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9호] <슬램덩크> 하늘로 향한 사다리 같은

- 편집자

<슬램덩크> 하늘로 향한 사다리 같은

만화를 그리는 일은 내게 무엇일까? 그건 분명 행복한 일이다. 밤을 꼬박 새워 그림을 그리고 나면 이전보다 커진 나를 느낀다. 나의 상상력이 지면 위에서 생명을 얻는 것을 볼 때의 환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마감시간에 쫒길 때는 피를 뽑히는 기분이다. 그보다 더한 고통은 나보다 몇 수 위의 작가들, 감탄을 금할 수 없는 작품들을 보면서 밀려오는 열등감과 싸우는 일이다. 대학 시절 다케히코 이노우에의 <슬램덩크>가 그랬다.

1990년대, 무라카미 하루키와 알랭 드 보통의 소설로 상처 난 마음에 위안을 얻던 시절, 수많은 만화들이 그에 못지 않는 감동을 주었다. 90년대는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전설적인 작품들이 태동하던 시기였다. <드래곤볼>, <시티헌터>, <북두신권> 등 다소 폭력적이고 꽤 에로틱한 작품들이 크게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그 조류의 끄트머리에 위대한 역작이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릴 준비를 하며 나타났다. 바로 <슬램덩크>다.

<슬램덩크>로 유명해진 이노우에는 <슬램덩크> 이후 한 차원 높은 연출력과 완성도를 선보인 <배가본드>와 장애를 통한 인간애와 청춘의 성장을 그린 <리얼>을 그리게 된다. 물론 <슬램덩크>만큼의 파괴력은 만들어지지 못했지만 <베가본드>에서는 형상과 연출의 깊이, <리얼>에서는 또 다른 작가적 고민과 인간애로 한층 깊어진 작가세계를 드러냈다.

다케히코 이노우에의 <슬램덩크>는 90년대 중반 연재를 시작하여 1억부가 넘게 팔렸다. 처음에는 개그만화로 시작했던 <슬램덩크>가 회를 거듭할수록 점차 진지해져 갔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다케히코의 천재성은 코믹, 개그풍의 초기 연재분만으로도 충분히 드러나지만 그의 진면모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빛났다.

이노우에는 방황하던 불량배가 ‘불꽃남자 정대만’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기도 했고 ‘강백호’가 자신의 실수로 아버지를 죽게 했었다는 짧은 회상장면을 연출하기도 하면서, <슬램덩크>에 등장하는 수많은 캐릭터에 저마다의 이야기를 불어 넣었다. 작품의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이야기의 흐름은 느려지면서 불과 몇 분의 실제 시간을 만화책 한권으로 정밀하게 구현하기까지 하면서 이노우에의 본격적인 만화 수련은 시작된다.

<슬램덩크> 전권을 훑어보게 되면 그림과 연출의 엄청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이노우에는 마치 칼을 다듬는 장인처럼 매회분마다 자신을 벼려 명검으로 다듬어 갔던 것이다.

1권에서의 강백호

마지막권에서의 강백호

이런 모습은 장편 연재분을 소화한 작가들에게 자주 나타난다.

<H2>의 아다치 미츠루, <20세기 소년>의 우라사와 나오키 같은 훌륭한 작가들도 초기작에서는 조금 어설프고 미흡한 그림체를 느낄 수 있다. 그게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노우에는 조금 다르다. 작가에게는 누구나 찾아온다는 슬럼프, 혹은 작품의 퀄리티가 높아지지 않는 휴지기 같은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하늘로 향한 끝없는 사다리를 가진 사람인 것처럼, 한회 한회분마다 성장하기만 했던 것이다.

<슬램덩크>를 보며 다들 한번쯤은 느끼지 않았을까? 정대만이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며, 숨 가쁜 버저비터의 순간을 보며, 강백호가 첫 번째 골밑슛을 성공하는 장면에서, 모두가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몰입의 순간들을. “무릅부터. 슛은 무릅에서부터” 라는 대사는 얼마나 함축적인가? 우리는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따듯하면서도 다감한 말에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던가.

이노우에의 캐릭터들이 하나씩 자기만의 이야기를 갖게 되고, 그림 또한 미학적인 완성도를 얻어가면서 그는 <베가본드>(미야모토 무사시에 대한 만화)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 간다. 실제로 <베가본드>의 미학적 완성도는 지금까지 만화가 가 본 적 없는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인에이와의 격투장면에서 숲에 녹아드는 무사시의 격정적인 모습을 보라.

하이퍼 리얼리즘에 근접한 극사실주의 배경과 때로는 정반대로의 수묵화기법을 사용하는 등, 다케히코의 작가적 충만함은 그 끝을 알 수 없을 지경이다.

<슬램덩크>에서 갈고 닦아진 격전 장면의 연출력은 <베가본드>의 칼부림에서 더욱 진화되어 수초의 순간을 다양한 앵글과 감정으로 연출할 수 있게 했다.

이노우에씨는 <슬램덩크> 연재가 끝나고 <베가본드>와 <리얼>을 연재하는 중에 폐교를 하나 빌린다. 그리고 <슬램덩크>를 사랑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을 위해 전시회를 연다. 모든 교실의 칠판에 <슬램덩크> 그 후의 이야기를 분필로 그리는 일이었다. 나는 이 작업이야말로 자신의 작품에 대한, 그리고 독자의 사랑에 대한 가장 순수한 화답의 형태가 아닌가 생각한다.

만화란 생각과 시간으로 잉태되어 자기에 대한 믿음으로 키워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가 얼마나 고독한지 알아가면서, 꼭 그만큼씩 만들어지는 것이다. 만화의 선과 면은 작가의 고독과 고심과 땀의 결정체다. 만화 안에는 조형의 미와, 드로잉의 각축과, 연출의 들썩임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그 좁디좁은 사각의 칸막이 안에서 누리는 무한한 자유! 만화가들만이 누리는 열락인 것이다.

– 이정익(만화가, 극동대 애니메이션과 겸임교수, saintjk97@hanmail.net)

응답 2개

  1. 그저물처럼말하길

    리얼하면서도 코믹한 등장인물들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 만화였지요. 이노우에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어 좋습니다.

  2. admin말하길

    일본 광고가 한 편 생각나는 군요.
    이노우에가 엄청나게 큰, 자기보다 몇 배나 되는 크기의 그림을 그리는…

    슬램덩크 이후 사람들은 속편을 고대하지만, 베가본드를 보니 그건 독자들의 생각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노우에는 베가본드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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