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책이 나를 살렸습니다.

- 기픈옹달(수유너머 R)

책이 나를 살렸습니다.

근무하다보면 수용자 면회시 입회 하게 됩니다. 현재는 컴퓨터기술의 발전으로 이른바 무인접견이 실시되어 자동녹화기계가 대신하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일일이 수용자와 가족이나 방문자의 접견 시 입회하여 대화내용을 수기로 기록하였습니다. 일상적인 안부 대화가 대부분이라서 별로 기억에 남지 않지만 아직도 어느 모자의 면회는 가끔 생각납니다. 아들은 무척 수척해 보였고 어머니는 초라한 옷을 입은 평범한 모자였기에 기계처럼 오가는 안부를 기록하려는데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간혹 듣거나 말하지 못하는 장애우도 있기에 기록을 살펴보았지만 장애우는 아니었습니다. 마이크가 고장 났는지 고개를 들고 뿌연 아크릴 판 너머와 내 옆의 수용자를 살펴보는데 두 사람은 서로를 응시하며 그저 울고만 있더군요. 6분간의 접견입회 시간이 그렇게 길고 숙연하게 느껴짐은 처음이었습니다. 모자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서로 울다가 접견시간이 끝났고 저는 그저 면회 온 어머니를 향해 꾸벅 목례를 하고 수용된 아들의 들썩이는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고 모자의 만남을 종료시켰습니다. 아무 말도 오고가지는 않았지만 마음을 다 전했고 옆에 있던 타인에게까지 울림을 전해주었습니다.

강단 아니면 동호회에서 자기들만의 방언을 나누던 인문학이 거리에서도 피어나는가 싶더니 이제 교도소로 면회를 왔습니다. 가족도 아닌 이름도 생경한 타인이 낯선 인문학 보따리를 들고 온 면회라서 수용자들은 반신반의 합니다. 사람과 자유보다는 규율과 질서를 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각종 흉악한 사건들로 도배된 언론기사에 젖어들어 죄 보다는 벌에 시선이 집중된 일반인들도 뜨악하게 보는 것 같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준영 선생님과 수유너머의 많은 분들의 수고 속에 어려움과 고난을 헤치고 힘들게 인문학은 교도소로 면회를 오고 있습니다.

이 책을 쓰신 최준영 선생님과 많은 분들의 뚜렷한 의도와 수고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많은 업무 중의 하나로 다가온 인문학 강좌는 처음에는 그저 우연한 마주침의 의미로만 다가왔습니다. 클리나멘이라고 하던가요? 작은 변위로 인해 평행선처럼 만나지 못할 존재들을 필연처럼 마주치게 하는 요소 말입니다. 사막에 내리는 비는 우발적이고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어떤 변위로 인해 사막이 아닌 곳에 내리는 비는 대지를 푸르게 일구는 숨은 주인인 소중한 지렁이를 땅위로 내몹니다. 생물학자의 견해로는 이 현상은 피부로 호흡하는 지렁이가 자신이 사는 땅속 구멍에 들이찬 비로 인해 질식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교도소로 면회 온 인문학과 책들이 그저 알제리 사막에 고독하게 내리는 비가 될지 이 책의 제목처럼 거리와 시설 안에 갇힌 사람들을 살려주는 비가 될지 어떤 마주침이 될지 저는 최준영 선생님처럼 확신에 차있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고 희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아내를 교살한 정신병자가 평범한? 죄수로 사라지지 않고 수많은 우울과 불안 속에서 곧 다시 정신병원에 감금될 처지라도 “삶이란 모든 비극에서도 아름다울 수 있으며….. 미래는 오래 지속 된다”는 기억나는 구절과 깊은 울림을 준 자서전을 남긴 철학자의 모습으로도 사람들에게 의미를 줄 수 있는 열린사회가 되기를.

아직까지도 나에게 울림을 주고 있는 어느 모자의 면회 속의 눈물처럼 사람간의 마음을 이어주는 진실하고 따뜻한 소통의 길이 만들어지기를.

인문학과 책과 사람이 대지를 푸르게 만들어 주는 비처럼 수용자들의 팍팍한 마음과 힘겨운 삶속에 내리기를 희망 해 봅니다. 어쩌면 인문학도 마법주문처럼 암송되다 방언으로 떠도는 자기만의 성에서 나와 저자거리 속에서 별별 사람들과 부대끼며 어울리고 싶어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해를 이어 정성스런 간식과 많은 도움을 주시는 수유너머 선생님들에게 감사와 망설이던 부탁 말씀을 드리면서 글을 마칩니다.

수용자들은 타인은 알 수 없는 상황과 범죄로 인해 사회에서 물리적으로 가장 닫힌 공간에서 일상생활의 대부분이 국가에 의해 직접 규정되고 관리되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가장 닫힌 공간이지만 그들의 기본적인 생존과 일상은 타인의 직접적인 개입이 없으면 단 하루도 영위되지 못합니다. 가장 닫힌 공간에서 가장 공동체적 생활이 강제된 사람들이기에 보통사람들 보다 더 인문학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교육생들 대부분은 소위 가방끈이 상당히 단촐하고 접견이라고 표현하였듯 강의에 시간과 공간적 제약이 많기에 어려운 전문용어의 나열과 과다한 분량, 해석불가의 사투리, 수제자나 따라갈 빠른 속도, 안드로메다에서나 읽혀질 추상적 개념은 오히려 그들을 인문학과 더욱 멀어지게 만들 것입니다. 그들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고 그들이 접근하기 쉽고 경치도 멋진 재미있는 길부터 안내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강사님 혼자 외치기 보다는 반응이 썰렁해도 서로 질문과 대답도 주고 받으면 좋겠습니다.

죄송스런 말씀이지만 강사에게 힘든 불리한 게임이라도 작년 우기동 교수와 최준영 교수의 인문학강좌는 아직도 교육생들에게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만화를 가르치신 황중선 선생님은 특유의 성실함으로 사랑받았습니다. 이어질 수유너머의 강사님들도 그들 속에서 회자되기를 바랍니다. 폐쇄공간의 촘촘함은 한 교육생의 속삭임이 천명에게 퍼지게 합니다. 어느 연예인이 더 돈을 많이 버느냐는 논쟁이나 직원의 복장상태가 불량하다며 시비 걸던 수용자가 “어제 니체를 읽다가 밤을 새웠다”는 이야기를 할 때 변화를 느끼지만 이런 속삭임들이 수유너머를 넘어 교도소 담장을 넘어 진득하게 울려 퍼져 범죄가 너무 줄어 교도소가 문을 닫아 저와 수용자들이 원하는 삶의 길을 다시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수유너머강사님들과 관계자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교도소 관계자

응답 1개

  1. 비포선셋말하길

    어느 모자의 6분간의 접견… 말 한마디 주고 받지 않았지만 참 많은 것이 오갔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렇게 마음을 이어주고 인연길을 틔우는 좋은 공부가 오랜동안 지속되면 좋겠네요. 여로모로 애정이 느껴지는 교도소관계자님의 따뜻한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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