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맑스의 “프랑스혁명3부작 읽기 ” – 민주주의와 공안통치

- 기픈옹달(수유너머 R)

맑스의 “프랑스혁명3부작 읽기 ” – 민주주의와 공안통치

MB정권, 군부독재로의 회귀?

이명박이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우리는 매일매일 7,80년대 민주화운동이 성취한 성과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그래서 진보적인 언론들과 지식인 그리고 시민사회 진영에서는 이명박 정권이 역사를 30년 후퇴시켰다고, 다시 말해 군부독재시대로 우리 사회를 회귀시켰다고 비난한다. 물론 현 정권이 반민주적 행태를 자행하고 있고, 그 양상이 군부독재정권과 갈수록 닮아가고 있지만 현 정권의 성격을 단지 과거로의 회귀, 역사의 퇴보로만 단정할 수 있을까?

이명박 정권을 역사를 퇴보시키는 권력으로 규정하는 이면에는 민주주의를 국가권력, 혹은 국가주권의 민주화로 이해하는 시각이 짙게 드리워있는 것 같다. 민주주의의 척도는 결국 국가와 주권의 성격으로 환원시키는. 그러나 민주주가 국가권력의 민주화, 주권형태의 민주화로만 이해된다면 민주주의는 결국 우리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되고 말 것이다. 민주주의가 국가권력의 성격문제라면, 결국 그것은 어떤 권력자를 선출하느냐에 문제로 환원되며, 민주적 권력자의 선출 이후에는 민주주의는 다시 우리의 삶과 무관해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말고도 민주주의를 주권형태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 가지는 이론적 문제들이 존재한다. 더욱이 부르주아의 사회적 지배가 관철되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말이다. 1848년에서 1851년까지 프랑스에서 전개된 혁명과 반혁명의 과정을 분석하는 맑스의 저작들은 바로 이 문제를 사유하는데 유용한 통찰들을 제공하고 있다.

부르주아 통치형태에 대한 맑스의 고찰

1848년 2월 프랑스의 인민들은 7월 왕정을 타도하고 다시 공화국 정부를 세웠다. 2월 혁명이라고 불리는 이 싸움에서 부르주아지는 프롤레타리아트와 연합하여 왕정세력과 싸웠고 승리했다. 하지만 부르주아지들이 대거 국가권력에 진출하면서 이들은 프롤레타리아들을 정치의 무대로부터 추방하기 시작했다. 맑스는 이 사태를 기술하면서 프롤레타리아들의 정치적 힘을 거세하기 위해 부르주아들이 시행한 조취들이 하나 같이 부르주아의 정치이념인 자유민주주의에도 어긋나는 것들임을 기술한다.

언론과 출판에 대한 검열이 부활하고, 결사의 자유가 제한되며, 인민의 집단적 행동에 대한 폭력적 진압이 과잉되고, 심지어 보통선거권마저 폐지되는 사태가 왕정에 대항하여 수립된 공화주의 정부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맑스는 이 시기 부르주아 정권의 통치원리가 사실은 “계엄”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계엄 상태, 그것은 프랑스 혁명의 진행 과정에서 잇달아 일어난 위기 때마다 주기적으로 사용된 아주 훌륭한 발명품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프랑스 사회의 두뇌를 짓눌러 말 잘 듣는 조용한 사회로 만들기 위하여 주기적으로 그 사회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던 병영과 야영 ..중략…이러한 병영과 야영, 샤벨 군도와 총검, 콧수염과 군복이 마침내는, 자신들의 통치를 최고의 통치로 선포하고 부르주아 사회로부터 자기 통치라는 근심을 덜어 줌으로써 사회를 영원히 구원하는 편이 더 낫겠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루이 보나빠르뜨의 부뤼메르 18일>)

