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9호] 길티한 것에 대한 예찬 – 만화방, 그리고 <바텐더>

- 편집자

길티한 것에 대한 예찬 – 만화방, 그리고 <바텐더>

“좋아하는 만화”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은 원고 청탁을 받을 당시에는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 글을 쓰면서야 나는 나의 만화읽기가 하나의 ‘길티 플레져’였음을 깨닫고 있다. 연구자로서의, 좌파로서의, 혹은 꼬뮨주의자로서의 공적인 내 모습이 너무나 피곤하고 견디기 괴로울 때, 나는 집 앞 만화방(그 이름도 찬연한 STARBOOKS였었다.)로 달려가 목이 뻣뻣해지고 눈이 아플 때까지 만화를 읽곤 했었다. 만화는 나에게 “건강하고 꼬뮨적인 삶”의 정반대편에 있었던 반정립으로서의 삶이었던 것이다.

만화방에서의 만화읽기는 언제나 기분 나쁜 경험이었다. 화장실에선 항상 이상한 지린내가 나고, 줄담배를 피워대는 사람들에, 몸에 안 좋을 게 분명한 과자들, 형광등의 ‘지잉~’하는 소리… 그리고 나는 그 기분 나쁜 경험을 즐겼다. 연구실 카페에도 만화코너가 있었고, 만화를 빌려 집에서 볼 수도 있었지만, 만화방에서 만화보기는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오직 그 퇴락의 이미지를 즐기는 것이 사실상의 목표였던 것. 결국 적당히 좋은 만화를 골라 적당히 멋있는 말을 하는 것을 택하지 않는 한, 나는 나 자신의 말하고 싶지 않은 삶의 부분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전자는, 장렬히 실패했다. 그 글들은 너무도 유치했던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온 뒤로는 도통 만화를 보지 못했다. 이 동네엔 놀랍게도 한 군데의 만화방도 없었다. 그렇다고 ‘반정립’으로서의 삶이 결코 지양되지는 않았다. 혹은 못했다. 만화방 대신 나는 홀로 BAR에서 술을 홀짝이고 있는 것이다. 나를 BAR로 전도한 이도 사실은 만화였다. 어느 날 만화방에서 손에 집어든 「바텐더」. 처음에는 지나칠 만큼의 일본의 서비스 문화와 직업정신 강조가 못내 불편해서(나 좌파라니깐!) 몇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던져 버렸었는데, 워낙 만화방 죽돌이었던지라 더 이상 읽을 만한 만화가 없어서 다시 잡았을 때는 어떤 장면에선 그만 펑펑 울면서(지금은 왜 그 장면에서 마음이 동했었는지 나도 독자들도 알 수 없겠기에 이미지는 생략) 아, 나도 꼭 BAR에 가서 홀로 술을 마시리라 다짐을 하는 지경까지 가 버렸다.

이 취미는 보다 악랄한데, 제대로 된 수입도 없는, 여전히 용돈이나 받아 사는 처지의 대학원생이 책을 사는 것보다도 많은 돈을, 백바에 범인들은 이름도 모를 양주와 리큐르들이 늘어서 있고, 바텐더가 직접 만들어주는 칵테일을 음미하며 고독과 피로를 치유하는 데 쓰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김수환 추기경께서 소천하시고, 법정 스님께서 입적을 하셔서 아무리 무소유와 자기 부인의 삶을 생각하며 살라 온 세상이 떠들어 대어도 나는 술을 마시고 싶은데 항상 돈이 없다고 투덜대면서 소유를 갈망하고 있다.

솔직히 카드를 긁을 때마다, 혹은 다음 날 아침 숙취를 맞이할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는 게 사실이다.(그러니깐 길티 플레져겠지.) 하지만 작년에 경험한 연구실에서의 커다란 경험은 나에게 사람 사는 게 결코 그렇게 정립적일 수만은 없음을, 가장 구성적이고 건강해 보이는 삶 속에도 길티한 것이 그것의 반정립으로서 언제나 존재하고 있음을 살짝 보여주었다. 그래. 모두들 얼만큼은 힘겨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까지 내가 만화방과 BAR를 전전하며 살지 모르겠다. 게다 글까지 써서 이런 삶을 노출해 버렸으니 당분간은 데미지가 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분간은 이 길티한 삶을 떠나기가 어려울 듯하다. 언젠가 정립과 반정립 모두가 의미 없어지는 진정한 몰락의 시간이 다가올 때 까지는 말이다.

– 김강

응답 1개

  1. 연초록말하길

    길티 플레져라는 말에 눈길이 가는군요.새로운 실험을 하는 사람들의 일상에 가끔씩 혹은

    자주 엄습할 수 있는 감정이 있겠구나,그것을 어떻게 소화하면서 살아가는 것일까

    그들은 하고 멈추어 생각하게 됩니다.

    바텐더,일본 에니메이션 검색하다가 쓱 보고 지나간 제목인데 여기서 만나니 어라,그렇다면

    한 번 볼까 유혹이 오는군요.이렇게 보고 싶은 것이 점점 늘어나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슬램덩크와 더불어 바텐더까지 목록에 잡히고 말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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