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창간호] 나는 이 책이 좀 맘에 들지 않았다

- 편집자

김풍기 저,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를 읽고

나는 이 책이 좀 맘에 들지 않았다

– 일처리가 더뎌져 약속시간에 늦을 듯하다. 서둘러 지하철을 탔다. 갈아탈 부평역까지는 얼마를 더 가야 한다. 책을 폈다.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 요모조모 생각하며 그제부터 들고 있다. 주머니에서 연필을 꺼내 줄을 치고, 메모도 했다. 그래, 서산대사는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의 후원을 받은 보우가 등장하여 실시했던 승과(僧科)에서 수석 합격했었지. 그런데 <선가귀감(禪家龜鑑)> 번역이 진작 나왔구나 …. 사야지. 표시. ‘부평구청역입니다’. 어! 문학경기장역에서 부평역까지 사이에 부평구청역은 없는데 … . 아차, 지났구나! 후다닥! 이미 늦은 약속이 더 늦어버렸다. 그래서 이 책이 좀 맘에 들지 않았다.

– 이 책은 조선 사람들이 읽었던 책을, 소설, 시문(詩文), 서당, 불교, 중국 서적 등에서 다섯 부문으로 분류하여 소개하고 그 책에 얽힌 역사와 사연을 풀어내고 있다. 다섯 부문으로 나누기는 했지만, 딱히 분류가 정합성을 띠고 있지는 않다. 원래 분류의 필요성은 세상 사물이 분류되기 어렵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데 제대로 분류된 분류는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 묘계질서(妙契疾書), 책을 읽다가 뭔가가 저자의 생각과 맞아 떨어지거나, 계발을 받거나, 다른 생각이 나거나, 불만스럽거나, 해서 얼른 어디다가 적어놓는 일을 말한다. 책 읽는 재미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별로 그럴 필요가 없다. 이 책의 장처는 다른 데 있다.

– 이 책 자체가 자료집이자 참고서이다. 그래서 묘계질서의 여지는 적으나, 책꽂이 가까운 데 두면 좋겠다. 예를 들자면 <계몽편언해(啓蒙篇諺解)>라는 책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서당에서 <계몽편언해>가 가장 널리 읽혔다는 사실은 대부분 모르지 않았을까?

– 분과학문체계가 내면화된 오늘날 한국의 연구자들 중, 문학을 하는 연구자들은 역사나 철학을 전공하는 연구자를 우습게보기도 하고, 역으로 역사 전공하는 연구자들은 문학이나 철학을 전공하는 연구자를 우습게보기도 하는 이상한 습속이 있다. 그러나 이런 습속이 아무런 근거가 없음은 물론이다. 이 책 역시 이런 습속이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굳이 덧붙이자면, 나는 역사학자로서 이 책을 고맙게 읽었다.

– 나는 글을 편하게 쓰는 필자를 좋아한다. 내가 까칠하게 쓰기 때문이다. 잘난 척하는 사람은 남이 잘난 척하는 꼴을 못 보듯이, 까칠한 사람은 까칠한 사람을 싫어한다. 그래서 세상은 살게 마련이다. 내내 편히 읽었다. 그 편안함은 필자가 믿음이 가는 성실성을 보여줄 때 한결 넉넉해진다.

– 올해는 한시(漢詩) 공부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규장전운(奎章全韻)>이 눈에 들어왔다. 정조 때 편찬된 이 책을 나도 한 권 가지고 있다. 매 주 한 편씩 지어서 수유너머 구로의 홈페이지에 올리기로 약속했다. 걱정이다. 재미는 있지만.

– 공감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고문진보(古文眞寶)>의 경우다. 나는 한여름 책을 보기에 지치거나 뒹굴고 싶으면 고문진보를 빼든다. 거기서 아무거나 한 편을 들고 읽는다. 귀거래사(歸去來辭)일 때도 있고 출사표(出師表)일 때도 있다. 그러면 선선해지거나 무거운 더위가 조금은 가신다. 다른 분들께도 권한다. 번역과 원문을 대조하는 재미도 곁들여.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필자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여기가 이 책을 읽으면서 미안하기도 하고 긴장하기도 했던 지점이다. 일반 학계에서 나오는 다른 저서에서보다는 무척 적었지만, ‘조선 유학’, ‘주자학’에 대한 필자의 이해에 대해 내가 동의하지 못하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미안하다는 것은 이 간극의 책임이 나에게도 있다는 자각 때문에 생겼고, 긴장은 앞으로 내가 그 간극을 메워야한다는 자각 때문에 생겼다.

– 이지(李贄)나 왕수인(王守仁)은 그의 호(號)를 택하여 각각 이탁오(李卓吾), 왕양명(王陽明)이라고 존중하여 부르면서, 주희는 주자(朱子)나 주회암(朱晦庵)이라고 하지 않고 굳이 이름 그대로 주희라고만 쓸까? 우연이길 바란다.

– 연구자들의 머릿속에서 ‘재현되는 성리학’에 대하여, 나는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다. “성리학은 도덕, 윤리, 법칙, 권위 등으로 우리에게 재현됩니다. 흥미로운 일입니다. 무언가의 성리학, X라는 성리학이 있는데, 그 X가 바로 그 용어=시니피앙으로 재현되는 것이지요. 예전에 이 시기 서술을 보면, ‘성리학적 지배질서를 극복한 실학은…운운’ 하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바로 그 ‘성리학적 지배질서’가 바로 X에 해당됩니다. 연구를 시작하던 초학자로서 당혹스러웠던 것은, 그 X가 뭔지 학계에서 정리되지도 않은 상태로 위와 같은 용어에 의해 성리학이 규정된 것으로 ‘치고’, 그 성리학을 극복하는 ‘실학’ 내지 ‘내재적 발전론(자본주의 맹아론)’이 논의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필자의 경우, 내가 표현한 바와 같은 경직된 이해, 즉 자신들이 전제로 하고 있는 ‘조선 유학의 경직성’보다도 훨씬 경직된 관점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려가 깊다. 언뜻 탄력성이나 균형 감각으로만 보일 수 있는 글에서 내가 읽어낸 고민의 흔적, 성숙된 인격의 여운이다.

– 같은 맥락에서 아쉬운 마음에 첨언하자면, 조선시대 지식인의 서가에서 <논어(論語)> 등의 사서(四書)나 오경(五經) 등 유가(儒家)의 경전, <노자(老子)>와 <장자(莊子)> 같은 도가(道家)의 경전도 생각보다 훨씬 많이 읽혔다.

– 이 책 어딘가에,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설명하면서 필자는 내가 쓴 논문을 인용하였다. 그 논문은 내가 가장 아끼는 논문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고마웠다. 아는 척 하자면, <자치통감>보다는 주자가 그의 제자 조사연(趙師淵)과 함께 편찬했던 <자치통감강목>이 조선시대에는 더 중요했다. 아무튼, 사사로운 이유에서 나는 독후감 제목을 다음과 같이 수정한다. ‘나는 이 책이 고맙기도 하다.’

– 오항녕 (수유너머 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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