와 하늬의 소리, 파편화된 사물들이 마치 브리콜라쥬처럼 꿈의 테이블에 펼쳐졌다 흩어졌다 할 것이다. 매이 곁에서 잠꼬대까지 하며 잠자는 몽이는 또 어떤 꿈을 꿀까?

돌 지날 무렵, 아빠가 어떤 존재였는지는 매이의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엄마’, ‘아빠’ 비슷한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 그 말은 아내와 나를 지칭하는 명사가 아니라 자신의 신체를 어떻게 해달라는 명령어였다. “엄마마!” 라고 할 때 그것은 “이리로 오라. 저 물건을 가져오라. 재워 달라” 는 말로 번역될 수 있는 명령어였다. 반면에 “아빠빠!”는 “저리로 가자, 이 물건을 저리로 치워라. 먹을 걸 달라” 따위로 번역될 수 있다. 상황마다 다르지만 분명 일관성이 있다. “엄마마!” 라는 명령어는 다른 신체(물체)를 자기 신체와 결합시키려는 욕망과 그런 결합을 통해 신체의 활동성을 정지시키고자 하는(수면) 욕망을 실어 나르고 “아빠빠”는 다른 신체(물체)를 분리시키거나 그런 분리를 통해 자기 신체의 활동성(이동과 식사)을 증가시키고자 하는 욕망을 전달한다. 원초적 언어는 명사가 아니라 명령어라는 들뢰즈의 말이 맞는 듯하다.


ㅡㅡ;;;??

유난히 눈이 많이 왔던 지난겨울 어느 날 매이를 안고 가다가 미끄러져 제 키보다 높은 곳에서 땅바닥으로 엉덩방아를 찧은 후부터 매이는 내 품에 안겨 이동할 때마다 “아빠, 조심해야지. 조심조심해서 걸어.” 한다. 명사도 알고 문장도 거의 완벽하게 구사하는 지금, 매이의 말 속에서 새롭게 표현된 아빠는 청소기와 요리사이다. 일주일 넘게 방치한 화장실에서 모기 유충을 발견한 아내가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자 매이가 왜 그러느냐 묻더란다. 아내가 “응, 끔찍한 게 살고 있어서” 라고 하자 매이는 “엄마, 걱정 하지 마. 매이가 아빠한테 전화해서 청소하라고 할게.” 라며 손으로 전화 거는 시늉을 하며 “아빠, 빨리 청소해줘~” 하더란다. 그저께는 주방에서 저녁 식사 준비를 하면서 맨날 뭘 해먹을까 궁리하는 것도 힘들다고 투덜댔더니,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는지, “아빠, 아빠는 멋진 요리사잖아” 한다. 혹시 요리는 엄마가 하는 걸로 배웠는데 우리 집에서는 아빠가 요리하는 것만 봐서 혼란스러워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완전 ‘기우’였다.

– 매이 아빠

응답 6개

  1. 연초록말하길

    수유 위클리에 들어와서 다 읽은 글이 우선은 매이데이입니다.

    다른 글들은 하나씩 찬찬히 읽는 중인데,이 코너는 그냥 지나치기 어렵게 만드네요.

    이상하게 프로이트와의 인연이 없었는데 이 글을 읽다보니 어라,관심이 생기기도 하고요.

    세상의 모든 부모가 아이와 맺는 관계가 다 조금씩 다른데 부모는 ,자식은 이래야 한다는

    기준으로 마음고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나는 어떤 부모인가 고민하는 사람들과 함께 읽으면 더 좋을 글이라 널리 소개하고 싶어지는

    그런 글이기도 했습니다.

  2. 여하말하길

    아빠에겐 팔다리가 있다. ㅋㅋㅋ 이 글을 보면서 세상에 참 다양한 아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난 참 이상한 아빠였다는 생각에… -_-;;

  3. sros23말하길

    ㅋㅋㅋㅋ 우는 매이를 어떻게 찍었을까? ㅎㅎㅎㅎ

  4. 매이엄마말하길

    어린 매이 안고 있는 현식씨가 꼭 아빠 같군요. ㅎㅎ 현식씨도 육아일기 한번 써 보세요.

  5. 홍순애말하길

    잘지내요 정수 선배.
    정신분석가의 육아일기 참 좋네요
    재미있어요. 매이가 벌써 이렇게 컷네요
    딸한테 멋진 요리사는 말까지 듣다니, 넘 좋겠다.
    우리 아덜놈들은 엄마가 한것보다 할머니가 해준 감자탕이 맛있다고 하던데
    그래서 할머니한테 배우라고 명령하던데 ㅋㅋ
    재미 있는 글 또 기다릴께요

    • 쿠카라차말하길

      아, 순애씨, 잘 지내요? 학교는 잘 나가고? 남산에서 세미나 하고 있나? ‘멋진 요리사’란 말은 틀림없이 누군가의 음모임에 틀림없어요. 아빠한테 가서 그렇게 말하라고 누가 시킨 거 가터. 암튼, 재미있게 보고 있다니 다행이네요. 다른 글도 재미있게 읽고, 주위에 많이 많이 알려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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