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이데이

착한 마녀 나쁜 마녀

- 기픈옹달(수유너머 R)

어느 정신분석학자의 육아일기: 매이데이

착한 마녀 나쁜 마녀

아기는 자고 있을 때가 제일 예쁘다고들 한다. 울고 떼쓰고 귀찮게 하지 않아서 그런가 했는데, 정말 자는 모습이 제일 예쁘다. 방글방글 웃거나 애교부릴 때도 예쁘긴 하지만 순전히 미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자고 있을 때가 더 예쁜 것 같다. 꼭 아기만 그런 건 아니다. 속눈썹을 드리우고 입술을 옴작거리며 평온히 자는 사람의 얼굴은 이상하게 아름다움의 감각중추를 자극한다. 동화책 속의 왕자들이 처음 본 공주들에게 반해 입을 맞추는 것은 아마 그녀들이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아침 햇살이 비춘 매이의 복숭아 빛 감도는 얼굴은 더 예쁘다. 하지만 나는 동화 속 왕자들처럼 입맞춤을 하는 대신 과부 보쌈하는 홀아비처럼 잠든 매이를 들쳐 매고 도망치듯 나온다. 기저귀 위에 팬티를 덧입히고, 아래 위 내의와 양말, 바지와 윗도리, 외투를 다 입히는 동안에도 매이는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잠결에도 허리를 들어주고 소매 바깥으로 손을 빼는 등 옷 입히는 걸 도와주지만 그래도 눈은 뜨지 않는다. 그렇게 잠든 매이를 들쳐 안고 가방 챙겨 어린이집에 간다. 잠든 매이를 선생님에게 인계하고 나면 그때부터 나와 아내의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잠자는 매이 & 학교는 피곤해

생후 10개월부터 어린이 집에 다녔으니 매이에게 어린이 집은 또 하나의 우리 집이다. 좀 더 크고 ‘자아’가 생긴 후에 어린이 집에 온 아이들은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 안 간다고 떼쓰기도 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고생한다고 하지만 매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젖먹이 때부터 다녀서 그런지 그런 적응기간이 필요 없었다.

매이를 어린이 집에 보낼 생각을 했을 때 마침 우리 집에서 10m 정도 떨어진 영주 어린이집이 문을 열었다. 다른 곳은 볼 생각도 안하고 처음으로 방문한 그곳을 택한 이유는 매이를 맡아줄 선생님 때문이었다. 군에 입대할 자녀를 둔 그분은 첫눈에 봐도 ‘아, 나도 저분한테 보살핌을 받고 싶다’고 느낄 정도로 따스한 미소와 명랑한 성품을 가진 분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서 그런지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구석도 있다. 가끔씩 소녀같은 표정으로 매이와 장난치는 모습을 보면 귀엽다는 생각마저 드는 분이다.

별반(0세 반)에는 매이보다 세 달 늦게 태어난 (혜진이의 딸) ‘윤서’와 그보다 한 달이 더 어린 ‘이주’ 그리고 매이가 있었다. 1년 후 ‘윤서’는 어린이 집을 옮겼고, 매이와 ‘이주’는 3년째 함께 어린이 집을 다니고 있다. 3년 남짓한 매이의 생애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함꼐 보낸 ‘이주’는 당연히 매이의 ‘베프(베스트 프랜드)’이다. 엄마 젖을 빨다가도 나와 아내가 나누는 대화 (가령 “이주노동자 방송의 미누 말이야”)속에 ‘이주’라는 단어가 들어있으면 어김없이 “이주? 매이, 이주 좋아하는데?” 라고 끼어들 정도이다. 매이도 어렸지만 ‘이주’가 별반에 왔을 땐 아직 기지도 앉지도 못하는 아가였다. 6개월 된 ‘이주’는 내복만 입고 담요에 싸인 채 등원하여 선생님이 타서 물려주는 젖병을 빨며 잠들었다. 그에 비하면 매이는 앉아서 장난감을 만지기도 하고, 벽을 짚고 서서 창문너머를 기웃거리기도 하는 터라, 아내와 나는 너무 어린 아이를 떼어놓는게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을 덜 수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먹이고 재우고 똥 기저귀 갈아주고, 아플 땐 약 먹이고, 장난감과 동화책으로 놀아주고, 제 때에 대소변 가리기까지 훈련시켜준 ‘주’ 선생님은 아이들의 또 다른 엄마였다. 아이들 뺨에 얼굴을 부비며 “우리 딸랑구” 라고 할 때 ‘어째서 자기 딸이야?’ 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우리보다 매이를 더 잘 알고 더 많은 시간 함께 하고 더 많은 걸 가르쳐 주셨으니 충분히 “우리 딸랑구” 할 만하다.

