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건강법

몸과 마음은 하나다

- 담담

‘동양의학은 서양과학을 뒤엎을 것인가?’ 하야시 하지메의 책 제목이다. 이미 끝난 게임인데 왜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한의원은 병 고치러 가는 곳이 아니라, 그냥 보약 지어 먹으려고 가는 곳으로 치부되는 상황에서, 동양의학이 서양과학을 뒤엎는다고? 한의원도 이제 최신식 설비들로 치료과정을 눈으로 보여주어야 환자들이 아~ 그래도 이 병원은 좀 과학적이라 믿음이 가는군 생각하는 마당에 동양의학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물론 책 제목이 너무 자극적이긴 하지만, 여기서 하나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있다. 동양의학이 서양‘의학’을 뒤엎는게 아니라 서양‘과학’을 뒤엎을 수 있다고 질문한다는 점!

서양과학이 만들어낸 소위 ‘과학적’ 세계관이 지금의 질서를 만들어왔다면, 그와는 다른 세계관 역시 존재해왔다. 풍수나 천문, 역법 등에서 보이는 동양의 전통적이 세계관이 그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관에서는 기껏해야 미신이나, 비합리적 신비주의로 여겨지지만 이러한 우주론이 수천년 동안 동양인들의 사고를 지배해왔다. 그렇다면 지금의 소위 ‘과학적’ 세계관은 단지 근대 서양이라는 시공간하에서 탄생한 것으로, 이러한 사유체계가 우리를 규정하게 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았다. 물론, 이를 동양과 서양의 차이로 간단히 구별지을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고대 서양의학에서의 세계관에서 동양적 사유와 유사성을 발견하는 것이 놀라운 것만은 아니리라.

어릴적 한 장씩 찢어서 쓰던 일력(日歷). 이제는 단지 숫자뿐이지만 달력은 그 안에 해와 달의 움직임, 오행의 흐름들에 대한 엄청난 정보들을 주는 것이었다. 서양의 과학만이 과학이었고, 동양에서는 왜 그런 과학이 존재하지 않았느냐고 질문하는 것은 잘못된 질문이다.

이러한 동양적 세계관이 그나마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이 동양의학이다. 이제 풍수나 천문역법, 연단술, 점복술 이런 것들이 서구 과학적 시선에서 밀려나게 된 것을 보면, 그래도 한의학은 명맥을 잇고 있기는 하다. 그게 언제까지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ㅡㅡ; 그러나 이 역시 조만간 동일한 위기에 처하게 될 운명이라는 말들이 한의학계 안팎에서 많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를 어찌 해야할까? 그런 점에서 이 책 제목이 주장하는 바는 단순히 동양의학이 서양의학의 대체나 보완이 아니라는 점이다. 더더욱 동양의학이 서양의학을 따라잡는 식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세계관의 문제이며, 인식론 차원의 문제다. 그런 점에서 한의학의 과학화만이 살 길이라는 해답은 ‘잘못된 질문’에 ‘잘못된 해답’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이를 다르게 생각해보면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풍수를 좀 더 과학화하고, 가령 배산임수의 지리적 조건을 햇빛이 드는 일조량과 땅 속에 어떤 화학 성분이 더 들어있기 때문에 좋다고 수치화해서 보여주어 설득하는 것이 해답이 될 수 있을까?

19세기 서양의 해부도.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시선. 아래의 해부도와 차이를 생각해보자.

동양에서 몸을 바라보는 시선. 무슨 지하철 노선도 같지 않은가? 그러나 지하철 노선도를 보며 왜 정확한 지도를 그리지 않았냐고 묻지 않는다. 동양의학에서의 몸 역시 마찬가지다. 이 둘 중 어떤 것이 진실에 가까운가? 그것은 보기에 따라 다르다. 앞의 것이 눈에 보이는 정확성, 가시성의 세계라면 뒤의 것은 유용성의 차원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럼, 동양의학이 서양과학을 뒤엎을 인식론적 차이는 무엇일까? 일단 우주와 인간을 감응관계로 본다는 점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줄곧 누차 강조했던 바다. 또 다른 하나로 몸과 정신의 관계이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시작으로 육체와 정신의 분리야말로 동양적 의학과 정반대에 위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동양의학에서 정신병 역시 몸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음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 요즘 많은 이들이 정신병으로 고생한다. 다들 뭔가 좀 메롱한 상태들이다. ‘정신줄을 놓고 있다’는 표현이 그냥 유행하는게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를 뇌에 있는 어떤 신경의 잘못으로 보는 것이 서양과학의 관점이라 한다면, 이것 역시 몸의, 장부의 이상으로 파악하는 것이 동양의학의 차이점이다.

정신줄 놓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정신의 문제 역시 몸의 문제라는거!! 정신줄 잡으려면 먼저 자신의 몸의 이상여부부터 확인해야 한다는거!!

하나 예를 들어보자. 흔하게 정신병은 단지 두뇌 속에 어떤 유전자가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무언가 이해하기 힘든 작용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정신과에서 상담해서 고쳐야 한다고 생각들 할 것이다. 약물 치료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몸을 치료하는게 아니라 신경을 치료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하지만 동양의학에서 이 역시 철저하게 몸의 문제로 보고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광기를 양기가 갑자기 꺾여서 통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이는 음식을 먹지 않게 하면 낫는다고 말한다. 음식으로 양기가 보충되는 것을 막는다는 논리이다.

