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 새긴 이야기

[11호] ‘천지위만물육’, 강물은 흘러야 한다.

- 향산 고윤숙(香山 高允淑) (수유너머 길 / 청구금석문연구소 연구원)

‘천지위만물육’, 강물은 흘러야 한다.

<천지위만물육(天地位萬物育)> 香山刻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치중화 천지위언 만물육언

중과 화를 극진히 하면 천지가 제자리에 안정되며 만물이 생육되느니라.

치수(致水)는 고대 사회로부터 공동체의 생사존망을 가르는 매우 중요한 지도자의 책무 중의 하나였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거나 가뭄이 드는 등의 자연적 현상 또한 이러한 지도자의 덕에 따라 달리 변할 수 있다고 믿을 정도였다. 그만큼, 백성들이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좌우하는 ‘물’을 다스리는 일이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의 능력을 가늠하는 매우 기본적인 것이다. 물을 제대로 다스리는 것은 그 물이 흘러야 할 곳에 흘러 갖가지 생물과 사람들이 먹고 살 곡식을 자라게 하고, 몸을 씻고 갈증을 제 때 해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4대강 사업’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지지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한 일간지에 따르면, 지난 1월 22일 마산창원진해환경운동연합(마창진 환경연)이 4대강 정비사업 가운데 낙동강 18공구 함안보 공사 현장과 양산1지구 하천정비사업 현장에서 대규모 오니(오염 물질이 포함된 진흙)층이 발견됐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고 한다. 오니가 확인된 구간의 준설공사가 일시 중단됐다. 학계와 환경단체 등은 “중금속이 함유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준설작업을 계속하면 수질 오염 등이 우려된다”며 정밀조사 및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21일에는 낙동강지키기 부산·경남·대구운동본부 회원 등이 달성보 공사 현장에서 실태조사를 벌여 가물막이 구덩이에서 대규모 오니층을 발견했다. 잇따른 오니층 발견으로 함안보와 달성보, 양산1지구가 위치한 물금읍까지 준설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오니(汚泥-슬러지sludge)는 오염 물질을 포함한 진흙으로, 하천이나 호수 바닥의 퇴적된 흙이다. 정화조에서 걸러지지 않은 공장폐수나 축사 등에서 나온 폐수 등이 하천으로 흘러들어가 쌓인 퇴적층이다. 이 오니층은 상당한 중금속을 함유하고 있어 지역주민의 건강과 환경에 치명적인 퇴적층이다. 이 오니층을 제거하자면 4대강 예산을 다시 짜야할 정도로 엄청난 예산이 소요된다고 한다.

산을 깎고 간척지를 메우고, 물길을 변경하는 것이 전지를 제자리에 안정되게 하는 것에 얼마나 어그러짐이 있는 지를 신중하게 살펴야만, 만물의 생육이 가능할 것이다. 강물은 마땅히 흐를 곳으로 흘러야 한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생산된 부가 마땅히 흘러야 할 곳으로 유통되어야 하는 것과 유사하다. 피가 돌아야 할 혈관으로 제 때 돌지 않으면 사람은 당장 죽거나 의식불명의 존재가 될 것이다. 사회적으로 생산된 부가 어느 한 곳에만 독점적으로 축적되어 있다면 고혈압이나 심장질환 등으로 쓰러지는 인간처럼, 그 공동체는 병들고 말 것이다. 물이 제대로 흐를 곳으로 흐르지 못한다면, 서서히 그 땅과 생물들의 생장이 저해되고 오염물질이 쌓인 신체는 병들어 갈 것이다.

치(致)는 미루어서 극진히 하는 것이다. 위(位)라는 것은 그 곳에 편안한 것이다. 육(育)이라는 것은 그 삶을 이루는 것이다. 자연의 생물 모두를 살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무서운 위력으로 휩쓸고 가기도 하는 ‘물’에 대하여, 다스린다는 것은 우선 그것을 경계하고 두려워함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강바닥을 파헤치고, 물길을 인위적으로 조성하는 것이 과연 자연이 더욱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인지에 대하여 더욱 겸손하게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갖가지 중장비를 동원하여, 당장 저항의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우리나라의 주요한 4대강을 저토록 훼손한다면, 어찌 사사로운 이익을 위한 편벽된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만물의 생육을 위하여, 천지가 제 자리에서 편안할 수 있도록, 강물은 흘러야 한다. 천지의 제 자리가 뒤바뀌도록 강을 파헤치고 오염시키는 중장비들의 소음은 멈추어야만 한다.

篆刻 돋보기: 서압인(署押印)

서압은 화압(花押)이라고도 한다. 옛 사람들이 승락한 증표로 서명한 것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육조시대(六朝時代) 사람들의 것에 봉미서(鳳尾書)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화서(花書)라고도 한다. 서압인은 후세 사람들이 그것을 인(印)의 문자로서 채택한 것으로, 송대(宋代)가 되어서 유행하였다.

주밀(周密)의 <발행잡식(發幸雜識)>에서 ‘옛날 사람들이 서명한 것을 화압인이라고 하는바, 이것은 성명의 문자를 약간 흘려서 쓰는 것으로 당대(唐代)의 위섭(韋涉)이 ’섭(涉)‘이라고 서명하면 오색 구름이 내려온 것과 같았다고 해서 오운체(五雲體)라고 불리우게 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라고 하였다.

<원대관용(元代官用)의 압자(押字)> / <명대(明代) 주유검(朱由檢-崇禎帝)의 압자>

원대(元代)의 서압인에는 장방형(長方刑)으로 만든 것이 많다. 위에는 해서(楷書)로 성(姓)의 문자를 각하고 아래에는 서압의 문자를 각한 것이 있다. 또 서압형의 문자와 몽공문자(원대의 국서)를 함께 각한 것, 몽고문자만을 각한 것, 또는 위에는 몽고문자를 각하고 아래에는 서압형의 문자를 각한 것 등이 있다. 모두 보통 원압(元押)이라고 불린다.

관련자료

또 인의 중앙에 직선을 넣어 둘로 나누고 고대(古代)의 부절(符節)과 같이한 것이 있으니 합동인(合同印)이라고 한다. 이것도 몽고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대부분은 쌍방에서 나누어 가지고 있다가, 틀림없이 진짜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맞추어 볼 때 사용하는 것이다.

– 향산 고윤숙(香山 高允淑) (수유너머 길 / 청구금석문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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