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10호] 검찰청 호송버스 타러가던 날

- 기픈옹달(수유너머 R)

검찰청 호송버스 타러가던 날

한국에서 병역거부 운동이 갓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 당시 활동가들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가이드북”이라는 것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병역거부에 대한 개념도 제대로 없던 시절, 병역거부를 고민하며 찾아오는 사람들을 상담하다보니 필요성이 제기되어서 만들게 된 소책자였습니다. 그 가이드북 안에는 입영영장이 나온 뒤 병역거부를 하고 나서의 일련의 사법절차들, 감옥에서의 생활에 관한 소개가 나와 있었습니다.

이 가이드북이 쓰인 것도 벌써 6년 전이다 보니 지금의 상황과는 또 약간씩 다른 부분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정치적 병역거부자들이 막 수감이 되던 시절에는 경찰 조사를 받고 나면 구속영장이 청구되어서 구속 상태로 재판을 맞이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법부에서 소수의견의 형태로나마 병역거부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결정이 나오고, 국회에서 대체복무 시행을 골자로 하는 병역법 개정안이 상정되면서 불구속상태에서 수사를 받는 병역거부자들의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가이드북을 찾는 이유 중에 하나는 수감생활을 예측가능한 영역으로 만들어서 미리 준비하려는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런데 상황이 막상 가이드북에 나온 대로 전개되지 않을 때에는 미리 예측하지 못 했기 때문에 오히려 힘들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불구속수사가 일반화되면서 이제 병역거부자들은 법정구속을 준비하는 것에 익숙해졌는데, 정작 선고 당일에 판사가 법정구속을 시키지 않겠다고 하면 적잖이 당황을 하게 되는 것이죠. 이날은 구속이 되겠거니 하고 일상을 대충 다 정리해 놓았고, 법정 들어가는 문 앞에서 친구들과 작별인사도 하고 눈물도 다 뺐는데, “피고에게 징역 1년 6월의 형을 선고한다. 다만 피고의 신변정리를 위해 법정구속을 하지는 않는다.”라는 말을 막상 들으면 온갖 복합적인 감정들이 몰려올 것 같습니다.

현민의 선고공판이 있던 날, 법정구속은 시키지 않겠다는 판사의 말을 들었을 때 제게 가장 먼저 들었던 느낌은 허탈함이었습니다. 현민이 어느 글에선가 말하기도 했지만, 한 사람이 20대 내내 힘겹게 붙들고 고민했던 군대문제가 판사의 말 한마디에 따라 ‘병역법 위반죄. 1년 6월형’으로 정리가 되고, 덤으로 ‘신변정리를 위한’ 약 일주일의 시간도 그렇게 손쉽게 생길 수 있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먼 곳에 있다고 생각했던 국가권력은 그렇게 판사의 말 한마디에 따라 쉬이 수행되고 있었고, 피고가 된 병역거부자는 각자가 지닌 다양한 병역거부 사유와 무관하게 다만 사법행정의 한 객체에 불과했던 것이지요.

현민이 항소신청기한인 일주일의 시간을 바깥에서 보내고 이제 호송버스를 타기 위해 검찰로 자진출두 하던 날의 제 기분은 앞서의 선고공판 날보다 더 착잡했습니다. 검찰청 건물 엘리베이터 앞에서 현민이를 올려보내고 나니 그 뒤로 며칠간 심란함과 우울함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현민이가 검찰의 담당 공무원과 미리 연락을 해서 약속시간으로 잡은 것은 ‘5시 40분 즈음’이었습니다. 담당 공무원이 6시에 퇴근을 하는데, 호송버스가 출발하기 직전에 올라타서 바로 수용시설로 이동하라는 일종의 호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판사가 신변정리를 하라면서 일주일의 시간을 준 것도, 검찰 공무원이 호송버스 안에서 덜 기다리라고 시간을 조정해준 것도 모두 고맙긴 한데, 저는 현행법 상 엄연한 범죄자가 된 병역거부자가 먼저 검찰에 연락해서 구속될 날짜를 약속하고 제 발로 호송버스를 타러 가는 상황이 자꾸만 연극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자 이제 연극은 끝났다고, 이 코미디 같은 상황을 끝내고 다시 현실로 돌아가자고 말하려는 그 순간에 현민이는 유리창이 까맣게 코팅이 된 호송버스를 타고 이제 정말로 떠나버렸습니다.

