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봄에 겨울을 즐긴다.

- 김융희

봄에 겨울을 즐긴다.

유난히도 변덕이 심했던 지난 겨울이었다.
눈도 자주 많이 내렸고(엊그제도 강원 어디선 눈이 내렸다)
변덕에 혹한이 늦게까지 꽃샘 추위로 계속되고 있다.
이같은 날씨 변덕이 지금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어
이상 기후라며 호들갑들이다. 어떻든 지겨운 추위가 싫었다.

그런데 나는 요즘 꽃샘 추위를 신나고 즐겁게 보내고 있다.
“지겨운 추위를 갑자기 즐긴다”는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
겨우네 싫었던 혹한을 늦게라도 즐겁게 이용하고 있음이
다행이요 좋은 일 같아 좀 쑥스럽지만 일커러 내용은 이렇다.

또 뚱딴지 같은 우리집 이야기이다.(실인즉 나는 돼지감자인
뚱딴지를 몹시 좋아한다.) 흔히 자기의 살림집은 직접 지어서
사는 것이 바람직스럽다고 한다. 그런데도 오늘날 자기 집을 직접
지어 산다는 것이 결코 생각처럼 쉽지 않는 현실인 것 같다.
나는 아늑하고 편리한 집을 서울에서는 가질 자신이 없어 진즉
(그런 집의 기대로) 오래전부터 시골에 살고 있다. 이후
그동안을 그럭저럭 아무렇게나 지내 오다가 작고 초라하지만
쓸모에 맞춰 손수 지은 내 집을 갖게된 것은 오래지 않다.

“내 용도에 맞춰 쓸모있는 나의 집”을 짓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맴도는 생각은 “작아도 결코 불편치 않는 것은 아내와 집”
이라는 우리 세대에선 흔히 할 수 있었던 말이 떠오르곤 했다.
지금은 전혀 아닌 여자는 크고 날씬한 몸매이여야 하며,
크면 클수록 좋다는 집에 대한 집착과 떨처버릴 수 없는
소유욕이, 작은 집에 대한 편하고 경제적인 현실적 실용성도
감안하면서 계속 갈등이었다.

건축비는 물론 고유가 시대의 난방비 문제며 매일 격어야할 청소,
또다른 크고 작은 관리등, 여러가지 사항들을 생각하면 절대로 넓고
큰 집이 아닌, 그래서 원칙도 논리도 무엇도 없이 나의 무턱데고
생각한 설계 컨셉을 건축가는 자꾸 아니라며 이견이다.

흔히 남들이 생각하는 안방이 거실이요 손님방이다.
또한 가장 정성드려 생각한 공간으로 나의 안방은 의외의
숨어있는 작은 다락방이다.
이런 나의 컨셉이 역시 남들에게는 뚱딴지인 것이다.
비교적 넓은 거실이나 안방이 손님을 위한 사랑방이 되며
주인이 아닌 손님 위주의 컨셉인 것이다.

나의 안방은 한갓진 모서리에 있어 조용하며 비교적 햇빛이 잘 들어
아늑하고 안정적이다. 좀 불편은 하지만 동선도 가능한 길다.
그러나 무엇보다 신경을 써서 정성을 들인 것은 방의 난방 구조이다.
구들을 놓은 장판방에 아궁이가 있어 장작불을 지피면 온돌이 달궈지면서
온화한 방안 공기에 아랫목이 썰썰 끓는다. 좁은 공간은 열효율도 높다.

방의 크기는 길이 11자에 넓이는 8자가 체 안된다.
한 편은 책장이 차지하고, 또 한 쪽엔 컴퓨터와 탁자가 놓여 있다.
4단짜리 사방탁자도 있어 잠자리만이 겨우 남겨진 옹색한 공간이다.
2m 높이의 낮은 천정은 아늑한 분위기에 조도를 높이고 있다.
자리에 누우면 머리에는 책이, 발엔 벽에 닿아 꽉 찬 비좁음에도,
주거 공간에 대한 부풀린 관념만 지우면, 활동 공간으로는 전혀
불편이 없다. 특히 겨울철 구들방 사용은 거의 환상적이다.
우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몸도 마음도 거뜬하여 그렇게 상쾌하다.
우리의 전통 주택 구조는 손색없는 뛰어난 주거공간으로 새삼 조상들의
지혜에 감복하며 지키고 널리 알려 자랑할 일이다.

금년 겨울 내내 나는 나의 방을 사용하지 못했다.
계속된 한파와 폭설로 아궁이의 사용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불가피 큰 방을 사용해야만 했다. 금년처럼 변덕의 이상 기온이
아니더라도 고유가 시대의 난방비 문제는 심각하다.
가스 보일러가 설치된 우리 집 난방비는 아껴 써야 한 달에
3,4십만의 적잖이 버거운 비용이다.
겨우 냉기를 면하더라도 월 몇 십만의 비용은 벅차기만 하다.
거의 돈이 들지 않는 아궁이의 사고로 버거운 난방비를 생각하면서
겨우 전기 담요로 혹한을 견디자니 그 고통이 컸다.

계속 쌓인 눈이 녹아 사라지면서 다시 아궁이 사용이 가능하다.
꽃샘 추위가 만만 찮는 요즘 다시 따끈한 온돌방 생활이 녹록찮다.
봄날씨에 한겨울의 기분을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썩썩 끓는 아랫목에서 지난 겨울의 지겨운 추위에게 보란듯
야유라도 부리고 싶도록 나는 지금 기고만장이다.

사라져간 귀한 온돌장이라며 후한 대접으로 모시어 만든
아궁이가 부실공사라니 괘심쩍은 온돌쟁이 늙은이가 그렇게
미웠고, 계속 몰아친 눈보라를 보며 지겨운 혹한을 이겨내면서,
지난 겨울 내내 불순 기온에 대한 원망 뿐이었다.
되찿는 온돌의 따뜻함으로 그런 불평 불만이 눈 녹듯
지금은 멀리 사라져 없다.
꽃샘 추위에 못한 겨울을 새삼스레 즐기고 있는 것이다.

– 김융희

응답 1개

  1. 쿠카라차말하길

    선생님의 방 정말 아늑한 느낌이었습니다. 구들 고치고 나면 올 겨울은 정말 환상적인 찜질방이 될텐데….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