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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기생수>, 타자와 더불어 살기

- 편집자

<기생수>, 타자와 더불어 살기

기생수? 워낙 유명한 만화라서 알만한 사람들 알만한 만화이긴 하지만 처음 제목을 듣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할만 하다. 생수 이름인가? ㅡㅡ;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감이 왔겠지만 기생충할 때의 기생처럼 기생하는 동물이라서 기생수(寄生獸)이다. 이와아키 히토시(Iwaaki Hitoshi)의 작품으로 그림체가 보기에 따라서는 워낙 엉성해서(^^) 처음 보는 사람은 쉽게 손이 안가는 만화책이긴 하지만 한 번 빠져들면 몰입감이 장난 아니다.

영화 터미네이터를 만든 제임스 카메론이 영화화 하겠다고 판권을 산 작품이기도 하고, 박찬욱 감독도 자신이 영화화 하고 싶은 만화는 바로 기생수다라고 말했을 정도니..

(이하 스포일러 있습니다..^^)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인간의 몸에 기생하는 생물체가 주인공의 오른손에 침입해서 기생하게 되면서 시작하는데, 이 오른손에 기생한 오른쪽이(자신의 오른손에 기생하게 된 이 생물을 주인공은 ‘오른쪽이’라고 부른다..)와 주인공이 함께 살면서 지구를 지키는(?) 내용이다..(너무 간단한가..ㅡㅡ;)

만화는 처음 다음과 같은 대사로 시작한다.

“지구에 사는 누군가가 문득 생각했다. 인간의 수가 절반으로 준다면 얼마나 많은 숲이 살아남을까…인간이 100분이 1로 준다면 쏟아내는 독도 100분의 1이 될까.. 모든 생물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

그리고, 모든 생물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탁구공만한 괴물체가 지구에 떨어진다. 그리고 사람의 머리에 들어가 기생한다.

주인공의 머리에도 들어가려 했으나, 실패하고, 오른손만을 차지한다. 그래서 주인공은 이 기생수를

주인공의 오른손에 들어간 오른쪽이

주인공은 처음에는 오른쪽이와 같이 살아야 한다는 걸 인정하려 하지 않지만 차츰 그와의 공존을 선택한다.

“너와 나는 협력관계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종이 다른 생명체이다. 각각의 종이 갖는 성질을 되도록 존경하고, 가령 자기측의 이념을 강요하는 것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 후 우리의 공동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해. 그건 우선 ‘살아남는’거야..” – 오른쪽이 대사 중.

열심히 공부하는 오른쪽이^^

이후 사람들의 머리를 차지한 기생수들은 자신들의 번식을 위해 인간들을 공격하고, 오른쪽이와 주인공은 이들을 막기 위한 스텍타클한 싸움을 펼친다. 뒷부분부터는 직접들 보시라~~

이 만화가 먼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누가 도대체 기생수인가이다. 오른쪽이는 말한다. ‘악마’라는 것을 책에서 찾아봤는데..그것에 가장 가까운 생물은 역시 인간으로 판단된다..” 고. 인간이란 어찌 보면 공존하기에는 최악의 개체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양보 안하고 모든 것을 가지려하는. 어떤 동물도 자신이 배가 고플 때만 먹지, 배가 가득 불러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는 상태에서도 자기가 나중에 먹을거라고 쓸데없이 냉장고에 쟁여놓지 않는다. 호랑이가 양을 잡아먹는게 잔인하다고 느껴지는가? 사람들이 양고기를 앞에 두고 삶아먹을까, 구워먹을까, 소금 쳐서 먹을까 고민하며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을까를 생각하는게 오히려 더 잔인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기생수들은 말한다. “인간은 거의 모든 종류의 생물을 잡아먹지만 내 ‘동족’들이 먹는 것은 고작 한 두 종류야.. 훨씬 간소하지”

인간 한 종의 번영보다 생물 전체를 생각해!! 그래야 만물의 영장이다!! .. 인간에 기생하여 생물 전체의 균형을 지키는 역할을 맡은 우리에 비하면 인간이야말고 지구를 좀먹는 기생충, 아니 기생수다

누가 정하치? 인간과 그밖의 생명의 값어치를 누가 정해주는데? 인간 역시 지구에 기생하는 기생수이다. 그 안에서 누가 더 중요한지 그 값어치를 누가 정할 수 있는가?

그러나 이 만화는 단순히 기생하는 기생수와 인간과의 대결로 끝나지 않는다. 인간의 자연파괴-인간의 반성, 혹은 사랑으로 극복 뭐 이런 진부한 스토리로 끝난다면 이 만화도 그저 그런 만화에 그쳤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이 만화는 더 나아간다. 기생과 공생, 그리고 더불어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이다. 만화에서 기생하는 기생수를 포함해서 모든 개체는 집합체로 이루어져있다. 기생수끼리 서로 결합도 하고 분해도 하며 하나의 개체를 구성한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하나의 집합체로 모여있기도 하고, 그것이 해가 될때는 분해하기도 한다. 그것이 기생의 원래 의미이다. 사전에서의 기생의 의미는 “서로 다른 종류의 생물이 함께 생활하며, 한쪽이 이익을 얻고 다른 쪽이 해를 입고 있는 생활 형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쌍방이 이익을 받는 것을 공생이라 하고, 한쪽은 이익을 보지만 다른 한 쪽은 해를 입는 관계를 기생이라 한다는 것이다. 즉, 기생하는 숙주와 기생당하는 기주의 구분이 없는 것, 그것이 공생인 것이다.

