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문학의 고향

- 김융희

문학의 고향.

화창한 봄날, 연구소 가는 날을 접고 잠깐 야유회를 다녀왔다.
모처럼 나들이로 한강변은 초록빛 자연에 마음이 상쾌하다.
잘 정비된 도로, 벌써 두물머리 양평 양수리에 있는 “세미원”이다.

경기도와 양평이 함께 운영하는 꽃과 물의 정원 洗美苑.
많은 文句중 특히 “觀水洗心 觀花美心”(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한다.) 한강수를 보면서 꽃을 보면서
찌든 마음을 씻고 마음을 아름답게 가져보라는 권고의 글인가 싶다.
도도히 흐르는 한강수를 끌어들여 돌틈 사이 꽃과 풀을 통과하며
맑은 물을 만들어 내는 컨셉으로 설계되어진 매우 넓은 대정원이다.
입구에서의 혼탁한 물이 굽이 굽이 돌아 흐르며 차츰 맑고 깨끗한
물이 되어 친환경 정수 능력을 모두가 쉽게 볼 수 있다.
곳곳에 쉼의자가 놓여 있고 친절한 도우미의 안내와 설명이 유유히
흐르는 한강물처럼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오후 일정은 수종면의 문원리에 있는 “황순원 문학촌 소나기마을”이다.
한강변의 뛰어난 경관지역답게 마을도 집들도 모두 좋와 호화롭다.
특히 소나기 마을 문학관 주위는 어느 고급 리조트에 온 기분이다.
잘 지어진 문학관에 고급 시설과 환경들, 작가의 묘지도 봉분이 아닌
검은 대리석의 서양식 석분이다.
비치된 팜프렛 뿐, 작가에 대한 별다른 정보도 예비된 준비도 없어
답답하다. 팜프렛을 보면 작가 황순원은
평남 대동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본의 와세다 영문과를 나왔다.
그는 유복한 가정에 태어나 대학 교수와 작가로 평탄한 삶을 누린 그이지만,
작품은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닌 오히려 소박한 서민의식을 주제로 작품을
했으며, 성품도 소박 강직하여 대학에서의 좋은 보직도 사절, 평교수를
고수하며 가르치는 일에 전념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의 문학관은 참 호화롭다는 생각이다.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다. 화장실 변기에는 오물이 그데로 머물고 있다.
수돗물도 잘 내리는데….
관람에 열중인 일행들을 떠나 나는 주차장의 버스에 미리 올랐다.

얼마 전 나는, 양지 바른 곳에서 남쪽 바다를 바라보며 편히 잠들어 있는
이청준의 묘소와 생가를 다녀 왔다. 묘소는 약간 경사진 산자락 밭 한 켠에
있어, 구불거리는 길은 급조된 시멘트 포장으로 안내판도 없어 처음 찿는
이들에게는 불편하다. 생가역시 동네 가운데 집들 사이에 붙어 있어
좁은 골목길 찿기도 힘들고 걷기도 힘들다. 집은 전혀 꾸밈이 없이 옛
그데로의 모습이며, 마당 한켠에는 작가의 간단한 내력이 쓰여있다.

오는 7월 말이면 그의 서거 3주년이다. 3주기를 맞아 기념 사업회에서는
묘지에 기념물을 설치하기 위해 터를 잡아 공사중이었다.
얼마전 안내서를 받아보니 사업회에서 모금 운동에 나섰다고 한다.
돈이 필요하겠지!
그런데 안내문 말미에 기념물에 모금 기부자의 이름을 세기겠다고 했다.
조금이라도 성의를 보여야 겠다던 마음이 싹 가셔버린다.

생전 기념물을 세우겠다는 지자체의 집요한 요청에도 절대 고사한 그였다.
그래서 동향의 다른 작가들은 기념물이 있는데도 그만은 지금도 없다.
결코 나타내는 일에는 한사코 사양한 그였다.
작품을 위해선 작가는 자기 삶을 버려야 한다며, 삶에 윤택이 초심을 자꾸
흐리게 한다며, 늘 자탄하던 모습이 새삼 그를 그립게 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했던가.

미백을 생각하면서 갑자기 주위가 쓸쓸하다. 홀로 버스에서 30분도 넘게
기다리는데도 일행은 아직 감감이다. 잠시 상념의 마음이 짜증으로 변한다.
어서 문원리를 떠났으면 좋겠다. 10여분을 더 기다리자 일행들이 왔다.
문학관에서 제공하는 에니메이션을 보았다며 모두 만족스런 얼굴들이다.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 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
거기 가서는 조그마한 가겟방을 보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소설 “소나기”의 맑고 순수한 소년 소녀의 사랑이야기가 펼쳐진
작품 배경이 “양평”임을 알 수 있는 구절이 소설속 말미 부분에 나온다.]

문학관에 비치된 안내 팜프렛에 적힌 내용이다.
간단한 팜프렛에는 이곳에 황순원 문학관이 세워진 내력이 없다.
그래서 문학관 타이틀이 작품 이름을 딴 “소나기 마을”인가?
“소나기” 작품중 단 한 번의 지명이 나왔다고 여기 저기 계속 쓰여 있는걸
보면 지자체에서 관광을 목적으로 이곳에 문학관이 만들어졌음직 하다.
하긴 그의 묘소가 있으니 인연이라면 큰 인연이겠다만.

문학관 주차장엔 우리 차 말고도 관광버스가 더 있었으며,
문학관에는 우리 일행이, 그리고 잘 가꿔진 잔디 광장엔 어린이팀이
즐거운 놀이를 하고 있었다.
경관 좋은 환경에 잘 꾸며진 시설, 조용한 숲길도 썩 그윽해 보였다.
관광지로써는 좋은 곳이요, 거기에 맞춰 훌륭한 시설인 문학관에 들러
차분한 마음으로 작가와 작품을 더듬어 보지 못하고 홀로 외로워하며
한적한 고향에서 편히 잘 쉬고 있는 미백을 뜽금없이 그리는 나였다.

연구실 수업을 거른 채, 야유 나들이를 나선 마음 한켠의 옹이가 이리도
빗나갔나 보다. 점심도 좋왔고 일행들의 분위기도 좋았는데….

– 김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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