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8호] 루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록

- 기픈옹달(수유너머 R)

루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록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어 팔리고 있는 중국현대문학 작품 가운데 90% 이상이 루쉰(魯迅)의 작품이다(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수치가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말은 “루쉰”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면 웬만큼 팔린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럴까, 루쉰의 대표작인 <아큐정전>을 타이틀로 달고 나온 책들을 서점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아큐정전>이나 <광인일기>를 내걸고 기타 루쉰의 단편 소설 작품 몇 편을 덧붙여서 만든 책이다. 루쉰 소설을 번역한 것이 태반이어서, “투창과 비수”라고 형용된 루쉰 문학의 정수, 잡문(雜文)을 번역하거나 해설해놓은 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분명 어딘가에 있을 텐데, 어디 있는지 도통 찾을 수가 없다.ㅜㅠ 자, 그래서 준비했다. 번역되어 나온 루쉰 관련 서적 일람.

루쉰의 소설작품을 보고 싶으면 “아큐정전” 타이틀이 붙은 책을 그냥 고르면 된다. 초판이 최근인 책이라면 번역 상태가 책을 던지고 싶을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루쉰이라는 작가의 매력이다. 그의 작품을 하나 둘씩 읽다보면, 그의 전작(全作)을 두루 읽고 싶어진다. 그냥 얇은 문고본으로 샀다가 비슷한 구성형식의 작품선집을 또 사게 된다. 루쉰 작품에 처음 도전하시는 분이라면, 루쉰의 대표작만이 아니라 그의 모든 소설 작품이 실린 <루쉰 소설전집>(김시준 역, 서울대학교출판부)이나 <노신문집>(1권과 2권, 竹內好 편, 한무희 역, 일월서각)을 사면, 쓸데없이 돈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 후자의 번역이 A급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 책을 쥐게 되면 왠지 모를 포스가 느껴진다. 일본 편역인 다케우치 요시미의 애정이 묻어나기 때문일까.

만약 깔끔하고 편안한 편집 상태의 책을 보고 잡다면, 김시준 선생님이 번역하신 <루쉰 소설전집>을 권하고 싶다. 기존의 다른 문고본들이 루쉰의 대표작만을 다루고 있는 것에 비해서 루쉰의 소설 전체를 볼 수 있고, 여기에 주머니 사정을 생각한다면 <루쉰 소설전집>을 추천하는 바이다. 양장본의 두꺼운 책을 들고 다니기 싫다면, 유명한 소설가라는 평가가 무색할 만치 달랑 3권의 소설책만을 냈던 루쉰의 소설책, <외침(吶喊)>, <방황(彷徨)>, <고사신편(故事新編)>을 제목으로 내건 단행본들을 보면 된다.

만약 루쉰의 소설뿐만 아니라 그의 잡문(雜文)까지도 읽고 싶다면, <노신문집> 3권-4권을 보면 된다(아예 <노신문집>을 세트로 구매해서 두고두고 일독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특히 <노신문집> 3권부터 6권까지는 1920년대, 1930년대라는 격동의 시대와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한 지식인이 글쓰기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몸부림’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선집자의 선구안을 가늠하면서 시대여행을 떠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소설가 루쉰에 한정되지 않는 사상가 루쉰과 혁명가 루쉰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 외에 1990년대 루쉰 열풍을 주도한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이욱연 편역, 예문)와 <청년들아, 나를 딛고 오르거라>(유세종 편역, 창)도 작품 선택이나 번역 및 편집이 깔끔하여, 루쉰 잡문이 갖고 있는 힘과 열정, 다양한 문체와 쉽게 접할 수 있다. 이외 번역자들의 오랜 공역이 돋보이는 책으로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루쉰읽기모임 역, 케이시아카데미)를 들 수 있다. 중국에 마르크스주의 문예이론을 전파한 취츄바이(瞿秋白)가 1933년 냈던 <루쉰잡감선집(魯迅雜感選集)>을 저본으로 하고 있는 책이다. 루쉰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좌익 지식인의 시선에 루쉰의 잡문은 어떻게 비췄을까. 1918년에서 1932년까지 루쉰이 썼던 잡문 중 핵심적인 글 73편을 고른 취츄바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중국혁명 과정에서 루쉰이 차지했던 위상의 단편을 읽어낼 수 있는 하나의 길잡이는 아닐까.

