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이데이

아빠는 이등 부모

- 기픈옹달(수유너머 R)

어느 정신분석학자의 육아일기: 매이데이

아빠는 이등 부모

“호미도 날이언 마라난 낫가치 들리도 업스니이다. 아바님도 어이어신 마라난 어마님 가치 괴실이 없세라.~” 아내는 약 올리듯 사모곡을 외다가 묻는다. “여기서 ‘괴실’은 혹시 피동이 아닐까? 아빠보다 엄마가 더 아이를 사랑한다기 보다, 아이가 아빠보다 엄마를 더 사랑하는 것 같지 않아?” 하더니 “자기는 어쩌다 매이한테 ‘이등부모’가 됐어?” 하고 안 됐다는 듯 묻는다. 그렇다. 난 차별받는 ‘이등 부모’다. 매이의 부모 차별은 급기야 “엄마는 젤로 예뻐. 아빠는 못생겼어”라는 충격적인 발언으로까지 이어졌다. 이건 정말…사실 관계만으로도 절대 인정할 수 없다! 그리고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단 말인가? 밥 해 먹이고, 무등 태워주고, 심심하면 책 읽어주고, 다리 아프면 안아주고(나도 다리 아프다), 야단 한번 안치고 예뻐해 줬건만 어찌 이리도 차별이 심하단 말인가? 엄마는 젖가슴이 있어서 젖을 먹여주는 것 말고 특별히 나보다 더 잘 대해주는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젖가슴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원색적인 성차별, 인종차별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가장 두드러진 차별은 집에 돌아왔을 때의 반응이다. 일요일에는 다 같이 있고, 나머지 6일 중 3일은 내가, 나머지 3일은 아내가 초저녁에 매이를 보는데 밤에 아내가 돌아올 때는 문소리와 동시에 현관으로 쪼로록 달려 나가, 그동안 학대라도 받은 양 “엄마, 보고 싶었어. 왜 이제 와~잉” 하며 아내가 신발도 벗기 전에 다리 사이에 폭 안긴다. 그에 반해 내가 돌아올 때는 눈길도 돌리지 않은 채 TV ‘만화’(방귀대장 뿡뿡이류의 유아 프로그램)를 보고 앉았다. 내가 “아빠 왔다. 매이야, 아빠 왔어” 하며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대도 귀찮다는 듯 옆으로 고개를 돌려 만화만 본다. 왔으면 왔지, 뭐 어쩌라구, 뭐 이런 식이다!

목욕할 때도 차별이 심하다. 예전에는 엄마랑 할 때와 나를 할 때가 절반씩 됐는데, 언제부터인가 주로 엄마랑 한다. 엄마가 아주 늦게 들어오거나 생리중일 때는 어쩔 수 없이 나랑 하게 되는데, “매이야. 목욕하자” 라고 해도 “아니, 엄마 오면 엄마랑 할꺼야” 한다. 이유를 설명하며 어렵게 설득해서 목욕할 때도 엄마랑 할 때처럼 그렇게 재미난 쇼를 보여주지 않는다. 엄마랑 목욕할 때는 1시간 가까이 서로 장난도 치고 엉덩이춤도 추고, 손짓 발짓 해가며 재미난 이야기도 만들어내고, 예쁘게 노래도 불러주는데 나랑 할 때는 씻자마자 빨리 나가자고 한다. (이런~ 나도 혼자 씻는게 더 좋단 말이다!!)

요즘 매이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매이가, 매이가”이다. 잠옷을 입거나 밥을 먹을 때 예전처럼 내가 도와주려고 하면 막 화를 내면서 “매이가, 매이가” 한다. 자기 일만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설거지를 할 때도 지가 하고 싶으면 꼭 “매이가, 매이가” 하며 나선다. 어떤 일의 주체를 정하는 게 재미있나 보다. 자기가 정한 주체를 어기면 막 화를 낸다. 가령, 엄마한테 엄마 인형놀이하자고 하는데 엄마가 “엄마, 힘들어. 아빠랑 해. 아빠, 매이랑 인형 놀이 해주세요” 라고 하면, 착한 아빠인 나는 “응, 그래 아빠랑 하자”라고 한다. 그러면 매이는 나를 밀쳐내며 “아니, 엄마가, 엄마가. 아빠는 저리 가” 한다. 어쩔 땐 “지금 엄마한테 얘기하고 있쟎아~” 라며 짜증을 낸다. 지금 주인마님과 이야기 하고 있는데, 삼돌이 네가 뭔데 끼냐는 식이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서러움이 밀려왔다. 그래서 이제는 엄마에게 시킨 일은 절대로 안 나선다. (흥, 아빠, 삐졌어.)

