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찢고 하이킥

이계삼 선생님의 편지

- 이계삼

<영장 찢고 하이킥> 이번 주와 다음 주에는 <영혼없는 사회의 교육>(녹색평론사, 2009)의 저자 이계삼 선생님과 현민이 나눈 연대의 편지를 차례로 싣습니다. 현민이 교도소에서 방을 옮긴 후, 원고를 쓸 시간을 낼 수 없게 된 까닭입니다. 자세한 사정은 다음 주에 올라갈 현민의 편지를 참고해주세요.

현민 님께

안녕하세요, 현민님. 처음 인사드립니다. 저는 경남 밀양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이계삼이라고 합니다. 현민님을 후원하는 분들의 카페에서 주소를 알게 되어 이렇게 편지를 드립니다.

이곳은 그래도 남쪽인지라, 아직 꽃샘추위에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입니다만 저희 집 마당에는 진달래, 산수유가 피었습니다. 남쪽 사는 특권이 이렇게 봄소식을 먼저 듣는 게 아닐까, 싶네요.

그곳은 어떠신지요. 저는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과의 개인적인 인연으로 그곳 영등포 구치소에 몇 번 면회를 다닌 적이 있습니다. 식당 일을 하는 노역을 하면서 많이 고되다는 말씀을 카페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고됨을 생각하니 맘이 짠하네요. 먼저 안부의 인사를 전합니다.

요즘 부쩍 ‘전쟁없는 세상’ 분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일이 잦아졌군요. 얼마 전에는 수감중인 은국 님과 편지를 주고 받은 적이 있었고, 실은 그곳에서 하는 책읽기 프로그램에 제가 낸 책이 채택되어 다음 달에는 그곳에 가게 될 것도 같고, 제가 아끼는 졸업생 아이(교사를 꿈꾸어서 교원대에 갔는데, 지금 병역거부와 관련해서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답니다) 문제로 또 ‘전쟁없는 세상’ 홈페이지를 들락거리고, 또 이렇게 현민님께도 연락을 드리게 되네요.

우선 용건부터 말씀드리면,

제가 <녹색평론>이라는 잡지에서 편집자문위원이라는 이름으로 편집 일을 조금 거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녹색평론> 다음호 5-6월호에 ‘이탈의 정신’이라는 제목으로 몇 분의 글을 받기로 했어요. 그래서 서울에 있는 이화여고에서 근무하다 그 곳이 자사고로 되면서 귀족학교로 만드려는 흐름에 반기를 들고 학교를 그만둔 이형빈 교사, 그리고 양심적 병역거부자 한 분, 그리고 김예슬 씨와 같이 대학을 스스로 그만둔 분의 글을 받기로 했습니다.

이 기획은 제가 제안한 것이어서 직접 청탁을 드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김예슬씨의 자퇴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고, 이 체제와 절연하는 길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에서 우리가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탈’은 제게도 오래된 고민이지요. 그러나 부끄럽게도 늘 이탈의 언저리에서 방황하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소소한 이탈을 결행한 적은 있지만, 교직을 그만두는 커다란 이탈에 대해서는 아직 결행하지 못하고 있어요. 아직은 교사 노릇하는 일, 아이들과 부대끼는 일이 주는 기쁨 때문이겠지요.

카페에 올라있는 현민님의 글을 읽으며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다른 병역거부자 분들도 계시지만, 현민님께 청탁을 드린 것은 현민님의 글을 읽으며 이 문제에 대한 깊은 번민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탈의 정신’이란 뚜렷한 확신과 결기 보다는 자기응시와 번민이 더 근원적으로 작동한다고 믿기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감히 현민님께 부탁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런 청탁, 참 죄송스럽고 또 객쩍습니다. 그러나, 저 또한 이러저런 활동의 와중에서 가끔 매체에 글을 쓰고, 또 <녹색평론> 발간을 돕는 것은 ‘언어’에 대한 가냘픈 기대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얼마나한 힘이 될지는 모르지만, 결국 이 세상의 고통, 아픔, 진실을 향한 용기와 번민들이 언어로 담겨 세상을 향해 홀씨처럼 날아가야만 이 박토에서도 새로운 꽃피움의 희망이 있을 것이라는, 그런 믿음 때문이지요.

