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9호] <꼴>, 생긴대로 산다? 아니 사는대로 생긴다

- 편집자

<꼴>, 생긴대로 산다? 아니 사는대로 생긴다

보르헤스의 중국의 한 백과사전

푸코의 말과 사물의 서문에 보면 보르헤스의 소설 중국의 한 백과사전을 인용하고 있다.

“동물은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a) 황제에게 속한 동물, (b) 향료로 처리하여 방부된 동물, (c) 사육동물, (d) 젖을 빠는 돼지, (e) 인어, (f) 전설상의 동물, (g) 주인 없는 개, (g) 이 분류에 포함되는 동물, (i) 광포한 동물, (j) 셀 수 없는 동물, (k) 낙타털과 같이 미세한 모필로 그려질 수 있는 동물, (l) 기타, (m) 주전자를 깨뜨리는 동물, (n) 멀리서 볼 때 파리같이 보이는 동물.”

어떤가? 이게 무슨 기준으로 나누어 놓은 것인지, 얼토당토 않은 분류에 피식 웃음이 나지 않는가? 그러나 푸코는 이를 단순히 웃음거리로만 이해하지 않는다. 푸코는 이를 통해 서로 다른 에피스테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에피스테메란 뭐냐? 푸코는 에피스테메를 특정한 시대를 지배하는 인식의 무의식적 체제로 정의한다,고 네이버 백과사전은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에피스테메의 차이를 통해 푸코는 르네상스 시대, 고전주의 시대, 근현대를 나누고 있다. 즉 이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중국의 백과사전의 분류는 우리가 흔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동일성과 차이에 입각한 고전주의 에피스테메 속에서의 분류체계와는 다른 에피스테메일 뿐이라고. 그리고 그것이 주는 우스꽝스러움에서 푸코는 헤테로토피아, 즉 담론의 배치를 통한 서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의 세계, 동질화되지 않는 세계의 ‘이질성의 유토피아’를 찾아낸다.

왠 관상 이야기하자면서 뜬금없이 푸코냐고? 그냥 있어 보일려고 그런거다. 미안하다. 푸코는 고전주의 에피스테메와 다른 르네상스 에피스테메를 정의하며, 이는 모든 것을 유사성을 환원하는 태도라고 말한다. 호두가 사람 머리와 닮았으니 호두를 먹으면 머리가 좋아질거라는 유사성. 손금과 얼굴을 통해서도 그 사람의 앎을 알 수 있다고 하는 유사성. 그러나 우리가 이해 못하는 것일뿐, 정말 그럴 수 있는 거 아닌가? 머리 모양을 닮은 호두를 먹으면 머리가 좋아지고, 사람 얼굴의 모양을 보고 그 사람의 인생을 점쳐볼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단순히 미신이나 비합리적 태도일까? 어리석은 미개한 자들의 비이성적 행위로 치부할 수 있을까?

돈키호테는 이런 르네상스 에피스테메를 대별하는 인물이다. 풍차라는 악마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

얼굴은 단순히 얼굴이 아니다.