사실 이렇게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으로 가는 모습을 본 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전쟁없는세상”이란 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많은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으로 보냈고, 또 그들이 출소하여 다시 일상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봐왔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자신이 직접 병무청에 전화해서 자기를 고발해달라고 말하고, 경찰조사를 받고, 법정에 섰다가 마침내 감옥에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예측가능성’이라는 욕구를 좋아하긴 하는데, 제게 있어 ‘수감’은 제가 어떻게 조정해볼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 하나의 기정사실처럼만 여겨졌습니다. 제가 감옥에 간다는 사실은 예측이 너무 잘 된다는 점 때문에 스스로 힘들어 했던 것이죠. 저는 삶에서 재미가 중요하기에, 재미있게 살기위해서 변화를 좇고 싶은데 이 변화에 대한 꿈을 꿀 때마다 저를 가로막는 것은 제가 언젠가는 수감이 될 것이라는 자기규정이었습니다. 그럼 그까짓 거 눈 한번 꾹 감고 얼른 군대 다녀오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눈 한번 딱 감는 것이 잘 되지가 않아서 저는 2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 이렇게 슬럼프를 스스로 자초하며 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사회에서 병역거부를 선택한다는 것은 대안적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으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자신이 어떻게 살고 싶은지 또 뭘 하며 살고 싶은지에 대해 출발선에서부터 다시 고민을 시작하는 게 너무나 힘겨웠습니다. 그래서 그냥 이 문제로부터 마냥 도망쳐버리고 싶은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냥 도망친다고 이 힘겨운 상황이 사라지는 건 또 아니어서 이런 식으로 저는 주기적인 슬럼프를 겪어왔습니다. 끝없는 자학과 환멸, 자기분열 속에 궁상은 날로 늘어만 가는데 어쩌다 가끔씩 저를 두고 용감한 병역거부자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만나면 정말 손발이 오그라드는 걸 느낍니다.

현민이를 그렇게 감옥으로 보내고 나니 이제 수년간의 시뮬레이션은 끝났고 제 수감생활을 직접 맞닥뜨릴 차례만 남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엔 이 지긋지긋한 문제를 어서 털어버리고 나이 서른을 ‘자유’의 몸으로 맞고 싶은 욕구가 생겼습니다. 막상 또 감옥 들어간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바깥세상이 더 감옥 같다고도 하는데, 제가 출소하면 또 다시 ‘감옥’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라도 수감되기 전까지 더 ‘멋지게’ 사는 연습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병역거부가 주는 무거운 기운과 저의 과도한 진지함으로 인해 그간 제 인간관계의 폭이 많이 좁아졌단 생각도 들지만, 동시에 한편으론 병역거부를 고민해오는 과정에서 새로운 자극이 되는 관계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의 저는 이 ‘상시적 불안’의 시대를 병역거부와 수감이라는 화두를 통해 맞닥뜨렸다면, 이제는 다른 화두를 통해서도 고민해 보고 싶은 여유와 용기가 약간은 생긴 것 같습니다. 저의 병역거부 소견서에 어떤 말을 담을까 하는 고민은 이제 좀 내려놓고, 어떤 삶을 실제로 살 것인가를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한 것이죠. 쉽진 않을 이 고민의 여정에서 서로 자극이 되고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동지’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 날맹(전쟁없는세상 회원)

응답 3개

  1. 꼬챙이말하길

    승리에 매달려 패배감을 안고 사는 사람과 원치 않는 승리를 버리고
    새로이 시작하려는 사람의 삶 간에는 분명 다른 삶이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건승하시길!

  2. 채호박말하길

    죄송합니다. 위의 댓글에서 ‘민자당 당사를 점검’이 아니고 ‘민자당 당사를 점거’하러 갔었습니다. ^^

  3. 채호박말하길

    그냥 글만 읽는 사람입니다.

    님의 글을 읽으니, 옛날 생각이 납니다.

    그 당시 민자당 당사를 점검하기 위해 나서던 동기를 보내던 때가 말이죠.

    구체적 상황은 다르지만 마음은 짠해 집니다….

    건강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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