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공방 통신

제비꽃 달팽이의 외도, 교생실습을 다녀와서

- 기픈옹달(수유너머 R)

제비꽃 달팽이의 외도, 교생실습을 다녀와서

교생실습가기 전

이번학기가 대학교 졸업학기인 나는 학교에 가기보다는 주로 연구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연구실에서 빡쎄기로 유명한 콜레기움과 DNA등의 프로그램들을 비롯해, 3개의 일반 세미나와 빵집 워크샵을 하고 있었던 통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3월에 끝나는 것들이었고, 5월 한 달간 교생실습이 잡혀있던 나는 4월에 시작하는 프로그램들을 시작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학교에도 가지 않고, 연구실에서도 빡쎄게 하는 것이 없는, 한 달 정도의 자유 시간이 생기게 되었다.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연구실과 학교를 오가며 시간을 보낸 지난 일 년 간 좋아하는 영화도 거의 보지 못했고, 사놓기만 하고 못 읽은 책들도 있었다. 해야 할 것들도 많았다. 진학할 대학원도 결정해야 했고, 그러려면 제국주의의 언어라 핑계 대며 내팽겨 쳐둔 영어도 수습해야 했다. 이 여유롭게 주어진 한 달을, 그동안 못한 하고 싶었던 것들과 해야 할 것들을 시작하며 알차게 보내려 마음먹었다. 아침 일찍 연구실 나가 빵을 굽고, 영어공부를 하고, 읽고 싶었던 책들을 읽고, 점심을 먹고, 산책도 하고,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고. 한 달 동안 영화를 30편 보겠다, 라거나 토익 점수를 100점 이상 올리겠다, 등의 터무니없는 계획은 아니었다. 그저, 무리하지도 게으름 피지도 않고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할 수 있는 만큼 한 번 해 보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4월 말, 교생실습 시작일이 며칠 안 남은 시점의 나는 무기력하고 우울했다. 애초에 마음먹었던 일들 중 제대로 진행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그 한 달간 나는 꽤 오랜 시간 인터넷 서핑을 했고, 안 봤던 TV를 보았으며, 거의 매일같이 아침 10시가 넘도록 늦잠을 잤다. 계획대로라면 연구실에 가서 빵을 굽고 있어야 할 내 몸은 아직 침대에 붙어 있었고, 일어 공부를 하고 있어야 할 내 눈과 손은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었다. 읽고 싶었던 책과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는 대신, 보지 않으려 뽑아놓은 TV선을 연결하여 재방송하고 있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새벽이 올 때 까지 보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게 ‘자유 시간’은 흘러가 버렸고 교생실습이 시작되었다.

교생실습 하는 동안


<수업이 끝난 쉬는 시간, 피곤한 아이들> / <담임을 맡았던 반 아이들과>

실습학교는 모교인 고등학교로, MB의 생가가(실제로는 살지 않았다는 소문이 도는) 관광지로 개발된 지역에 있는 여자고등학교였다. 실습 첫 날부터 바로 담당 선생님의 수업에 참관하고, 내가 맡은 반에 영어듣기 감독으로 들어갔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와 그다지 달라진 점이 없었다. 아이들은 7시 50분 까지 등교해서 8시부터 20분간 영어듣기를 하고, 8시 20분 0교시를 시작으로, 6시 10분 8교시가 끝날 때 까지 계속해서 수업을 들었다. 점심 저녁 시간은 각각 50분으로, 1000명이 넘는 학생이 한 번에 200명 수용 가능한 급식소에서 영어단어가 나오는 전광판을 보며 밥을 먹었다. 1,2,3학년 중 가장 밥을 늦게 먹는 1학년 들은 밥알이 목구멍에 다 넘어가기도 전에 야간 자율학습을 시작해야 했다.

아이들은 꾸벅꾸벅 졸면서도, 남자친구와 싸워서 마음이 심란하면서도, 다리가 부러져 깁스를 하고서도,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만 있어 요통과 변비에 시달리면서도 꼬박꼬박 학교에 나왔다. 신기했다. 아이들로 하여금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에 나오게 하는 것은 뭘까. 사람마다 공부하는 정도, 스타일, 생각하는 진로가 다 다른데 이 아이들 모두를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에 14시간을 학교에 잡아두는 힘이 뭘까. 아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앉아있는 것일까. 내가 고등학교 때를 생각해 보았다. 나도 아이들과 똑같이 하루 14시간을 버텼었다.

