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꼼

인디포럼에 초대합니다

- 기픈옹달(수유너머 R)

독립영화 작가들의 모임인 ‘인디포럼 작가회의’가 매년 개최하는 영화제인 ‘인디포럼’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독립영화제이며, 독립영화라는 정체성을 지닌 최초의 영화제입니다. 1996년에 시작하여 올해로 15주년을 맞은 ‘인디포럼 2010’이 2010. 5. 27(목) ~ 2010. 6. 2(수)까지 7일 동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립니다.

* 인디포럼(http://www.indieforum.co.kr)이 위클리 수유너머 독자분들에게 초대권을 드리고자 합니다(선착순 1인 2매, 10명. 아래 댓글로 신청해주세요.)

<인디포럼과 위클리 수유너머의 추천작 6편>

1. <용산, 377가지로 표현하기>(촛불 미디어센터 레아, 초청전)

<용산, 337가지로 표현하기>는 ‘촛불 미디어센터 레아’가 만든 ‘용산의 355일에 대한 기록’이다. 아니, ‘레아’가 이 영화를 통해 하고 있는 건, 이미 끝난 투쟁에 대한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정확히 말해서, ‘레아’가 이 영화를 통해 수행하고 있는 건, 아직 끝나지 않은, 따라서 여전히 지속되어야 할, ‘기억-투쟁’이다. 영화는 그 355일에 걸친 투쟁의 과정과 현장을 7개의 다른 시점, 또는 7개의 다른 이야기로 보여 준다(어째서 ‘355가지’가 아니고 ‘337가지’일까? 또 어째서 ‘제목’과는 달리 ‘7가지’일까? 이 의문은 영화를 보고 나면 저절로 풀린다). 그 355일 동안의 투쟁의 중요 순간을 요약해서 보여주는 첫 번째 이야기(‘용산, 355일의 기록’)의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자막이 뜬다. “용산…당신의 가슴 속에 무엇으로 남았습니까?” 이 말은 용산을 단지 ‘참사’로 기억하는 우리들에게 던지는 도전적인 ‘질문’이고, 그 ‘참사에 대한 기억’으로 인한 우리의 막연한 ‘부채의식’에 대한 따듯한 ‘위로’이고,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애도’다. 용산을 단지 ‘참사’로 기억하지 말자는 것, 이것이 이 영화가 던지는 핵심적인 메시지다.

두 번째 이야기는 ‘참사’가 일어난 그 다음날부터 밥을 해 온 ‘남일당 식당’의 아주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다. ‘용산 4상공’에서 식당을 해온 아주머니들이 매일, 적게는 50명, 많게는 500명까지 밥을 해 먹인다. ‘힘든 줄도 모른 채, 요리하면 좋아라하면서’ 달려드는 그 아주머니들의 얼굴에는 이미 분노나 슬픔이 없다. ‘솜씨와 정’으로 만든 그 음식을 먹는 손님들의 표정에는 더 이상 부채의식이 없다. 함께 밥을 먹는 현장, 그곳을 신부님은 ‘하나님 나라’라고 부르고, 수녀님은 ‘나눔의 기쁨’이라고 부르며, 아주머니들은 ‘밥 투쟁’이라고 부른다. ‘14일 단식 투쟁’을 지지하는 ‘500인 1일 단식 투쟁의 날’, 아주머니들은 그 하루를 달콤한 휴가로 즐긴다. 밥을 굶는 것뿐만 아니라, 밥을 하는 것과 밥을 먹는 것도 함께 투쟁이 되는 세상, 삶과 투쟁이 하나가 되는 세상, 그것은 80년 5월 광주 ‘대동 세상’의 ‘부활’이다(‘전쟁 기계의 부활’).