혹시 여러 사정으로 도저히 어려우시다면, 간단하게 답신 부탁드립니다. 다른 분께 또 청탁을 해야 하니까요.(그러나 제 솔직한 심정은 현민님께서 써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청탁의 편지가 길어졌습니다. 언젠가, 서경식 선생님께서 수감중인 은국님께 보내는 글에서 하신 말씀처럼 제게 현민님 같은 분들의 존재는 ‘내가 누리는 생활이 모조품 같고, 그 바깥에 진실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분이라고 믿습니다. 더러 힘든 일이 많으시지요. 힘내시길 빕니다.

얼마 전에는 은국님께서 제가 쓴 글을 읽고 편지를 보내주셨어요. 그래서 은국님과도 가끔 편지를 주고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좋은 친구들이 생기는 것 같군요. 그때 은국님께 보낸 편지에도 인용했던 구절을 한번 더 인용해 볼게요. 아마 현민님께서도 읽으셨겠지만, <총을 들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제가 깊은 감동으로 읽었던 구절입니다. 이 구절이 현민님께 드리는 작은 연대의 인사가 되기를, 그리고 저 자신에게 바치는 작은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2003년 4월 23일자로 군 입영 통지서가 나오고 수없이 갈등했습니다. 감옥, 전과자,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부모님 그 모두 풀어내기 어려운 문제들로 다가왔습니다. 낮에는 군대를 거부할 것을 결심했지만, 저녁이 돌아오면 그냥 잘 다녀와야지 하고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그 갈등이 사라지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봄날 산에 심어놓은 나무에 가뭄이 들어 이틀에 한 번 물을 주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물통에 물을 채워 낑낑 대며 산에 올라 물을 주는데 나뭇가지 마디에서 순이 올라온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저 나무도 살아 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 나무는 토양과 물, 해의 도움을 받아 살고 또 무엇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어찌나 경이롭던지 나무와 ‘나’가 한 생명이라는 불교의 연기의 가르침이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산이 온통 내 생명의 은인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러고 나자 군대의 고민도 자연히 풀렸습니다.

― 병역거부자 김도형 님의 글 “나에게로 와 울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중에서

저는 이 대목에서 타르코프스키라는 러시아 영화 감독의 <희생>이 떠올랐습니다. 믿음을 잃지 않고 물을 준다면, 결국 죽은 나무가 어느날 되살아나 무성한 잎을 피워내는 ‘기적’에 대한 영화였지요. 전, 아직 그 정도의 신앙은 아니지만, 결국 이런 믿음이 참 중요하다고 믿고 있어요.

현민님. 무엇보다 강건하게, 잘 버텨내시고, 그리고 끝내 이겨내시기를 기도합니다. 평안을 빕니다.

2010년 3월 30일, 밀양에서
이계삼

응답 11개

  1. 너무도말하길

    현실과 안 맞게 이상적이니까요.

    멋진? 발상이긴 하지만.

  2. 이탈의 정신말하길

    “자기 삶”만, 배려하는 소중한? 결단이라는 생각을 떨치기 힘듭니다…

  3. 이계삼말하길

    현민님의 글을 기다리면서, 가끔 여기 들어와봅니다.

    방금은 현민님이 마지막으로 서울 서부지검으로 출두하던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봤어요. 어떤 분일까 궁금했는데, 커피 마시며 도넛 먹으며 웃는 소년처럼 해맑은 웃음이 맘에 남네요.
    현민님이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마지막 인사하는 장면이 맘에 짠하게 남았습니다.

    이 공간은 제가 여러 선생님들의 인사를 받을 자리가 아닌 듯해서..
    저는 이만 물러갑니다.

    현민님의 건강과 건승을 빕니다. 감옥도 군대처럼 그래도 어느 시간만 흐르면 ‘그럭저럭’ 적응이란게 될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4. 둥근머리말하길

    뵌 적은 없지만, 글을 통해 뵙는 이계삼 선생님.. 종이에 얹힌 글자들이 톡톡 살아서 마음을 치는 글에 고개 숙이며 읽는 독자입니다. 특히, 한티재에 대한..

  5. 박혜숙말하길

    이계삼 선생님, 잘 지내세요?
    이곳에서 만나니까 더 반갑네요.
    선생님과의 만남이 인연이 되어 밀양, 부산, 울산 지역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배우는 자리를 만드는 데 참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좋은 스승과 벗을 얻었고 소중한 한 해를 보냈습니다. 지난 번 인문고전독서교실 행사에서 그 시간들이 떠올라 행복했습니다. 고병권 선생님, 배병삼 선생님의 말씀을 듣던 아이들의 진지한 눈빛도 떠올랐구요. 선생님의 고민과 실천이 이렇게 소중한 배움의 자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배움의 자리도 ‘이탈의 정신’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선생님과 현민 님이 나눈 대화, 소중하게 읽겠습니다.

