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9호] 변화의 세상에 가로지르는 머무름으로

- 김융희

변화의 세상에 가로지르는 머무름으로

설이 지나고 우수도 넘겼으니 멀지 않아 봄이 오겠다.
유난스러운 혹한에 봄 소식이 더욱 간절하다.
귀성객들의 나들이로 전국의 고속도로는 전쟁터 같다.
이같은 교통 상황을 매스컴은 계속 생중계이다.

별난 혹한에 폭설도 잦은 올 겨울의 기후 탓인가.
금년 설은 유난히도 한적해 쓸쓸하고 조용하다.
자동차의 통행마저 뜸해 더욱 한가롭다.
추석이나 설과 같은 명절이면 들을 수 있었던
아이들이 뛰놀며 왁자지껄 장난치는 소리도 잠잠하다.

설날에 온 마을이 그야말로 적막강산으로 변하였다.
해마다 인구가 계속 줄고 있는 시골이,
명절의 고향을 찾는 귀성 인구도 많이 줄고 있으며
그들의 고향에 머문 시간도 더욱 짧아지고 있다.

불과 이삼 년 전만 해도 하루쯤은 머물렀던 그들이
지금은 저녁 늦게 몰려와 아침 차례를 지내면 곧이어
벌써부터 떠날 준비로 바쁘게 서둘고 있다.
남의 간섭을 죽도록 싫어하며 자기와 직결된 일에만 관심이요
전혀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세대인 자식들을 바라보면서,
멀잖아 “함께 차례를 지낼 수 있는” 지금을 그리워하는
미래의 설풍경이 되지 않을까 싶어 마음이 걱정으로 착잡하다.

가족이 함께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오직 가족만을 생각하며
평생 허리띠를 졸라 매고 열심히 살았던 부모세대는 가고,
가족이 아닌 오직 자기만을 앞세운 새로운 젊은 의식 세대의
등장은, 이제 전통의 해체와 함께 가족의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주말이면 자기차를 타고 자녀와 함께 가족이 교외를 달리며
드라이브를 즐기는 신세대의 젊은이들로, 핵가족 중심의
가족제도는 늙은 부모들의 황혼을 더욱 외롭게 만들고 있다.

자식들만 쳐다보며 가족과 함께 일생을 살아온 부모의 삶이
지금은 몸도 마음도 늙어버린 무용지물의 존재가 되어
외로운 모습의 초라한 말년은 늙어서 겪는 서러움이다.

나의 어린 시절, 설이 가까와오면 벌써 두어 달 전부터
카운트 다운을 계속하면서 손꼽아 그 날을 기다렸다.
설에는 깨끗이 손질된 곱고 좋은 새옷을 입을 수 있었고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다는 기대로 잔뜩 들떠서
벌써 한 달도 전부터 밤잠을 설치며 설날을 기다렸었다.

소죽을 끓이고 가축을 돌보는 지겨운 집안의 일도 설에는 없다.
오직 친구들과 어울려 잣치기, 썰매, 하루놀이 등,
종일 신나게 놀았던 신명은 지금 생각해도 즐겨 마음이 들뜬다.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여앉아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웃어른의 덕담도 듣고 웃음꽃을 피우며 즐겁게 보내는
설이 있었기에 우리는 행복했었다.

그런데 지금의 젊은이들 특히 어린이들에게 설날의 의미는,
신나는 일이라면 세뱃돈 챙기는 일을 말고는 무엇이 있을까?
과외공부로부터 잠깐 자유로워진 시간 정도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외 없는 자유의 시간에 그들은 무엇을 하는가?

탈근대적 고도의 기술사회에 새세대 젊은이들은 가난을 모르고
풍요속에 자라며 어른들의 간섭없이 놀고 즐기는 새로운 방식의
삶을 살면서 자기들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오늘날 가족의 영역 축소와 가족제도의 붕괴로 전혀 새로운
가정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젊은이들이 순수했던 옛날의 행복하고 즐거웠던 그 느낌과
그 만족감을 어떻게 생각하며 진정 이해할 수 있을까?

근대와 탈근대의 뒤섞인 현실을 함께 살아온 기성 세대는,
일상적 삶을 혈연의 가족 중심적 봉건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아직도 현실을 외면하면서 젊은이들에게 자기식데로의 삶만을
강요하고 있다. 자식들 또한 자신의 일에 전력투구해도 앞길이 요원한
상황에서 보상심리를 바라는 부모의 비위만 맞추며 살 수 없다고
부모를 외면하며 자기 일에 매달리고 있다.

체면이나 권위를 내세우며 한사코 변화를 싫어하는 부모세대와
확대와 다변화의 환경에서 훨씬 세찬 삶을 살아야하는 자식세대.
오늘날 두 세대간의 혼재로 인한 엄청난 갈등과 혼란은 매우
심각한 채, 해결책은 보이지 않고 갈등의 혼란만 계속되고 있다.

다같이 적극적인 자세로 열린 만남의 공동체적 삶을 이루면서
상대를 이해하고 따뜻하게 보듬어사는 삶의 지혜가 절실하다.

결코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해결을 위한 먼 길을 찾아,
부모와 자식은 함께 쉼없이 인내하면서 노력해야 할것이다.

여남채의 집들이 띄엄 띄엄 모여 살고 있는 산촌 마을은
금년 설날이 유난히도 쓸쓸하고 한적하였다.

자식들 모두가 떠나가버린 텅 빈자리에
부모들만 남아서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탄식의 넋두리로
쓸쓸한 설날을 잠시 생각해 보았다.

– 김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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