세 번째 이야기(‘시청 앞 하늘 이불’)는 서울시청 앞에서 오세훈 시장 면담을 요구하며 ‘178일 노숙 농성 투쟁’을 한 아주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다. 용산에서 삶의 터전을 빼앗긴 아주머니들이, 한 여름부터 한 겨울까지 시청 앞 광장을 당당히 ‘점유’한다. 비닐 천막은 그분들의 ‘하늘의 별’이 보이는 멋진 ‘룸’이 되고, 시청 앞 광장은 그분들의 너른 ‘정원’이 된다. 그분들은 농성을 해산시키려는 경찰 간부에게 ‘여자 희롱죄, 4년 6개월’을 당당히 ‘선고’하고, 아침 마다 행하는 ‘주차장 앞 1인 시위’를 통해서 그렇지 않아도 부지런한 오세훈 시장의 출근 시간을 점점 앞당긴다. 네 번째 이야기는 ‘행동하는 라디오’, 레아 방송에 대한 이야기다. 2009년 1월 20일 망루에서 돌아가신 이상림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레아 호프’의 한쪽 구석, 그리고 시민들이 왕래하는 용산의 거리 한쪽, 그곳에 자리 잡은 방송국에서는,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매일 11시 30분에서 12시 30분까지, 다양한 프로그램(‘현장방송’, ‘실황중계’, ‘인터뷰’, ‘라디오드라마’ 등 216편에 이르는 다양한 라디오 방송)이 ‘생방’으로 진행된다. “Be the Media, Action Radio”라는 슬로건 아래 진행된 그 투쟁을, 그들은 ‘언론재개발’ 투쟁이라고 부른다.

다섯 번째 이야기는 ‘어느 항의주의자의 고백, 경찰 폭력에 관한 보고서’다. 죽어가는 이 땅의 생명을 위해 전국을 노숙하던 어떤 생태주의자, ‘길에서 평온의 시간’을 맘껏 누리던 이 노마드가, 용산 참사의 소식을 듣고 차마 외면할 수 없어 현장을 찾는다. ‘절차를 무시한 성급한 진압’으로 ‘참사’가 일어난 현장, 그것도 모자라 83세 할머니를 실명 위기로까지 몰고 가는, ‘법이 허용한 경계를 넘어’ 자행되는 경찰 폭력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현장, ‘도무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이 초현실의 공간’ 속에서, 원래 생태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였던 그 노마드는, ‘디카’와 ‘37가지 욕설’을 무기로 적들과 투쟁하는 ‘맹수’가 된다. 여섯 번째 이야기(‘거룩한 분노’)는 ‘남일당 성당’에서 ‘생명 평화 미사’를 수행하던 신부님들에 대한 ‘기록-기억’이다. 그 신부님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어떤 초월적 세계, 즉 죽어서 가게 되는 ‘저 세계’가 아니라, 어떤 내재성의 세계, 즉 ‘나눔의 기쁨’이 살아 있는 ‘이 세계’가 된다. 그 세계에 오게 되면, ‘돈, 돈, 경제, 경제’하면서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고, ‘생생하게 살아 있는’ 참된 미사를 맛보게 된다.