  6. 비포선셋말하길

    며칠 전 한겨레에서 이계삼 선생님 칼럼 읽고 감동해서 아들내미 읽어주었더랬습니다. 아들이 내년에 고등학교에 가는데 선생님 계신 학교 동네로 이사갈까 하는 생각을 잠시동안 했었다고 말하면 믿으실지.. ^^ 언제나 따뜻한 글, 감사하고요. 여기서 뵈니까 우주적으로다가 반갑습니다..

    • 이계삼말하길

      반갑습니다. 비포선셋이 무슨뜻이지 생각하다가, 아하, ‘해질녘에’아니, ‘해거름에’ 뭐 이렇게 번역이 되대요. 맞나? 글로 볼때 갖는 신비감이 좋지, 막상 보고 나면 실망할 일 밖에 없습니다. 밀양이라니, 농담이시겠지만, 손발이 다 오그라들지경이네요.^^ 반갑고 고맙습니다. 아드님께도 우정의 인사를 전해주세요. 이계삼 드림.

  7. 이계삼말하길

    고병권 선생님. 반갑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강의를 듣던 시간이 제게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군요. 제 영혼이 뛰고 희열로 충만했던 재작년 겨울 울산 신선여고에서의 시간이 아련합니다. 그때 함께 갔던 아이들은 대학 2학년이 되었고, 아직도 고민하는 젊은이로, 김예슬씨처럼 고뇌하는 청춘으로 살아갑니다. 그런 씨앗을 흩날려주신 선생님께 드릴 감사의 마음은 형용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 아이들 중 한 친구도 선생님의 강의에 영감을 받았는지 부산에서 장애인야학을 돕고 있고, 저도 밀양에서 장애인분들과 함께 하는 야학에 조금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그리고 늘 건강하시길 빌어요. 현민님과도 은국님과도 이렇게 저렇게 살다보니 좋은 친구들이 생기네요, 그리고, 선생님도 그 속에 함께 하고 계시는군요. 고맙습니다.

  8. 고추장말하길

    이계삼 선생님, 오랫만입니다. 안녕하신지요? 선생님의 애정과 열정이 물씬 풍겨나는 편지네요. ‘이탈의 정신’, 너무 멋진 계획입니다. 이젠 묵묵히 일하는 것도, 그 죄를 물어야하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황당한 사회가 됐나 봐요. 이 황당한 시스템을 떠받치는 작은 돌멩이 역할을 하니까요. “너희끼리 다 해먹어라. 하지만 난 그렇게 어리석고 끔찍한 짓에 협력할 생각이 없다. ” 이런 이탈의 정신, 자기 삶을 배려하는 소중한 결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편지 고맙습니다.

  9. 계삼 선생님께말하길

    이 세상의 고통, 아픔, 진실을 향한 용기와 번민들의 언어가 있기라도 하시다면,

    누구보다 절박한 북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셨으면 하네요..

    오래전이지 않았을 때, 수십만명의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었다고 들었는데…

    현실의 사람들은 굶어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 널렸는데,
    이탈의 정신 운운하는 건,
    지나친 정신적 감상 아닐까요?

    병역거부를, 현 체제에 대한 이탈의 정신으로부터 한다거나 평화주의자기 때문에 한다는 건
    우리나라 사회에선 맞지도 않는 웃긴 소리이죠.

    우리나라 군대는 방어가 목적인 군대이니까요?

    설마, 이계삼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에게, 남한이 북한을 침공했다고 가르치시는 건 아니신가요??
    일반적인 전교조 소속 선생님들이 그렇다고 들었는데.

    아니면 기도하신다니, 여호와의 증인이신가요?

    • ㅋㅋ말하길

      남한 군대의 존재가, 남한 군대의 군비 증강/유지가 뭐 북한 인민들의 인권을 지켜주고 있습니까? 성찰 없는 ‘인권 보편성’운운은 자가당착일 뿐입니다. 공동 군축/평화 운동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으면서 이상적이네 뭐네 현행 유지를 운운하는 당신같은 자가 북한 인권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 자체가 혐오스럽단거죠. 기도한다면 여호와의 증인이라니, 웃기지도 않군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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