딸랑구들과 착한 마녀

일년이 지난 후 별반을 떠나 조금 더 큰 아이들 반인 ‘달반’으로 보내는 날, 그 분 눈자위가 붉어지는 걸 보았다. 같은 어린이집에 있지만 그래도 똥 기저귀 정을 떼고, 새 담임선생님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이전처럼 살갑게 대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아침에 잠든 매이를 새 담임선생님 품에 안길 때나 저녁에 새 담임선생님과 작별 뽀뽀를 나눌 때 별반 창문으로 그리운 시선을 보내며 매이를 쳐다보시던 주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정서적인 채무감이 없다. 주선생님과 안 떨어지려고 하면 어쩌나 했는데, 기우였다. 매이는 새 담임선생님과 너무나 빨리 친해졌다. 반을 바꾸고 이틀 후 매이 선생님 누구야? 했을 때 매이는 망설임 없이 새 담임선생님을 가리켰다. 주선생님은 매이의 그런 놀라운 적응력이 못내 섭섭한 눈치였다.

달반의 ‘최’ 선생님의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40대 중반쯤의 꽤 도시적인 인상이었는데 어린이 집 교사 생활이 얼마 되지 않은 분이셨다. 매이를 데려다 줄 때나 데리고 올 때 그분은 매이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매이의 부모인 나에게 더 신경 쓰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분의 시선이 부모를 향할수록 나는 그분의 아이에 대한 애정을 의심했다. 아내와 얘기할 때 나는 최선생님을 ‘팥쥐 엄마’라고 불렀다. 그에 반해 별반의 주선생님은 ‘신데렐라’의 착한 마녀라고 할까? 나는 매이보다 더 어린애 같은 선입관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두어달이 지난 후부터 뭔가 다른 느낌을 받았다. 최선생님의 시선이 매이에게 집중되고 그분의 표정과 말투가 점점 ‘착한 마녀’ 쪽에 가까워졌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처음의 나쁜 마녀 같은 인상은 그분의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그분의 미숙함에서 비롯된 것임을. 아이들과의 관계가 친밀해지고 그에 따라 돌봄 능력이 커지자 최선생님은 ‘착한 마녀’가 되었다. 며칠 후 최선생님이 알림장에 매이가 너무 잘 적응해줘서 자기가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고맙다고 적어 보내셨다. 매이는 이미 그걸 알고 있었을까? 사람의 성품은 도덕성이 아니라 관계의 능력에 따른다는 걸. 좀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것이 자신에게도 좋다는 사실을.

나쁜 마녀와 어린이집 소풍을

– 매이 아빠

응답 2개

  1. 달맞이말하길

    메이 웃는 모습을 보니 누구라도 착한 마녀가 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네요. 아이들이 미소는 참 매력적이에요. 사람의 성품이 도덕성이 아니라 관계의 능력에 따른다는 말도 너무 멋지고요!

  2. 애독자말하길

    그러게 말입니다. 사람들이랑 지내는게 한창 힘들 때, 메이 얼굴이나 보고 웃으려는 마음에 글을 읽었는데, 뜻하지 않게 위로를 받았습니다. 꼴도 보기 싫다는 생각 수십번 들지만, 좀 느긋하게 생각해야 겠습니다. 늘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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