일곱 번째 이야기(‘낙지 도서관 강제 철거’)는 용산 투쟁에 결합했던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가들에 대한 이야기다. 2009년 8월 17일, 처참하게 부셔졌던, 김성환씨가 운영하던 ‘무교동 낙지’ 가게는, 이들에 의해 ‘낙지(樂地) 도서관’으로 ‘부활’한다. 그러나 그 공간은 ‘부활한지 3일 만’에 적들에 의해 처참하게 부셔진다. 그러나 이들은 그 ‘죽음’을 ‘패배’로 기억하지 않는다. 이 처참한 파괴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밝고 경쾌하기만 하다. 용산은, 고병권의 말처럼, “자기 삶의 장소에서 더 이상 삶을 허락받지 못한 이들”이 “산자들이 죽은 자들을, 문자 그대로 곁에 두고 지낸 1년”을 살아온 현장이다. 그러나 그곳은 가장 ‘행복’한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더 이상 추방될 곳이 없는 자들이 마지막 배수진으로 선택한 용산의 고공, 그곳에 살기 위해 올라갔다 까맣게 탄 시체로 돌아온 5인의 열사, 그리고 그만큼이나 까맣게 타 버린 삶의 터전, 이 죽음의 공간이,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가들에 의해 새로운 삶의 공간으로 바뀐다. ‘레아 호프’ 안팎은 갤러리가 되고, 용산은 ‘생명, 평화’의 메카가 된다. 여섯 번째 이야기인 ‘낙지 도서관 강제 철거’에서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도서관이 처참하게 파괴되는 순간(죽음의 순간)에서, 그 도서관이 ‘잉태된 순간’으로 흐르는 것이다. 이 도저한 역행, 그것은 용산을 더 이상 ‘참사’로 기억하지 말자는 단호한 다짐이고 호소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레아’는 단순한 기록자나 편집자가 아니라, 중요한 피사체이기도 하다. 즉, ‘레아’는 그 투쟁의 중심에 서 있던 당사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이러한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용산 참사’를 ‘과거의 비극’으로 만들고자 하는 건, 언제나 그 참사를 일으킨 자본과 권력이고(거짓 기억 투쟁의 주범), 또는 그 투쟁의 구경꾼이었거나 방관자였던 우리(거짓 기억 투쟁의 종범)다. 거짓 기억을 만드는 것은, 언제나, ‘그렇게 치열하게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냐’라는 회의, 즉 ‘가시적 성과에 대한 계산’만으로 투쟁을 평가하고자 하는 ‘공리주의’다(이 공리주의야 말로 언제나 적의 무기다). ‘레아’는 그 투쟁의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그 투쟁의 중심에서 그 현장을 삶과 문화의 공간으로 만들어냈던, 이 시대의 진정한 ‘미디어-액티비스트’다. ‘레아’라는 고유명사는 수많은 익명의 주체들(또는 비인칭적 주체들)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영화를 만든 ‘레아’가 그렇듯, 영화 속에는 이 시대의 수많은 익명의 주체들이 담겨있다. 그들은 함께 슬퍼하고, 분노하고, 노래하며, 익살을 떤다. – 변성찬(수유너머N)

2. <당신과 나의 전쟁>(태준식, 모던타임즈)

2009년의 이른 여름의 공기는 늦게 시작한 열기로 급하게 데워져 있었다. 그 공기 속에서 파업하는 노동자들이 공장 지붕 위에서 경찰에 쫓겨 휘청거리면서 뛰어가고 있었다. 새해 벽두부터 가난 때문에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했던 우리는 그런 모습에서 불안함을 떨쳐 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급하게 데워진 공기는 어느새 불안으로 팽팽해져 있었다.
<당신과 나의 전쟁>은 그 불안에 대해 이야기한다. 77일 동안 아니 그 보다 앞선 시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77일간 공장 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밖에서는 알 수 없었던 그 곳의 그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 시간에 노동자가 느꼈을 혹은 그 가족들이 그의 동료들이 느꼈을 감정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새삼 다른 것은 두 개의 목소리로 감독이 이야기를 건다는 것이다. 하나는 노동자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또 다른 하나는 단호하지만 나지막하게 사회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내레이션이 두 개인 것은 낯설기도 낯익기도 하다. 두 개인 것은 낯선 것인데 둘 다 낯익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런 장치들을 통과하면 노동자 파업이 하나의 사건으로 잊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감독의 진심과 만날 수 있다.

구조조정이 뭔지, 노동유연화가 뭔지, 정리해고가 뭔지, 기업이란 제도는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그 동안 익숙했던 정의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한다. 실제로 사회를 이루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구조조정, 노동유연화, 정리해고가 다시 정의 내려지는 순간 우리는 노동자 파업이란 한 사건이 당신과 나의 전쟁이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독립다큐멘터리의 소재가 주는 강제를 일부분 자유롭게 넘어선 순간이기도 하다. (프로그래머 주현숙)

3. <자가당착 : 시대정신과 현실참여>(김선, 너희가 근대화를 믿느냐)

<자가당착 : 시대정신과 현실참여(이하 ‘시대정신과 현실참여’)>의 히어로 포돌이는 얼핏 일본 아니메 주인공 아톰과 닮았다. 아톰처럼 눈 크고 귀 큰 포돌이가 누군지 우리는 모두 안다. 아톰이 처음 태어났을 때처럼 그도 하반신이 없다. 아톰에게 다리를 만들어주는 박사처럼, 포돌이도 아버지가 필요할 테다. 머리를 곱게 올린 채 기도하는 어머니 방에는 외간 남자가 머문다. “내일” 만나자는 메일을 끊임없이 보내며 애달프게 아버지 소식을 기다리는 포돌이를 찾아오는 건, 아파트 경비원과 쥐 떼들 뿐이다. 이에 분연히 응전하려던 포돌이는 피리 부는 소녀를 만나 성기 있는 새로운 하초를 얻지만….

