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내가 읽은 <자본> – 쿠다

- 기픈옹달(수유너머 R)

때리고 달아나고 뒤엉키고

첫 번째 <자본>읽기-두더지잡기 게임

“그들 철도 노동자는 보통의 인간이지 신화에나 나오는 장사(壯士)들이 아니다. 어떤 일정한 점에 도달하면 그들의 노동력은 고갈된다. 그들은 무감각 상태에 빠진다. 그들의 두뇌는 사고를 중지하며 그들의 눈은 보기를 중지한다.” 1866년 런던, 배심원 앞에 3명의 철도노동자가 출두했다. 끔찍한 철도사고가 수백 명의 승객을 저세상으로 수송했기 때문이다. 사고의 원인은 ‘철도노동자의 부주의’이며, 그들은 지금 ‘살인’이라는 죄명으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맑스의 <자본>1권, ‘노동일’에 관한 장에 실린 에피소드이다. 맑스에 의하면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지만,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사건들은 대체 몇 번이나 반복되길래 기록조차 되지 않은 것일까? 철도노동자에게 ‘부주의’는 차라리 수식어가 되어버린 노동의 부스럼딱지이다. 그래서 아무리 긁어 떼어내려고 해도 어느 샌가 보기 흉하게 생겨버린다. 철도관련 사고가 터지면 으레 뒤따라오는 질문-철도 노동자는 사건 당시 부주의했는가-를 던지는 순간 그놈의 부스럼은 철도노동자들을 가렵게 만든다.

12년 전 맑스의 <자본>을 읽었을 때 책도 제대로 읽어오지 않은 채 늘 세미나 자리에서 졸던 철도노동자가 있었다. 농성장의 한 구석에서 지난 밤을 지샌 것 같은, 오래된, 여러 사람들의 온갖 잡내를 맘껏 풍기면서 자본세미나에 참여했던 그 사람. 불철주야 현장활동에 매진하느라 세미나 시간만큼은 한껏 휴식을 취하던 그가 단 한번 흥분하던 대목이 철도노동자의 과도노동에 대한 것이었다. 어느 드링크 광고처럼 1년 동안 진행된 <자본> 세미나 내내 지친 피로를 풀고 가던 그가 마지막 시간에 <자본>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맑스라는 사람, 이 사람이 있어서 참 다행이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저 먼 나라에서 이미 다 말해줬잖아. 내가 이렇게 어렵게 알리고 싶어하는 사실을 맑스는 이미 다 알고 있었어. 나한테도 든든한 빽이 생겼다고.”

아아. 나는 그 순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났다. 대학을 나와 이제 막 노동운동을 하려던 나에게 이 얼마나 가슴벅찬 한 노동자의 일갈이란 말인가!

그래. <자본>은 정말 이해되지도 않았고 그다지 재미도 없었지만 이 노동자를 보라. 얼마나 명쾌한가. 우리는 맑스를 뒷 배경으로 삼아 열심히 싸우는 일만 남았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 싸웠다. 가끔 투쟁의 현장에서 마주친 적은 있었지만 그와 내가 다시 공부하는 곳에서 만난 적은 없었다. 사실 <자본>이 어려웠기 때문에 재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재미는 별개의 문제였다. 맑스의 어떤 글을 보더라도 재미는 없었다. 강렬한 문장을 발견하더라도 내 앞에 펼쳐지는 격렬한 싸움에 딱 들어맞는 멋진 수사였기 때문이었지, 그것이 ‘맑스’는 아니었다. 말하자면 그 당시 나는 두더지 게임을 하고 있었다. <자본>이 아니라 그 어느 텍스트를 보더라도 삐죽이 솟아나는 그 어떤 물음도 망치로 쾅쾅 내리쳐서 평평한 상태로 만드는 것. 그래서 내가 마주한 현실에대해 모든 글들로 하여금 대변하게 하는 것. 몸을 한껏 긴장시키고, 주의를 집중한 채 두더지가 구멍위로 뿅 나타나는 순간 단호하게 내리쳐야 하는 그 두더지 게임을 오래 지속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피곤한 일일뿐더러, 쾌감은 내리치는 순간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어느 한 놈이라도 놓치면 더 바짝 약이 올라 점점 더 신경질만 늘어가게 된다. 그러니 나에게 맑스는 재미와는 결코 엮일 수 없는 것이었다.

두 번째 <자본>읽기 – 도둑잡기 놀이

수유+너머에서 맑스 보다 더 세련된 철학자들을 만나는 동안 나도 더 세련되어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지고 있을 무렵 철도 파업이 뉴스를 통해 보도 되었다. 그리고 12년 전 ‘그’가 생각이 났다. 그는 그 후에 좌파들의 엄청난 기대와 지지 속에 철도노조 위원장이 되었고, 보란 듯이 파업을 약속했다. 사람들은 그가 기존의 어용 위원장들이나 모호한 민주파 위원장들하고는 다르다고 생각했고, 그의 ‘진정성’과 열의를 신뢰하기란 정말로 쉬운 일이었다. 그의 성품과 우리의 기대-이제는 정말이지 믿고 싶다-가 그러했으므로. 그리고 파업에 대한 엄청난 기대와 약간의 우려 속에 그는 약간의 우려를 현실로 만들었고, 파업 철회와 함께 위원장직을 사퇴했다.

