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10호] <방문자>, 병역 거부자에게 구원받은 386운동권

- 기픈옹달(수유너머 R)

씨네꼼

<방문자>(2005): 병역 거부자에게 구원받은 386운동권

<방문자>(2005)는 <7급 공무원>으로 흥행배우 반열에 오른 강지환의 스크린 데뷰작이자, 같은 해 파키스탄 이주노동자와 촛불소녀의 사랑이라는 센세이셔널한 소재의 영화 <반두비>로 이름을 알린 신동일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신동일 감독은 <방문자>에 이어 두번째 작품 <나의 친구, 그의 아내>(2006)로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사회파 감독’이라는 칭호가 얻게 되었는데, 두편의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386운동권의 내재적 한계와 이를 돌파하기 위한 외부와의 접속을 모색하는 감독의 고민이 드러나 있다.

<방문자>는 한때 운동권이었다가 지금은 영화학 시간강사인 호준(김재록 분)이 욕실에 갇혀 발가벗은 채 탈진한 데서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낸다. 그가 갇힌 곳은 욕실만이 아니라 생명력을 잃은 386세대의 운동이념이며, 그가 벗은 것은 옷만이 아니라 그 이념의 외피이기도 하다. 비정규직이라서기보다는 교수가 못된 원한과 현실에 대한 불만과 불안, 자신에 대한 연민과 냉소로 뒤틀린 심사 때문에 이혼을 당한 호준은 정기적으로 봐주기로 한 아들과의 약속도 지키기 못한 채 자폐적인 세계에 갇혀 있다.

지하철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현실을 고발하는 선전물을 호의적으로 받아들고, 거부하는 옆 사람을 신경질적으로 째려보고, 합승 택시 안에서 부시를 찬양하는 중소기업 사장과 이념 논쟁을 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의로운 이념을 표출한다. 그가 정작 부정한 현실을 향해 던지는 저항의 표시는 짱돌대신 (부시와의 쇠고기 협상을 보도한) 조선일보에 성매매 여성과의 성관계로 방출된 정액이 묻은 휴지를 던지는 것과 반공 이데올로기의 상징 같은 ‘부부간첩단장비 은닉장소’ 표지판에 오줌줄기를 싸대는 것밖에 없다.

현실적인 토양을 잃어버린 진보이념의 탈진한 구현자인 호준을 욕실에서, 혹은 그 자폐적인 이념의 감옥에서 구해준 것은 ‘여호와의 증인’ 방문전도사 계상(강지환 분)이다. 일전에 호준한테 문전박대를 당한 계상은 호준에게서 자기 아버지의 말라비틀어진 신체와 원한에 찌든 영혼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계상의 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다 죽었다. 아버지의 뒤틀린 심신이 부끄러워 생전에 친구 한명 집으로 데려오지 못했던 계상은 아버지가 죽은 후 ‘전쟁 반대’와 ‘세계 평화’를 실천하기 위해 ‘여호와의 증인’이 된다. 지금 대학원에 다니는 계상은 더 이상 병역을 미룰 수 없어 ‘병역거부’를 결심하고 공판을 기다리는 중이다. 과외를 하던 집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지금까지 그런 종교를 숨기면서 가르쳤느냐”며 비양심적인 놈 소리를 듣게되자, 계상은 다시한번 자신의 평범한 삶이 ‘반드시 고해야만 하는 괴상한 신앙’으로 비쳐지는 현실에 괴로워한다.

욕실에 갇혀 쓰러져있다 때마침 나타난 계상의 구조로 살아난 호준은 자의식 강한 386지식인답게 자신을 전도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며 엄포부터 놓는다. 그러나 계상의 따뜻한 시선에 끌려 영화도 보고 술도 마시자며 계상을 자신의 외로운 삶에 끌어들인다. 영화관에서는 더 잘 보려고 남의 자리에 앉았다가 제자리로 가라는 직원과 되도 않는 예술영화 관람 문화와 융통성등을 논하며 쌈질을 해대고, 술집에서는 순대처럼 피 범벅인 것만 아니면 괜찮다며 자신의 신앙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계상 앞에 보란 듯이 돼지 껍데기를 안주삼아 권하고, 합승 택시에서는 꼴통 보수주의자와 꼴통을 부딪치며 싸워대고, 노래방에서는 저런 여자들도 먹고 살아야 한다며 도우미 아줌마를 불러 주무르며, 마치 자기 혼자만 타락하는 건 억울하다는 듯이 계상의 평화주의를 애써 꺾으려 위악을 떨어댄다. “너희들은 뭐가 그렇게 까다롭냐?” 라는 호준의 말에 계상은 답한다. “우리한테는 그런 게 까다롭지도, 복잡하지도 않아요. 그냥 평범한 삶인데…” 호준은 자신의 ‘비범한’ 이념이 통속적인 현실에 좌절한 것을 괴로워하는 데 반해 계상은 자신의 평범한 삶이 ‘비범한’ 이념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에 괴로워하는 것이다.

