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환경 운동은 생명 운동이다

- 김융희

환경 운동은 생명 운동이다.

나는 지금 작은 한 점의 그림 앞에 전율한다. 얼핏 보면, 우리 산하의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을 그린, 10호 크기의 유화이다.
관심을 갖고 조금만 자세히 보면, 한적한 시골의 모습이 변형으로
왜곡되어 있고, 실경과 색체도 조작된, 예사롭지 않는 그림이다.
산은 산인 듯 산이 아닌 이상한 짐승이요, 나무의 잎은 피우지 못한 채
말라 비틀려 고사목처럼 서있는가 하면,
보이는 나무들도 잎이 무성한 채 죽은 나무처럼 서있다.

분명 농가같은 마을엔 사람은 커녕, 생명체라고는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다.
마을의 집들이 인기척 없는 유령의 집으로 모두가 을시년스런 적막 공산이다.
목이 타 멀리로부터 천신만고 해매이다 드디어 물을 만난 것 같은 괴물이
화면의 중앙에 이상한 형체로 놓여 있다. 흔히 있음직한 마을 앞 안산이
이처럼 큰 괴물로 변용되어 있는 것이다.
맑고 깨끗해야 할 물빛도 생기를 잃고 썩어 말라가는 히부연 색이다.

산에는 곱고 아름다운 단풍이 아니다. 고엽제라도 뿌린 듯, 잎이 억지로 말라
고사한 듯 회갈색의 죽은 빛깔이요, 맑고 푸르러야하는 하늘도 매연인 듯
짙은 회색운이다. 숨 쉴 여유조차 없어 모두가 답답함 뿐이다.
앞 발을 늘어뜨려 물을 퍼먹는 것 같은 저 짐승의 등에는 피부병이 분명한
흰 반점들이 풀을 뜯는 양 떼의 평화로운 풍경으로 변치함은, 처절한 현실 앞에
질려 숨막힌 우리를 위한 작가의 특별한 배려이리라.
생명이 사라진 침묵의 풍경을 그리는 작가의 마음엔 다시 봄이 와서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는 우리의 산하를 갈구함이 절실하였으리라 믿어진다.

이 그림을 이름하여 “2030 풍경”이라 한다. 이는 2030년대의 우리의 산하요,
지구촌의 풍경이라는 뜻이다. 지금 우리의 환경문제를 관심있게 지켜 본다면,
누가 자신있게 이런 사실을 아니라고 부정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 활짝 핀 과학문명의 신기루 속을 호화 여객선인 타이탄호에
승선하여 무한속도로 항진하면서, 마시고 취해 춤추며 환락속에 도취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마음은 착잡하다 못해 전율마저 느낀다.

산업사회에 의한 환경오염은 정보화 시대의 21C에서도 여전하다.
자연 환경과 생태계는 계속 파괴되고, 공해와 오염을 함부로 남발하는
범죄 행위가 전 지구적으로 무자비하게 저질러지고 있다.
오늘의 외면할 수 없는 당면한 현실을 무관심으로 당연하게 받아
들이려는 안일함은, 현대 과학은 오늘의 문제를 기술 공학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와, 실패를 통해서만 진보한다는 과학에 실날같은
희망을 걸며 우리는 낙관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날씨가 쾌청하다고 하여, 우산과 비옷을 외면해서는 안될 일이다.
항차 오늘날 지구촌 곳곳에 불길한 이상 기운을 감지하면서 확실한 원인도
규명치 못한 채, 막연한 낙관은 절대 금물일 것이다.
환경문제는 과학을 앞세운 기술공학적 해결이 중요하다. 그러나, 기술에 앞선
사회 구원과 개인의 참여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환경운동은 각자의
생활과 각성으로 결합된 정신운동으로, 우리 모두에게서 여러 가지 형태로
다양하게 일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환경운동은 우리의 생존을 위한 생명
운동으로, 지금과 같은 환경문제 해결 없는 지구촌의 미래는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이다.

편리와 안락만을 쫒아 자원을 낭비한 채, 순리를 거슬러 여름을 추위로
보내고 겨울을 더워서 답답하게 살며, 이처럼 전천후의 환경을 즐기면서
대기 오염과 오죤층의 파괴를 이야기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편리성을 쫒아 산야를 찢고 갈라서 대로를 만드는 일도 중단하여,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산자락을 굽이도는 운치있는 길을 따라
한 박자 낮추는 삶의 여유와 슬기가 이제는 필요하다.

자연속에는 어떤 보이지 않는 생명이 함께 공존해 살고 있는데도,
조그만 하나의 장애물도 제거해 버리는 그래서 잡초는 없에야 한다며
재초제로 고사시켜 버리는 그런 삶이 아니라, 농사도 인간만이 아닌
물과 바람, 흙과 태양, 그리고 메뚜기와 지렁이 같은 곤충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 까지도 함께 살며 이루어 간다는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까지도 지상의 일상
생활에서는 우주 생명의 창조와 순환질서가 하나가 되어, 바구미가 먹지
않는 쌀은 이미 오염된 쌀인것 처럼, 모든 물질 속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생명이 살아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눈에 보기 좋은 것
편리한 것만 선택하여 사는 삶은 공해를 유발할 뿐더러 결코 본인에게도
유익하지 못하다.“는 김지하 시인의 말을 상기하자.

“2030 풍경” 조그만 그림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명심하여
환경운동을 실천하는 일이 일상화되어야 한다는 말로써
다시 한 번 환경문제를 강조하고 싶다.

– 김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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