“성내면서 발광하는 자의 병은 양(陽)에서 생기는 것이다. .. 심해지면 옷을 벗고 뛰거나, 높은 곳에 올라가 노래 부르며, 며칠 동안 음식을 먹지 않고, 담을 넘고 지붕 위로 올라가는데,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사지(四肢)는 모든 양의 근본이므로, 양이 왕성하면 사지가 튼튼해지고, 사지가 튼튼해지면 높은 곳에 오를 수가 있는 것이고, 옷을 벗고 뛰는 것은 몸에 열이 심하므로 옷을 벗고 뛰려고 하는 것이며, 가까운 사람과 먼 사람을 가리지 않고 함부로 말하고 욕을 하며 노래하는 것 역시 양이 왕성하기 때문이다.”

음이 양에 눌리면 맥의 흐름이 급박해지고 음이 양에 합쳐지면 미치게 된다. 그래서 이 양기가 뻗치기 때문에 옷을 제대로 입지 않고 이상한 말을 자주 하며 가까운 사람과 먼 사람을 가리지 않고 덤비게 된다. 그렇다면, 이를 그저 우스운 에피소드로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 여기서 우리는 몸과 정신에 대한 하나의 새로운 시각을 볼 수 있는게 아닐까? 동양의학에서 건망증 역시 신체의 문제로 보는 점도 이와 유사하다. 건망 역시 위와 장은 실한데, 심폐가 허하여 기가 아래에서 오래 머무르면 때가 되어도 올라가지 못해 잘 잊어버리는 것으로 본다.

이 분 역시 건망증이 심한 것과 광기로 치닫는 건 단지 머리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게 아니다. 몸이 안 좋아서 그런거다. 그것도 아주 중병에 걸린 환자!! (그림 출처: 대한민국 자식연합 http://korchild.tistory.com/)

칠정(七情) 역시 마찬가지다. 기쁨, 슬픔, 걱정, 근심, 슬픔, 놀람, 두려움 이 일곱 가지 감정이 정상적인 생리활동을 넘어 오랫동안 지속되면 몸의 기운이 문란해지고 음양이 실조되어 발병한다. 가령 갑자기 기뻐하면 심장을 상하고, 갑자기 성내면 간이 상한다. 기뻐하면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심의 붉은 기운이 올라와서 그런 것이고, 화를 내면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하는 것은 간의 목(木) 기운이 올라와서 그런 것이다. 걱정이 많고, 슬퍼하면 폐가 상한다. 소설 속 비련의 주인공들이 폐렴에 걸린 것들은 단지 설정만이 아니다.

그리고, 생각을 많이 하면 비가 상한다. 비위가 소화를 담당하는 장부라 할 때 생각이 많으면 소화가 안 되는 것이 이 때문이다. 무서워하면 신을 상하고, 정(精)을 상한다. 무서울 때 오줌을 찔끔 지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주의할 점은 칠정 중에서 화를 자주 내면 간에 무리가 온다는 것!! 그리고 이를 뒤집어 생각한다면 화를 내는 것은 간담에 병이 있는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주변에 자주 화내는 이가 있다면 성질 좀 그만내라고 말하는 것보다 간에 좋은 음식들을 추천하시는게 더 빠를지도..ㅎㅎ

맨날 성질만 내시는 이 분은 간이 안 좋아서 일듯.. 직지마 시발(直志馬 始發)!! 성질 뻗쳐서!! (그림 출처: 대한민국 자식연합 http://korchild.tistory.com/)

그리고 이는 전에도 설명했듯이 상생과 상극의 원리를 이용해서 치료할 수 있다. 가령 성내어 간이 상하면 근심으로 꺾고 두려움으로 풀어준다. 기뻐하여 심이 상하면 두려움으로 꺾고 성냄으로 풀어준다. 생각을 많이 하여 비가 상하면 성냄으로 꺾고 기쁨으로 풀어준다. 근심을 하여 폐가 상하면 기쁨으로 꺾고 생각을 많이 하여 풀어준다. 두려움으로 신이 상하면 생각으로 꺾고 근심으로 풀어준다. 놀라서 담(膽)을 상하면 근심으로 꺾고 두려움으로 풀어준다. 슬픔으로 심포가 상하면 두려움으로 꺾고 성냄으로 풀어준다. 이것이 상극의 원리를 이용해 정(情)으로서 정(情)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요즘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점검하고, 어떤 감정을 이용해서 자신의 몸을 다스릴지는 각자 숙제!!

-담담1
  1. 이 글은 < 동의보감>과 < 기초한의학>을 바탕으로 씌여졌습니다. []

응답 3개

  1. 북극곰말하길

    담담샘 조만간 도인으로 승차하심이…^^ 너무 존글 매번 잘 보고 있슴돠~

  2. 담담샘팬말하길

    선생님 칼럼을 즐겨 읽는 독자 중 한명입니다.
    안그래도 요즘 마음이 심란하고 허해서 답답해하는 차에 선생님 글 읽으니 좋네요.
    뭐가 문제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갑니다.

    여튼 내 마음 나도 모르는 이 메롱한 상태. 가 오래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흑흑.
    그리고 몸과 마음은 하나다라는 명제에 Totally 동의 합니다!

  3. 비포선셋말하길

    ㅎㅎ 이번호는 예외적으로 진지한 주제와 고상한 사진이 나오나보다 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시는군요.. 넘 유익하고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글 잘 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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