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11호] 젊음이 부럽다. 젊은이가 좋다.

- 김융희

젊음이 부럽다. 젊은이가 좋다.

수유너머의 다방면에 걸친 다양한 프로그램들, 드디어 노령층에게도 함께
공부할 수 있는 강좌가 개설되었다. 이름하여 6080세대를 위한 고전학교.
지난 18일로 제4기를 성황리에 끝내고 제5기가 4월 8일부터 시작된다.

제4기에서는 조선 후기의 실학파들, 연암 박지원. 담헌 홍대용. 청장관 이덕무.
이옥. 초정 박제가의 소품문을 채운선생의 열강으로 공부, 드디어 종강 리포트를
제출하고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그림 감상으로 즐거운 강좌를 마쳤다.

소품중 박제가 소전을 읽으면서, 이번 강좌의 종강 에세이로 “각자 소전”
쓰기를 정해 주었다. 평생을 함께 해온 자기의 소전쓰기임에 별로 부담 없으리라
대수롭잖게 여겼는데 막상 써야겠다고 생각하니 아닌 쓸거리가 막연부지이다.

수유너머의 강도 높은 공부방, 강좌에 참석하는 이는 누구나 따라야하는
철저함, 초등학생들의 수업 진행도 고전을 암송하며 암기와 쓰기가 기본이다.
외우고 돌아서면 깜깜이요, 안일과 평안만이 몸에 벤 노인들의 고집이라니,
쓰고 외우는 것만은 제발 아니라며 한사코 설레질인 6080에게도 물론 예외는
인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엔 반발도 심했지만, 암기로 어물거리며 떠듬거린
입술도 진행을 거듭하면서 결국엔 자연스럽게 따라 익숙으로 변해갔다.

이런 분위기에서 몸의 불편을 핑계로 나는 마땅찮은 에세이 쓰기를 슬적
넘기긴 했지만 도대체가 계속 깨름하고 채운선생께도 면목이 없다.
그래, 이제라도 채운선생께 체면도 세우고 나의 마음에 거리낌도 줄일 수 있는
나의 소전 쓰기를 생각하자. 좋은 화제를 찿아 보지만, 쓰기는 써야겠는데
쉽게 쓸거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외우고 쓰는 부담이 스트레스이라며
불평이었던 6080의 동료 할머니가 문득 떠오른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딱 잡히는 마땅한 자랑거리가 없다.
남들에게 썩 인정받지 못한 나의 일상사에서 익숙한 나만의 남다름은 없을까?
젊음이 있어 그들과 늘 함께 할 수 있는 일상을 나는 늘 감사하며 살고 있다.
“나의 주변엔 항상 젊은이들이 있다.”를 화두로 소전을 쓰기로 하자. 그럼
변명같은 나의 사설을 들으며 여러분들의 현명한 고견을 바라는 마음이다.

내 삶에 있어 수유너머의 존재, 내 아들은 그것을 “나의 생에 있어 한 사건”이라
했다. 나도 그의 표현을 결코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동안 십여 년의 꾸준한 년륜도 그러려니와 삶에 큰 한 부분을 차지해 오고있는
나에 대한 수유너머의 비중을 고려하면 전혀 과장없는 적절한 표현으로 믿고 싶다.
나는 어쩐지 수유너머의 분위기가 좋다. 연구실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젊은 내 동료들을 보면 마음에 뿌듯한 기운이 인다. 이 은근함의 행복감,
그것 뿐 어떤 특별한 이유도 없다. 격의없이 대해주는 연구실의 많은 젊은
내 동료 벗들, 그들과 더불어 누리는 호사가 늘 자랑스럽다.

공동체 안에서 신앙인끼리의 교제는 교우에게 매우 중요한 의무이기도 하다.
그 활동조직으로 우리 교회는 “에이지 그룹”이다. 년령에 대한 관념이 철저한
우리 사회, 더구나 경직된 교회에서 에이지 중심의 조직은 다른 분위기의
횡적관계가 좀처럼 어렵다. 이런 분위기에서 서열을 넘어 격의 없이 아주
가깝게 지내는 동료들이 있어 나는 교회생활이 늘 즐겁다.
다양한 년령의 4070인 내 동료 교우들, 여기서도 나는 최고참이다.
우리는 시 때 없이 누구랄 것도 없이 누구나 부르면 부담감 없이 자리를
같이해 함께 먹고 마시며 환담이다. 그 분위기는 전혀 격의없는 처신의
그 자유스러움이라니!

