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제 손으로 아이를 죽이는 부모, 자본의 가치와 국가가 살인교사

- 기픈옹달(수유너머 R)

제 손으로 아이를 죽이는 부모, 자본의 가치와 국가가 살인교사

부모가 장애를 가진 자기 자식을 또 죽였다. 지난해 9월, 30대 여성이 선천성 눈꺼풀 처짐과 안면신경마비 장애를 가진 생후 2개월 된 딸을 베개로 얼굴을 덮어 질식시켜 살해했다. 이 사건에 대해 법원은 자식을 살해한 어머니에게 징역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였다. 형법 250조에 의하면 부모에 의한 존속살해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있는데, ‘본인이 자수를 했고, 남편 등 가족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법원이 선처를 한 것이다.

장애인단체들은 즉각 성명서를 발표해 입장을 밝혔다.

“장애라는 이유만으로도 죽임을 당해야하는 장애아! 하지만 법원은 ‘장애아이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다’라는 법리적 해석을 내놓음으로써 장애인을 두 번 죽이는 결과를 내놓았다.”

“대한민국 헌법은 죽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인간의 존엄과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명시된 헌법 10조가 한 법조인의 어이없는 판결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망과 다름없다.”

이들의 주요 비판은 사법부가 장애인문제를 시혜와 동정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어 자식을 죽인 부모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생명의 존엄성이 위협당하고,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법원의 판결이 장애인들의 죽음을 정당화하기에, 잘못된 법원 판결에 대한 대책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통 장애인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는 가중 처벌이 이뤄진다. 최근 한나라당 원희목 의원은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의 경우 처벌 수준을 높여야 한다며 성폭력범죄특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원희목 의원은 법을 발의하며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 수준을 아동 성폭력 수준으로 강화해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 성폭력 사건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한나라당 의원조차도 장애인에 대한 범죄에 대하여 보다 강력한 처벌을 주장하고 있는 추세에 법원이 장애아를 살해한 부모에게 온정적 처벌을 한 것이다. 장애아를 키우며 살아온 인생 자체가 형벌 이상의 고통이라는 것을 참작했다고 한다.

‘장애아를 키우며 살아온 인생 자체가 형벌 이상의 고통’이라면 그 고통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가족의 고통이 심하다고 장애인 당사자는 부모에게 맞아 죽고, 질식되어 죽어야 하나? 끊임없이 발생하는 부모에 의한 장애인 존속살해 사건에 대하여 사법부가 계속 관대한 처벌을 내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경쟁과 효율이라는 자본주의 가치로부터 파생된 사회적 결과인 것이다. 장애인이 가족에게조차 죽임을 당하는 것, 국민의 생명을 보장해야 할 국가로부터 전쟁수행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장애인들이 집단적으로 학살당하는 것, 한 나라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에게조차 장애아에 대한 낙태가 정당하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것, 이 모두는 개인적 감정에 기초한 우연하고 돌발적인 사건이 결코 아니다. 결국 장애아를 죽인 사람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장애아를 키우는 형벌 이상의 고통스러운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경쟁과 효율이라는 자본주의의 가치와 국가의 무책임함에 있다. 생산관계 속에서 상품으로 팔아야 하는 몸뚱이가 부실한 탓에 경쟁과 효율에서 밀려나고, 상품의 가치가 떨어지고, 생명의 존엄이 떨어지는 사회. 장애인들은 자본주의의 폐기물로 전락하였다. 그리고 이동하고 교육받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환경, 그 속에서 완전히 배제되고 격리되어 왕따 당하는 문화이다 보니, 살아남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형벌인 고통인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국가는 이를 개인적인 문제로 전가시키며 말로만 사랑과 봉사를 앵무새처럼 떠들어대고 있다. 이런 무책임함이 바로 장애아 부모를 살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살인을 교사한 공범들이 있는 것이다.

장애인단체들이 지적한 바대로 법원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기 위해 대책을 세우는 일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갖고 있는 의미를 짚어내고, 인생 자체를 형벌 이상의 고통으로 만드는 살인 교사범들에 대한 대응과 근본적인 투쟁 없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 해결은 장애인에 대한 인권향상과 복지증진으로 가능한 것인가? 국가에 대한 책임을 강제하는 것으로 일정 정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지만, 자본의 가치와 배치돼 장애인에게 끊임없이 가해지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일본의 급진적인 뇌성마비장애인운동단체는 ‘우리의 몸 자체가 자본주의를 거부한다’고 외쳤다 한다. 장애인운동은 바로 한 시대의 모순을 관통하는 전망과 실천을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닌가.

–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응답 1개

  1. 말하길

    제 자식을 제 손으로 죽인 여성을 사로잡은 공포가 섬뜩하게 전해집니다. 그 편집증적 공포를 먹고 사는 자본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항상,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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