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편집자의 말 – 거짓 반성과 정직한 절망

- 기픈옹달(수유너머 R)

거짓 반성과 정직한 절망

여러분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촛불시위 2주년을 맞아 대통령이 ‘도무지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고 일갈했다는 뉴스가 포털에 처음 뜬 날, 저는 이렇게 생각했답니다. 요즘 검찰과 경찰 개혁도 내세우고, 선거철이 되니 정부가 더 낮은 포복을 하는구나. ‘촛불’ 이야기만 해도 경기를 일으키더니 이제 촛불시위를 언급하며 ‘반성하는 사람이 없음’을 개탄했다는 이야기를 했다니. 선거가 중요하기는 하네. 그런 생각을 했죠. 사회과학 전공자로서 학위 반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이렇게 떨어지니.

나중에 여기저기 올라오는 기사를 읽고 나서 그야말로 ‘경악’했습니다. 이 사람, 정말 대단한 사람 아닙니까? 니체도 언젠가 말했지만, 범죄자의 반성이란 대체로 행위 자체에 대한 반성보다는, 행위의 조심성 없었음에 대한 반성이지요. 그가 ‘아침이슬’을 부르는 수십만의 대중을 보며 ‘뼈저린 반성’을 했다고 했을 때, 그때도 그것을 의심하기는 했습니다. 언론 등을 충분히 ‘쪼인트’ 까두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성급하게 몰아붙였나 하는 ‘뼈저린 반성’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촛불시위 뒤에 그가 한 일을 보면서요.

이 사람 ‘정직’으로 큰 손해를 봤거나 ‘거짓’으로 큰돈을 벌어본 모양입니다. 말 뒤집는 게 예사가 아니네요. 이제 속맘을 드러내서 시원할까요? 2년 동안 저 말하고 싶어서 어찌 참았을까 싶어요. 고대의 현인들이 장사꾼에게 공무를 맡기지 않으려 했던 이유가 여기 있나 싶기도 하고, 상업의 신 헤르메스가 거짓말의 신이라는 말도 떠오르고. 그가 계속 상인이었다면, 아니 차라리 신화 속 존재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위해서도, 그를 위해서도요. 이익과 거짓을 맞바꾸는 일이 습관이 된 것은 본인에게도 슬픈 일이지요.

위클리 이번호 특집은 ‘4대강’입니다. 광우병 싸움이 끝난 지 2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틀린 말입니다. 그 싸움이 시작된 지 2년이 된 것이지요. ‘돈’보다 ‘생명’을 턱없이 가볍게 대하는 정부, 민주주의의 번거로움보다 불도저의 효율성을 숭상하는 정부에 대한 싸움이 전선을 옮겨가며 벌어지고 있는 중이지요. 정부를 비판하는 일이 이젠 ‘살기 위한 싸움’, ‘살리기 위한 싸움’으로 돌변한 지 꽤 된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생명’이 전쟁터이고, ‘살아가는 일’이 전쟁이 되었죠. 여러 곳에서 ‘살려달라’는 절규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우리 힘이 모자란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이번 위클리 특집을 기획하며 ‘정직하게 절망하는 일’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비록 아무 것도 할 수 없다하더라도 나는 이 사업이 공론화되고 재검토될 때까지 걷고 절망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율스님이 작년 10월 ‘나는 기록할 것이다’는 제목으로 쓴 짧은 글에서 따온 문장입니다. 세상이 변할 때까지 절망하기를 멈추지 않겠다는, 그 포기를 모르는 절망에서 거대한 의지를 느낍니다. 정직하게 절망한다는 것, 참 어려운 일입니다. 보통은 절망하기를 견디지 못해 고만고만한 자들에게서 ‘헛된 희망’을 찾으려 하거나, 허무주의자가 되어 손쉽게 ‘포기’를 택하지요. 절망에 악귀처럼 달라붙는 일이 참된 희망의 전제일 겁니다.

이 정부에 대해서, 이 시대에 대해서, 지금 우리의 삶에 대해서, 우리는 충분히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방 안에서 헛되이 공상하지 말고, 길에서 정직하게 절망해야 합니다. 여기저기서 생명체들의 죽어가는 모습과 살려달라는 소리를 거짓으로 보고 짐작으로 듣지 말고, 정직하게 절망해야 합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우리의 모든 구호들은, 반성이라는 말 ‘뼈저리게’라는 무시무시한 수식어를 달아놓고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그이처럼, 그저 공문구를 남발한 것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 고병권(수유너머R)

응답 2개

  1. 젊은이말하길

    낯이 두껍지 않았던 한 분은 이미 가셨지요. 이 잔인하게 푸르른 오월에 말이죠.
    ‘정직하게 절망해야 한다.’ 무언가 굉장히 아프면서도 정신을 차리게 하는 말입니다.

  2. 쿠카라차말하길

    거짓 반성과 진실한 절망이 교차하는 잔인한 5월입니다. 저 뻔뻔한 자들에게 진실로 잔혹한 5월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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