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10호] 나는 왜 이렇게 너그럽지 못한가!

- 김융희

나는 왜 이렇게 너그럽지 못한가!

몸의 불편으로 며칠을 꼼짝없이 엎치락거리며 지냈다.
의사는 크게 우려할 중병이 아니라지만, 견디기엔 고통이 너무 크다.
거동이 불편하다보니, 먹고, 만나도 보고, 걷기도 하고,
여러 하고 싶은 것들이 많다.
마음껏 움직이면서 서슴없이 자유로웠스면 참 좋겠다.
보통때면 생각없이 잘 지낸 것들도 몸의 불편으로 할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마음이 먼저 안달이다.
육체적 통증도 고통스럽지만, 더 힘든건 마음의 고통이다.

가족들은 병원에라도 가보지 않는다며 성화이다.
그래서 어제는 명의를 찿아 천안까지 다녀왔다.
만나고 방문하며 보내야 하는 여러 약속들이 그립기도 하다.
누워만 있어선 안되는데…
아픔을 빙자해 안정을 빌미로 엄살이 지나친 건 아닌가?
억지로 움직이며 외출을 강행해 보았다.
조금 무리하여 꼼지락거리니 고통도 덜하고 기분도 좋아진다.

그동안 못했던 “싶었던 일들” 달콤한 외출꺼리를 궁리한다.
요즘 계속된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싸우나를 즐기니, 피로한 심신이
하늘을 나르듯 황홀한 기분은 콧노래라도 흥얼거리고 싶어진다.

육중한 체구의 아저씨가 칫솔질을 하면서 틀어논 수도전에서
뜨거운 물이 꽐꽐 소리를 내면서 계속 흘러 넘치고 있다.
쓰지도 않으면서 틀어논 수도전은 외면인 채, 그는 칫솔질만 열중이다.
나는 계속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있다.
곁에 분도 신경이 쓰이는지 수도전을 흘끔거리다 말고
나를 보면서 한심스럽다는 표정이다. 주위의 시선들이 모두
수도전에 쏠리는데도 그 아저씨는 팍팍 칫솔질만 열심이다.
물은 계속 흐르는데 칫솔질은 그칠 줄을 모른다.

언제까지 지켜만 보면서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아저씨, 흘러내린 물을 안쓰시면 수도전을 잠그지요.“
그러나 그는 못 들은 척, 아니 오히려 보란 듯
여유와 만용을 부리더니, 칫솔질을 마치자 나에게 큰소리로
“내 돈 내고 온 손님에게 무엇이기에 간섭이냐”며 시비이다.
오히려 내가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기고만장,
거친 행동은 주위의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계속 소란이다.
여러분께서 눈을 깜박이며 보내는 호의로 나는 위안을 삼았다.

화장실에서 아낌없는 화장지, 전기 손말림 소리, 버려진 오물들.
대중탕에서의 계속 흘린 수돗물, 거침없는 낭비와 소음, 무질서.
위험도 아랑곳 없이 차도에 내려 버스를 기다린 승객들.
유달리 이런 것들에 예민한, 그래서 오르는 격정을 참지 못하고
참견을 했던 나는, 그 때마다 불편했던 심기로 후회했었다.
목욕탕에서 오늘도 그냥 지나쳤어야 했다는 뉘우침이다.

공중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청소하는 아줌마가 뭉치화장지를 걸레대신 쓰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아줌마, 화장지를 물걸레로….” 소리쳤다.
“글쎄요. 나도 종이가 아까워 그런다오.”
내용인즉 휴지통 청소를 하면 쓰지도 않고 둘둘 말린 채 버려진
화장지를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 이렇게라도 쓰고 버린다는 것이다.
나의 성급한 참견으로 또 민망해 뉘우친다.

이런 일도 목격했었다. 주차장도 아닌 시내 중심 도로변에 고급
승용차들이 늘어서 있고 곁엔 주인을 기다리는 기사들이 모여 있다.
차내가 답답해선지 설치된 조경석에 걸터앉아 있는 기사도 눈에 띈다.
화들짝 갑자기 일어선 기사들이 제빨리 차에 오른다.
상전들의 모습이 비쳤나 보다. 무슨 비상시 전장터 같다.
그들이 떠나자 나비의 무리처럼 흰종이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조경석에 깔고 앉았던 사각 티슈들을 그냥 버려두어서 마침
세찬 바람에 날린 것이다. 오직 그들의 눈엔 상전만 보이나보다.

그래 어떻다는 말인가? 나의 너그럽지 못한 옹졸함일 뿐이다!

나와 무관한 일에 참견하는 나, 나는 왜 이렇게 너그럽지 못한가!
“자기와 무관한 일에 참견하는…..” 어디서 들어본 듯 싶은 말이다.
“지식인은 자신과 무관한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는 사람이다.”
장 폴 싸르트르가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했던 말이던가?
이렇게라도 인용함으로 의지하여 실속 없는 내가 위안을 삼고자 함이,
결코 내가 지식인이라는 뜻은 아니오니 오해없기를 간곡히 바람이다.

싸우나를 마치고 나오면서 조금전 시비를 했던 아저씨에게
“저 때문에 불쾌하셨다면 일진으로 돌리고 오늘도 즐거우세요”
정중히 인사했더니 쑥스러운 듯 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나도 또 아닌 후회를 경험삼아 오늘을 운수로 돌리자.
내내 지랄같던 날씨가 모처럼 오늘은 맑고 화창하다.

– 김융희

응답 2개

  1. 북극곰말하길

    오늘 하루를 생각하게 되는 글 잘 봤습니다.

  2. 장비말하길

    무관하다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을 자신의 일로 만드는 게
    사유하고자 하는 사람의 일이로군요.
    글 잘 봤습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