스크래치와 줌, 노이즈 등 광학적 요소와 음향의 실험적 사용, 촛불 시위 현장 촬영 장면 등으로 “아방가르드와 다큐멘터리의 결합”으로 불린 <자가당착> 전편과 여러 모로 짝패를 이루는 <시대정신과 현실참여>는, 전편의 ‘퍼포먼스’들을 영화적 사건으로 탈바꿈시킨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죽은 자식 고추 만지듯 복상 중인 ‘법과 질서’를 수호하려는 작금의 “시대정신”과, 이에 저항하는 이들의 “현실참여”로 진행된다. 촛불소녀를 타격하는 물줄기를 보며 달리 알레고리를 찾을 이유가 어디 있으랴. 온통 직설로 가득한 용감무쌍한 이 작품은 유사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들까지 낱낱이 까발린다.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그리고 역시 박근혜. (영화평론가 신은실)

4. <970712 희정>(유원상, 개막작)

타자의 고통과 마주할 때, ‘보고자 하는 욕망’은 얼마나 위험한가. 보고자 하는 욕망이 타자의 고통을 즐기려는 욕망으로 변질되는 순간, 카메라는 가학적 관음의 도구가 된다. 타자의 고통을 재현하는 일이 위험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한 소녀가 있다. 동사무소에 들어선 소녀는 머뭇거리기를 반복하고, 우리는 오래지 않아 그 머뭇거림이 소녀에게 고통의 순간이었음을 알게 된다. 소녀는 자신의 상처 입은 한 쪽 손,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서는 안되는 그 손으로 주민등록 지문을 남겨야 한다. <910712 희정>은 소녀의 상처를 향하는 두 시선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 속에 ‘재현된 시선’과 ‘재현되지 않는 시선’. 재현된 시선은 소녀의 고통을 ‘사무적으로’ 바라보는 동사무소 직원의 시선이다. 영화는 얼핏 이 폭력적 시선과 마주하는 일이 소녀에게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말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910712 희정>이 가장 격렬히 싸우는 순간은 재현되지 않는 시선인 관객의 시각적 욕망에 저항할 때이다. 다른 그 무엇이 아닌, 폭력적 시선에 상처받는 희정을 바라보면서도 그녀의 손이 어떠한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자 하는 당신과 나의 욕망 말이다. 이 때 우리의 욕망은 배신되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타자의 고통에 대해 영화가 갖춰야 하는 ‘한 줌의 윤리’이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머 안시환)

5. <비보호좌회전>(안승혁, 폐막작)

영화는 어느 퀵서비스맨의 하루를 뒤쫓는다. 하필이면 ‘비보호좌회전’에서 사고를 내며 시작된 하루, 그날은 그에게 철저한 ‘머피의 법칙’의 날이다. 도로 한 가운데에서 퍼져버린 오토바이,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소음, 그 소음과 경쟁하듯 숨 가쁜 그의 호흡, 그리고 그가 흘리는 식은 땀, 그 하루는 이런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힘겹게 뛰어다녔지만 결국 공치거나 손해를 보게 된 하루. 문제는 그 하루를 일찍 접는 것조차 자기 마음대로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위태롭게 달리는 그의 오토바이 앞에, 하필이면 다시 ‘비보호좌회전’이 나타난다. 두 번 반복되는 ‘하필이면’. 이쯤 되면, ‘사고(accident)’는 단지 ‘우연(accident)’이 아닐 것이다. 퀵서비스가 도로에서 누리는 속도는, ‘보호’를 최소화함으로써 얻게 된 ‘자유’다. 사실, 퀵서비스맨에게는 ‘비보호좌회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언제나 ‘비보호좌회전’ 상태로 도로를 달린다. 그에게는 ‘자유’가 있지만, 그것은 ‘비호보’를 전제로 주어진 것이다. 정확히 그 ‘자유’는 ‘신자유주의’가 우리 모두에게 허용한(또는 강요한) 바로 그 ‘자유’다. 영화 속에서 ‘치명적 사고’는 아직 일어나지 않는다. 그럴수록 우리는 그 사고에의 예감으로 불안하다. 암전 속에 들려오는 오토바이의 질주 소음, 그것은 이미 우리 앞에 와있는 ‘재앙’이다. (프로그래머 변성찬)

