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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 총 안 쏘면 감옥 가는 세상

- 서동욱(수유너머R)

총 안 쏘면 감옥 가는 세상

현민형이 병역거부 선언을 했다. 예정대로라면 입대를 해야 하는 날, 그는 홍대 근처의 조그만 카페를 빌려 입대 대신 몇 명의 기자들과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들을 불러놓고 자신의 결심을 털어놨다. 얼마 전까지도 각종 차별과 배제에 반대하며 운동권에 몸 담아왔고, 더 좋은 삶을 만들어 보려고 공부도 열심히 하던 사람이었다. 열 장이나 되는 병역거부 선언서를 낭독하면서 그는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참지 못했다.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앞으로 겪어야 할 고난의 시간을 직감했을 터였다. 원래부터 취직이나 월급쟁이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막상 주민등록증에 빨간 줄이 그어진 채 제대로 된 직장도 못 구하게 될 것을 생각하니, 솔직히 두렵다면서 실없이 웃었다.

  사실 그가 정말로 두려운 것은 단지 취직을 못할 것이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차피 공부로 먹고 살려고 작정했을 것이니 취직이야 진작부터 예정에 없던 일이었을 터. 또 지인들 대부분이 취직하지 않은 채, 오히려 직업을 하나의 굴레로 보면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으니 딱히 고독함을 느낄 것도 없는 문제였다. 아마도 진짜 두려운 문제는 앞으로 감당하게 될 삶의 무게였을 것이다. 그의 표현을 각색해서 말하자면, 이제 그는 기득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정의의 이름으로 약자의 편에 서서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필요에 따라 그들과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기도 하면서 기득권을 챙기는, 소위 쿨하고 깔끔한 진보적 지식인이 아니게 되었다. 지금부터는 진짜 ‘약자’들, 진짜 ‘피해자’들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약자의 편이랍시고 투쟁해왔지만, 사실은 자신이 얼마나 기득권자였는지를, 그러면서도 기득권자가 아닌 척 했는지를 이번 결정을 하게 되면서 절실히 깨달았노라고 했다. 자신은 대단한 투사가 아니며, 지금 이 순간에도 그저 두려운 감정이 앞서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도 했다. 또 덧붙이기를, 선배 거부자들의 이력에 비추어봤을 때, 자신의 이력이나 심리상태는 어디를 보아도 열렬한 투사가 아니라며 어쩌면 그냥 나약하고 우울한 기질의 성향을 가진 20대 청년이 보이는 찌질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나는 이것보다 더 솔직한 말을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나 자신이 군대 경험자이면서, 그러므로 이 같은 결정을 내리며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팔짱을 끼고 건들거리며 얘기할 수 있는 기득권자이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 흔한 표현처럼 군대는 신성한 의무 같은 것이 전혀 아니며, 또 나는, 그리고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전혀 그러한 권리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언제 우리가 군대에 좋아서 갔던가? 그저 어쩔 수 없이 간 것이다. 안 가도 되는 것이었다면 평생 군대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을 것이다. 총 쏘고 폭탄 잘 던지는 연습 따위 때문에 뭣 하러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가! 군대에서 사명감을 느껴 투철한 모범정신으로 솔선수범하며 보냈느냐하면 그런 것도 아닐 것이다. 탱자탱자 놀아도 아무도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더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군대에 관한 어떤 경험을 들추어보아도 자발성이라거나 그 비스무리한 것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병역필이란 사실 하등의 자랑거리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한국 땅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쉽사리 병역거부를 한다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긴 하다. 당신이라면 어쩌겠는가? 나 역시 마찬가지다. 병역을 충실히 이행하느니 당당히 거부하는 것이 훨씬 더 값진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막상 병역거부라는 실천에는 고개를 저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거부 후에 겪게 될 고통이 두려워 차마 그런 선택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당장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은 관두고라도 내 자신조차 설득할 자신이 없다. 반면에, 그는 어머니보다 더 애정이 각별한 외할머니에게 이 사실을, 선언을 하는 지금까지도 알리지 못했다고 한다. 서로가 경험한 세상과 각자가 가진 언어의 간극을 극복할 방법을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그냥 속이기로 했다는 것이다.

 군대에서 2년 3개월씩이나 있었지만 군대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국가 안보가 어떻구 하는 뻔한 얘기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강제적인 군복무가 필요한지는 도무지 모르겠다. 육탄전이 의미 없는 현대의 전쟁에서 강제적으로 징집할 만큼 많은 수의 병사가 필요할까? 병사의 수를 줄이고 직업제로 바꾼다면 청년들의 취업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뿐더러 고질적인 악폐습의 병폐도 훨씬 완화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강제적인 군징집 제도를 확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적으로, 그리고 내가 정말로 꿈꾸는 대로 얘기하자면 군대라는 것은 존재 자체가 악이고 지금의 사회가 얼마나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 신호 자체라고 생각한다. 연예인들은 입대하면서 흔히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오겠다며 기자에게 늠름한 포즈를 취해보이곤 한다. 이러한 말이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일상화되고 당연한 듯이 여겨지는 것을 볼 때면, 권력이 얼마나 무섭게 작동하는지를 느끼며 소름이 돋는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총 들고 남을 죽이는 연습을 하는 곳이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는 곳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별다른 생각 없이 거의 세뇌되어서 그런 말을 내뱉는 것이 아닌지 자신에게 되물어봐야 할 것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우리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자동적으로 군복무와 신성함을 연결시키는 습관적인 사고방식은 단절되어야 한다. 군대는 온 국민에게 어쩔 수 없이 가는 곳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며, 이러한 생각이 공적인 영역으로도 확대되어야 한다. 그래서 권력자들조차도, 심지어는 국방부 장관과 참모총장들까지도 군대의 존재가 불쾌하며 군대라는 단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사회가 불완전하다는 표지라고 매스컴에서 발표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군대가 실제로 필요한지 아닌지의 여부를 떠나 하나의 권력 작동 기관으로, 대중들을 쉽게 다스릴 수 있는 통치 수단으로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

외국의 한 연구자는 현재 상태가 착취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쉬운 방법은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를 상상할 수 있는가를 자문해보고, 그럴 수 있다면 착취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강제적으로 군대에 가야하는 사회, 게다가 거기에 의문을 품는 것조차도 금지되어 있는 사회가 착취적인 사회가 아니면 무엇인지 궁금하다. 군대는 신성함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곳이다. 그런 곳은 없어져야 마땅하다. 총 안 쏘면 감옥가야 하는 세상에서 현민형이 선택한 길을 열렬히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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