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내가 읽은 <자본> – 지훈

- 기픈옹달(수유너머 R)

자본론에서 말하는 소비의 문제

자본론에 따르면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노동력을 팔아 자기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 상품을 만드는 존재다. 즉, 노동자는 노동을 할 때 자유롭지 못하다. 좋다. 그 말에 부정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시하고 싶어진다. 노동이라는 생산의 영역에서 우리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인정하더라도, 적어도 소비의 영역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않은가? 소비를 통해 재화를 누리는 것은 즐겁다. 임금으로 구매할 수 있는 먹을거리, 놀거리, 서비스, 교육 등을 우리는 기꺼이 즐긴다. 우리가 노동을 하는 까닭은 먹고 살기 위한 것을 포함하여 소비를 통해 누릴 수 있는 쾌락을 얻기 위해서다. 따라서 우리를 그렇게 자유롭지 못한 노예 같은 존재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러한 반론을 예상이라도 한 듯, 맑스는 자본론에서 다음과 같은 한방을 날려 버린다.

“역축에 의한 사료의 소비도 역축이 그 먹는 것을 즐긴다고 해서 생산과정에 필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사육장에 있는 닭이 모이를 즐긴다고 해서 닭이 가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동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닭이 모이를 즐기든 말든, 모이는 닭을 가축으로 재생산한다. 맑스가 볼 때 노동자의 소비과정도 마찬가지다. 소비를 즐기는 것이 노동자가 자유로운 존재임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노동을 멈추는 순간 소비할 수도 없게 되는 현실이 잘 알려준다. 소비의 자유가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알을 낳지 못하는 닭이 주인에게 목이 비틀려지듯, 불임인 노동자는 자본가에 의해 소비자의 지위에서 박탈될 뿐이다. 결국 노동자의 소비는 노동자를 노동자로서 재생산하는 기능을 할 때에만 유효하다. 소비는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주는 자유시간이 아니라, 노동자를 기르기 위한 ‘사료 먹이는 시간’인 것이다.

‘자유로운 소비자’라는 명칭은 얼마나 허망한가! 소비자는 자유롭지 못하다. 이는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다. 많은 재화를 소비할 수 있는 부유한 소비자라고 해봤자, 맑스의 틀에 따르면 결국 사료를 많이 먹는 가축에 불과하다. 우리가 소비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노동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과 다른 말이 아니고, 그것은 우리가 자유로운 존재일 수 없음을 시사한다. 우리는 자유로운 소비자로서 상품을 소비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상품이 노동자를 소비하고 있다는 표현이 사태에 가깝다. 소비자이자 노동자인 존재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존재가 바로 상품이니까.

이렇게 볼 때 자본론에서 노동자의 소비 문제를 길게 다루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노동자의 소비는 생산과 분리되어 설명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는 노동자의 생산 활동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유지할 수 있을 때에만 유의미하다. 즉 소비는 생산요소로서 기능할 뿐이다. 이는 소비의 문제를 생산의 문제로 환원하려는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소비의 문제는 생산의 문제와 땔 수 없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맑스가 자본론에서 다루지 않는 것은 노동자의 구체적인 소비 양상이지,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기능이 아니다. 맑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는 노동자를 재생산하는 기능을 한다고 분명히 언급한다. 따라서 맑스의 시대는 자본주의 초기였기 때문에 생산의 문제가 핵심 이슈였다면, 지금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로서 맑스가 놓친 소비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주장은 맑스가 비판한, 생산과 소비를 분리하려는 태도를 되풀이 하는 것이다.

맑스는 우리가 믿고 있는 환상, 자본가를 위한 고된 노동 뒤에 찾아오는 노동자를 위한 자유로운 소비 시간 따위는 없다고 보았다. 즉, 소비와 생산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자유롭지 못한 생산 뒤에 오는 자유로운 소비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자유로운 소비를 말하기 위해선 언제나 자유로운 생산과 함께 말해져야 한다. 노동자들이 자본가를 위한 노동을 멈추는 순간, 자유로운 소비를 위한 공간도 열릴 것이다. 물론 반대로 말할 수도 있다. 자유로운 소비를 실현할 수 있게 되는 순간 노동자 자신을 위한 생산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산과 소비는 무엇이 먼저 해결되어야하는 선후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특정한 생산과 소비를 가능하게 하는 관계망에 있다. 자본론은 우리에게 그 관계망을 보라고 한다. 노동자의 생산과 소비를 자유롭게 할 수 없게 만드는 자본주의라는 관계망을.

– 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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