뭔가 복잡한 이야기가 바람결에 실려 왔지만, 나로서는 더 이상 그러한 이야기가 재미가 없었으므로 바람결에 실려 보냈다. 그리고는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자본>을 다시 읽게 되었다.

12년 전보다 이해력은 좋아졌지만 기억력은 상당히 떨어진 채로 <자본>을 읽는다. 내가 <자본>에서 잡아채고 싶은 것은 맑스의 태도이다. ‘“전진하겠다”는 선의가 사실에 대한 정통한 지식을 때로 압도했던 당시의 프랑스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의 필요성과 그러한 비판을 철저하게 수행할 수 없음에 대한 자기한계에 직면한 그 간극이 <자본>의 추동력이었다. 1848년 혁명이 반혁명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목격하면서 그것이 역사의 뒷걸음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그런데 쭉 뻗은 직선이 아니라 지그재그로 충돌하면서 나아간다는 통찰 속에는 역사의 전진은 전진하겠다는 선의만으로는 나아가지지 않는다는 깨달음이 깔려있다. 그래서 <자본>은 차갑다. 그 어떤 의도와 명분, 선의를 제거한 채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분석한다. ‘피와 오물’을 뒤집어 쓴 채 나타난 자본주의이지만, 그 속에서 노동자가 가변자본이기를 멈추지 않는 이상 그 피를, 오물을 씻어내는 길은 없어 보인다. 그래서 맑스의 전략은 가을바람의 서늘한 건조함이다. 자본주의의 열매를 떨어내고, 단 하나의 푸른 잎마저 말라 죽이기. 낙엽이 되어서도 떨어지지 않은 채 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때 이른 절망이나 뒤 늦은 희망조차 떨어뜨리기. 그렇게 선의를 바짝 말라 없애고 나면 우리는 우리에게 남은 앙상한 얼마되지 않은 그 초라함에 경악해 놀라 뒷걸음치거나, 아니면 오로지 그만큼만을 부여잡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뭔가 굉장히 퍽퍽하다고? 아니! 그건 맑스의 긴장을 놓쳤기 때문일 것이다. 그 긴장이 이제야 전달이 된다. 그래서 이제야 심장이 뛴다. 그런데 자꾸 미끄러진다. 잡은 듯하면 저만큼 달아나 있고, 맥놓고 있으면 바로 옆에 와있다. 그게 맑스의 사유인지, 나의 현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도둑잡기 놀이를 하느라 하루해가 짧다.

80년대에 운동을 하다 고문을 모질게 당했던 어느 선배는 정신병원을 오가며 20년만에 석사학위 논문을 썼다. 한때 장래가 촉망되던 유능한 이론가였던 그 선배의 늙은 논문을 모두들 축하해주었지만 정작 그 논문을 읽고 토론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문만 읽다가 던져놓은 그 논문의 주요 주제는 맑스 속에 살아있는 헤겔의 복원이었다. 오늘날 포스트모던한 지식인들이 맑스 속에 살아있는 헤겔을 죽은 개 취급하는 것을 개탄하는 그 서문의 한탄이 절절했지만 더 읽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 지금 내가 맑스를 이렇게 읽었다면 그것은 하나도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어느 문장은 헤겔의 영향하에 있는 것이고, 또 어느 문장을 헤겔을 비판하고 극복한 것이고 등등. 이렇게 맑스를 읽는 것은 고된 노동일 뿐이다. 맑스가 인간주의를 전혀 벗어날 의지가 없었으며 반여성적이었다고 해도 그것이 맑스를 버려야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맑스를 버려야 한다면 그것은 맑스의 사유가 ‘전진하게다는 선의’ 그 이상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을 때일 것이다. 그것은 맑스 뿐만은 아닐 것이다. 맑스와 함께 쫓고 쫓기는 도둑잡기놀이를 하려면 맑스 시대의 언어로 맑스의 사유를 가둬놓아서는 안된다. 나의 시대 유행하는 언어를 맑스도 사용했다는 것만으로 열광하는 가벼움을 경계해야 한다. 엥겔스는 맑스의 사유가 글로 다 표현되지 못한 것을 늘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어디 맑스 뿐이랴.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이다. <자본>이라는 산에 오르려고 헉헉대다보면 저 깊은 골, 밑이 아득한 골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놓치기 쉽다. 나의 세 번째 <자본>읽기는 그 골짜기에서 맑스와 뒤엉켜 싸움인지 놀이인지 모를 그런 물장구이지 않을까?

– 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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