<함께한 교생들>

실습 나온 교생은 12명으로 모두 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대학교 4학년들이었다. 12명 교생들의 학교와 학과는 제각각이었지만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 혹은 선후배라는 점, 아이돌 그룹에 열광한다는 점, 대학교 졸업반 이라는 공통된 점이 있었다. 이들 중에는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자격증만 따 놓고 일반 회사 취직이나 대학원을 준비하는 이들도 있었다. 모두들 참 열심이었다. 수업준비 하랴, 맡은 반 아이들 챙기랴, 업무처리 하랴, 대학교 과제 하랴, 영어시험준비 하랴. 특히 보건교사로 온 간호학과 친구 두 명은 토익 공부에 굉장히 열심이었는데, 대학병원같이 큰 병원에 간호사로 들어가려면 영어 점수가 필요한 것이 그 이유였다. 다들 좋은 직장에, 좋은 대학원에 가고 싶어 했고, 부모님의 노후를 걱정했으며,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아이들과 교생들 틈에서 2주 정도 지났을까. 어느 샌가 수업준비며, 읽고 싶었던 책을 읽는 것이며, 영어공부까지. 주어진 일들을 열심히 하고 있는 내가 보였다.

이 시점에서 나는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실습 오기 전 한달, 실습을 하고 있는 지금.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어떤 차이를 갖고 있기에 내 몸이 움직이는 것이 이토록 다른 것일까. 오기 전 한 달 동안은 어딘가에 구애받는 것 없이 자유로웠다면, 지금은 교생실습이라는 틀 속에서, 아이들 틈에서, 나와 비슷한 또래의 교생들 사이에서 일정한 시간에 출퇴근 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다른 점이었다. 기억이 시작되는 무렵부터 최근까지 정해진 규칙과 틀이 있는 삶에 익숙해진 나였다. 그러한 내 몸은 주어진 규칙과 틀을 벗어난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 졌을 때, 그 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이는 비단 나만이 갖는 증상은 아닐 것이다. 지금 이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이들, 같이 하고 있는 교생들, 30년 가까이 직장을 다니시는 부모님. 이들 중 누군가에게 틀에서 벗어난 자유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본인이 원하는 대로 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시간표를 짜며

교생실습에서 돌아온 이후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시간표를 짠 것이다. 애초에 가졌던 문제의식이 “‘틀’속에서의 삶이 너무나 익숙해져버렸는데, 어떻게 하면 틀이 없는 상황에서도 나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단 걸 생각하면 시간표를 짜는 일은 틀을 긍정하는, 문제의 해결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틀’에서 벗어난 삶이 가능할까? 틀은 굉장히 많다. 학교, 직업, 돈, 부모님, 결혼, 자녀, 친구들, 관습 등등. 이 중에는 직업 같이 어렵긴 하지만, 개인의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있고 혈연 가족과 같이 그럴 수 없는(아주 힘든) 것이 있다. 하지만 그 많은 틀 중 하나라도 갖고 있지 않은 개인은 없다. 우리는 시기에 따라 틀들을 바꾸어 가며 혹은 틀이 가지는 강도를 달리해 가며 그 속에서 살아 갈 것이다. 또한 틀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유치원에서부터 시작해 대학까지 20년을 ‘주어진 틀’ 속에서 살아오면서, 그런 식의 삶이 이미 ‘내’가 되어버린 것이다. ‘틀’이 벗어날 수도 없고, 생각보다 깊이 내재된 어떤 것이라면 ‘어떤 틀을 선택하느냐’가 더 적절한 질문일지 모른다. 실습가기 전 한 달이 우울했던 까닭은 내게 주어진 자유로운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주어진 틀(대학, 연구실 등)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는 상황에서 내 스스로 틀 조직해내지 못하는 상황 때문이었던 것이다.

조만간 백수가 될 예정인 나는 위에서 언급한 틀 중, 7살 이후로 한 번도 벗어본 적이 없는 ‘학교’라는 틀에서 빠져나올 것이다. 지금까지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던 가장 큰 동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만약 이 기간을 실습가기 전처럼 그저 자유롭게 살았다가는 무기력증과 우울증에 빠지기 십상일 것 같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내 스스로가 틀을 선택하고 조직해야 할 때 이다. ‘틀’이 없는 상황에서도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것이 아주 서툰 지금의 상황을 생각하면 스스로가 ‘틀’을 선택하고 그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더 필요한 일일 것이다.

– 제비꽃달팽이

응답 3개

  1. 돌맹이말하길

    백수임박 축하해요!!
    멋진 백수 생활 꾸려나가길~

  2. 미루말하길

    제비꽃빵집은 누구나 함께하는곳인가요.. 함께할수있다면 언제인지등 알고 싶어요..

    • 더운달팽이말하길

      네~ 언제든 열려있습니다^^
      연락주시고 놀러오심돼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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