기생수들은 인간의 몸에 기생하면서 기주를 먹어버리지만, 오른손이와 주인공은 공생을 택한다. 그런 점에서 넓게 보면 인간 역시 마찬가지로 모두 집합체로 이루어져 있다. “다들 인간을 얕보고 있군요. 분명 개체단위로 보면 지극히 허약한 동물로 보이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인식해야 할 것은 인간과 우리의 가장 큰 차이.. 인간이 수십 수백..수만 수십만이 모여 하나의 생물을 이뤄낸다는 거에요” 기생수가 인간을 평가하면서 하는 말이다. 인간이란 유기체도 수십개조 세포들이 만드는 거대한 집합체이자 공동체라는 점에서도 그러하고, 인간들은 홀로 살아갈 수 없이 집합적 관계들을 구성해나가면서 살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도 인간은 말 그대로 집합체이다. 그리고 이 집합체 속에서 개체들은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즉 살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이 속에서 모든 개체들이 공존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이다.

즉, 우리가 공존을 말할 때, 이는 단순히 서로 사이좋게 잘 지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한 수동적 관계에서는 사이좋음이 단순히 미덕이나 윤리적 가치로서만 인식될 뿐이다. 그러나 더불어 산다는 것은 그러한 단순한 수동적인 공존이라기 보다 ‘함께 관계하며 존재’한다는 것이고, 이는 그 관계 안에서 서로의 능력을 키우는 관계일 때 진정한 공존, 더불어 삶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는 우리 모두가 더불어 사는 집합체임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는 “분할 불가능하다(in-dividual)는 의미에서 개체는 없으며, 모든 개체는 항상-이미 집합체”라는 의미에서 “개체는 중생(衆-生,multi-dividual)”임을 인식해야만 한다. – <꼬뮨주의 선언> 중에서

개인이라는 어원이 더 이상 나눌 수 없다는 의미라 할 때, 우리는 이러한 고립되고 원자화된 개인이 아니라, 우리는 언제나 중생일 수 밖에 없으며, 이는 즉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체’라고 번역하는 코뮨(commune)의 어원학적 기원이 ‘선물(munis)’을 ‘나눔(com)’, 또는 그 나눔을 통해 ‘함께함(com)’이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선물을 나누는 관계인 것이다. 근대의 고립되고 원자화된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개인(in-dividual)이라는 신화를 넘어, 경쟁의 원리를 넘어, 신자유주의를 넘어 우정의 경제학, 우정의 정치학이 필요한 이유이다.

만화에서 오른쪽이는 인간의 몸에 붙어있지만, 인간과 서로 더불어 살아갈 수 밖에 없음을 인식하고, 그 관계 속에서 인간을 지배하려고 하지도, 인간이 오른쪽이를 자신의 뜻대로 지배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공존이란 그 순간에 일어난다. 그 둘은 서로의 능력을 키우기 위한 우정의 관계를 통해 서로에 의지한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러한 함께 관계하며 존재한다는 것은 그 함께함이, 그 우정이 그 만남을 통해 서로 능력의 증가를 야기하는 관계임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못한 순간 우리는 꼬뮨이 아닌 하나의 단순한 집합에 속하는 개체가 되어버린다. 우리는 우리 앞의 많은 공동체가 더이상 변화하지 못하는, 하나의 전체로서 고정화된 집합체로 끝나는 경우를 보아왔다.

만화 말미에 가면 오른손이는 고토라는 기생수에 흡수되어버려 개체성을 잃어버린다. 나중에 주인공과 고토와의 싸움에서 다시 오른쪽이가 코토라는 기생수에서 탈출하여 한 대사는 우리에게 이 점을 말해주고 있다.

“몸속에 독이 들어오기 전까지 그놈은 완전한 하나의 생명체였어. 실제로 ‘머리’의 통제력은 대단했지. 다른 기생세포를 순식간에, 그리고 완전히 잠재워 마음대로 조종했으니까. 그러니까 조금전까지 적이었던 나조차 신체의 일부가 되어 흡수되었던게지. 그 이후 내 의식은 거의 잠자고 있었어..”
“하지만.. 그럼 마치 노예생활 같은 거잖아?”
“그게.. 뜻밖에 아주 편하더라구. .. 그게 무척이나 기분 좋아서..이대로 무적의 생물 ‘고토’의 일부가 되어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기까지 했지.” -오른쪽이와 주인공의 대화 중

우리가 그냥 전체의 일부로 편하게 살아버릴 때, 우리는 단지 하나의 집합에 속하는 개체로서만 존재한다. 그것이 홉스가 그리던 리바이어던이라는 국가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절대 권력의 국가, 리바이어던을 만들 수 밖에 없고, 그 속에서 모든 백성들은 국가의 절대 명령에 복종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진정한 평화라고.

그러나, 우리가 코뮨적 관계를 만든다고 했을때, 진정한 자유로운 공동체를 구상한다고 했을때, 그것은 스피노자가 말하는 방식대로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관계이다. 우정이 긍정적 감응을 통해서 정의되는 만남, 그 만남을 통해 서로 능력의 증가를 야기하는 관계이다. 긍정적 감응, 혹은 기쁨의 감응을 야기하는 만남과 촉발, 그것은 능력의 상승을 통해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화는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난다. “의지하며 산다… 언젠가 생명이 다할때까지..” 결국 우리가 의지할 것은 그런 코뮨적 관계이다. 기생이 아닌 공생, 우리는 기생수가 아닌 공생수가 되어야 한다!!

– 담담1
  1. 이 원고는 수유너머 r 블로그에 게시되었던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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