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 새긴 이야기

[8호] ‘문이졸진(文以拙進)’, 졸박(拙朴)한 아름다움을 위하여

- 향산 고윤숙(香山 高允淑) (수유너머 길 / 청구금석문연구소 연구원)

‘문이졸진(文以拙進)’, 졸박(拙朴)한 아름다움을 위하여.

<문이졸진(文以拙進)> 香山刻

文以拙進 道以拙成 一拙字 有無限意味 如桃源犬吠 桑間鷄鳴 何等淳龐 至於寒潭之月
古木之鴉 工巧中 便覺有衰颯氣象矣
문이졸진 도이졸성 일졸자 유무한의미 여도원견폐 상간계명 하등순롱 지어한담지월
고목지아 공교중 편각유쇠삽기상의 – <채근담(菜根譚)> 후집(後集) 93.

글은 졸함으로써 나아가며 도는 졸함으로써 이루어지나니, 하나의 ‘졸(拙)’자에 무한한 의미가 있다. 도원에서 개가 짖고, 상전에서 닭이 운다 함은 그 얼마나 순박한가! 차가운 못에 달이 비치고, 고목에서 까마귀 운다 함은 공교롭기는 하나 그 가운데 문득 쓸쓸한 기상이 있음을 느낀다.

몇 년 전 화서각의 첫 수업발표회를 준비하던 때의 일이다. 16자로 이루어진 <구성궁예천명(九成宮醴泉銘)>의 구양순체를 따라 문장을 쓰는데, 한 글자라도 어긋남이 있을 경우, 그것은 바로 폐기처분되어야 했다. 서예나 동양화는 본래 한 화면 안에서의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수 백 혹은 수 천 자의 글씨를 쓰는 작품에서 중간에 한 자라도 빼먹거나 틀린 경우, 편집은 불가능하고 처음부터 다시 써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 하나를 온전히 완성하기 위해서는 높은 강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글씨를 제대로 잘 쓰는 것도 수업발표회의 목표하는 바이겠지만, 그보다도 작품 하나를 온전히 한 호흡으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수준만큼 한 순간에 마무리할 수 있는 훈련을 통해 자신의 일상을 스스로 조율하고 자신을 다스리는데도 그 목적하는 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본래 ‘졸(拙)’자는 손으로부터 나오는 서툴음을 의미한다. 지금처럼 사진으로 찍고 스캔을 받아서 컴퓨터에서 포토샵 등의 소프트웨어로 편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경로의 창작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컴퓨터에서 편집 소프트웨어로 변형시키는 것이 최근 사진교육의 매우 기초적인 교육과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 없는 구름도 하늘에 띄울 수 있고, 현장에서 똑같은 환경과 카메라의 기계 값을 놓고 찍었던 사진들도 얼마든지 천차만별의 가공작업을 거쳐서 전혀 다른 풍경 사진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환경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경우, 작품 발표를 위해서 잘 써진 글자들만 오려 붙여서 제일 나은 작품으로 편집하는 것이 서예와 전각의 분야에서는 왜 불가능한 것인지에 대하여 낯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특히 서예나 전각의 작품 제작에서는 모든 것이 손을 통하여 표현되는바 결과 그대로 보일뿐인 것이다. 그 순간의 심신의 상태, 주변의 환경을 조율하는 힘의 정도 등이 바로 바로 드러나 버리는 것이다. 주변의 습도, 종이의 상태, 먹의 질, 벼루의 상태, 붓의 질과 그 모든 재료들을 다루는 사람의 손이 가지고 있는 능력 등이 결합해서 매우 다양한 차이들을 낳는 것이다. 이 차이들을 제거시키면서 오로지 교함만을 시도한다면, 본래 글씨와 전각, 그림이 가져야 할 골기(骨氣)를 잃고 화려하나 덕지덕지 덧바른 듯 외관만 번듯하게 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 현장에서의 ‘사건’이 가지고 있는 특이성과 차이들을 소거시키며 없던 구름을 띄우고, 안개 낀 하늘을 걷어 내는 컴퓨터 작업으로 모든 것들을 편집해 버린다면, 본래 그 대상이 그 순간 드러낼 수 있었던 고유한 아름다움을 잃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위 ‘손맛’이라 일컫기도 하는 졸박한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하여, 우리의 취향을 결정짓고 있는 자본주의적 대량 상품생산의 물신성을 꿰뚫고 해체할 수 있는 안목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篆刻 돋보기

고시대(古時代)에는 한 면에 성명 또는 성명과 자를 각한 일면인(一面印) 외에 다면인(多面印)이 있었다. 다면인은 한 면에는 성명을 각하고 다른 한 면에 성과 자를 각하거나 한 면에 성을 각하고 다른 한 면에 이름을 각한 것이다. 또는 한 면에 성명을 각하고 다른 한 면에 ‘臣◯’이라든가 ‘妾◯’라고 각한 것이 있다. ‘妾(첩)’은 예전에 여자가 자기 몸을 낮추어 이르던 말이다. 남자가 ‘臣(신)’이라고 하거나 여자가 ‘妾’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겸손의 표현이었다고 한다. 특히 ‘臣’은 군주에 대응하는 말로서 사용하고 있는 경우는 아니라는 것이다.

<신롱궁(臣弄弓)> / <첩인제(妾因諸)>

이 외에도 한 면에 성명을 각하고 다른 한 면에는 길어(吉語)를 각한 것도 있다. 또 일면에는 성명을 각하고 일면에는 조(鳥), 수(獸), 충(虫), 어(魚)의 모양 또는 그림이라고도 문자라고도 분명하게 말할 수 없는 도흔(刀痕-칼의 흔적)것을 각하고 문자를 각하지 않은 것도 있다. 이 경우는 인을 찍어서 거기서 문장이 끝나는 것을 표시한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또 두 면에 걸쳐 길어를 각하는 것이 있다. 두 면에 조, 수, 충, 어의 형을 각하는 것이 있고 도흔을 각한 경우도 있다. 다른 경우에는 한 면에 길어를 각하고 다른 한 면에는 조, 수, 충, 어의 모양 또는 도흔을 각하는 것이 있다.

<도흔(刀痕)> / <조형(鳥形)> / <충형(蟲形)> / <수형(獸形)> / <수형(獸形)>

이 외에 드물지만 하나의 인에 다섯 면 또는 여섯 면 모두 문자를 각하는 것이 있다. 오면인은 진대의 사인에서 나타나는데 거의가 ‘길상문자(吉祥文字)’를 각한 것이다. 육면인은 위, 진, 육조시대에 유행한 것으로 성명, 씨적(氏籍), 지신(持信), 봉기(封記) 등이 모두 조각되어 있다. 한 대의 사인에도 대부분 성명의 위 또는 아래에 길상문자를 붙여서 ‘대리(大利)◯◯’ 또는 ‘◯◯대리’ 등과 같이 조각되어 있다.

<천토유창지(千土有昌之)>(십자형 다섯 개 인) / <대리손공자(大利孫公子)>

– 향산 고윤숙(香山 高允淑) (수유너머 길 / 청구금석문연구소 연구원)

응답 1개

  1. 사비말하길

    전각에는 글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동물 모양(?) 전각이 몹시 갖고 싶어집니다 =ㅂ=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