루쉰은 문학가이기도 했지만 대학교에서 중국소설사를 가르친 선생이기도 했다. 루쉰은 금석문이나 고소설, 한문학사 등 전통 문사철(文史哲)에 대한 열정과 깊이가 상당했다고 한다. 1881년생인 그는 이른바 서구의 “문학literature”과 중국의 “원쉬에(文學)” 사이에서 방황했다고 한다. 문학에 대해 루쉰은 복안(複眼)을 갖고 있었다. 즉 근대문학을 향하고 있었던 한편으로 그의 시선은 항상 중국 전통 문학으로의 되돌아감이 있었던 것이다. 1930년대 중반, 루쉰은 상하이 조계 옆의 3층집 서재 책상에 앉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신문들을 읽었다. 신문에서 읽은 정치, 경제, 사회 기사를 짜깁기 하고, 그것에 자신의 의견을 달아 다시 사회로 되돌리는 작업을 통해서 1930년대 시공간을 고고학적으로 남겼다. 현재 자신이 살아가는 시공간과의 대화가 잡문을 통해 나타났다면, 과거와의 대화는 바로 고소설이나 금석문을 베끼고 그것을 고증하는 작업으로 나타났다. 전근대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 중국적인 것과 전통적인 것 사이의 미세한 결을 솔질했던 작업으로 <중국소설사략>(조관희 역, 살림출판사)과 <한문학사강요: 고적서발집>(홍석표 역, 선학사)이 있다.

마오저동(毛澤東)은 루쉰이 죽었을 때, 루쉰을 일러 혁명가이자 사상가이자 문학가라고 평가(“중국문화혁명의 주장主將”)했다. 그 이후 대륙에서 나온 루쉰 관련 저작들은 혁명가와 사상가로서의 루쉰의 면모를 부각하는데 분주했다(이에 대한 자료는 아주 많다. 단 너무 뻔해서 우리나라 말로 번역된 자료는 거의 없다). 그러다가 19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 물결이 거세지면서, 중국에서는 루쉰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해졌다. 루쉰과 관계해서 보자면 두 갈래로 말할 수 있는데, 하나는 루쉰 작품이 갖고 있는 모호성에 대한 해석(소설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루쉰에 대한 재평가이다.

1949년 이후, 루쉰이 누려왔던 권위와 ‘영웅 루쉰’의 상에서 벗어나 ‘인간’ 루쉰으로 되돌리자는 연구 경향이 두드러졌던 것이다. <루쉰전>(왕스징 저, 유세종 역, 다섯수레), <인간 루쉰>(린시엔즈 저, 김진공 역, 사회평론) 등이 있다. 중국에서의 루쉰 연구가 어떤 식으로 시대와 부침을 같이 했는지를 보고자 한다면, <중국의 노신연구>(왕부인 저, 김현정 역, 세종출판사)를 참고하길 바란다. 이 외에도 인간 루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의 아들인 저우하이잉(周海嬰)이 쓴 <나의 아버지 루쉰: 루쉰의 아들로 살아온 격변의 중국>(서광덕, 박자영 공역, 강)과 <루쉰의 편지: 루쉰과 쉬광핑이 나눈 43편의 편지와 일기>(임지영 역, 이룸)를 참고하라. 아버지와 남편(愛人)으로서의 루쉰의 모습, 남들과 다름없이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했던 한 인간 루쉰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루쉰평전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다케우치 요시미의 <루쉰>(서광덕 역, 문학과지성사)이다. 1943년, 다케우치가 태평양전쟁에 일본군 병사로 징집당해 출병하기 바로 전날에 유서를 쓰는 심정으로 탈고했다는 책이다. 여기서 그는 “문학가로서의 루쉰”을 집중적으로 부각한다. 다케우치가 말하는 “문학가”는 계몽가, 혁명가, 사상가 등등 다양한 루쉰의 모습을 가능하게 하는 “이른바 근원의 그”였다(“길은 무한하다. 그는 무한한 길을 걸어간 한 사람의 과객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과객은 언젠가는 무한을 아주 작게 그의 일신상에 점으로 만들어, 그렇게 하여 그 자신을 무한으로 만든다. 그는 부단히 자기 생성의 밑바닥에서 솟아오르지만, 솟아오른 그는 항상 그 자신이다).”