그렇다. 고대 동양의 우주관은 흔히 ‘상관적 사유(corelative thought)’라는 말로 정의되곤한다. 인간-국가-우주가 하나의 상관성으로 이어져있다는 말이다. 하늘이 둥글고 땅이 네모난 것을 닮아 사람의 머리는 둥글고 발이 네모나다는 것. 이것이 천원지방(天圓地方)의 논리이며, 하늘에 사계절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사지가 있는 것, 하늘에 오행이 있듯이, 사람에게 오장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또한 국가에도 마찬가지로 가령 신(神)은 임금과 같고 혈(血)은 신하와 같고 기(氣)는 백성과 같다는 식의 한 사람의 몸은 한 나라의 구조와 같다는 인신유일국(人身猶一國) 논의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유들은 흔히 서구의 과학의 세계와 대비해 동양은 직관의 세계로, 검증할 수 없는 비유와 은유의 세계로 이해되어 왔다. 서구식 합리적 세계와 대비되는, 그런 과학이 통하지 않는 세계. 여기서 합리성(rationality)이란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비율(ratio)로서 표시될 수 있는, 즉 계산가능함을 의미한다. 서양의 수학이 그러하고, 음악이 그러하고, 건축이 그러하듯이 어떤 계산가능한 수치화되어 있는 세계. 그런 계산가능함이 없는 비합리적 세계는 단지 직관의 세계에 머무른 덜떨어진 세계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그러한 서구적 계산가능함, 합리성의 세계가 아니라 상호 관계성을 통해 사유되고, 수치화할 수 없는 나름의 이치가 통하는 세계인 것이다. 동양에서의 합리성이라 할 수 있는 리(理)라고 하는 것이 구슬(玉)을 잘 닦다보면 길(里)이 나타나는 것처럼 서구의 시선에 익숙해져있는 현재의 우리로서는 파악하기 어렵긴 하지만 나름의 이치가 작동하는 세계인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얼굴 안에 우주가 들어있고, 내 몸 안에 우주가 들어있다는 세계관이 마치 무슨 미신인냥 보는 것도 우리가 파악하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폭력적 발상이 아닐까? 동양적 사유에서 보면 얼굴은 단순히 얼굴이 아니다. 그것은 오장육부의 기운이 올라온 것이고, 더 크게 말하자면 자연의 오운육기가 발현되어 나타난 것이다. “땅속의 불기운이 다양한 화산 모양을 만들 듯이 오장육부의 기운이 뻗어 올라와서 만든 것이 얼굴이다.” 그렇게 세상은 연결되어 있고, 그것이 얼굴 하나만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라는 게 관상, 즉 꼴, 얼굴의 생김새, 됨됨이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얼굴을 통해 마음을 보는 것이자, 그 속에서 길흉을 읽어내는 것이다.

생긴대로 산다? 아니, 사는대로 생긴다.

생긴대로 산다는 말이 있다. “얼굴이 그렇게 쫌스럽게 생겼으니 하는 일도 그렇게 쫌스럽지..” 음..사람들이 나한테 하는 말이다. 그러나 생긴대로 사는게 아니다. 외려 사는대로 얼굴이 생겨진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쫌스러운 행동을 하니 얼굴이 쫌스러워 지는 것이다. 소위 전문용어로 ‘꼴값하고 있네’에서 꼴값한다는 말은 흔히 이해되듯이 얼굴 생긴 값하고 있네라기 보다 그렇게 행동하는게 딱 니 얼굴에 맞네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꼴에서 나오는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일단 당신의 입술이 어떤지 거울을 보고 와라. 자, 거울들 보았는가.

“입술이 두툼하면 마음이 후덕해서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입술이 얇으면 박정하고 말이 많다. 입술이 뾰족하면 말을 참지 못하고 시비를 많이 건다. 활처럼 생긴 입술은 귀하다. 관록을 먹고 산다. 입술의 윤곽이 뚜렷하면 재물과 자손이 넉넉하다. 입술 양 끝이 밑으로 처지면 격이 낮다. 여자의 입이 넓고 크면 마음이 크니까 출세욕이 강하다. 입술이 삐뚫고 얇으면 격이 낮고 가난하다. 자기 자랑이 심하다. 입술은 붉어야 하는데 자주 빛이 돌면 하던 일이 막힌다”

자, 당신은 어떤 입술인가. 참고로 수유너머r 식구 중에는 담담이 입술이 두툼하고, 만세가 입술이 얇다.^^ 그냥 그렇다는거다. 그러나 좋은 관상이 나왔다고 흐뭇해 할 필요도 없고, 나쁜 관상이 나왔다고 절망할 필요도 없다. 그게 다 당신이 살아온 삶이다. 당신의 습이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동선이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얼굴이 그 모양 그 꼴인거다!! 마음이 후덕하게 살아온 사람이라면 입술이 두툼해 졌을 것이고, 말을 참지 못하고 시비를 많이 걸어온 삶을 살았다면 입술이 뾰족해 지는거다. “따라서 마음이 중요하지,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잘못됐다. 마음이 좋으면 외모도 좋고, 마음이 나쁘면 외모도 나쁘다.”