자신의 신념대로 못사는 죄의식 때문인지, 아니면 이념 따위는 팽개치고 보란 듯이 잘 살지도 못하는 무능력이 한심해선지, 잔뜩 뒤틀린 호준을 보며 계상은 화를 내지만, 그러면서도 왠지 불쌍한 사람을 혼자 있게 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그날까지 형과 함께 할 거라고” 말한다. 자신의 타락한 생활로 끌어들이는 데 실패한 호준은 계상의 고향집에 따라간다. 그곳에서 호준은 생일을 챙기지 않는 여호와의 증인 아들에게 생일상 미역국을 끓여 주고선 마음만 받고 먹지는 않는 아들을 이해하려는 속깊은 어머니를 만난다. 국가유공자 자식이라 4주간의 군사훈련만 받으면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는데도 병역 거부자가 되어 사회로부터의 추방을 자처한 아들의 신앙을 따뜻한 손길로 어루만져주는 계상의 어머니는, 운동권 아들 옥바라지하는 386세대의 꿈에 그리던 그 어머니를 닮았다.

더 이상 과거의 신념대로 살지 않는 호준은 어머니의 정성마저 거부하는 계상의 신앙을 향해 ‘도대체 너희들의 신앙에는 사람이 없다고 사람을 믿으라고, 사람이 믿음’이라고 쏘아댄다. 그건 운동권이었던 과거의 자신을 향한 공격이자 사람들로부터 도망친 현재의 자신에 대한 비난이다. 호준은 너무나 상투적으로 “이 사회의 부조리와 소외받는 사람들에 대해 무관심한” 여호와의 증인에 대해 “그래서 너희들이 왕따를 당하는 거라고” 비판한다. 그 비난의 말이 이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관심’만 있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그리고 사람들로부터의 왕따를 자처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비난의 말인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계상의 신념과 삶을 통해 과거의 잃어버린 자신을 발견한 호준은 계상 어머니와 함께 공판 법정에 참여한다. 계상은 최후 진술을 통해 “우리집, 내 아버지의 집에 친구들을 초대하기 위해” 전쟁을 반대하고 집총을 거부한다는 뜻을 밝힌다. “평화를 일구고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곧 현실이 될 것을 확신하기에” 자신은 4주간의 군사훈련 대신 1년 6개월의 징역을 달게 받겠다고 한다.

계상의 공판을 보고 나온 호준은 길거리에서 갑자기 구토를 한다. 마치 자기 속에 있는 원한과 죄의식의 응어리를 토해 내듯이. 다음 장면의 호준은 이전과는 완연히 달라져 있다. 냉소와 불만으로 퀭하던 눈빛은 평화를 되찾았고, 방탕과 자폐로 거무튀튀하던 낯빛은 생활인의 온기로 밝아졌다. 호준은 이제 자신의 아들과 즐겁게 놀 수 있게 되었고, 이웃집 아주머니의 이불을 함께 털 수 있게 되었다. 호준은 아들과 함께 계상을 면회하러 가서 “이제 내가 널 꺼내줄게.” 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오줌을 갈기던 부부간첩장비 은닉장소 표지판을 땅에 묻고 자분자분 밟는다. 그들 부부의 삶을 반공 이념의 표지판으로 재단하는 현실을 제사지내듯이. 그가 묻어버린 것은 비단 반공 이데올로기만이 아니라, 삶과 유리되어 삶을 지배하는 이념의 유령들이리라.

–  박정수(수유너머R)

응답 2개

  1. 담담말하길

    보고 싶었었는데 놓친 영화였는데..꼭 챙겨봐야 겠네요..평 잘 봤습니다^^

  2. 북극곰말하길

    영화 재밌을 거 같습니다. 저도 한 번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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