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촌 풍경
해방촌은 마치 혈관처럼 곳곳에 골목길이 나 있다. 옛스러운 타이포그래피로 사람을 반기는 세탁소 간판들, 더운 날씨에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러 달려가는 아이들.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됐다는 이 동네의 모습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알 수 없다. 새 아파트로 깔끔하게 정리된 동네가 된다면 해방촌에서는 더 이상 옛 시간을 품은 듯한 풍경들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마당이 없어 집 앞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하릴없이 대화를 나누는 할머니들의 모습까지 정겹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모습이기에 언제까지나 그리울 것 같은 기분이다.
“예수 믿죠? 구원받을 수 있죠? 할렐루야!” 할머니들을 상대로 전도하던 아저씨는 지나가는 여러 사람을 붙잡고 ‘복음’을 전파했다. “나는 예수 안 믿으면 복음을 전하려 했어요.” 나처럼 종교를 역사의 단편으로만 기억하기에, 여기 사람들에게 종교는 단순한 흥밋거리 이상의 무언가를 느끼게 해준다는 느낌이다. 삶의 무게를 지탱해주는 보루랄까. 더 나은 현실을 스스로의 힘으로 상상하기 힘든 사람에게, 종교는 상냥한 구원의 손길일 테다.
아이들의 모습도 많이 눈에 띄지만 특히 할머니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켜켜이 쌓인 주름 안에는 어떤 세월이 담겼을까. 살갑게 손을 잡고 말을 건넬 수 없었다. 재미 삼아 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실까봐. 깊이 있는 시선으로 이 장소를 알아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어떤 느낌만큼은 잡아내고 싶었다. 지금은 여기 사람들도 잊어버렸을지 모를 해방촌의 역사. 문틈 사이로 미싱 돌아가는 소리가 나고, 가게 안에는 아직도 옛날식으로 진열된 과자들이 한가득 있은 곳. 어쩔 수 없이 이방인의 시선으로 이곳을 보게 된다. 도시의 한가운데 허름한 집들과 옹기종기 모인 성냥갑 모양의 집이 있는 곳. 이곳의 이름은 해방촌이다.
-이상미
강원에서 공부하는 사랍입니다.
실은 수유너머 남산이 있는 해방촌에서 30년을 살았더랬죠. 네 살부터 결혼후에도 5년 살았나봐요. 지금도 친정집은 수유너머에서 1분도 안되는 거리에 있어 종종 가지요.
마흔이 훌쩍 넘어버린 지금, 골목 곳곳을 돌아보면 정겹기도하고 40년 동안 가보지 못한 구석도 있고 정겨움이 넘치지만 막상 제가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하고 지낼땐 정나미가 뚝뚝 떨어지는 가난과 지저분의 극치인 곳이어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곳이기도 했답니다.
‘세탁소 간판’ 얘기를 지나칠수 없네요. 저희 부모님이 시골서 상경하셔서 세탁소를 하셔서 저희 여섯남매를 키우셨거든요. 지금은 연로하셔서 30년 넘게 생업으로 해오신 세탁소도 넘겼는데 지나다보니 그 간판 그대로더라구요.
‘해방교회’의 보이지 않는 권력이 지배하는 동네 해방촌도 얘깃거리인듯 싶구요.
암튼 반가운 마음에 내용없는 댓글 달아보았습니다.
위클리수유너머 잘 보구 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