신앙이 같음 좋은 것, 그러나 서로 다른 신앙의 교제도 뜻있는 교제이다.
항상 나를 포근하게 해주는 신심 좋은 조계사의 몇 거사와 보살 동료들,
그들은 폭넓은 이해와 포용으로 내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벗들이다.
특히 영화평을 쓰며 프리랜서인 보살 동료, 그는 내가 잊을만 하면
명화를 추천하며 관람후엔 막걸리 파티로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곤 하는
그가 있어 한결 나의 삶에 풍요로움을 안겨준 아주 소중한 벗이다.
항상 알뜰하게 대해준 그를 생각하면 나는 늘 감사하면서도 미안하다.

이렇게 나열하다 보니 꼭 젊음을 꾸며 만든 것 같은 어색함도 느끼며,
젊은 동료들과의 교제가 결코 우연이 아닌 필연이란 생각도 하게 된다.
육 칠십 대의 노년들로 출발했던 “6080을 위한 고전학교”도 젊은이들이
점점 늘어나더이, 제4기에서는 1070인 채 그것도 3050이 대부분이었다.
이처럼 나는 젊은이들과 함께 한 늘 젊음의 중심에 서게 된다.
내 본의와 전혀 무관한 이같은 젊은이들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동료들의 모임에서 듣는 이야기이다. 벌써 은퇴할 나이임에도 아직
직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친구의 말인즉, 젊은이들이 함께 끼워주지를 않아
속상하다는 탄식이다. 직장내 젊은이들과 어울리고 싶어 몇 차례씩이나
눈치 보지 않고 그들의 모임에 참석하며 열심히 경비도 부담해 보았지만
도대체가 반기기는 커녕 노골적으로 피하기까지 한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요즘 젊은이들의 심사를 당연지사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일치된 의견이다.

정말로 나이 듦으로 젊은이들과는 전혀 못 어울리는 걸까?
갑자기 내 동료들을 실컷 자랑하고 싶다. 그러나 참자. 기죽은 표정들이
측은하며 분위기가 너무 심각하다. 어쩐지 나도 자꾸만 어색해 진다.

이것이 나의 소전 쓰기란 말인가? 도무지 몰겠다.
오늘은 이처럼 횡설 수설로 끝내자. 체면 없이…… _()_

– 김융희

응답 4개

  1. 연초록말하길

    57년생인 저도 처음 수유R에서 진행하는 자본세미나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고민이

    되더군요.혼자서 너무 나이가 많아서 어울리기 힘든 분위기라면 어떻게 하지? 멀리 일산에서

    여기까지 와서 공부도 공부이지만 그런 벽을 느낀다면 일부러 낸 시간이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일꼬?

    그러다가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앞으로 점점 나이를 먹게 되는데 여기서 걸리면 앞으로 나가기

    어렵지 않을까 하고요.덕분에 자본세미나 끝나고 루니에서도 함께 하고 있는 중인데요

    이제 제게도 젊은 동료들이 조금씩 생기고,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게 되네요.그리고 이 곳에서

    보내는 월요일 하루로 인해 한 주일의 삶이 더 탄력을 받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런 즐거움때문에 저도 루니에,그리고 수유공간너머에 좋은 선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생기곤 하는 것을 보니 참 신기하다 소리가 절로 나오곤 한답니다.

  2. 사나운 대지를 달리는 말말하길

    선생님 동료들이 확~ 만나고 싶어지네요!!
    막 친구하고 싶어요!!
    왜 한번도 친구할 수 있다는 생각 못 했나 몰라요~
    글 통해서라도 종종 자랑해 주세요 ^

  3. sros23말하길

    으하하하! 마지막 문장이 압권입니다. 으흐흐. _()_ 이런 표정이시라니 ㅎㅎ

  4. 쿠카라차말하길

    샘, 올해도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선배님께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다. 조만간 연천에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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