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이데이

[10호] 호모 루덴스

- 기픈옹달(수유너머 R)

어느 정신분석학자의 육아일기: 매이데이

호모 루덴스

매이 낳고 얼마 안 있어 아내가 해 준 얘기가 있다. 지금은 대학생이 된 아내의 조카가 지금의 매이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때 일이란다. 만두를 먹다가 속이 너무 매워 뱉어 버렸는데, 옆에 있던 어른들이 “다음부터, 얘, 앙꼬는 빼고 줘라”고 했다. 그 이후 그 조카는 모든 음식의 ‘앙꼬’는 먹지 않겠다고 했다. 호빵의 앙꼬는 물론, 김밥의 앙꼬도, 호두과자의 앙꼬도 달걀의 앙꼬도, 참외의 앙꼬도, 심지어 국과 밥 앞에서도 “앙꾸 안무(앙꼬 안먹어)”를 외쳤다고 한다. 모든 먹거리에는 ‘안’과 ‘밖’, 혹은 ‘속’과 ‘겉’이 있어서 안에 든 것은 먹을 게 못 된다는 확신을 고집했다는 것이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엄마가 잘해주면 단지 “엄마 좋아”라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꼭 옆에 있는 아빠는 싫다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어쩌다 “아빠 좋아”라고 말할 일이 있으면 옆에서 마루를 닦고 있던 애꿎은 할머니는 “함매(할머니) 미워”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는 것이다. 음식에 대한 기호나 사람에 대한 선호는 생물학적인 반응이 아니라 언어적 변별 체계에 의해 구성된다는 자크 라캉의 명제를 증명하는 것 같아서 흥미로웠다.

아이들은 ‘놀이’의 세계에 산다. ‘안’(속)과 ‘밖’(겉), ‘좋아’와 ‘미워’라는 이항 대립을 놀이의 규칙처럼 즐기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놀이 같다. 속이 있으면 겉이 있다? ‘좋아’가 있으면 ‘미워’가 있다? 속은 싫고 겉은 좋다? 음, 재미있는데….

매이 밥 먹일 때 보면 안다. 배가 무지 고플 때는 몰라도, 대부분은 놀이판이 벌어져야 먹는다. 어린이집에서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는데, 그건 선생님과 아이들이 식사를 놀이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엄마 아빠 모두 참여하여 ‘식사놀이’를 하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잘 안 먹는다. 연구실에서는 같은 또래의 ‘린’이나 한 살 위의 ‘유나’와 경쟁을 붙여가며 먹기놀이를 하곤 했는데, 집에서는 그럴 또래가 없다. 한두 번은 ‘몽이’를 참여시켜서 “이거, 몽이 준다.” 하면, 안 된다며 뺏기기 전에 날름 먹었는데, 약발이 떨어져 이제는 그냥 몽이 주란다. 몽이는 자기와 동일한 놀이 상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탓이다.


매이의 놀이

놀이의 즐거움은 규칙의 반복에서 온다. 장기 규칙이 매번 바뀐다고 생각해 보라. 숨바꼭질 규칙이 매번 바뀐다면? 아이들은 놀이가 지겨워질 때까지는 그 놀이의 규칙을 지겹도록 반복한다. 매이의 십팔번은 ‘곰 세 마리’이다. 덕분에 나도 지겹도록 불렀다. 지겨워선지, 가사가 불온하게 느껴졌다. 왜 꼭 아빠곰은 뚱뚱하고 엄마곰은 날씬해야 돼? 안 귀여운 아기곰도 있잖아? 부르주아 핵가족의 전형적 이미지를 주입시키는 것 같다. 그런데 한강 시민공원에 놀러가 보고는 아, 정말 그런 ‘곰 세 마리’ 가족이 많다는 걸 알았다. 아빠는 뚱뚱하고, 엄마는 날씬하고, 애기는 정말 귀여운 가족이 행복한 중산층 가족의 신체 이미지였다. 좀 깨주고 싶었다. 그래서 가사를 바꿔서 불렀다.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아빠곰 엄마곰 애기곰. 아빠곰은 날씬해, 엄마곰은 뚱뚱해, 애기곰은 울보쟁이래” 라고 하려고 했는데, “아빠곰은 날씬해” 라는 대목에서부터 검열이 들어왔다. “아빠곰은 뚱뚱해” 란다. 날씬할 수도 있다고 해도 “아니야. 뚱뚱해야. 엄마, 아빠곰은 뚱뚱하지?” 라며 지원군까지 끌어들인다. 하지만 지원군이 배신했다. 아내는 자기가 불러주겠다며, “아빠 곰은, 띠리리띠리리(영구 버전으로), 엄마곰은, 음~괜찮타~(개콘 버전)….” 엄마의 ‘생쑈’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매이가 시무룩해졌다. 그 이후로는 ‘곰 세 마리’ 노래를 잘 안 부른다. 매이의 놀이를 산통 깨고 나니 통쾌하면서도 미안했다.