2월 혁명이후 부르주아 통치권력은 자신들의 정치적 권력이 위협당하는 순간 마다 계엄을 통하여 인민들의 민주적 권리를 유보하고 국가의 폭력기구들을 통해 그들의 권력을 유지시켜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부르주아 권력의 근거는 인민들의 정치적 토론이나 참여와 같은 민주적 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병영과 야영, 샤벨 군도와 총검, 콧수염과 군복’과 같은 국가의 폭력기구들에 있었다는 것이 맑스의 분석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루이 보나빠르뜨가 의회를 무력화시키고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다 결국은 황제로 등극하게 되는 사건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중단이나 훼손이 아니라 그것의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부르주아의 사회적 지배가 확립되는 시기였던 만큼이나 아직은 그들의 사회적 지배가 충분히 견고하게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었고,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들의 지배를 위기로 몰고가는 현실적 위험세력으로 남아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부르주아 대중들이 원했던 것은 민주주의적 권리들의 정치적 보장이 아니라 “강력하고 무제한적인 정부의 보호 아래 안심하고 자신들의 사적 영업에 몰두”(부뤼메르18일)하는 것이었다고 맑스는 말하고 있다. 당시 부르주아에게 필요했던 것은 공화정이라는 외피마져 벗어던지고 계엄통치라는 자신들의 지배원리를 명확하게 드러내줄 집행권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황제가 되길 원하는 보나빠르뜨에게서 그 권력의 이상을 보았던 것이다. 입법권력을 무화시키는 집행권력의 폭력적 지배는 당시 부르주아 대중의 이해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귀결이었던 것이다. 즉 계엄통치로 대표되는 집행권력의 폭력적 지배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외부적인 사태가 아니라 그것의 내재적이며 잠재적인 원리이며, 주권형태로서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는 상황에서는 언제든지 전면화되는 지배방식인 것이다.

아노미아인가 아우토노미아인가

아감벤은 <예외상태>에서 주권의 근본원리가 바로 이러한 원리에 기초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주권을 위기로 모는 사태가 발생할 시 주권은 기존의 법질서를 중단시키는 예외상태를 통해 그 사태를 다시 법질서 안으로 포획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는 그러한 위기를 아노미아라고 표현했는데, 예외상태란 이 아노미아를 다시 노모스(주권, 법)의 지배 아래 두는 권력의 작동방식인 것이다.

19세기 프랑스에서 주권을 위기에 처하게 만든 아노미아란 국가적 주권에 반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 통치, 즉 아우토노미아였다. 맑스는 1871년 파리코뮌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아우토노미아를 발견한다. 부르주아 통치권력은 프롤레타리아트와의 내전 상황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폭도로 규정하며 그들이 아노미아라고 천명하였다. 그리고 그 아노미아를 진압하기 위해 인민의 민주적 권리들을 중지시키는 예외상태로 대응하였다. 하지만 동일한 내전 상황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보통선거를 비롯한 다양한 민주적 제도들을 통해 자신들의 자기통치조직인 코뮌을 구성해갔음을 맑스는 <프랑스 내전>(이하 <내전>)에서 보여주고 있다.

맑스는 코뮌이 내전의 와중에서 취한 이러한 조취들이 “코뮌은 공화국에 진정한 민주주의 장치의 기초를 마련”(<내전>)하였다는 것, “이전의 모든 정부 형태가 본질적으로 억압적이었음에 반해 코뮌은 철저하게 개방적인 정치 형태라는 것을 증명”(<내전>)하는 것이었다고 평가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의 계급지배를 자신들의 계급지배로 대체하기 위해서 혁명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계급지배의 폐지를 위해서, 하나의 계급이 다른 계급들을 통치하는 주권적 통치형태 자체를 폐절하기 위해서 혁명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러한 계급지배의 폐지란 정확히 프롤레타리아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것’(<내전>), 즉 아우토노미아(autonomia)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굳이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적합한 통치 형태를 찾자면 그것은 언제나 자기-통치, 즉 아우토노미아였다. 아우토노미아란 프로레타리아트의 집단적 삶으로부터 분리된 초월적 통치가 아니라 자신들의 집단적 삶의 형태를 스스로 구축해가는 정치적 실천이다. 부르주아의 아노미아란 정확히 프롤레타리아트의 아우토노미아였던 것이다. 그리고 파리 코뮌이 수립된 이후 실시된 모든 민주적 조처들은 이러한 아우토노미아의 실천이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다른 물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과연 민주적 주권형식, 민주적 통치형태를 의미하는 것일까? 나는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물음을 다시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파리 코뮌에 대한 맑스의 분석은 통치형태, 주권형식을 어떻게 민주화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통치형태와 주권형식이 부재한 민주주가 지금 여기서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물음이 중요함을 알려준다. 좋은 주권의 통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주권 없는 자기 통치, 다시 말해 프롤레타리아트 혹은 대중의 아우토노미아가 우리의 현실에서 어떻게 가능한지를 묻는 것이 중요다고 나는 생각한다. 통치 형태의 민주화가 아닌 오늘날 프롤레타리아트의 집단적 삶의 형태를 민주적으로 구성하는 것, 즉 비천한 대중의 아아우토미아의 형태를 발명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물음이어야 할 것이다.

– 정정훈(수유너머N)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