요즘도 잠잘 때 매이와 아내는 신파 드라마를 찍곤 한다. 아내가 피곤하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 매이가 젖가슴으로 파고들면 아내는 “매이야, 엄마 힘들어, 그냥 자자”고 한다. 그럼 매이는 좀더 지능적으로 유혹한다. “매이, 배고파. 젖 먹어야 돼.” “우유 먹어” 라고 거절당하면 “엄마, 피곤해?” 라며 눈치를 살피고는 은근 슬쩍 엄마 젖가슴을 만진다. 엄마가 “제발, 그만해” 하면 매이는 “엄마, 매이 좋아했잖아” 하고, 엄마가 “좋아하는데, 이제 젖은 그만 먹자” 하면 매이는 울먹거리며 “엄마, 미안해요”라며 동정심을 파고들고, 그래도 엄마가 돌아누워 버리면 따라서 건너편으로 와서 다른 쪽 젖가슴을 공략한다. 급기야 아내가 폭발해서 “악! 제발 그만해!” 라고 소리치면 매이 역시 대성통곡을 하며 침대에서 내려가 컴컴한 거실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엉엉엉 운다. 그러는 동안 나는 옆에서 숨을 죽이며 이 엄청난 파토스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시트를 움켜쥐고 시체처럼 누워 있다. 몇 번 중재를 시도해 봤지만 그때마다 매이는 나를 밀쳐내며 엄마 쪽을 바라보며 울 뿐이었다. (삼돌이, 네가 뭔데 끼냐고?)

그제는 약을 먹이려고 아양을 떨다 또 ‘개무시’를 당했다. 며칠 동안 감기약을 먹였는데 그때마다 쉽지 않았다. 그제는 거의 나아서 미열만 있었는데 그래도 혹시 밤새 열이 오를까봐 자기 전에 약을 먹이려고 약 숟가락을 들고 쫓아 다녔다. 매이는 홀딱 벗은 채 이리 저리 피해 다니다가 침대로 뛰어 올라갔다. 그러더니 다리를 접고 엎드린 채 베개 밑에 얼굴을 파묻고 개구리처럼 엉덩이만 내 놓았다. 그 모양이 우스워서 “매이야, 이 자세가 뭐야? 개구리야?” 그랬더니, 따라해 보란다. 그래서 따라했더니 매이는 “아니야.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라며 자세가 틀렸단다. 그래서 좀더 신경 써서 “이렇게?” 했더니, 매이는 이번엔 머리를 베개 위에 올리고 양 손을 쭉 뻗으며 “아냐, 이렇게” 란다. 그래서 또 그대로 했더니 또 아니라며 “그렇게 하면 어떡해?” 신경질을 낸다. 내가 거듭 자세를 바꿔 가며 “이렇게? 이렇게?” 해도 번번이 아니란다. 급기야 울먹이면서 “그렇게 하면 어떡해? 아빠, 미워” 하며 거실에 있던 엄마에게 달려가 “아빠가, 매이가, 이렇게 하라고 했는데. 아빠가, 안했어!” 라며 고해 바친다. 어이가 없다.

아내가 매이를 데리고 침대로 와서 자초지종을 묻는다. “응, 아빠가 매이 흉내를 잘못 냈구나. 그래서 매이가 화가 났구나” 하자, 매이가 “응” 하며 위로라도 받으려는 듯 끄떡이며 젖을 문다. 아내는 매이가 입은 내복을 만지작거리며 “와, 이 꽃무늬 참 예쁘다. 엄마도 꽃무늬 좋아하는데, 매이도 좋아해? 이것 봐 엄마 옷에도 큰 꽃이 그려져 있어” 한다. 젖을 물고 듣던 매이는 “뽁!” 하며 빼고는 엄마 잠옷의 꽃무늬를 본다. “아, 그러네. 매이도 꽃무늬 좋아하는데” 하며 자기 옷의 꽃무늬 좀 보라고 하더니, “엄마, 이따가 이따가 또 이따가 매이가 엄마 꽃무늬 내복 사줄께~”한다. 아내는 “응 꼭꼭 약속해~엄마 매이 옷 같은 분홍꽃, 보라꽃이 그려진 내복 꼭 입고 싶어. 와 정말 좋겠다~” 한다.

옆에서 이 닭살스런 모녀의 꽃무늬 품평회를 바라보던 나는 비로소 내가 이등 부모가 된 이유를 깨달았다. 젖가슴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내가 매이를 대하는 태도는 확실히 나와 달랐다. 먼저 매이의 감정을 읽어주고, 그래서 매이와의 정서적 연대를 이룬 뒤에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그리고 매이와 꼭 같은 아이가 되어 노래를 부르고, 꽃무늬를 관찰하고, 토라지고, 함께 운다. 나는 그저 좋은 아빠의 이미지를 만들려고 노력했을 뿐 매이와 같은 아이가 되지는 못했다. 그저 아이 흉내만 냈을 뿐이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두 아이’의 수다를 들으며 나는 스스르 잠이 들었다.

– 매이 아빠

응답 3개

  1. 부우말하길

    ㅋㅋ 이제 ‘이등부모’에서 ‘일등’아빠가 되시겠어요~ 추카추카.

  2. 매이엄마말하길

    매이 아빠는 ‘이등부모’이긴 해도 참 사랑받는 아빠이지요. 매이가 자고 일어나서 아빠 없으면 “아빠는?”하고 꼭 찾는 답니다. 외가에 가도 아빠 언제 데릴러 오냐고 많이 기다리고. 매이 아빠와 달리 육아에 별로 참여 안하는 아빠들에 대해서는 아이들이 어떻게 대하는지 궁금하기도 해요.

  3. 안티고네말하길

    이거…뭐… 대략 토닥토닥이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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