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 새긴 이야기

[9호] ‘도이졸성(道以拙成)’, 졸박(拙薄)한 삶을 위하여

- 향산 고윤숙(香山 高允淑) (수유너머 길 / 청구금석문연구소 연구원)

‘도이졸성(道以拙成)’, 졸박(拙薄)한 삶을 위하여.

<도이졸성(道以拙成)> 香山刻

文以拙進 道以拙成 一拙字 有無限意味 如桃源犬吠 桑間鷄鳴 何等淳龐 至於寒潭之月
古木之鴉 工巧中 便覺有衰颯氣象矣
문이졸진 도이졸성 일졸자 유무한의미 여도원견폐 상간계명 하등순롱 지어한담지월
고목지아 공교중 편각유쇠삽기상의 – <채근담(菜根譚)> 후집(後集) 93.

글은 졸함으로써 나아가며 도는 졸함으로써 이루어지나니, 하나의 ‘졸(拙)’자에 무한한 의미가 있다. 도원에서 개가 짖고, 상전에서 닭이 운다 함은 그 얼마나 순박한가! 차가운 못에 달이 비치고, 고목에서 까마귀 운다 함은 공교롭기는 하나 그 가운데 문득 쓸쓸한 기상이 있음을 느낀다.

글의 졸박함이란 무엇일까? 본디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 혹은 그 대상과 사건에서 이야기해야 하는 바를 가장 적절하고 절실하게 표현하는 것이지 않을까. 말하자면 글에 있어서의 골기(骨氣)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교함에만 머문다면, 뼈대를 이루고 그것을 살아 생동하게 하는 요소들이 지나쳐서, 그 본래의 졸박함 대신 화려한 미사여구로 살만 찌는 것이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고 했다. 교함은 졸함보다 못한 것이다. 글을 쓰는 것, 예술작품을 생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삶에 있어서도 그 언행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그가 새롭게 세우고자 하는 삶의 원칙들, 그 척도일 것이다. 자신의 삶을 일관되게 통하여 흐르게 하는 척도는 그가 쓰는 글이나 글씨 등에서도 또한 자연스럽게 베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달리 글과 삶의 불일치 또한 그 졸박함에 못 미치는 것이다. 글은 가장 기본적인 것들과 그 굳건함을 표현하고자 했으나 실제로 그의 삶은 그러한 원칙들과는 하등 상관없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그 어긋남으로 인하여 더욱 글을 치장하게 되고 글의 교함에 치중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과 삶에서의 그 중심을 세우는 일은, 신체의 뼈대를 바로 세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 뼈대가 움직이고 달리고 자유롭게 춤출 수 있도록 피를 돌게 하고 근육을 형성하는 것이다. 만약 이 뼈대를 이루는 부분을 미처 이루지 못한 채 근육을 만들고 화려한 옷치장을 한다면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주저앉는 꼴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한 순간은 이 화려함과 기교로 안목이 부족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곧 그 형체와 더불어 미처 세우지 못한 글의 중심, 삶의 중심의 부재로 인하여 그 교함마저 사라지고 말 것이다.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칼로 새기는 모든 행위는,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듯이 그것이 세우고자 하는 바의 뼈대, 즉 골기를 먼저 튼튼히 세워, 마치 서툴고 졸렬해 보이기까지 할 정도의 맑고 밝은 단순함을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모든 교함을 넘어서는 졸박함의 아름다움이 예술에서도,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은은한 향기처럼 흐를 수 있을 것이다.

篆刻 돋보기

고시대의 초형인(肖形印)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순수(純粹)한 도형상형이고, 또 하나는 도형중에 문자도 각하는 것이다. 순수한 도형상형으로는 용(龍), 봉(鳳), 호(虎), 시(兕-외뿔소), 견(犬), 마(馬)로부터 인물, 물고기, 새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것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느긋하고 침착하며 생생한 것으로 옛날의 소박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사실 이러한 것들이 만들어진 시대를 결정할 수는 없으나 하(夏), 은(殷), 주(周) 시대의 고물(古物)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형상인은 대부분이 백문으로 도형의 패인 곳에는 항상 작은 가 있는바 봉니에 찍을 때에 편리하도록 한 것일 것이다.

문자가 들어 있는 상형인은 한인(漢印)에 많다. 속에 성명을 각하고 주위에 용과 호랑이나 사령(四靈-네 가지의 신령이 있는 짐승 麟(기린), 鳳(봉황), 龜(거북이), 龍(용)) 등을 각하고 있다. 그래서 후세인들은 이것을 사령인이라고 한다. 상형과 도안을 각하여서 본래 각하여야할 문자에 대용하고 있는 것은 한인 중에서 다른 종류에 속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왼쪽부터 <왕(王)> / <왕(王)> / <수덕광인(隨德光印)> / <질손천만(窒孫千萬)> / <소공(少公)> / <서함사서인(徐咸釲徐仁)>

– 향산 고윤숙(香山 高允淑) (수유너머 길 / 청구금석문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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