6. <두껍아 두껍아><이채윤, 새집증후군>

뉴타운 재개발 지역에서 살아가는 어느 소년의 하룻동안의 이야기이다. 소년의 하루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철조망 담벼락 너머로 보이는 무표정한 소년의 얼굴로부터 세상이 소년에게 던져준 차가움을 느낄 수 있다. 부서져 조각난 채 방안으로 넘어 침입해 들어오는 유리조각처럼 우리의 의지와 삶은 부서지고,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감은 한없이 무겁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소년의 침묵과 행위 속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그의 숨소리는 우리의 마음에 여전히 부닥치고, 겪게 되고 이겨내야 하는 삶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 영화의 제목과 동일한 동요를 떠올리다 보면 이 영화는 어느새 다른 촉감으로 다가온다. 동요의 가사 중 하나,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께 새집 다오’. (영화감독 김영남)

응답 11개

  1. 쪽지말하길

    어제 동생과 영화제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영화제 나들이였는데, 예상(?)보다 관객들이 많더군요.
    개막작과 폐막작으로 소개해주신 두 작품을 다 볼 수 있는 시간이라 운이 좋았어요. 변성찬님과 관객들의 질문에 대한 감독님들의 심플하지만 수줍은 한마디한마디 듣는 것도 좋았습니다. 얼마전에 갑자기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었다며, 다른 설명을 하지 않던 동생과 함께 한 시내 나들이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동생의 속내도 영화 감상으로 돌려 들을 수 있어 감사한 기회였습니다. 감사인사드리고 싶었습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2. 진신민말하길

    초대해주세요
    010 8670 4275

  3. 말하길

    네, 여은정 님과 박카스님, 두 분 더 신청하겠습니다. 앞으로 남은 초대권은 5장입니다. 얼릉얼릉 신청하세요.

  4. 여은정말하길

    신청합니다~
    폰번호는 010 6690 0615 입니다.
    수고하세요^^

  5. 박카스말하길

    저도 한 장 신청합니다!!^^

  6. 말하길

    와, 많이 신청해 주셨네요. 일단, 새털님까지 9명 명단 인디포럼에 알려 드렸습니다. 이름(닉네임) 말씀 하시고 위클리 수유너머에서 왔다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7. 새털말하길

    너무 늦었나요? 자리가 남는다면
    초대해 주세요^^ 010-4288-4485

    • 말하길

      아뇨, 늦지 않았구요. 초대권 나눠주는 부스에 가셔서 이름 말씀하시고 위클리수유너머에서 왔다고 하면 티켓 줄 겁니다. 꼭 보세요.

  8. 쪽지말하길

    초대권 신청합니다.
    010 9966 4733

  9. 달차말하길

    초대장 신청해요~~~
    연락처 010 9938 3080

  10. 월차말하길

    인디포럼 초대권 신청합니다

    010-8595-9396

  11. ssong말하길

    초대권 신청합니다~
    전화번호는 010-9905-5388 입니다.

  12. 말하길

    초대권 신청하신분들은 전화번호를 남기셔야겠죠?

  13. 지인말하길

    초대권 신청해 봅니다…

  14. 지인말하길

    초대권 신청해 봅니다…

  15. 이인훈말하길

    초대받고 싶습니다.(2)

  16. 안녕말하길

    초대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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