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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고통

- 소모뚜

아름다운 고통

얼마 전에 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내용은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들입니다.

여자들은 집안 일을 해야 해서 남자들처럼 밖에 나가서 일을 할 수 없고
또한 밖에 나가서 일을 하게 되면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집에 가서도
집안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중부담이 된다는 것입니다.

처음 들어보는 내용은 아니지만 이런 내용을 들을 때 마다 왠지 슬픕니다.
가족을 위한 노력하는 것을 고통이라고 표현을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을 고통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회적 문제까지 취급되어 강의까지 하고 있는 상황을 보게 되는 저에게는 슬픔만 남았습니다.

강의 내용에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 듣고 있는 여성들과 죄인이 되는 기분으로 어두운 표현으로 강의를 듣고 있는 남성분들을 보면서 이주민 입장에서 보는 저는 한숨만 나왔습니다.

여기서 제가 하고자하는 말은 남녀 간에 평등, 가부장제, 페미니즘 같은 이야기는 아닙니다. 누가 더 고통 받고 누가 더 편하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이런 내용들은 워낙 민감한 이야기들이라서 저는 그저 이런 것에 대해 저 같은 이주민들의 생각을 전하고 싶은 뿐입니다.

한국인들 포함해 전 세계에 이주하면서 살고 있는 분들 중 대부분이 자기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살고 있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남자, 여자 모두가 다른 나라로 들어가서 고된 일,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매일 같은 일, 작은 공간에 반복된 일을 하면서 새로운 것이 뭔지 몰라도 매일 매일 그런 고통을 기쁘게 받아주며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형제들의 미래를 위해 오빠로서, 언니로서 ,또한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등 1인 다역으로 살아가면서도 그것이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그래서 내 자신이 힘들어도 그 아름다운 고통을 내가 먼저 받겠다는 것이 이주민이 되는 길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남편 혹은 아내가 다른 나라로 이주노동자로서 가는 날. 공항에서 서로를 미안하고 서로를 위해 열심히 하겠다며 눈물을 흐리면서 약속을 하는 그 마음. 자신이 그토록 다니고 싶고 꿈꿔왔던 대학을 포기하고 동생들 학비를 위해 해외 나가서 일하겠다는 오빠를 보면서 미안해하는 동생들과 가족을 위해 헌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어 이를 자랑스러워하는 오빠의 마음. 이런 마음은 “나보다 가족이 먼저” 라는 사랑 또는 책임감에서 나옵니다. 가족 때문에 내가 피해 받는 다라고 생각을 하지 않다는 거죠.

내가 힘들게 일해서 버는 돈을 가족에게 보내주고 가족이 그 돈으로 예쁜 옷을 사 입고 나에게 보내준 사진을 자꾸 꺼내어 보면서 기뻐하는 마음이 타국에서 외롭게 생활하는 이주민에게는 아주 효과 만점 보약입니다.

버마독립영운 아웅산장군 가족, 오른쪽부터 아웅산 장근, 어머니, 아내와 아이들 (맨앞에는 아웅산수지여사) 자신의 가족을 포함해 온 국민이 가족이라고 생각해 자신의 삶을 헌신하는 것에 기뻐하셨던 아웅산장군과 아웅산수지여사의 사랑과 책임을 존경함으로서 이사진을 배치합니다.

어렸을 때 들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농부가 자신의 농장에 있는 벼를 먹으러 오는 앵무새들을 잡으러 농장으로 나왔습니다. 농장에 있는 벼들을 맘껏 먹고 있는 수많은 앵무새들 중 아주 크고 통통한 한 앵무새는 맘껏 먹고 난후에도 많은 벼들을 또 가져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를 보는 농부가 이렇게 욕심이 많은 통통한 앵무새를 잡으러 결심했습니다. 농부는 손에 집힌 앵무새에게 “너는 다른 새들처럼 배부르게 먹었으면 됐지 왜 또 가져가려고 하냐?” 라고 물어보자 앵무새가 “저는 새로운 빚과 헌 빚을 갚아야 해서 그랬습니다.” 라고 답했습니다. 농부가 무슨 뜻인지 물어보자 앵무새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헌 빚이란 저를 낳아주신 부모님에게 갚아야하는 빚을 말하고 새로운 빚은 내가 낳는 자식들에게 해야 할 임무를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먹고난후에도 그들을 위해 벼들을 또 가져가는 겁니다.”라고 답하자 농부는 부모님의 은혜와 자신의 가족을 위해 책임을 다하는 통통한 앵무새를 평생 자신의 농장에서 맘껏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줬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여러 가지 책임들을 가지게 됩니다. 책임이 있다는 것은 나에게 누군가가 시켜서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책임 있다고 생각해서 갖게 된 것입니다. 가족과 멀리 떨러져 살고 있더라도 이를 눈물이 가득한 미소로 받아 주고 살고 있는 이주민들에게는 가족 때문에 내가 피해, 고통을 받는다는 생각 대신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것에 의미, 또한 나에게 주어진 축복이라고 생각 하는 것입니다.

고향에 있는 부모님들에게 전화 할 때마다 아버지가 저에게 늘 하시는 말씀은 “고맙다. 네가 나의 역할을 다하고 있어서 정말 고맙다.” 라는 것과 “오빠는 우리에게는 제2의 아버지입니다.”라는 동생들의 목소리가 제 삶의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있습니다.

책임을 알고 가지는 것이 축복입니다.

– 소모뚜(이주노동자의 방송 www.mw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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