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이데이

[9호] 매이의 선물

- 편집자

어느 정신분석학자의 육아일기: 매이데이

매이의 선물

코딱지 건내는 매이

요즘, 매이는 자기 몸의 생산물을 과시하는 데 열심이다. 콧물이 나오면 꼭 나를 불러 “콧물!” 하며 입으로 들어가기 일보직전의 콧물을 가리킨다. 이건 약과다. 시시종종 콧구멍을 후벼 파 딱딱한 코딱지나 말랑말랑한 코덩어리를 꺼내 들이민다. 그러면서 “엄마, 이거 봐. 엄마를 위해 준비했어.” 한다. 받기만 하라는 게 아니라, 먹으란다. 얼굴을 찌푸리며 사양해도 극구 권한다. 안 먹겠다고 하면, “매이가 먹는다,  냠냠, 얼마나 맛있는데~” 라며 약 올려 가며 먹는다.  자기 몸이 뭔가를 생산해서 남에게 줄 수 있다는 게 즐거운가 보다.

하긴, 회고해 보면 코딱지를 파내서 튕기거나 동글동글하게 말거나 책상 다리, 혹은 밥상 밑에 바르는 데서 묘한 쾌감을 누렸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나는 은빛이며 정확하다 / 나는 선입견이 없다 / 나는 보는 것은 모두 즉각 삼켜버린다 / 있는 그대로, 사랑이나 미움으로 채색됨이 없이 / 나는 잔인하지 않다 / 다만 진실할 뿐….”(<거울>)이란 멋진 시를 쓴 실비아 플라스라는 여성도 대학교 때까지 코 파기의 쾌락을 즐겼다고 한다. “거기에는 무수한 감각적 변주가 있다. 세심하게 다듬어진 새끼손톱은 콧구멍 속의 코딱지와 코덩어리를 긁어내어 손가락 사이에 넣고 으깨어 반들반들한 마루바닥에 튕겨 낼 수 있다. 혹은 좀 더 묵직하고 견고한 집개 손가락으로 깊숙이 있는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연록색의 자그마한 코덩어리를 후벼 내어 젤리처럼 둥글게 말아 책상이나 의자 밑에 얇게 펴 바를 수 있는데….얼마나 많은 책상과 의자들이 그렇게 은밀히 더럽혀졌던가?….콧구멍을 너무 거칠게 긁은 나머지 손가락 끝에 마른 갈색 코딱지나 선홍색 코덩어리가 얹혀 나오기도 했다. 맙소사! 그건 얼마나 놀라운 성적 만족인지” 라고 코 파기의 감상문을 쓰기도 했다. 선입견이 없는 것, 주어진 틀을 파괴하는 것, 가능성의 한계를 넘는 것, 그것은 분명 진실로써 잔혹한 것이다. 그녀는 그 형식파괴의 잔혹미에서 성적 만족을 향유했다. 나는 매이의 잔혹한 쾌락을 방해하기 싫어 먹는 시늉을 하며 몰래 버렸다.

신체 생산물 중 최상품은 단연 똥이다. 어른과 같은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매이의 똥은 어른보다 굵고 견고하고 아름다워졌다. 프로이트 말마따나 아이의 똥은 부모에게 선물이다. 하지만 어른 똥과 닮을수록 우리는 갓난아기 때 마냥 이쁘다고 할 수만 없었다. 변기에 앉는 훈련을 했고, 어린이 집에서 배운 대로 변기에 앉아 “아빠는 저리 가 있어” 하고는, 다 이루면 아빠를 불러, 보라고 했다. 물 내리고, “똥아, 안녕” 인사하고, 의기양양하게 뛰어다녔다.

프로이트는 배변훈련을 너무 엄하게 시키거나 아이의 요구를 너무 안 들어주면 항문기의 아이는 ‘선물’을 안 주고 몸 안에 축적하는 습관을 갖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 성장해서도 수중에 들어온 돈은 죽어도 안 내보내는 ‘자린고비’형 성격을 갖게 될 뿐만 아니라, 항문기에 형성되는 공격성에 과잉 고착되어 ‘사이코패스’형 자본가의 인격을 갖게 될 수 있다고 한다. 똥은 최초의 자기 생산물이자 사적 소유물로, 축적과 방출의 리듬을 만들기 때문에 똥에 대한 태도는 ‘돈’에 대한 태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매이 응아

그래서 배변 훈련에 소홀했더니, 매이가 똥 누는 데 있어 몽이를 ‘롤 모델’로 삼기 시작했다. 원래 몽이 화장실은 베란다에 있는데, 매번 문 열어 달라고 유리문을 긁는 게 귀찮았던지 몽이는 서재로 쓰는 방의 책꽂이 귀퉁이에 똥을 누곤 했다. 매이가 그걸 배운 것이다. <방귀대장 뿡뿡이>를 한참 보다 말고 문득 생각난 듯 서재로 달려가더니 방문으로 가리고는 서서 힘을 준다. 그러고는 우렁찬 소리로 “아빠 똥 쌌어요” 한다. 한 두 번은 그러려니 했는데, 이제는 된똥이나 무른 똥이나 꼭 책꽂이 밑에다 싼다. ‘크레이지 하늬’가 먹을까봐(가끔 진짜 먹는다 !) 하늬 감시하랴 매이 엉덩이 씻기랴 정신없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비명을 지르며 경악하지만 나는 자꾸 프로이트의 말이 생각나 대충 타이르고 넘어간다. 언젠간 스스로 배우겠지 하는 깜냥이다. 집안이 매이, 몽이, 하늬 배설물 냄새로 가득 차는 건 참아도 매이가 냉혹한 자본가의 인성을 갖게 되는 건 못 참겠다.

쉬아

– 매이 아빠

응답 2개

  1. 박혜숙말하길

    쉬하는 메이 표정이 환상적이네요.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언젠가는 스스로 배우겠지’ 하기가 참 쉽지 않은데, 참 대단하세요.

  2. 코딱지말하길

    저도 코 후비는거 좋아하는데. 책상 아래 은근 슬쩍 묻히는 것도 좋아하고요. 우힛. 코를 파는거에 그런 성적인 의미가 있다는거도 재밌네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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