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공방 통신

어떤 감성을 지니느냐가 혁명이고 실천이다

- 기픈옹달(수유너머 R)

어떤 감성을 지니느냐가 혁명이고 실천이다.

한 때 광고회사에 취직하고 싶은 적이 있었다. 종이, 활자, 색, 이미지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감성을 흔들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그 맘은 오래가지 못했는데 광고회사는 기업의 상품을 팔기 위해, 눈을 홀리는 이미지와 현란한 수사로 사람들에게 뻥을 쳐야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착한(?) 나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사람들의 감성을 건드리는 방법은 다른 데 있었다.

정직하면 촌스럽다?

공정무역 초코렛. 생긴 건 저래뵈도 먹어보니 맛은 있었다. (초코렛은 다 맛있긴하지만;;;)

버스 정류장에서 본 초코렛 광고 하나. “먹고 그냥 자면 이빨 썩는다. 먹고 꼭 양치해라.” 이 광고를 보니 떠오르는 TV광고가 있다. “핀란드 사람들은 자기 전에 자일리★ 껌을 씹습니다.” 무설탕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이가 썩지 않는다는 것을 은연중에 내비친다. 그 껌 속에 설탕이 들어있지 않은 것은 맞다. 설탕 대신 인공감미료가 들어가 있다. 그리고 치과 의사들도 자기 전엔 그 껌 안씹는다더라.

반면 이 초콜렛 광고는 참 정직하다. 보자마자 피식 웃었다. 하지만 곧 혼란. ‘광고가 이렇게 정직해도 되는건가? 그리고 포장은 왜 저렇지?’ 자신의 정체성(?)만 적혀있는 포장은 정직하다 못해 밋밋하고 촌스럽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엥?? 정직한 것이 촌스럽다니???

공방비누는 왜 못생겼나?

시중에서 판매하는 천연비누는 예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많다. 작은 아기 신발 모양, 장미꽃 모양, 나뭇잎 모양, 심지어 케이크 모양도 있다!! 공방을 구성하고 나서 처음 비누를 판매했을 때 예쁜 모양이 아닌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공방 비누는 울퉁불퉁 못난이이다. 모양이 예쁜 비누를 만들기 위해서는 실리콘 재질로 된 몰드가 필요한데, 주먹만한 비누 한 개를 만들 수 있는 몰드의 가격은 7000원을 웃돈다. 몰드의 가격이 만만치 않을뿐더러 그 몰드가 자연에서 잘 분해되지도 않는 플라스틱 재질로 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비누가 너무 예쁘면 모양 망가지는 것이 아까워서 못쓴다는 점 때문에 공방 비누의 몰드는 우유팩이다. 그래서 모양이 좀 제각각이고 못생겼다.

‘공정무역 가게에서 파는 것들은 좀…..’

작달공 워크샵을 하다가 나온 이야기이다. 공정무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차에 안국동에 있는 ‘그루(http://www.fairtradegru.com)’에 들르게 되었단다. 무조건 물건 하나를 사겠다는 맘으로 들어갔지만 만만치 않은 가격에 베이지 색의 밋밋한 제품들뿐 이어서 선뜻 지갑을 열지 못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공정무역 가게나 생협에서 파는 생활용품들에는 화려한 것이 없다. 알록달록한 화려한 무늬에 익숙해져 있던 눈으로는 천연염색으로만 색을 낸 소박한 용품들이 낯설다.

홀씨(http://www.wholesee.com)에서 파는 에코백

공정무역가게(http://www.fairtradegru.com)에서 파는 반다나

작달공 워크샵에서 공정무역, 생협의 밋밋한 생활용품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가 나온 결론은 ‘우리의 감성이 화려한 것에 길들여져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어디에 기준을 두었던 것일까? 의심해봐야 한다. 그것이 정말로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었는지, 누군가 설정한 아름다움이었는지 말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름다움’ ‘미’에 윤리적인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것은 옛날 옛적의 얘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소비하는 물건 속에서도 윤리적 의미의 아름다움을 말할 수 있다. 이 제품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독한 농약이 아마존 정글 야생동물을 죽이고, 농부들의 건강을 앗아가지는 않았는지, 집이 가난해 팔려온 어린 아이가 하루 종일 농장에서 딴 그 카카오는 아닌지 등등.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있는 물건은 아름답지 않다고 말해야 한다. 사람-사람, 사람-물건, 사람-자연과의 관계를 해치치 않는 물건이라야 비로소 아름답고 예쁜 것이다.

클레는 예술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러한 정의가 삶의 문제와 연결될 때, 이는 매우 근본적인 지점에서 삶을, 삶의 감각을 바꾸는 정치의 정의로 변환된다(이진경, <외부,사유의 정치학> 238쪽).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감각을 지니는 것, 누군가 만들어 놓은 익숙한 감성과 결별하는 것. 예술에만 국한되는 얘기같지만 이것이 정치다.

워크샵 하면서 나온 들은 얘기를 하면서 글을 마칠까 한다. 제목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 쿠바에 사는 할아버지가 나오는 다큐에서 나온 대사란다. “당신이 오늘 슈퍼에서 어떤 비누를 샀는지가 혁명이고 실천이다.”

– 사루비아 (저는 공방에서 만든 비누를 씁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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