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황혼의 창업

- 김융희

황혼의 창업

삼 년 전이었습니다. 하동 매화마을의 친구가 매화나무를 보내 왔습니다.
집을 지었다는 소식에, 홍매화 세 그루에 청매화 두 그루를 보내 주었습니다.
한 그루는 욕심낸 친구에게 선물하고 네 그루는 터를 잡아 대충 심었드랫습니다.

집을 막 짖고난 후여서, 주위가 정리도 안돼 어수선한 터라 대충 자리를 잡아
심었지요. 다음 해 보니 아무래도 제 자리가 아닌듯 해서 다시 옮겨 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해를 지내면서 또 자리 변경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른 나무들은 무사한데, 우리집에 멀리 시집을 온 매화나무만 유달리 모진
수난을 겪고 있습니다. 별나게 기승을 부렸던 지난 겨울의 혹한에 홍매 한 그루가
늦게까지 새 잎을 틔우지 않기에 가지를 꺾어 보았더니 결국 얼어 죽었네요,

두 청매는 잎이 무성하여 싱싱한데, 홍매는 다른 한 그루 마져 겨우 몇 잎을
틔워 지금 버티고 있습니다. 이런 무슨 나무팔자가… 두 홍매 나무꼴을 보려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문득 홍매처럼 기구 망측했던 내 젊은 시절도 떠오르고….

온갖 시련과 고통속에서 거의 방황하듯 떠돌이처럼 젊음을 다 보낸 내 삶.
처절하게 통탄 후회하며 늦게나마 잘 못된 삶을 바로 잡아, 나는 이 길,
이 것만으로 내 삶을 마감하리라 굳게 결심하며 새 출발을 하였지요.
20여 년간을 나름데로 잘 버티어낸 그 동안 나의 삶이었습니다.

그렇게 출발했던 그 일을 접고 말았습니다. 남들에게는 조용히 살고
싶다는 말로 속내를 감추면서, 내 삶의 길을 바꿔 보기로 했지요.
특별한, 아주 자유로운 여행을 컨셉으로 남들과는 전혀 아닌 나만의
여행 안내원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벌써 몇 년이 지난 일이었습니다.

해남 땅끝마을을 간다고 하면 우선 인원은 칠팔 명으로 많어도 십 명은 넘지
않는다. 기간은 한 두 밤, 경우에 따라선 삼 박 정도로 하여 함께 승합차를 타고
해남을 향해 떠남니다. 절대로 서두르거나 완벽하게 지켜야 할 스캐쥴은 애시당초
전혀 없습니다. 함께 여행을 위해 지금, 여기에, 우리들이 있을 뿐입니다.
고속도로, 국도, 때로는 지방도로도 상관 없습니다. 산을 바라보며 마을도
보며 스치며 달리다 보면, 배가 후줄근하거나 무었이 먹고 싶습니다.

천안 병천 순대집도 좋고 우리는 주저없이 먹거리집을 찿습니다. 먹고 나면
또 떠나며, 이렇게 국도를 달리다 이번에는 성환 참외밭에도 들려 봅니다.
옛날처럼 원두막이 있는 참외밭이면 참 좋으련만, 지금 그 자리엔 비닐하우스,
우리는 농사일의 고됨도 보면서 이야기를 듣기도 하며 참외를 깍아 먹습니다.

김제 금산사나 고창 선운사를 들려 사찰 참배도 하고 영암 월출산 자락의
도갑사 무위사도 들려 국보급 불화도 보며 쉬엄 쉬엄 달려, 우리는 드디어
해남읍에 도착합니다. 해남 땅끝이 목적지이지만, 지척의 수려한 두륜산 아래
거찰 대흥사가 있습니다. 길 초입에는 윤고산의 고택이 있고요.
이 곳을 좀 여유있게 보고 싶다면 애시당초 서울에서 고속도로를 달려
곧장 해남에 내려 점심시간에 촐촐한 배를 달래기도 하겠지요.

물론 처음 기대와는 달리 별로 끌리지 않음 누구나 또는 모두가 언제라도
돌아설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창공에 뭉게 구름처럼 아무런 구애없이,
일상에서 멀리 벗어나 그야말로 한가로움을 누리는 자유로운 나들이 여행!
이것이 내가 생애의 마지막을 마무리할 사업으로 구상했던 일이었습니다.

일상에서 여유와 한가로움을 잃어버린 우리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바꾸어
보는 나름의 기획이었습니다. 나는 이 일을 위해 우선 15인승 이스타나
승합차를 구입했고, 이름은 좀 엉뚱하지만 “한가로움 포럼”으로 했지요.
우리들의 일상에 한가로움을 끌어드리는 사업으로 기회와 여건이 되면
한가로움을 주제로 포럼도 시도해 보겠다는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구상으로 시작된 사업이 5년전 내가 시도했던 창업이었습니다.
수익을 원하는 사업이 아니라 내 돈 들이지 않고, 하고싶은 여행 마음껏
하면서 지내고 싶었던 것이죠. 이런 신나는 사업이 얼마나 행운입니까?
나는 벤쳐가 아닌 세이프티 창업이라 확신하여 기고만장이였습니다.

그러나, 기대는 꿈이었습니다. 뜻처럼 잘 안되더라구요.
여행은 우선 편해야 한데요. 승합차는 너무 좁아서 불편해 싫탑니다.
공짜 여행을 실컨 하겠다 했는데, 그만 기고 만장이 허탈로 바뀌었습니다.
내 나이에 무슨 사업은…. 마음을 비우고 또 그럭 저럭 보내다 보니
그런데로 지낼만 했는데… 마음이 또 자꾸 동요를 하네요.

실패를 거울삼아 또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황혼 창업을 부푼
마음으로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뜻만 전하며 아직은 미공개입니다.
준비가 완료되면 맨 먼저 수유너머 위클리에 알려 드리겠습니다.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김융희

응답 2개

  1. 고추장말하길

    참… 궁금하네요. 무슨 창업을 하실지…ㅋㅋ 그나저나 지난 번 그렇게 사업으로 바쁘셨다는 이야기… 금시초문이네요.

  2. 말하길

    여행 다녀오셨다더니, 한가로움 포럼 준비하러 다녀오신 건가요? 창업하면 꼭 불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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