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 새긴 이야기

[창간호] 독락(獨樂)

- 향산 고윤숙(香山 高允淑) (수유너머 길 / 청구금석문연구소 연구원)

독락(獨樂)

독락(獨樂)

삶의 절실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스승의 가르침이나 친구의 조언을 통해 그 해답을 구하고자 한다. 또는 평소 애독하는 책을 다시 펼쳐 먼 옛날의 친구에게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실패에 직면한 어떤 이들은 이 모든 행위들의 무용함을 주장하기도 한다. 책을 많이 읽어도, 강의를 많이 들어도 자신의 삶에는 변화가 없다고.

그러나 글과 말을 탓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삶의 절실한 문제가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는가를 다시 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공부하는 것들을 어떻게 삶과 일치시킬 것인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많은 시간을 사람들과 모여 북적댄다고 하여 공부가 절로 되는 것도 아니요, 홀로 책만을 들여다본다고 하여 더 나은 공부가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송나라 사마광은 자신의 독서당(讀書堂)’에 약 5천권의 책을 모으고, 퇴정 후에는 이 독서당이 있는 ‘독락원(獨樂園)’에서 유유자적하였다고 한다. 홀로 머물며 책을 읽고, 뜻이 권태롭고 몸이 피곤하면, 낚시와 약초 채취를 한다. 도랑을 열어 꽃에 물을 대고, 도끼를 잡아 대를 베어 홈통을 만든 다음 열을 식히기 위하여 물을 끼얹고, 높은 곳에 올라 마음껏 경치를 감상한다. 그 때 그 때 뜻에 맞는 대로 행한다는 것이다.

앎과 삶을 일치시키려면 사물의 이치를 꿰뚫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때에 맞는 공부를 한다면 사물의 이치가 절로 자신에게로 모여들 것이다. 때에 맞는 공부란, 책을 펴고 앉는 것만이 아니라, 지금 현재 절실하게 자신에게 필요한 행동, 즉 때에 맞는 실천이 무엇인지를 알고 행해야 하는 것이다. 이때에야 비로소 남에게 억지로 끌려가거나 어떤 힘에 제지당하지 않아 우우(踽踽)하고 양양(洋洋)할 것이다.

明月時至 淸風自來 行無所牽 止無所抳 (명월시지 청풍자래 행무소견 지무소이)

명월은 이따금 찾아오고 맑은 바람 또한 저절로 오는데,

갈 때도 어떤 것에 끌리지 않고 머무를 때도 누구의 제지를 받지 않는다.

-[고문진보 古文眞寶]‘독락원기(獨樂園記)’중에서.



篆刻 돋보기

전각이란 인장(印章) 위에 문자(文字)를 새기는 한 종류의 예술이다. 전각의 문자는 일반적으로 전서(篆書)를 채용한다. 전각에서 ‘篆’이라는 말이 가리키는 것은 ‘전서(篆書)’를 뜻하고, ‘刻’은 ‘새기다’라는 뜻으로, 전각은 전서를 새긴다는 것에서 그 어원이 유래한다.

<설문해자(設文解字)>에는 “‘인(印)’이란 정치를 행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어, 진물(眞物)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조(爪)와 절(卩)의 의미문자이다. 조(爪)가 절(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틀림없이 진물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청대(淸代)의 <설문해자주>에는 “모든 관직에 있는 사람은 모두 정치를 행하는 사람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절신을 ‘인(印)’이라고 말한 것으로 고대에는 상위 사람의 것도 하위 사람의 것도 모두 ‘새(璽)’라 하였던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전각은 중국의 전통예술로 2천여 년이라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전각의 시작에 대한 확실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하남의 한양에서 출토한 3개의 동새(銅璽)가 가장 이른 시기의 인장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 문자와 은상(殷商)시기의 금문은 서로 비슷하나 춘추시대의 고새(古璽)문자와는 같지 않다. 만약 이 세 개의 동인(銅印)이 확실히 은상시기 인새라 한다면 전각의 역사는 그만큼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중국최고中國最古의 은새삼과殷璽三顆 | 필자전각

전각예술은 선진(先秦), 진(秦), 한(漢)나라 시대에 일찍이 전성시기로, ‘고대(古代) 전각예술’이라 한다. 명청(明淸)시기에는 원대(元代)의 왕면(王冕) 왕면(王冕)1에 의하여 화유석(花乳石) 화유석(花乳石)2을 인단(印壇)에 도입하므로써 문인들이 치인(治印)을 하는 일종의 시대적 풍조를 이루어 이에 곧 서로 다른 유파와 풍격으로 기이하고 아름다움을 다루는 국면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를 유파(流派)전각예술이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단군신화에 언급된 ‘천부인(天符印)’이 최초의 인에 관한 기록으로 전해진다. 이후로는 기원전 108년 낙랑군지 평양서남의 정백리 왕광기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진 ‘낙랑태수연왕광지인(樂浪太守掾王光之印)’, ‘신광(臣光)’, ‘왕광사인(王光私印)’등이 가장 오래된 전각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낙랑태수연왕광지인(樂浪太守掾王光之印), 신광(臣光), 왕광사인(王光私印) | 필자전각

– 향산 고윤숙(香山 高允淑) (수유너머 길 / 청구금석문연구소 연구원)

  1. 중국 원나라 말에서 명나라 초의 화가(1287~1359). 자는 원장(元章). 호는 저석산농(煮石山農)·회계외사(會稽外史). 원나라 말기의 난을 피하여 그림 그리기에 전념하였으며, 죽석(竹石)과 묵매(墨梅)로 알려졌다. []
  2. 화유석(花乳石) : 누런 빛깔의 바탕에 흰색 점이 아롱져 박힌 돌. []

응답 2개

  1. 香山말하길

    아, 박혜숙 샘, 정말 반갑습니다.
    올 한 해 강도가 센 공부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함께 하게 되어 정말 즐겁습니다.

  2. 박혜숙말하길

    윤숙 샘! 축하, 축하해요! 삶의 절실한 문제가 뭔지 되물으라는 말이 가슴이 확 와 닿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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