다케우치 요시미가 그린 루쉰은 전공 연구자들 사이에서 “다케우치-루쉰(竹內魯迅)”이라고 불릴 정도로, 글을 끌고 가는 사가(史家)로서의 시각이 분명한 책이다. 그의 뒤를 이어 나온 “마루야마-루쉰(마루야마 노보루丸山昇는 <노신평전>에서 혁명가 루쉰을 분석하고 있다)”이니 “이토-루쉰(이토 도라마루伊藤虎丸은 종말론의 입장에서 루쉰을 해석)” 등등으로 불릴 정도로 일본에서의 루쉰 연구는 활발할 뿐 아니라 성취도 뛰어나다. 일본의 현대사와 중국의 현대사를 서로 교차시키면서 루쉰을 통해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자 했던 일본 지식인들의 분투를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1990년대 루쉰과 관련해서 외국에서 나온 참신하고 우수한 논문을 모아 만든 <루쉰>(전형준 편, 문학과지성사)이 있다.

루쉰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대륙에서 진행되는 동안, 한국에서는 중국 고전문학이 대세였던 아카데미에서 중국현대문학을 연구하는 젊은 학자들이 등장했다. 일본의 연구자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중국현대문학 연구자들은 중국현대문학의 핵심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정치와 문학, 혁명과 지식인 등의 문제를 자신의 화두로 삼아서 현실에 개입하고자 했다. 불모지에 다름없었던 중국현대문학을 개척했던 1세대 연구자들이 낸 루쉰 관련 전문서적으로 <루쉰식 혁명과 근대중국: 고독한 반항자, 영원한 혁명가 루쉰>(유세종 저, 한신대학교출판부) 등을 들 수 있다. 영원한 혁명을 꿈꿨던 루쉰, 저항과 싸움을 쉬지 않고 전개했던 루쉰, 절망조차도 반항의 정신으로 싸웠던 루쉰. 부정과 저항 정신이야말로 모든 것을 극복하게 만드는 힘이었다.

이 외 단행본으로 출판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한 박사학위 논문들이 수두룩 있다. 길을 만들어 준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중국현대문학학회의 루쉰 전공자들의 소논문을 모은 <노신의 문학과 사상>(백산서당)이 있고, 루쉰의 문학 유적지를 답사하여 쓴 소논문집으로 <민족혼으로 살다: 루쉰 그 위대한 발자취를 찾아>(전인초 등저, 학고재)가 있다.

루쉰과 관련된 재미난 주제의 책들이 있다. <루쉰, 욕을 하다>(팡시앙뚱 저, 장성철 역, 시니북스)는 1920, 30년대 루쉰과 설전을 벌였던 15명의 쟁쟁한 지식인들을 망라해서 소개해주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루쉰이 드러내놓고 ‘욕’을 퍼부은 사람만도 100명이 넘을 정도라고 하는데, 여기서 “루쉰이 다른 무엇이기에 앞서 한 명의 전사”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루쉰이 욕했던 지식인이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작가였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루쉰 역시 중국 최고의 학자이고 작가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당시 중국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두고 중국 지식계가 골머리를 싸매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씁쓸하게도 루쉰이 “욕했다”는 이유로, 혹은 루쉰의 논적이었다는 이유로, 1949년 이후 정치적인 매장당한 지식인이 많다는 점은 루쉰이 “욕한” 이들의 리스트가 바로 살생부였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1930년대 상하이의 한 극장에서 상영됐다는 <타잔> 영화에 열광하는 등, 루쉰은 새로운 시각 매체에 여느 젊은이 못지 않은 호기심과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특히 그는 혁명 선전의 새로운 매체로 목판화에 주목했는데, 당시 활동하고 있던 캐테 콜비츠의 작품에 대해서 짧은 글을 남기기도 했다(루쉰의 <캐테 콜비츠의 판화>와 <심야기>를 보라). 이와 관련된 책으로 <캐테 콜비츠와 노신>(정하은, 열화당)을 보라.

– 최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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