그런 경우가 또 있다. 동화책에는 웬놈의 왕자와 공주가 그리도 많은지, 신데렐라, 백설공주, 인어공주, 숲속의 잠자는 공주, 개구리 왕자….지겹고 짜증이 나서, 각색해서 읽어줬다. “옛날에 백설이가 살았어요….지나가던 나무꾼이 뽀뽀를 해주었더니….” 뭐 이렇게. 하지만 매이는 나의 각색을 결연히 거부했다. 한사코 백설공주여야 하고 반드시 왕자님이 뽀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작전을 바꿔 왕자와 공주가 민주공화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왕정제의 ‘신분’이 아니라, 고유명사인 것처럼 읽었다. “옛날에 ‘공주’라는 여자 애가 살았는데…얘, 공주야!…그래서 공주는…‘왕자’라는 남자와 잘 살았대….” 뭐 이렇게. 그러자 매이는 어리둥절하더니, “아니야. 공주님이야. 엄마 공주님이지?” 한다. 만만치 않다. 아내는 “아이일수록 창의적인 게 아니라 교조적인 게 아닐까”하고 심각하게 반문한다. 글쎄…


기도놀이

매이의 놀이 중 동참하기 힘든 것 중 하나가 기도놀이이다. 매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교회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식사기도를 한다. 또 일요일마다 내가 돈 벌러 바깥에 있는 동안 아내는 그 교회 유아부에 간다. 또래 아이들과 넓은 마룻바닥에서 뛰어 놀 수도 있고 무엇보다 괜찮은 점심을 얻어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매이는 자기를 무척이나 귀여워하시는 전도사님과 함께 기도하고 멋진 예복을 입고서 헌금함을 들고 서 있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 와서도 밥이나 케잌이나 과일을 먹을 때마다 기도를 해야 한다며 눈을 감고 기도송을 부른다. 처음엔 흉내를 내주었는데, 양심에 거리껴, 집에서는 안 해도 된다며 설득했다. 매이도 기도놀이의 때와 장소를 이해했는지 지금은 어린이집(교회)과 우리집에서의 이중 플레이에 적응했다.

앞으로 매이에게는 무수히 많은 놀이가 펼쳐질 것이다. 컴퓨터놀이, 학교놀이, 경쟁놀이, 입시놀이, 공동체놀이, 사랑놀이, 스타놀이, 저항놀이, 복종놀이, 탈주놀이….그 삶의 놀이들 중에는 내가 권장하는 놀이도 있을 테고 흥을 깨고 싶은 놀이도 있을 것이고 엄마 하고만 편먹는 놀이도 있겠고, 모두 함께 하는 놀이도 있을 거다. 또 오직 매이 혼자만 해야 하는 고독한 놀이도 있겠지. 매이는 그 놀이의 규칙들을 즐기고 의심하고 폐기하면서 스스로 한뼘씩 자라날 것이다.

오늘도 매이는 아내와 욕조 안에서 “떡 하나 주면 안잡아 먹지~” 로 시작해 “해와 달이 되었답니다. 끝!”으로 끝나는 놀이를 역할 바꿔 서너번은 하고서야 밖으로 나온다. 아내는 지겨워서 죽으려는 표정이다.

– 매이 아빠

응답 2개

  1. 북극곰말하길

    ㅋㅋㅋㅋㅋㅋㅋ 잘 봤습니다. 매이는 정말 행복할 거 같아요~^_^

  2. 김상미말하길

    ㅎㅎ 우리집 아이들은 가차없이 “아빠 곰은 날씬해 엄마 곰은 뚱뚱해”라고 했었어요. 자기네 엄마곰 생각하면 절로 뚱뚱해가 나오는 거 같던데 ㅋㅋ (제가 몸이 한창 불어 있을 때라…)
    매이 자라는 이야기 잼나게 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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