그건 마찬가지로 당신의 걷는 자세를 보아도 알 수 있고, 당신이 글쓰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모든 일에 게으르고 귀찮은 사람이라면 걷는 자세 역시 밍기적 밍기적 걸어다닐테고, 글을 써도 시작만 하고 마무리는 잘 못짓는 사람일게다. 이는 당신의 사는 습관 하나하나가 혹은 당신의 성질 머리 하나하나가 당신의 얼굴에 달라붙고, 당신의 온 몸에 달라붙고, 당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달라붙는 것이다. 당신이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 어떻게 관계를 맺어나가는지 다 당신의 습이 발현된 것이란 말이다. 관상이란 그렇게 당신을 보여주는 것이지, 어떤 어떤 관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내 삶이 이렇다라는 식은 말이 안되는 거다.

얼굴을 바꿔라.

그렇다면 어쩌라고? 성형이라도 할까? 이거 왜 이러시나. 아까 누차 말했지 않나. 얼굴은 바깥이고, 마음이 안이라고. 마음씀을, 자기 습을 바꾸지 않고 얼굴을 고친다고 해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그럼 인생은 타고 나는 것인가? 귀하게 태어나면 나쁜 짓을 해도 끝까지 귀한 삶을 사는것이고, 천하게 태어나면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천한 신분을 벗을 수 없는 것인가?

여기서 잠깐 다른 얘기 하나. 사람들은 혈액형에 대해서 말을 많이 한다. A형은 소심하고, B형은 성격이 드럽고, O형은 적극적이고, AB형은 똘아이 기질이 있고, 등등..뭐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내 혈액형이 O형이지만 누구도 나를 보고 O형이라고 맞추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니, 백번 양보해서 맞을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수혈을 받아서 혈액형을 바꾸는 일? 자기는 그런 성격이구나를 알고 자기와 맞는 궁합의 혈액형의 사람을 만나는 일? 그렇다면 자기가 변하나? 관상을 본다는 것의 핵심은 자기 삶에의 개입이자 변화의 욕구인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얼굴을 바꾸라는게 성형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성형을 한다고 해서 본 바탕이 바뀌지는 않는다. 만화에서도 나오고 있듯이 “마음이 뾰족해서 코가 뾰족한 것인데, 코를 둥글둥글하게 고친다고 속마음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럼 타고 태어난 대로 살라는 말이냐? 그건 더더욱 아니올시다이다. 사주와 관상의 핵심은 개입이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어떻게 자기의 삶을 변화시킬 것인가이다. 자기의 얼굴은 자기가 살아온 길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자신을 속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부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지침서이기도 하다. 나이 50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그냥 인상 쓰지 말고, 예쁜 표정만 지으면서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자기를 어떻게 바꾸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자, 이제 다시 한 번 꼴을 일독하고 자기 얼굴을 뜯어보자. 뭘 바꿔야 내 얼굴이 바뀔지.

숙제: 가장 이상적인 관상이라는 부처님의 얼굴. 자 다들 부처님의 얼굴이 되기 위해서 자신의 무엇을 바꿔나가야 할지 고민해 보자!!

그렇다고 이렇게 얼굴에 분탕질 하라는 소리는 아니다!!

– 담담1
  1. 이 원고는 수유너머 r 블로그에 게시되었던 글입니다. []

응답 1개

  1. 연초록말하길

    마음이 찔리는 글이네요.

    사는대로 생긴다고? 그렇다면 습에 있어서 여러가지 걸림돌을 갖고 있으면서 바꾸어야지

    노래만 하고 있는 나는 어찌 해야 하나? 답을 모르는 것은 아닌데 몸이 나서지 못하고 있는

    부분들을 고민만 하지 말고 일단 몸으로 한 발 내딛어서 내 얼굴을 바꾸어보자!!

    이런 결심을 하게 만드는 아침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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